山 이야기(5) - 지리산(천왕봉)


백무동으로 오른 지리산(천왕봉)


 
 
▲ 천왕봉에서 산친구 반려와 함께

일 시

2004년 8월 9일(월) 05:30 - 18:30 (13시간, 휴식시간 3시간10분 포함)

날 씨

흐린 후 맑음

코 스

주차장 - 하동바위 - 소지봉 - 망바위 - 장터목 - 천왕봉 - 장터목 - 연화봉 - 촛대봉 - 세석 - 가내소폭포 - 주차장 (19.5km)

동 행

반려와 나

20년전 이맘때 혼자 3박4일 계획으로 출발하여 구례구역으로 가는 열차안에서 같은 회사 사람들을 만나 결국은 2박3일만에 화엄사-중산리 구간을 종주했었다. 등산장비를 갖추고 처녀 산행으로 지리산 종주를 택했던 무모하리만치 용감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또 그 이후 지리산을 종주 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날들을 생각하면서, 청춘이란 시를 새삼 떠올려 본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나이)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나오는 청신함을 말한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과 싸워 이기는 모험심을 의미한다.....그렇다면 나는 ?.....

지리산 종주 20주년이 되는 이번 여름에 꼭 지리산 종주를 하고 싶었다. 20주년 이라는 통속적인 주기에 대한 의미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가족들과 함께 종주하면서 지리산을 느껴보고 싶었고 특히 어릴적 산에 너무 많이 데리고 다녀서인지 청년이된 지금은 산 보다는 바다를 더 좋아하는 아들에게 지리산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정은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고, 종주 대신 천왕봉에라도 올라보기로 하면서 마음만 청춘인 우리는 여름 휴가의 마지막날 새벽 2:44에 지리산을 향하여 출발한다. 김밥집에 들러 김밥을 사고, 서대전IC,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88고속도로, 지리산(인월)IC, 마천을 거쳐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한다.

아직 어둠이 깔려있는 백무동 매표소를 지나 하동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하동바위를 지나면서 흐린 하늘은 살며시 비를 뿌린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걱정하면서 참샘(해발1,125미터)에 도착한다. 참샘에는 다람쥐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빈 물통을 채우고 조금 더 올라서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반려는 수면 부족에다 장거리 승차로 피로했는지 김밥이 잘 받지 않는 모양이다.

 
 
▲ 참샘의 다람쥐들

지능선을 지나 소지봉(해발1,3125미터)에 오르자 비로소 산길이 조금씩 경사도를 낮추면서 주위의 능선들이 조망되고, 야생화들도 점점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망바위에 올라서면  더욱 확연히 종주 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주위에는 쓰레기와 오물, 배설물들로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이제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정상에 오른 후에 비가 오면 좋으련만 하고 부지런히 걷는다. 새로 구입한 원형 모자가 왠지 어색하다. 늘 쓰던 정들었던 낡은 창 모자를 지난주 수요일 향적산 산행 후 내려오는 길에 분실했다. (이번주 수요일 향적산 산행시에 찾아봤지만 보이질 않았다.)

 
 
▲ 망바위에서 반야봉, 만복대 조망
 
 
▲ 장터목 부근의 야생화
 
 
▲ 장터목 부근에서 종주능선 조망

옛날에 천왕봉 남쪽 기슭의 시천 주민과 북쪽 기슭의 마천 주민들이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서 장(場)을 세우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 하든 곳이라는 장터목 고개의 산장에 도착하여 물을 채운다. 월요일인데도 휴가철이라 등산객들이 붐빈다. 20년전 이곳 주위 어딘가에서 종주 2일차 온 종일 빗속을 걷고 지친 몸으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었는데..... 그 시절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잘 정돈된 주변과 현대식 산장이 장터목을 지키고 있다. 장터목 고개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제석봉(해발1,806미터)이다. 제석봉 정상은 넓은 고원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은 한국동란 직후까지도 수천 그루의 아름드리 구상나무 거목들이 원시림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자유당 말기에 파렴치한 인간들의 무자비한 도벌로 인하여  애석하게도 그토록 웅장했던 수림은 사라지고 황량한 초원으로 변하여 옛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불을 질러 그나마 남아있던 나무들마저도 불에타 고사목이되었다는 제석봉의 슬픈 역사는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복원되고 있는 주변의 생태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다.

 
 
▲ 제석봉의 고사목군

제석봉에서 천왕봉을 조망해본다. 아침에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마음을 무겁게 했던 하늘은 오후에 곳에 따라 비가 온다는 어제의 예보와 달리 우리를 반기기라도 하듯  활짝 개여 있다. 제석봉을 지나서 고사목의 고고한 선골(仙骨)들이 암벽 기슭에 도열하고 있는 고산지대만의 특이한 풍경을 감상하며 가파른 몇 개의 봉우리를 숨가쁘게 넘으면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마지막 관문 통천문(通天門)에 이른다. 동굴 입구에 고색창연한 옛날 필적으로 '通天門'이란 대각자(大刻字)는 세월따라 흐릿하게 남아 있는데, 이곳에는 옛부터 부정한 자는 출입을 못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통천문을 지나고 드디어 천왕봉(해발1,915미터)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는 많은 산님들이 기념 촬영하느라 분주하다. 나도 몇 컷을 부탁하여 20년만에 다시 찾은 천왕봉을 반려와 함께 기념한다. 종주에 대한 소원 때문일까. 시선은 줄 곳 노고단 쪽으로 향한다. 디카도 어느 곳에서나 제일 먼저 노고단 방향을 찾는다. 주위를 조망한 후 중봉 방향의 바위 위에서 식사를 마치고 아쉬운 하산을 시작한다. 때론 어머니 품속같은 아늑함으로 가득하고, 때론 짙은 운무로 휘감기고, 때론 거센 비바람으로 준엄함을 보여주는 지리의 천왕봉을 언제 다시 찾아 3대가 적선을 해야 볼 수 있다는 장엄한 일출을, 화려한 낙조를 또 운해 가득한 하계(下界)를 굽어 볼 수 있을까?

 
 
▲ 통천문
 
▲ 20년만에 다시 찾은 천왕봉
 
 
▲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의 주능선 조망
 
 
▲ 천왕봉에서 중봉, 하봉 조망
 
 
▲ 천왕봉에서 마천 부근 조망
 
 
▲ 천왕봉에서 종주 능선을 배경으로
 
 
▲ 천왕봉 아래 길섶의 들국화
 
 
▲ 천왕봉을 내려오는 길에서
 
 
▲ 천왕봉을 내려오면서 구름에 쌓인 삼신봉 주위 조망
 
 
▲ 천왕봉을 내려오는 길에 포옹한 모습의 바위
 
 
▲ 제석의 고사목

제석봉으로 올라 갈 때부터 반려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장터목 산장에 돌아와서 두통약을 구해 보지만 이곳은 온도차가 심해 내복약은 일체 취급하지 않는다는 국립공원 직원의 설명이다. 행여나 효과가 있을까 하면서 캔 커피를 샀다. 산장내 침상도 둘러보고, 또 주위를 조망해 보면서 세석으로 향한다. 연화봉(해발1,667미터)에서는 먼저 자리하고 있던 서울에서 왔다는 부부 산님이 바위 자리를 내어 준다. 연화봉에서 운무에 휩싸인 천왕봉을 조망해 본다. 연화봉에서 세석으로 가는 길은 야생화의 천국이다. 말 그대로 산상 화원 아니 천상의 화원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주위의 아기 자기한 기암괴석들로 운치를 더해주는 매우 편안하고 여유로운 길이다.

 
 
▲ 제석봉 아래에서 중산리 계곡 조망
 
 
▲ 장터목에서 만복대, 바래봉 능선 조망
 
 
▲ 연하봉 가는 길에서 되돌아본 장터목 산장
 
 
▲ 연하봉에서 돌아보는 제석봉과 운무에 덮힌 천왕봉
 
 
▲ 연하봉을 지나 천상화원속의 반려
 
 
▲ 연하봉과 촛대봉 사이에 있는 기암
 
 
▲ 연하봉과 촛대봉 사이에 있는 기암
 
 
▲ 연하봉과 촛대봉 사이 길가의  천상화원
 
 
▲ 연하봉과 촛대봉 사이 길가의 야생화

연하봉과 촛대봉(해발1,703.7미터) 사이의 무명봉 부근에서부터 반려는 오한과 두통으로 몹시 힘들어 걸을 수가 없다.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 지나가는 부부 산님이 땀을 너무 많이 흘린 탓일 거라며 고맙게도 오징어를 주고 가지만, 반려는 오징어 먹을 힘조차 없다. 반려의 상태와 비례해서 내 마음도 무겁고 복잡해 진다. 조금 걷다, 서다, 눕다를 반복하던 반려는 결국 구토를 하고서야 조금씩 회복될 수 있었다. 원인은 김밥을 먹으면서 급체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정해본다.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 하여 옛부터 불려져 온 세석평전의 산장에서 다시 물을 채우고 한신계곡, 백무동으로 향한다.

 
 
▲ 촛대봉에서 제석봉과 구름에 가려진 천왕봉 조망
 
 
▲ 촛대봉을 지나 세석 산장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회복기에 접어든 반려의 모습
 
 
▲ 백무동 계곡 5층 폭포의 하단부

산이 높으니 당연히 골도 깊은 것일까? 한신 계곡과 백무동 계곡은 깊고도 길다. 서서히 정상 컨디션을 찾아 가는 반려와 하염없이 걸으면서 20년만의 천왕봉 답사를 준비와 배려 부족에 대한 반성으로 마감한다. 오늘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내 능력에 맞는 여유있는 산행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1984년 8월 지리산 종주 사진 모음

   
   
▲ 1984년 8월 지리산 종주(통천문) ▲ 1984년 8월 지리산 종주(고사목)
   
   
▲ 1984년 8월 지리산 종주(제석봉) ▲ 1984년 8월 지리산 종주(화엄사계곡에서 코재에 올라서서)
 
 
▲ 1984년 8월 지리산 종주(노고단)
 
 
▲ 1984년 8월 지리산 종주(반야봉 갈림길)
 
 
▲ 1984년 8월 지리산 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