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산 산행기/2004.6.6/화현리 매표소-현등사 -절고개-남근바위- 정상/한뫼산악회 따라)

 

천둥 벼락 소리에 놀라 일어나 보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새벽 3시 경이었다. 큰일 났다. 오늘 운악산을 가는 날인데-. 돈이 없어도, 시간이 없어도, 몸이 아파도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 술꾼이듯이

 

 ‘산꾼 소리를 들으려면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개의치 않고 배낭을 지고 나서야 하는 것이렷다.’ 하고 우산에 비옷에 갈아입을 옷을 챙겨 문밖을 나서니 ‘어-?’ 새벽의 비는 거짓말 같이 맑은 하늘이 시작되고 있지 않은가. 태풍 민들레가 제풀에 소멸되고 말더니 이 비도 그래서 그런가. 어제는 종일 관악산을 서로 마주보고 있는 삼성산을 누볏으니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현등사까지만

가야겠다.

    

 

 

악(岳) 자가 붙은 산에 명산 아닌 산이 있던가. 마찬가지로 운악산(935.5m)은 경기도에서는 제일 높은 화악산(1468.3m)과 감악산(675m), 관악산(629m), 송악산(448m)과 함께 그 경기 오악(五岳)의 하나로 그 중에서도 수려하기가 으뜸인 산이다. 기암기봉으로 이루어진 암산은 그 산세가 금강산의 버금가는 경치라하여 소금강(小金鋼)이라고 불리워져 온 산이다.

 

 

운악산 매표소는 다른 산과 달리 ‘운악산, 현등사라’는 절 이름까지 더한 아치형 문이 있다. 운악산을 현등산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보면 운악산이란 이름은 현등사가 창건된 뒤에 이름을 얻은 것은 아닌지? 아니면 현등사 때문에 알려진 산이라서 그런가.

 

懸燈(현등)이란 ‘걸 현(懸)’등 잔 등(燈)‘ 등불을 높이 매단다는 뜻으로 몇 가지 전설이 전하여 오지만 그 중 유명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다. "고려 때 고승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망일산(望日山) 원통암에서 보니 이 산의 중턱에서 사흘 밤 동안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겨서 와서 보니 덤불 속에 절터 석등에서 불이 밝혀져 있었다. 그곳에 절을 지어 현등사라 하였다.’

 

 

입구를 지나면서 등산로표지판과 요란한 리본이 이쪽으로 가야 운악산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만경등산로라고 꼬셔대고 있지만 그 코스는 옛날에 몇 번 다녀온 길이고, 오늘은 현등사 하나만이라도 확실히 보고 싶고 어제에 이어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 건강을 위하는 길이라고

현등사 계곡을 향한다.

 

 

 

현등사 계곡은 간밤 큰비에 곳곳마다 폭포의 축제가 열고 있었다. 장마철이나 태풍 뒤의 일년 중에 한번 볼까 말까한 그런 장관이었다.

 

 

절고개가 시작되려는 곳에 커다란 바위에 포말이 무늬를 그리며 미끄러 내리듯이 흘러내리고 있다. 민영환 바위였다.

구한말 궁내부대신 민영환이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여 이 바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걱정했다는 바위로 후인들이 그를 기려 새긴 ‘민영환’이란 암각서가 남아있어 ‘민영환 바위’라 하는데 이름을 ‘민충정공 바위’라 고쳤으면 좋겠다.

우리 민족은 어르신네 성함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미풍양속의 동방예의지국의 나라니 말이다.

 

 

목탁소리 들리는 곳에 앞선 일행이 쉬다가 활짝 웃으며 카메라에 포즈를 취하여 준다. 운동이 개인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라면, 나와 우리를 키워주고 지켜 주는 것이 웃음이다. 그래서 웃음은 꽃처럼 건강하고 아름답고 순수하한 것이다.

 

그래서 한두 번의 웃음은 한 시간의 운동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현등사 경내에 들어 층계를 오르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話頭) 하나가 나의 시심(詩心)을 일깨운다. 구름인가 바람인가 덧없는 세월인가 나만 위해 살아온 미물 같은 어제가 현등사 독경 소리에 흩어지고 있는가

 

 

 

그 화두에 대한 답 같은 글이 한글로 쓰인 '대자대비전'의 사우(寺宇)의 주련(柱聯)으로 다음과 같이 풀이하여 주고 있다. “부처님 몸이 누리에 두루하사, 모든 중생 앞앞에 나타나시니, 인연 따라 어디에나 두루하시지만, 본래의 보리좌를 여의지 않으시네,

 

누군가가 이 도리에 의심 없으면, 만나는 일 모두가 살바야이리라” 이 절은 광릉 봉선사의 말사이고 그 봉선사의 주지스님이었던 운허 스님이 우리네 같은 범부들에게 베풀어 놓은 마음의 자국이었다.

 

 

절이 절이게 하고 불 타버리는 사우(寺宇)처럼 허망하지 않은 세월 속에서도 절의 마당을 지키며 그 절의 역사를 알게 하여 주는 것이 탑(塔)이다. 나무처럼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여 주는 고리가 되어 하늘 향하여 우뚝 서서 절을 지켜 주고 있는 것이 탑(塔)이다. 현등사에도 조선 전기에 세웠다고 하는 3층석탑(도유형문화재 제 63호)이 있어 현등사의 역사를 밝혀 주고 있다.

 

이탑은 앞서 말한 보국국사의 사리탑으로 높이가 3.7m가 되는데 상륜부까지 거의가 완벽하게 남아 있어 현등사가 소장하고 있는 종과 함께 이 절의 자랑인 문화재이기도 하다. 종은 공사로 볼 수 없었던 게 유감이었다.

 

 

 

 (마니산 정수사 함허조사 부도) 절 입구에는 함허조사 부도가 있다. 그런데 함허 부도가 또 있다니 이상하다. 몇 년 전 강화도 마니산 하산 길에 정수사(淨水寺)를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함허동천 계곡으로 내려가다가 함허대사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래도 그분으 중수했다는 정수사가 보고 싶어 다시 강화도 가는 길에 정수사를 들렀는데 거기 있던 그 함허대사의 부도가 여기도 있는가.

(본인 홈피 http://ilman031.kll.co.kr '마니산 산행기' 참조) 그 함허대사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오고 있다.

 

 “함허대사가 삼각산에서 오신산으로 가다가 고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때 흰 사슴이 한 마리가 나타나 가는 것을 보고 쫓아가다 보니 사슴이 사라진 곳에 전각지(殿閣址)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현등사를 중창하게 되었다.” 말을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말처럼 현등사까지의 오늘이 정상까지로 바뀌어 오르고 있다.

 

염불소리 목탁소리를 뒤로 한 절고개 길은 오름길이어서 7월 한여름의 더위에 땀으로 멱을 감는데 집에서 급히 오느라 수건을 빠뜨리고 와서 모자로 땀을 닦고 있다. 고생고생하며 오르다 보니 운무가 열리는 사이로 방금 올라온 화현면 일대가 전개된다. 그러나 비를 머금은 운해는 안개처럼 전망을 아쉽게도 막고 있었다.

 

 

염불 소리 멀어진 곳의 정상 못 미쳐 ‘남근석 촬영소’란 입간판이 서있다. 어제는 삼성산 삼막사 칠성각에 올라서 여근 석을 보고 감탄하면서 그 옆에 있는 초라한 남근석에 실망하였더니 여기서는 하늘을 찌를 듯한 우람한 거북이 머리 같은 용두(龍頭)가 운무 속에서 한껏 남성

의 힘을 뽐내고 있다.

 

 

 

산에 와서 만나게 되는 것 중에 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거꾸로 하면 산의 모습이 된다. 뿌리는 정상이요, 가지는 능선이 되어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 점점 넓어져 가다가 기슭이 되고 세상이 된다. 하늘과 맞닿아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그 정상에다가 자기 키를 더하고 서서 그 드넓은 세상을 새처럼 세상을 엿보는 호연지기. 그것 때문에 우리는 정상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어느 누구의 아무것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운악산은 구름 운(雲) 자 운악산(雲岳山)이라서인가. 정상인 935.5m의 만경봉 만경봉에 올라오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경치가 일품이라서 운악망경(雲岳望景)은 가평 8경의 제6경에 해당한다는데 간밤에 내린 비구름이 때문인가.사방이 구름 속이어서 구름 밖의 세상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마추어 남에게 나누어 주기에 항상 열심인 박창우 산우(山友)가 있어 준비한 정상주로 한발자국이 모여 이룩한 우리의 정상의 기쁨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서인가.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구름 같이 하얀 진도개 하나 우리를 맴돌면서 정중하게 점심을 뺏어 먹고 있다. 많이 주면 물고 가서 다른 곳에다가 저장까지 하면서-. 그러고 보니 옛날 월악산 정상까지 좇아오던 안내견이 생각난다. 스페인 바로세로나에 갔을 때 깡통을 앞에 두고 눈을 치켜 뜨고 두렵게 방석에 앉아서 동냥하는 개 생각도 난다.

 

캐나다 빅토리아 섬에서 거리의 악사인 주인 옆에 발랑 누워서 돈을 구걸하던 놈, 그리스 아트로포리스 언덕을 안내하여 주던 세파트 들. 이 놈들 중에는 주인 없이 떠도는 개들이 많았지-. 하는 생각이 주마등 같이 떠오른다.

 

그 백구는 형등사 가까이까지 나를 따라오다 돌아가던데 지금은 누구의 도시락을 얻어먹으며 어디서 자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