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의 지리능선 유랑기 (천왕봉-여원재)

 

 

流浪, 글자 그대로 물 흐르듯이 흘러다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 불행히도 철저히 실패한 산행이었습니다.

 

애초에 3박4일로 잡았던 일정을 도중에 마음을 바꾸어 2박3일로 무리하게 줄여보려 했던 점과,

산행기간 내내 저의 체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배낭으로 인해, 큰 맘 먹고 떠난 이번 산행은

저의 완벽한 패배로 기억될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하산 직후 처에게 날린 문자메시지가 “다시는 등산 안함. 등산의 ‘ㄷ’자도 지긋지긋해…” 였을까요?

 

 2004. 8. 7(토) – 8. 9(일)


 중산리 – 천왕봉 – 성삼재 – 여원재

 주요 경로

    8월 7일(1일차)
    중산리 버스 종점(15:25) – 매표소(15:45) – 법계교 야영장(15:52) – 칼바위(16:17) – 로타리대피소(17:38)

     – 법계사(17:45) – 천왕봉(19:25/40) – 장터목(20:40) 비박

     8월 8일(2일차)
    장터목 출발(03:25) – 연하봉(03:55) – 촛대봉 일출(04:55/05:54) – 세석산장(06:08) – 칠선봉(07:03) –

    선비샘(08:00) – 벽소령대피소(08:54) – 형제봉(10:16) – 연하천산장(11:30) – 토끼봉(13:10) – 화계재(13:50)

    – 삼도봉(14:40/15:05) – 노루목(15:24) – 임걸령(16:00) – 노고단고개(17:20) – 성삼재(18:10/40) –

    고리봉 지나 첫 헬기장(19:30) 야영

 

     8월 9일(3일차)
    헬기장 출발(05:08) – 만복대(07/12/30) – 정령치(08:04/32) – 고리봉(09:33) – 고기삼거리(11:30)

    – 덕치 정류장앞 마을길 진입(11:50) – 노치샘(12:06/30) – 첫 봉우리(13:00) – 수정봉(13:50/14:00)

    – 입망치(14:34) – 무명봉(15:11) – 여원재(16:11)

 

 

 산에 들며

어리석은 놈이 분수도 모르고 감히 꿈을 꿉니다. 나도 한번 해볼까?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이런 저런 자료를 모으고 나름대로 분석을 합니다. 취향에 맞추어 계획을 가다듬어갑니다.

체력과 장비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체력에 맞추어 무게 최소화방안을 연구합니다.

이 정도면 될까 하며 차근차근 준비를 합니다.

경로, 식수, 비박 또는 야영지, 식량, 교통편 등을 상세히 조사하여 준비합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아시겠지요?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체력이 딸려 도중에 포기하진 않을 지, 야영 시 추위에 떨다 아프지나 않을 지,

부상이라도 입지는 않을지 하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깊이 빠져들어, 소위 미쳐가는 건 아닌지 하는 것이 그 두 번째 두려움입니다.

 

 산에서 흘러다니며

놀토가 아닌 일하는 토요일 낮, 점심 후 바로 오른 귀경 길에 단성IC로 빠져나와

단성면 시외버스 타는 곳에 저만 내립니다.

나머지 직원들은 다시 고속도로로 돌아갑니다. 이제 또 혼자입니다.

 

한시간 조금 못 걸려 도착한 중산리 버스종점에서 조금 어리둥절합니다.

들머리가 어디지? 가게사이 골목으로 오릅니다. 이어 다시 만난 아스팔트포장도로. 벌써 땀이 흐릅니다.

배낭 무게가 장난이 아닙니다. 우측 계곡 저 아래에는 물장구치고 노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부럽네요.

 

20분을 걸어 매표소에 닿으니 오후 3시 45분입니다. 매표소의 직원이 어디까지 가냐네요.

지금은 장터목까지는 안되니 로타리까지만 가라고 하는군요. 텐트도 금지라네요.

요즘 세상살기 참 힘듭니다. 온갖 규제가 많고 까다롭고. . . 

평소 열심히 일하고 (저 말고 다른 분들) 모처럼 쉬러 산에 오면 이런 저런 간섭이 참 많습니다.

아무튼 가는 데까지 간다고 하며 통과합니다.

장터목까지 바로 오르면 세시간 잡아도 해지기 전에 충분히 도착할 텐데, 미리부터 막는 처사란. . .

 

법계교, 칼바위, 망바위, 로타리대피소, 개선문 등을 지나 천왕봉을 오릅니다.

무지막지한 급경사가 이어집니다. 먹을거리만 달랑 넣은 배낭이나 지던 놈이,

3박4일을 계획하며 이거저거 챙겨넣은 큰 배낭을 매었으니 몸이 감당하기 힘들어 합니다.

온 몸에 땀만 비오듯 흐르네요. 법계사를 지나 바위길을 지나며 시야가 탁 트이니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천왕봉 직전의 급경사길에서는 쉬며 쉬며 또 쉬며 간신히 올라갔지요.

딱 네 시간 걸려 7시 25분, 드디어 천왕봉. . .  2년만의 재회입니다.

 

두 해 전 여름, 성삼재에서 출발한 두 번째 지리종주시

새벽에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기다리며 한시간이 넘게 머물렀는데, 이상하게도 천왕봉 표석을 못 챙겼습니다.

인파에 묻혀 보이지도 않았었구요. 자세히 보니 2년전에 앉았던 자리 바로 근처네요. 이런. . . 

이미 해는 져 어스름이 깔린 하늘 아래서 증명사진을 찍어봅니다.

 

이제 장터목으로 내려가야지요. 어둠이 깔린 바위너덜 내림길을 따라 제석봉에 이릅니다. 

해방 후엔가, 그 울창했다던 나무를 도벌하고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 그 일대를 불질러버렸다고 하지요.

불타고도 미쳐 다 썩지않고 앙상한 가지를 벌린 채,

인간의 탐욕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는 그 유명한 제석봉 고사목지대이지요.

 

이미 어둠이 완전히 덮은 장터목 안부 너른 터에 많은 사람들이 비박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한 켠에 대충 텐트를 치려는데, 방송에서 텐트폴대 설치하는 야영은 벌금 50만원이니 하여

부득이 맨땅에 비닐깔고 폴대없이 텐트만 펼쳐놓고 그 안에 기어들어갑니다.

15년전에 산 2인용인데, 둘이 자기에도 비좁지요. 무게 때문에 슬리핑빽을 빼놓아 춥습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샙니다. 오랫만에 겪는 악몽같은 밤입니다.

옆자리의 슬리핑백 속의 산객도 밤새 계속 뒤척이더군요.

견디다 못해 3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짐을 쌉니다.

텐트나 옷가지가 축축합니다. 3시 25분에 헤드랜턴을 켜고 출발합니다.

 

세석산장 바로 전의 촛대봉에 올라 일출을 기다립니다.

긴 기다림과 가슴졸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일출이 시작됩니다. 생전 처음 보는 장엄한 일출입니다.

TV에서 보던 동해바다의 일출만은 못하지만, 촛대봉의 일출, 그 시뻘건 불덩이는 과히 장관입니다.

눈으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온 누리를 깨우는 밝은 빛. . . 우리 아들녀석도 그랬으면. . .

 

세석을 지납니다. 저번에 1박을 한 추억어린 곳입니다.

영신봉 이정표를 지나며 멀리 반야봉과 그 좌측 멀리 왕시리봉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반야봉은 엉덩이 같이 가운데가 푹 패여 멀리서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지요.

하늘이 높고 구름은 군데군데 있는 정도라 날씨는 최적입니다.

 

벽소령 대피소롤 가는 길에 서서히 지쳐갑니다.

그러나 음정 갈림길에서 벽소령 대피소 가는 길에 자연의 복원력에 감탄합니다.

2년전, 폭이 2~4m 정도의 너른 길로 기억되는데 이제는 산객들이 겨우 교행할 정도의 노폭밖에 되지 않네요.

잡목이 우리 키 이상으로 자라있습니다. 오래 전에는 차량도 다니던 길이었다지요.

 

무지 힘들게 형제봉을 지납니다. 배낭의 무게에 이제 완전히 굴복한 셈입니다.

줄이고 또 줄였지만 3~4일간 먹을 거, 입을 거를 챙겼으니 제 분수를 모르는 미련한 놈에겐 당연한 귀결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귀에 “버린만큼 누리리라” 인데, 버렸다고 버렸는데 아마도 아직도 덜 버렸나 봅니다.

 

연하천산장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지만, 쓰레기통인지 뭔지 하며 어수선한 정경에 별로 정이 가질 않습니다.

지리십경 중에 연하선경도 있는데, 기대할 수 있을까요?

 

새벽 일찍 출발하다보니 아직 한낮인데, 슬슬 일정단축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잠자리가 마땅찮아 밤이 무서운데, 성삼재에서 조기 종료하든지,

아니면 오늘 중으로 성삼재만 벗어나면 3일차인 내일까지는 당초 4일어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변경 1안, 2안이 입안됩니다.

짐 때문에 산천경개 유람은 이왕 글러 버린 것,

빨치산 보급투쟁으로 죽기아니면 살기식으로 방향을 바꾸어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껏 5~6시간짜리 체력인데다, 12시간 이상은 걸어본 적이 없고

요즘 발바닥도, 무릎도 시원찮은 상태라 가능성은 반반이겠지요.

 

토끼봉에 오르니 나무슾에 한동안 가렸던 지리 서남부 능선이 훤하게 열립니다.

반야봉, 왕시리봉, 그리고 그 남쪽의 이름모를 고산준령들. . .

지리산 구역 이외에도 높은 산들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지리산에서 들면 천왕봉의 드높은 기상, 세석평전의 평화로움, 노고단의 신비함 등 외에도,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그 숱한 산자락과 멀리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못지않은 높은 산들에 마음이 갑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산과 들입니다. 짧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 .

 

화개재에 이르니 전에 없던 나무데크에 산객들이 누워서 오수에 빠져있습니다.

배낭을 던져버리고 따라서 누우니 눈이 스르르 감기려하지만, 곧 몸을 일으킵니다.

우측에 뱀사골 내려가는 길을 잠시 바라만보다 삼도봉방향으로 걸음을 옯깁니다.

드디어 공포의 나무계단입니다. 숫자에 이러저러 의견들이 있는데, 저도 세어봅니다.

힘겨워 여러 번을 쉬며 간신히 오릅니다. 딱 550개! 즉 “공포의 550계단”이 맞겠군요.

 

삼도봉에 이르러 남쪽 절벽아래 펼쳐진 그윽한 계곡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전쟁 후, 그 알량한 이념차이로 동족간에, 형제간에 원수가 되어 미워하며 죽고 죽이던,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 지리산입니다.

지리산의 계곡마다 말없이 품고 있을 그 가슴아픈 사연들도 이제 반 세기가 흘렀으니 잊혀져야 당연할까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데 아픔을 거듭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 아닌지요.

 

임걸령 샘터에서 물병에 물을 채웁니다.  2년전 지리산에 와서, 좋아하는 나무목록에 구상나무를 추가하였는데,

구상나무의 학명이 Abies Koreana Wilson 이라는 폿말을 봅니다.

이 나무는 한국이 원산지인가 보군요. 지금 글을 쓰며 검색해 보니 정말 우리나라 특산이라는 군요.

그 쭉쭉 뻗은 기상이 시원스럽고 당당합니다. 지리산 주능선상에 아직도 가득하지요.

 

이후 노고단고개를 거쳐 성삼재까지는 악전고투입니다.

이미 새벽에 출발한 지 열 서너시간이 지나서 발바닥도 무릎도 제 정신이 아닙니다.

어깨도 따가와 돌 지경입니다.

성삼재까지 내려오는 돌깔린 길은 여름휴가삼아 노고단에 오르고 내리는 산책객들에겐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피곤에 지친 어리석은 산꾼에겐 마지막 펀치를 날리는 셈입니다.

나중에 혹시 공단 이사장이 되면 포크레인으로 다 갈아버릴 생각입니다.

 

성삼재의 화장실에서 볼일도 보고 세수를 하고 이를 닦습니다. 전에는 곁에 식수가 흘렀는데, 없애버렸네요.

그 곁에 매점이 있는 걸 보니 뻔한 이유이군요. 주차장을 지나 도로를 건너 만복대 방향의 들머리를 바라봅니다.

얼른 저 곳을 통과해야할 텐데, 물이 없어 부득이 화장실로 페트병을 들고 갑니다.

아차, 세면대에서 페트병에 물을 받을 수가 없군요. 손바닥에 모아 조금씩 채웁니다. 에이, 이거 먹어도 되나. . .

 

도로를 건너 북쪽으로 진행하다 열린 철망문을 통해 만복대가는 길에 오릅니다.

급경사에 헥헥대지만, 이미 오후 7시가 지나, 혹시 통제를 하지 않을까 하여 죽을 둥 살 둥 올라갑니다.

왜 이렇게 사는지. . .

 

산죽과 잡목의 저항이 큽니다. 아이들도 쉬 다니지 못할 정도의 좁은 산길이 군데군데 이어집니다.

한 시간 가량 걸어 작은 봉우리 몇 개를 넘고 마지막으로 고리봉으로 생각되는 곳은

살짝 우회하는 길로 우회하여 내려서니 헬기장 안부가 나옵니다. 텐트치기 딱 좋은 곳이네요.

이제는 당당하게 폴대를 끼워 텐트를 설치합니다. 작은 거라 2~3분이면 뚝딱입니다.

매트도 잘 펴 넣고 배낭과 함께 기어들어갑니다.

 

간밤에 한 잠 못자고 추위에 떨었던지라, 땀에 젖은 팬티, 등산바지, 티를 벗어버리고

여벌 바지와 반팔티로 갈아입습니다. 폴라폴리스 웃옷을 껴입고 판초를 펼쳐 이불로 삼습니다.

식수가 아무래도 모자라 저녁을 생략합니다. 8시 반이네요. 핸폰을 켜보니 통화가 되질 않는군요.

성삼재 지나 야영중이고 핸폰이 고장난 듯하다고 집사람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보니,

몸만 성하면 다행이라는 답신이 바로 옵니다.

아, 문자는 되는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어제밤 장터목 화장실 앞에서 콰당 넘어질 때 하필 손에 핸폰을 든 채 땅을 짚어 충격이 갔나봅니다.

 

텐트 밖에 불빛이 어른 거리는데 두 명이 성삼재 가는 길을 찾는 듯 합니다.

텐트안에 누운 채로 길을 알려줍니다. 잠시후 여러 명이 만복대 방향에서 내려오나봅니다.

누운 채로 얘기하니 태극종주중이랍니다. 무시무시한 팀입니다.

여자분 목소리도 들리는 걸 보니 정말 무서운 팀입니다.

 

태어나 인적없는 깊은 산 중에서 텐트치고 혼자 자보기는 첨입니다.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다행입니다. 이거 미치면 이런 건지요?

얇게 입었는데도 그럭저럭 밤을 보냈습니다. 새벽녁엔 꿈도 꾸었지요.

잠결에 언뜻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40분입니다. 딱 적당한 시간입니다. 텐트 안에 이슬이 가득 맻혔군요.

불암산님 등 여러 산님들이 좋아하는 그 이슬이 말구요.

이슬에 젖을세라 조심조심 짐을 챙겨 5시 조금 지나 출발합니다.

사위는 적막하고 깜깜한데 이거 정말 미쳐가는 거 아냐?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키넘는 산죽밭을 헤치고 오르니 새벽이슬에 바지가 흠뻑 젖어들고 거미줄 세수를 합니다.

 

평소라면 그리 어렵지 않았을 듯한 만복대는, 배고프고 무게에 눌린 산꾼에게는 쉽게 오름을 허용하지 않는군요.

가도가도 끝없는 6km를 지나 드뎌 만복대 정상입니다.

이 곳에서는 어제 달려온 지리 주능선이 조망됩니다. 남서쪽으로는 운해가 펼쳐집니다.

구름바다 위로 간간히 내민 봉우리들이 마치 섬처럼 보입니다. 인천의 운해님은 참 멋진 닉을 가지셨군요.

 

내려가는 길에 오른 발목을 삐끗하며 앞으로 넘어지는데,

배낭무게가 머리 위로 덮치니, 우와~ 하마터면 눌릴 뻔 했군요. 한 걸음도 방심하지 말아야지. . .

 

봉우리를 또 넘어 내려서니 정령치입니다. 해발 1,172m라니 정말 높은 곳이군요.

발아래의 아름다운 산하를 눈에 담으며 우동을 사먹습니다. 밥은 없다네요.

이른 아침인데도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많네요. 사진도 찍어주고 하며 잠시 쉽니다.

 

힘듯 오름짓을 거쳐 고리봉에 오릅니다. 큰고리봉이라고 하나봅니다.

눈 앞 멀리엔 철쭉으로 그 유명한 바래봉이 보입니다.

그 왼쪽 머얼리 구름속에 우뚝한 게 혹시 덕유산은 아닌지 추측해봅니다.

동쪽으로는 천왕봉을 위시한 지리 주릉이 그림같이 이어가고

그 아래 산자락 산자락이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저 주름을 다리미로 펼치면 우리나라 면적이 열 배 정도 더 늘지 않을지. . . 

보전도 잘하고 활용도 잘 해볼 가치가 있겠지요?

 

고리봉에서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능선길을 벗어나 리본이 무수히 달린 좌측 길로 내려섭니다.

급한 내리막길이 이어집니다. 으~ 무릎이야. . .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려서니 시간이 지체됩니다.

코팅된 ‘부산 새한솔산악회’ 표지가 땅에 떨어져있습니다. 천태산에 가오리회를 가져오신 이두영님 생각이 납니다.

표지에도 반가움을 느낍니다. 그리 오래 된 것 같지 않아 보이네요.

고기삼거리로 내려가는 3km는 가도가도 끝없는 길입니다. 그나마 내리막이라 다행이지만, 이상하게 길더군요.

내리막에 두 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거리가 맞는건지. . .

 

고기삼거리에서 만난 도로에서 잠시 방향감각이 헷갈립니다. 최중교님 산행기를 보며 도로 따라 우측으로 갑니다.

60번 포장도로에 땡볕이 지친 산꾼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도로 좌우의 푸른 벼가 넘실대는 아름다운 들녁에 가슴뭉클한 감동을 느낍니다.

짙푸름을 머금은 산으로 비잉 둘러싸인 아름다운 우리 농촌 풍경입니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움 만큼이나 그분들의 살림살이도 편안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땀흘린 노동에 따른 정당한 대가가 반드시 있도록 구조적으로 개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농민들이 굳이 고속도로나 여의도 마당으로 나오지않아도 되는 시절이 오기는 오겠지요?

 

덕치 버스정류장 앞에서 마을길로 접어들어 리본따라 들어가니 노치샘이 있어 물을 채웁니다.

산행기를 보니 노치샘 앞의 구멍가게에서 라면을 끓여준다고 하여 저도 부탁합니다.

라면에 따라나온 김치, 오랫만입니다.

 

노치샘 뒤로 오르니 큰 소나무가 몇 그루가 서있고 가파른 산길이 이어집니다.

라면이라도 먹어서 다행이지만 첫 봉우리까지 급경사길을 약 30분간 땀을 흠뻑 흘리고 헥헥거리며 오릅니다.

첫 봉우리 이후에 대여섯개의 작은 봉우리가 이어지며 마지막 진을 뺸 후에야 수정봉에 이릅니다.

허무하게도 아무 표석도 없고 풀 섶에 삼각점만 초라하지요.

풀에 앉아 배낭에 기대어누우니 이대로 자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산행기와 고도표로 남은 길을 예습을 합니다.

 

수정봉에서 내려서니 희미한 산길이 가로지르는 입망치입니다. 입망치 묘지곁에 또 누워 쉽니다.

하도 힘드니 묘지곁도 전혀 께름칙하지 않습니다.

산행기에서 예습한 대로 마지막으로 또 한번 30여 분의 급경사를 기어올라 무명봉에 이르고,

(제 수첩에는 “날 죽여라, 헥헥” 이라고 쓰여있군요)

여전히 작고 큰 오르내림을 힘겨워하며 임도에 이릅니다. 이제 마을이 멀지 않았겠지요.

리본 따라 산길을 거쳐 내려서니 길곁에 석상이 있고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여원재입니다. 아~ 살았다.

 

여원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인월로, 인월에서 부산행 버스표 구입 후 음료수 사는 사이에 버스를 놓쳐

다음 차인 마산행을 탑니다. 마산에서 진해로 이동 후 진해역으로 마중 나온 박종효차장 덕에

밤 10시경에 무사히 숙소로 복귀합니다.

 

 

 남은 이야기

 

지쳐 쉬는 도중에 우연히 바라 본 내 등산화. 참 많이 낡았군요. 바닥 창도, 옆도 갈라졌고 가죽도 낡았네요.

지난 2년 여 미친 듯이 혹사시켰습니다.

그리 비싼 건 아니지만 이거 신고 끈 꽉 조이면 힘이 팍 도는, 참 맘에 드는 친구였는데,

이제는 이 녀석과도 헤어질 시간이 멀지 않은 듯 합니다.

 

산은 모든 걸 품어주는 넉넉함이 있지요. 특히 지리산이 그렇구요.

그래서 지리산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두고두고 지리산을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처음 오른 두 해 전부터 재회를 손꼽아왔었지요.

산은 그대로인데, 제 자신은 세파에 시달려 더 늙고 지치고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꿈과 바램은 여전히 높았었지요.

 

아무리 한여름이라지만 겨우 2~3일을 해도 이리 힘든데,

대간을 연속종주하는 분들은 정말 초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입을 거, 먹을 거, 잘 거 다 지고 가는 게 보통사람이 가능하겠습니까?

소구간 연속종주를 시도해보고 체력의 한계를 절감한 제 결론은 바로 ‘나에겐 대간은 미친 짓이다” 입니다.

 

당분간 등산을 접을 생각입니다.

등산의 “ㄷ”자만 들어도 신물이 납니다. 이젠 주말마다 얌전히 귀경하여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네요.

 

사흘간의 지리능선 유랑, 그 막을 내립니다. 감사합니다.


 

천왕봉 오름길에서

 

어둠이 내리는 천왕봉 정상에서

 

촛대봉에서 기다린 일출, 왼쪽은 천왕봉

 

세석산장과 영신봉

 

만복대에서, 사흘에 폭삭 지쳐버린...

 

운해1

 

멀리 바래봉, 아래는 정령치오르는 도로

 

어디더라?

 

운해2

 

가재마을과 그 뒤로 오를 수정봉

 

여원재, 사흘간 유랑 끝. 고생 끝.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