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이와 순이의 천왕봉 닭살 산행 (중산리-천왕봉)


"아따 그 아짐씨 다리통 보이께 남자보담 거시기 허요 .잘걷겄소 잉.."
로터리 산장을 향해  사추리에 누린내가 풍기도록 허벌나게 오르는데
자빠지면 코깨질 만큼의 거리를 두고 따르는 핫팬츠 차림의 곁에게
아랫배가 넉넉한 50객의 풍채가 던지는 걸걸한 산인사, 숫기없는 곁은
귓볼까지 발갛게 달아 주막 강아지 모냥 객의 뒤만 더욱 기를 쓰고
쫓아 오른다.

곁의 몸이 아직은 덜 회복되어 부실하단 핑계로 그 황금같은 휴가를 혼자
지리산에서 신명떨음을  한 부담이 적지 않았고 또 지리산 서북능과 벽소령
까지는 봉사 문고리 잡디끼 대강 이나마 발서슴을 함께 했지만 막상 천왕봉
은 어찌 된셈인지 한번도 가지 않아 뭔가 많이 허전했던 터수라 이차 저차의
핑계로 천왕봉 구경이나 시킨답시고 중산리로 로시난테를 휘몰아 세웠던
겄이다.

애당초엔 유평리에서 천왕보으로 오르는 제법 만만찮은 코스를 염두에 둿으나
연로하신 장모님과 럭비공처럼 자발없는 애물단지 두예삐가  목에 가시처럼
걸려 중산리로 코스를 변경케 되었다.
입맛이 썻으나 곁의 체력이 아직은 과부 이불속마냥 켯속의 짐작이 난당인지라
도리가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삼이웃이 들썩하도록 오도방정으로 분주를 떨며 냄새를
피웠으나 준비래야 객의 보따리엔 도시락과 여벌옷, 그리고 물세병, 곁에겐 오이
몇개와 빵하나 달랑든 두예삐의 배낭을 지운겄이 전부였다.
태산명동 서일필의 가당찮은 설레발이였으니 가히 객의 허장성세를 짐작 할만
하더라.

 잠이 일찍 깬 진주에게 할머님 말씀 잘듣고 시간 맞춰 진지 챙겨 드리라며
떠먹이듯 이르고는 로시난테를 잡아타고 중산리로 비호같이 내닫는다.
거참 기어다니던때가 엊그제 같은 놈들이 밥상 차릴 국냥까지 되었으니 개보다
낫다는 생각이 얼핏들어 실소가 인다.
절정의 피서철인지라 주차공간이 있을까 많이 염려 되었으나 다행히 여분의
자리가 남아 가슴을 쓸어 내린다.

낯익은 중산리 계곡을 거슬러 오르노라니 콧노래가 제법 흥에 겹다.
지난주 태극 종주땐 워낙 무겁게 메었던 탓에 똥장군 짊어진 머슴놈의 걸음처럼
콩팔칠팔이더니 이번엔 짐이 너무 빈약해서인지 등이 허전하고 무게 중심이 없어
오줄없이 휘청대는 품새가 평양기생 명월이 치마폭에 만금을 발리고 축객을 당한
왕서방의 행보처럼 잔망스럽다.

어쨌거나 가벼우니 걸음이 날듯이 빨라 몇조금새에 칼바위에 닿고 장터목 삼거리는
엔간한 집 빨랫줄 길이만큼도 안되더라.
오이 하나를 통잡이로 분질러 곁과 나누어 먹는데 청바지 차림에 천왕봉을 들었다
놨다 하는걸로 봐서 일견 유람객이 분명한 바지씨와 치마양 네댓에게도 오이 한개를
던져주니 콧등에 허물이 벗겨 지도록 감사의 인사를 개어 올린다.
기껏 오이하나에 공치사가 이리도 푸짐허니 과히 싫지는 않네 .

곁에게 법계사까지 쉬지않고 논스톱으로 오를 작정이니 맘에 준비를 하라 다짐을 시키고
천천히 대동강물 사기치는 김선달의 넉넉한 걸음새로 오른다.
주지하다시피 천왕봉을 오르는 수많은 지리의 등로중 법계사 길목이 최단의 코스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으나 못된 상좌놈 새벽 좆처럼 발딱 일어서 곧추선 산세가 여간
힘이 드는 구간이 아니다.   그래서 주당들 주독 빼기나 초보들의 지리들기 길라잡이로
항용 애용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된비알을 곁의 보조에 맞추어 천천히 오른다.
내색은 안해도 내심 힘이 드는지 주위 풍광보단 객의 발뒤꿈치에 더 골몰하여 바지런히
따라온다.
한식경을 오르니 객도 곁도 흐르는 땀으로 물에젖은 솜이불처럼 녹작하여 지는데 초반
우리를 제치고 기세 좋게 오르던 산꾼들이 군데군데 모여 앉아 땀을 들이고 있다.
가공할 나무 계단을 오르며 뒤를 힐끗 쳐다보니 이제껏 잘 따르던 곁이 조금씩 쳐지기
시작한다.

속으로 안타까운 맘이 적지 않았으나 쉬어가는 대신 걸음을 조금 더 천천히 해 손톱만큼의
여유를 더준다.
서두에서 언급한 곁의 다리통이 눈요기로 전락한 곳도 여기 어드메쯤이다.
법계사가 지천인 왼편 사면길로 길이 잦아들즈음 늘씬한 키에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짐작이 힘들정도의 미모의 여성꾼이 객보다 더짧은 마라톤 숏팬츠를 입고 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곁의 매서운 눈초리도 잊고 부지불각중에 자발없이"시원하시겠읍니다"하니 대뜸 "그쪽도
만만 찮네요 " 하는 칼같은 답이 날온다.
급경사 나무 계단을 추어오른 길은 조금 순한 기운을 보이다가 봉우리를 거치지 않고
왼편 자욱길로 부드럽게 돌아 조그만 언덕배기를 넘어 산장 앞으로 쏘아져간다.
계단길에서 힘들어 하던 곁도 이제는 걸음에 날이 섰는지 법계사만 잠깐 구경하고 그냥
올려치잰다.

내심 담배 생각이 간절했으나 눈이 화등잔 같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 군말없이 법계사로
향한다.
사리탑 참배전인 적멸보궁에 부처가 없으니 곁이 의아해 하기에 어쩌구 저쩌구 일장 연설이
장황한데 바로 옆에 상세한 안내판이 금새 탄로나 어름어름 딴전을 피기에도 궁색하다.
내려서는 길에 요사채 구석에 커피 자판기를 보고 곁이 반색을 하며 다가 섰다가 금방 혀를
낼름거리며 돌아선다.    커피 1000원.   불도량에 자비인지 자린고비인지...

법계사를 오른편으로 휘감아 오르는 길은 초입부 만큼이나 야멸차고 매서워 여기 저기서
끙끙거리는 신음소리가 무간지옥의 고통받는 업보 처럼 들려 한여름임에도 섬뜩한 기운이
감돈다.
용케도 잘 버티고 올라오는 곁에게 넌짓 좀 쉬어가재니 힘들어 말은 못하고 고개로 가만히
도리짓을하며 더 걸을 수 있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다.

앞선 어느 아주머니의 진한 향수내음에 코가 막혀 서둘러 앞서 올라가니 곁이 안따라오네 .
몇번이고 순아,순아를 외치니 겨우 길도 아닌 엉뚱한 곳에서 녜, 하는 모기 소리가 들린다.
서방 뒤꿈치만 따르던 곁이 창졸간에 서방인지 난봉꾼인지 너덜거리는 놈하나를 잃어
갈팡질팡하여 엉뚱한 곳으로 갔던 모양 ..
길잃은겄이 제 잘못이 아닌데도 애써 웃음을 지으며 미안한맘을 감추려 하지만  힘에
부치는 산행탓에 되려 찡그린 얼굴이 되어 마음을 아리게 한다.

길은 법계사를 뒤돌아 오름길을 지어 놓고는 능선과 만나 왼편으로 꺽어 조그만 철계단을
지나 개선문으로 솟구쳐 올라간다.
경사가 그리 급한편은 아니나 아무래도 천왕봉을 향하는 마지막 몸부림이기에 은근히 힘이
들고 끈기를 요구한다.
기력이 쇠진한 곁은 점점 거리를 두며 뒤떨어진다.
그래도 끝내 쉬어가잔 한마디 없이 이를 앙다물고 천천히 뒤따라온다.

개선문을 지나고 천왕샘이 지척인 어깻마루에 닿자 그때서야 물좀 달라며 지친몸을
완곡히 시인한다.
철계단과 너덜을 거치는 길이 정상에 이렀을때 해냈다는 환희의 미소가 곁의 동그란 얼굴에
한참이나 머물러 객도 덩달아 신이난다.
정상에는 구름인파가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사람들은 정상비와 사진을 찍으러 죽자사자 올라왔는지 지리의 늠름한 기상과  주변의 조망엔
관심이 없고 어떻하면 정상비와 더 어울리는 사진을 얻을까 하는 고민이 역력해  비문에 새겨진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는   글이 무색해져 어쩐지 서글퍼진다.
곁에게 무자식 팔자도 정상비 한번만 쓰다듬으면 유자생녀 하는 영험한 기운이 닿는다고하니
가만히 정상비를 쓸어본다 .

밀리는 사람들의 물결을 피해 장터목으로 서둘러내려선다.
통천문을 지나며 여기가 하늘길로 통하는 지리의 상징적 존재라니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다.
설마 너덜너덜한 서방 버리고 하늘길로 통하는 선녀의 두레박을 기대하는건 아니 였을까?
붉은광장이 왼편으로 잘 보이는 제석봉 안부 어름에서 빵을꺼내 얼요기로 시장기를 달랜다.
아무래도 장모님과 두예삐가 눈에 밟히는지 어서 빨리 가잰다.

장터목 산장엔 천왕봉의 관문답게 부산스럽기가 돗뙤기 시장을 방불케한다.
구경이나 하고 가재니 다음에 하면 된다며 제먼저 길을 접어 내려선다.
부실한 관절이 많이 아픈지 눈에 띄게 걸음이 둔해진다.
딴엔 분위기를 바꾼답시고 위를 치어다보며 "바지 가랭이새로 부인 사루마다(팬티) 가 다보이네 "
하며 객적은 소리를 늘어내니 시골닭 만큼이나 어리보기인 곁은 진짜루 여겨 바짓단을
사려잡고 내려선다.   허어 참...

천천히 내려선길이 유암폭포를 지나 붉은광장으로 들어선다.
우리 현대사의 그늘진 단면인 수많은 빨치산들의 흩뿌린피가 한맺힌 절규로 재생한듯해
묵연해지는 처연함을 감출수 없다.
붉은광장 끝엔 쉬어가기 좋은 널널한 바위가 평상을 내주며 고단한 길손을 유혹한다.
곁의 다리에 파스로 도배를 하고는 서둘러 내려선다.

이후길은 계곡을 끼고 오르락내리락 완만하게 삼거리까지 이어진다.
저아래 계곡 한켠엔 튀어나온 배를 한짐이나 됨직하게 끌어안고 팬티차림으로 퐁당 거리는
산꾼들 너댓이 시선을 끈다.
담배꽁초 멋대로 버리는 객이나 계곡을 목간통으로 알고 때미는 놈이나 피차 뒤가 구리기는
매일반이기에 입 닥치고 그냥 지나친다.

절룩 거리면서도 고통을 내색않고 잘 따라주는 곁이 이뻐 향골 가는길에 자장면을 쏜다고
하니 그말에 고무된 곁은 가랭이에 비파소리를 내며  길은 조인다.
아침에 헤어졌던 삼거리를 만나고 다시 매표소로 되돌아 선길은 이제 겨우 중화참이 되었을
뿐이였다.
가만히 곁의 손을 잡으니 손바닥에 땀이 촉촉히 배여있다.
엔간히 아프긴 아팠던 모양이였다.

귀속말로 무게있게 한마디 한다.
"여보 , 간짜장 시켜줄께.."

                                    2004년 8월8일  끝.


#각 구간별 도달시간 .

*07시 20분...중산리
*10시 05분...천왕봉.
*12시 50분...다시 중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