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산행일지

 

                                                      장        정        호

 

 

제166차 경맥 산악회 한라산 등반계획이 송재식회장님의 갑작스런 운명으로 일주일 연기되었다. 4월25일 오후 6시30분 약간의 먹을 것을 배낭에 넣고 연안 여객선 부두 대합실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김종률  선배등이 반겨 준다. 
 김형진 선배로부터 승선권1장을 받아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 곳 저 곳에서 3,4명씩 모여 산행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한 쪽에선 뱍광영  대 마쓰보드의 패더급 세계 타이틀전 복싱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오후 7시경이 되자 회원 22명이 모두 집합, 7시30분 정각에 개찰을 하고 동양고속 카페리 제5호에 승선하였다.
2동204호 객실에 배낭을 벗어 던지고 갑판으로 나가니 4300톤급 카페리호는 영도 앞 바다를 가로 질러 오륙도를 좌측으로 비끼며 서서히 내항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소금끼 바닷 바람을 쐬며 머어져 가는 부산항을 감상하고 있으니 최익환 동기생이 부산항을 배경으로 스냅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하면서 폼 잡기를 요청하여 장태옥과 함께 어깨를 끼고 한 장을 컷 하였다.
 뱃전에 스치는 바다를 향해 손가락으로 담배꽁초를  튕기며 계단을 내려 객실로 돌아오니 정중용 선배님과 몇분이 맥주잔을 들이키며 Y담이 한창이고 칸막이 건너편에서는 44회 동기생들이 둘러 앉아 고스톱판을 벌려 놓고 새 잡기에 한창이었다.
  기관실 기계소리, 고스톱 치는 소리, 술좌석의 떠들석함 때문에 조용히 잠자리에 들 분위기가 아니었다.            
 김치구, 오명희, 선배의 고스톱 요청에 박광식 선배등과 함께 새 잡기에 나섰다.  초반에 고전을 면치 못 하던 박광식 선배로부터 쓰리 고, 피박에 88을 당하고 보니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김형진 부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뒷전으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자는둥 마는둥 하다가 눈을 뜨니 새벽 5시, 양쪽에서는 여전히  밤샘 고스톱이 한창이었다.


  갑판으로 나가 새벽 공기를 마시며  제주항을 바라보다 객실로 돌아와 이것 저것 챙기다 보니  하선 준비를 하라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새벽 7시30분, 제주항에 도착, 미리 대기하고 있던 두 대의 봉고차에 11명씩 나누어 타고 어리목을 향 하였다.
 꼬르륵 배를 참을 수 없어 나누어준 도시락을 차 안에서 먹으며 8시40분에 해발 1000미터의 어리목 매표소에 도착, 그 곳에서 산행에 필요한 식수를 채우고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여 입산을 시작하였다.
  밤새 고스톱으로 지쳤는지 오인환등3명이 산행을 포기하고 뒤 돌아 서는 것을 보며 산행을 시작,  통나무와 밧줄로 이어진 난간을 잡고 돌 계단을 밟으며 오르막 길을 500미터 정도 올라가니 등에서는 땀이 솟고 숨소리가 거칠어 지기 시작하였다.
 계속하여 오르막 돌 계단을 40분 정도 올라가니 해발 1300미터의 안내 푯말이 보이고 약수터가 일행을 반긴다.  악수 한사발을 들이킨 후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뒤 돌아 보니 최익환 동기생이 벌써부터 채력이 달리는지 걸음 걸이가 시원찮다.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후 숲길을 기어 오르니 2. 1키로미터까지 왔다는 푯말이 세워져 있고 숲지대라는 표시가 있다.
 계속 돌계단을 올라가니 좌 우로 푸르른 주목과 청대 숲이 우거져 있고 사이 사이로 적송이 힘차게 뻗어 있으며 그 사이로 힘겹게 10분정도를 더 올라 첫 고개에 도달하니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며 사제비 동산에 도달 하였다.
등산객에 놀란 이름모를 새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 멀리가  앉는다.
 뒤로는 제주항이 한 눈에 들어오고 우측으로는 삼방굴이 안개 속에 흐릿하게 보이고 그 너머 푸르른 남태평양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등산객은 줄을 잇고 날씨는 그야말로 탱큐다. 
3대 적선을 해야만 이런 날씨를 택 할수 있다는 봉고 기사의 말대로 그야말로 정말 날씨가 좋다.
 10시30분, 평탄한 돌 길을 지루하게 걷다 보니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한라산 정상, 백록담이 눈앞에 와 닿았다.
 정상을 쳐다보며 앙상한 잡목과 철쭉사이로 지루하게 언덕을 올라서 계곡에 도달하니 미리 도착한 김치구 선배가 스탠레스 컵에 계곡 물을 가득 떠서 약수라며 한잔 권하기에 받아 들이키니 냉기가 심장에 와 닿는다.
 뒤 따르는 김종률 선배에게 컵을 인계하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니 황정웅 선배가 정상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오르겠다며 계속  걸어 가는 것을 보고 뒤 따라 올라갔다.
  11시 정각, 정상까지 2. 8키로미터 남았다는 윗 오름새 산장에 도착하니 도시락을 지참할 수 없으니 배낭을 보관하고 입산하라는 안내방송이 울리고, 둥근 동판에 이름을 새겨 등산기념패를 만들어 파는 젊은이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다시 걷기 시작,  10여분을 걸었을까 갑자기 찬 바람에 한기를 느끼며 산 모퉁이를 돌아서니 계곡에 잔설이 남아 있었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도 북면 등산로를 폐쇄하는 바람에 우측 내리막 길로 들어 섰다. 
내리막 길을 한 없이 내려 오면서 고개를 드니 정상에 이르는 가파른 오르막 길에 등산객들이 개미떼같이 줄을 서 기어 오른다.
 계곡을 넘어서고 오르막 길에 들어서서 뒤 돌아 보니 우측으로 서귀포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 선다.
 돌뿌리를 잡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르막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으니 가쁜 숨이 턱에 와 닿고 돌 계단을 기어 올라설 때 마다 뒤로 당겨져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 질 것만 같았다.
 중간 지점에서 휴식을  취할 바위를 찾아 앉으니 뒤 따르는 등산객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나의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올라설 듯한 정상이 갈수록 멀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잠시 휴식을 취 한후 다시 돌 계단을 밟으며 기다시피 올라 가니 정상까지 20미터 남았다는 표시가 바위에 새겨져 있고 내려오던 등샨객이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이니 힘을 내라고 격려를 해 준다.
 헐떡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어보니 먼저 도착한 황정훙 선배가 칼 날 같은 바위위에 걸터 앉아 우리를 향하여 "야호"를 외쳐대고 힘을 내어 몇발을 내 딛고보니  갑자기 붉은 흙 먼지가 일어나며 백록담이 시야에 들어 온다.
 분화구 좌측편에는 계곡을 따라 길다란 잔설이 남아 있고 바닥 우측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분화구를 향하여 30여미터를 내려가니 '백록담 1950미터'라는 푯말과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고 그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려는 등산객들이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정상에 올라 땀을 식히고 오른쪽 바위에 올라서니 앞서 도착한 황정훙 선배가 주먹으로 깬 참외를 주면서 멀리서 올라오는 김광수를 향하여 파이팅을 외쳐댄다.
 어리목에서 산행을 포기 했다는 오인환 선배가 모습을 들어 내고 홍철훈 선배도 기진맥진한 폼으로 숨을 몰아 쉬며 기어 오르고 있었다.
 12시 30분 , 22명중 20명이 정상에 도달하였고 이름을 밝힐수 없는 나의 동기생 W를 포함한 2명이 중도에서 포기 하였다.
 정중용, 오명희 션배 부부가 정상에 도착하자 모두들 박수를 치며 노익장에 찬사를 보냈다.
 정상에서 백록담을 배경으로 몆 장의 기념 촬영을 마치고, 오후 1시30분에 윗오름 새산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하산을 시작, 뛰다시피 하여 단숨에 산장에 도착하였다.
 오후2시30분, 맥주캔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김형진 선배로 부터 건포도를 몇 알 받아 먹으며 한 참을 기다렸으나 2진이 도착할 기미가 없어 김치구 선배등 일부는 먼저 하산을 하고 김종률 선배과 함께 산장에서 뒤쳐진 회원을 기다렸으나 오후 3시가 되도록 홍철훈 선배가 내려 오지를 않아 김종률 선배만 산장에 남게하고 모두 영실을 향하여 한산을 시작 하였다.
 등산로를 따라 민둥성이산을 내려 오니 정력제?라 불리우는 까마귀 세 마리가 머리위를 선회하다 우측산 기슭에 앉아 꺽 꺽 소리를 낸다.
 한참을 내려오니 좌측 너머 온갖 형상을 지닌 병풍바위가 우리를 맞이 하고 다시 울창한 숲에 다달았다.
 일행은 휴식을 위하며 김종률 선배가 내려 오기를 기다렸으나 보이질 않아 다시 하산을 계속, 병풍바위를 지나 영실을 500여미터 남겨 두고 계곡에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피로를 풀고  난 후 숲을 지나 영실에 도착할 무렵 김종률 선배가 탈진 상태의 박남훈을 어께에 메고 온몸에 땀을 쏟으며 내려 오고 있었다.
 순간 사고인 것을 직감, 50여미터 뒤따르던 홍철훈이 물을 뒤 집어 쓴 모습으로 모기만한 소리를 내며 정상에서  내려 오던 중 약수터에서 박남훈이 탈진상태로  쓰러진 것을 대피소 까지 메고 왔다가 그 곳에서 김종률 선배에게 인계하고 여기까지 내려 오느라 혼이 났다고 하면서 사고를 알려 주었다.
 먼저 내려간 회원을 원망도 하면서 오후 5시에 영실에 도착하니  다른 회원은 이미15분전에 영실을 출발, 성산포항을 향하였고 우리 일행은 남은 봉고차에 탑승하여 뒤따라 성산포항을 향하였다.
 봉고차 뒷좌석에 몸을 던지고 눈을 감았으나 차가 흔들려 피곤만 더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5. 16도로 중간지점에서 타고가던 봉고차가 고장을 일으켜 모두 내렸다가 운전기사의 연락을 받고 온 다른 봉고차에 옮겨 타고 오후6시30분에 성산포항에 도착하였다.
 먼저 도착한 회원들은 타고 갈 배가 오후 6시30분에 출항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영실에서부터 과속으로 질주하며 교통경찰차를 추월하고 생명을 걸고  달려 왔다고 불평을 털어 놓는다. 
출항까지 2시간의 여유,  소주와 맥주를 마시며 여기 저기에서 왁자지껄 한다.
오후 8시30분에 성산포항에서 5000톤급 제주 카페리호에 승선하였다.
 선내 식당에 모여 맥주잔을 높이  처들고 김종률 선배의 '위하여'를 선창으로 산악회의 단합을 다지고 비빔밥으로 요기를 한 후 객실로 돌아와 누으니 온몸의 피로가 일시에 엄습한다.
 김치구 선배의 고스톱 요청에 전날의 패배를 설욕키 위하여 오명희. 김광수등과 함께 2차 고스톱  판이 벌어 졌다. 두어 시간만에 전날의 패배를 설욕하고 장태옥에게 자리를 물려 주고 자정경에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 5시, 옆자리에서는 밤샘 고스톱을 가고 있었고 갑판을 나가 보니 카페리호는 어느덧 태종대 등대앞을 지나고 있었다.
 새벽 찬 공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새벽 6시 전 회원이 무사히 하선하여 부두에 도착, 2박3일의 산행을 끝마쳤다.
  허기진 배를 선지국으로 채우고 산악회의 발전과 회원의 건강을 빌며 다음 산행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회원들의 단합을 다지는 즐거운 2박3일의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