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씨를 기다려서 산행을 한 2004년 4월 14일은 평일(수요일)이라서 호젓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상봉 터미널에서 운악산 입구인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로 직접 가는 직행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7시 10분에 집을 나와서 상봉 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 50분경. 오전 중에는 한 번밖에 없는 8시 10분발 현등사 입구행(하판리행) 직행버스를 탔다. 이 버스를 놓치면 현리에서 운행회수가 적은 하판리행 버스로 갈아타야 하니 그곳에서 운행하는 버스의 시간표를 모르는 자신으로서는 산행이 한참 늦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망우리 고개를 넘어서 구리시를 지나 현등사 입구에 도착한 것이 9시 50분경. 일단 5천원 짜리 순두부 백반으로 빈속을 채운 후에 매표소에서 일천 원의 입장료를 내고 초행의 산행 길에 들어섰다.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마르고 닳도록 드나드는 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표소를 지나서 완만한 오르막길을 천천히 오르면서 높이가 십 미터는 족히 넘을 듯한 소나무들에서 짙게 풍겨져 나오는 솔 향기를 맡으며 감지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접한 지식이 이 산에 대한 지식의 전부인지라 묘한 스릴 마저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십여 회 이상 올라 본 북한산 백운대(836.5 미터)보다 100 미터 정도 더 높은 935.5 미터라고는 해도 백운대 만큼 험하기야 하겠는가 하고 조금 얕잡아 보기도 했지만...
 첫 번째 방향표지판을 보고 현등사 쪽으로 직진하지 않고 우측으로 꺾어져 눈썹바위로 올라가는 좁은 산길은 처음에는 능선을 따라 평탄한 육산의 모습을 보여 주는 산행 길이라서 느긋한 마음으로 오를 수 있었다. 삼십여 분쯤 올라갔을까? 평지의 도로와 하천을 조망할 수 있는조그맣고 평평한 바위에 두 다리를 펴고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조종천과 그 개울을 낀 도로와 부락이 한눈에 보였다.

 

 눈썹바위로 올라 가는 산행 중의 조그만 바위에서 내려다 본 가평 하판리의 조망. 

 보온병에 담긴 음료수를 한잔 마시고 오렌지 한 개를 까 먹은 다음에 다시 배낭을 메고 일어나서 산행을 계속했다. 그런데 조금 더 올라가자 사람들이 닦아 놓은 길은 점점 옹색해지기 시작하고 바위로 된 고개를 넘자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위험이 느껴지는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눈썹바위는 어떤 곳인지 확인하지도 못한 채로 험한 산행을 계속하다가 아무도 보이지 않고 길을 잃거나 조난을 당할 듯한 불안감이 들어 다시 되돌아 내려갈까도 생각해 봤는데 다행히 가끔 두어 명의 등산객들이 출현해서 안도감을 느끼면서 산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눈썹바위 부근부터 정상인 만경대까지는 그야말로 험로의 연속이었다. 북한산의 백운대가 가장 험한 워킹 코스라고 생각했었던 자신의 짧은 산행 경력이 우스워지는 자조감 속에서 때로는 로프를 잡고 때로는 암벽에 박힌 굵은 말굽형의 쇠파이프에 발을 지탱하면서 힘겹고 위태로운 산행을 계속했다.
 만경대까지 중간에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수십 번은 든 험난한 초행의 나 홀로 산행이었다. 군데 군데 지정된 촬영 장소와 스스로 찍고 싶은 임의의 장소에서 카메라로 촬영을 했다.


 병풍바위의 장엄한 모습.


 험한 산행 중에 숨을 고르며 한 컷 찍은 미륵바위의 장관.

 철사다리가 있는 곳까지 가면서 급격히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스스로의 귀에 들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숨가쁜 산행도 위태로워 보이는 급경사의 철사다리를 올라간 이후로는 비교적 가벼운 산행이 보장되었다.
 다시 철사다리 위의 전망 좋은 바위에서 사진을 두어 방 찍고 약간의 내리막길을 타고 다시 평탄한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니 운악산의 정상인 만경대에 이른다. 정상은 암봉이 아닌 평탄한 수백 평 정도의 육산이었다. 악산의 정상치고는 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락하고 평온해 보이기만 한 정상.


 악산 답지 않게 정상은 아늑하고 평평한 육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운악산의 정상인 만경대.

 정상에서 사진을 또 두어 장 정도 찍고 오 분 정도 휴식을 취했다. 험한 산이지만 방향표지판은 참 잘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소요소마다 세워진 방향표지판은 초행길의 등산객일지라도 이 표지판에만 의존해도 길을 잃을 위험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보고 계획한 대로 남근석바위, 절고개, 코끼리바위를 거쳐 현등사를 보고 내려가는 코스를 택해서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도 위험한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조심스럽게 내려 왔다.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코믹한 남근석바위


 하산길도 험한 운악산에서 두 번째로 코믹한 절경인 코끼리바위

 내려오다보니 현등사 입구가 나와서 그냥 등산로를 따라서 내려갈까 하다가 옛날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가을 소풍을 이곳, 현등사로 온 일이 생각나서 추억을 되씹는 의미에서 현등사를 들르게 됐다. 수통의 물이 새서 물도 충분히 마시지 못 해 목도 축일 겸 현등사로 향했다. 현등사의 누추한 돌계단을 올라가서 샘물을 두 바가지나 달게 퍼 마셨다.
 현등사에서 십여 분간 쉬었다가 다시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민영환바위와 백년폭포가 보였다. 백년폭포는 그 이름과는 달리 그렇게 웅장하지 않아서 실망했다.


 해상도가 낮아서 사진상으로는 "영환"이라는 암각이 보이지 않는 민영환바위

 포장도로를 따라서 쭉 내려오니 아침에 들어왔었던 매표소가 보인다. 완벽한 원점회귀형 산행을 마친 것이다. 하판리의 음식점에서 산행의 피로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잣막걸리 한 병과 도토리묵무침 한 접시를 말끔히 비우고 귀가하니 뱃속이 든든하고 식사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아서 그날따라 일찍 침대에 누워 단잠을 잘 수 있었다.

  

 


▣ 코리아마운틴 - 담담하게 그리고 사실감있는 산행기 잘접하고 갑니다 꼭 한번 가고픈 산입니다... 감사합니다.
▣ 산너울 - 저는 5월1일날 다녀왔습니다. 저랑 같은코스로 하셨네요. 지금은 가평군에서 안전장치를 너무 잘 놓았지만 예전에는 무척 험했습니다. 항상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이어가십시요
▣ 운 해 - 운악산의 병풍바위와 미륵바위 신록과 함께 하니 더욱 멋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강복님의 촬영솜씨가 더 빛을 내는 것 같습니다. 잘 정돈된 산해기 잘 보고 갑니다. 줄산 하세요?
▣ 산초스 - ㅎㅎㅎ 저는 일년에 몇번씩 다니는 곳인데 초행길이라 너무 쉽게 생각하셔서 오르실때 힘들게 느끼신것 같습니다. 사실은 만경로코스가 2년전만 하더라도 시설물이 잘 설치되어 있지않아 3시간정도 걸려 주로 짧은 밧줄을 잡고 올라가면 (쇠말뚝받침등 생긴이후로 거의 1시간이상 단축됨)모두 힘들어서 누워버린 코스인데 지금은 약간 시시해졌다고들 하지요. 몇번 가보시면 백운대보다 쉽다는 생각 들것입니다. 포천쪽 청학사-서봉-운주사코스가 유격코스로 재미있답니다.^^**
▣ 이강복 - 처음 쓰는 산행기에 대한 여러분의 답글,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산행에 대한 기록을 이 곳에 남기려고 합니다. 산을 한번 올랐다고 해서 그산을 정복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지 않고 겸허한 마음으로 대자연과 친화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 tdcyoun -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 tdcyoun - 님께서 한북정맥의 운악산을 다녀오신것에대하여 축하드림니다
▣ 이강복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꽤 힘들었지만 보람찬 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