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에서의 하룻밤-감기 몸살 100배 즐기기

산행지 : 원도봉산 산불감시 초소 아래 암봉
산행자 : 단독산행
숙박   : 후라이 야영

약 20일간의 지독한 몸살과 감기.
괴롭고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마음껏 게을러도 좋다는 當爲가
생겨 오히려 몸살과 감기를 즐깁니다.   

점과 선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틀에서 암묵적으로 일탈할 수 있는
핑계거리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감기 몸살은 충분히 표출되는 객관적인 핑계거리입니다.
이마를 만져 보면 38도의 열이 그를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이마를 들이대며 자꾸만 만져 보라고 시위를 합니다.
일탈을 겨냥한 계산된 행위입니다.

목을 지나 기관지 깊은 곳에서 수시로 튀어나오는 마른기침.
이 것 역시 점과 선에서 일탈해도 좋다는 핑계거리로는 그만입니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괴로운 기침을 연이어 하면 점과 선상에서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굳이 이마를 만져 보지 않아도 점과 선에서의
일탈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탈의 인정뿐만 아니라 일탈을 강력 권유합니다.
감기 몸살이란 전염성이 유별나게 높은 유행성 질병임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과 선에서의 일탈의 자격을 내가 요구함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강력히 권유하니 마지못해(!) 일탈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 또한 생활신조이기도 하여
하기 싫은(!) 해서도 안될(!) 일상에서의 일탈을 합니다.

그리고......좀 치사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환자로서의 20여일간의 자유를 만끽합니다.
가족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마음껏 게을러져도 좋습니다.

이웃들의 근심어린 전화를 받으면 기침 몇 번하면
"푹 쉬십시오"라는 일탈의 정당한 자격을 재삼 확인하여 줍니다.
세상에 이런 공인된 핑계거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몸살 감기가 마냥 머물러 있지만은 않습니다.
아쉽게도 체온은 점차 36.5도 정상으로 내려가고 기침은 슬그머니
사그러져 갑니다.

가족들의 대접과 이웃들의 "이젠 많이 나아지셨습니다"라는 인사를
조금 더 연장하고 싶어 이 궁리 저 궁리의 꼼수 끝에  도봉산에 올라
후라이를 치고 하룻밤 야영을 하고 내려왔으나 감기 몸살이라는 놈은
꼼수가 통하지를 않습니다.

제가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오고 제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가는
망나니 같은 놈입니다. 

할 수 없지요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이번 감기 몸살로 터득한 생활의 지혜-감기 몸살 100배 즐기기

1, 일단 감기 몸살이다 생각되면 4방, 5방, 8방에 소문을 내십시오.
병원? 약국?
열심히 찾아가십시오. 환자가 병원과 약국을 멀리하면 의심받기 마련입니다.

감기 몸살이라는 녀석은
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국에서 약을 먹으면 3주만에 달아나지만
안 맞고 안 먹고 견디면 20일 만에 스스로 물러나는 미련한 놈입니다.

2, 철저한 환자가 되십시오.
입으로는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빠트리면 절대 안되며
이마는 가족들에게 수시로, 귀찮을 정도로 만져 보라고 강요를 하십시오.
또한 기침은 쪼끔 과장되게 심하게 하셔야 인정을 받습니다.

3, 조직은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아차 실수하여 맑은 소리로 전화를 받으면 이건 완전 낭패입니다.
아예 감기 몸살이다 생각되면 우선, 무조건 목에 힘을 완전히 빼어
버리십시오.

절대로 목소리의 톤이 높아서는 안됩니다.
최대한도로 낮추십시오.

4, 감기 몸살이 조금 호전된다 싶으면 더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강구하십시오.
예를 들어 찬물에 목욕을 한다던가 하다못해 머리만이라도 냉수에
감아 보십시오. 탁월한 효과를 경험하실 것입니다.

헌데 도봉산에서의 하룻밤 야영은 <쌓은 공>에 비해 별 효과를 얻지 못해
권해 드릴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
거 참 이상하게도 효과가 없더군요.
산하고 궁합이 맞아서 그런가.......?

여하튼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마시고 기왕 걸린 감기 몸살이라면 100배
즐기시기 바랍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안온한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콜록 콜록..... 


 




▣ san001 - 어휴! 감기가 있으신데 비박을 하시다니요. 빨리 완쾌하시길^^^
▣ 김찬영 - 드디어 터득을 하셨군요 소주맛은 괞찮을터인데요. 아직도 감기를 즐기십니까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