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운해와 주목

 

 

2010. 1.  10. (일)

 

안성-동엽령-중봉-향적봉-동엽령-안성 

 

08:30 ~ 16:00 (약 7시간 30분)

 

 

 

<중봉에서 바라본 덕유산 주능선과 운해>

 

 

 

 

산과의 약속

 

전 날 토요일 오후에 퇴근을 하면서

'내일은 만사 제쳐놓고 덕유산에 가야지.' 생각을 했습니다.

하얀 눈꽃을 덮어쓴 채 세상을 풍미하며 서 있는 주목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올해 겨울은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았습니다만

어떻하든지 덕유산에 꼭 가야겠다는 결심....  물론 산이 오라가라 한 것도

아니지만 이미 마음이 그리 정해진 것은 산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안성탐방지원센터 시인마을>

 

 

일요일 아침,

눈을 뜨니 벌써 5시입니다. 동엽령에서 일출을 보려면

새벽4시에는 출발해야하고, 보통때는 5시에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인데 너무 늦었네요.

저도 감기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꼭지도 아프다며 일어날 생각을 않습니다.

 

시간도 늦었고.. 갈까말까 잠시 망설지더군요.

하지만 얼른 배낭을 꾸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홀로 떠나는 것이 미안했지만

산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꼭지야! 미안해."

 

안성읍내를 지나 탐방지원센터로 가는 도로는 완전 빙판이더군요.

지난번에는 미끄러져서 차가 한 바퀴 돌았던 기억이 나서 조심조심..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간은 8시30분입니다.

 

 

 

 

가냘픈 산죽이 저 무거운 눈을 이고서도 미동조차 않습니다.

 

 

 

고도 1200m지점을 올라서니

나뭇가지에는 서리꽃이 맺히기 시작하고 하늘에는 갑자기 눈발이 날립니다.

 

 

 

동엽령 바로전의 나무계단입니다.

이 쯤에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올라야 합니다.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춥고 바람불고.. 그때는 이미 때가 늦거든요.

 

 

 

동엽령입니다.

능선에 올라서자마자 바람이 반갑다며 와락 달려듭니다.

예상대로 엄청 춥네요. 기온은 영하 10도, 금방 뺨이 얼얼해집니다.

운무는 통째로 삼키려는 듯 산정을 휘감고 있어서 조망은 전혀 없습니다.

'날씨가 뭐 이래~!' 한 마디로 실망입니다.

 

파란하늘을 수놓은 상고대, 그 아래로 막힘없이 펼쳐지는 산마루..

기대했던 모든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돌아설 수는

없는지라 주목이 있는 덕유평전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향적봉까지 4.3km?

다시 돌아올 길이 걱정됩니다.

  

 

 

겨울꽃 너머로 운무때문에 골짜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봉우리 두 어개를 넘어서니

구름이 발아래에서 놀고 있습니다. 신선이 된 기분이 이런것일까요.

 

 

 

 

 

 

인생에도 역전이 있듯이 산행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는가 봅니다.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운해가 낮은 산마루를 골라 파도처럼 넘실대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엔 눈을 의심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대역전 드라마 같은 운해

 

올라가던 산님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서서

그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은 채 바라봅니다. 조금전 지나왔던 동엽령위로

 하얀 바다가 산릉을 타고 춤을 춥니다. 이제는 바람조차 자취를 감추고

순백의 적막만이 남았습니다.

 

 

 

 

저 솜털같은 흰구름이 바로 겨울에 서리꽃을 만들어내는 구름입니다.

희다는 것은 무한한 창조를 뜻하기도 합니다. 모든 색의 근원이 흰색이니까요.

 

 

 

 

 

 

 

 

 

 

 

 

 

 

 

백암봉 오름길의 기온은 영하3도,

조금전 동엽령에서는 영하 10도였는데 고도를 높힐 수록

오히려 기온이 올라가니 신기합니다. 더워서 내피를 벗어 배낭에 넣고

요동치는 하늘과 땅을 바라봅니다. 대부분 안개낀 날에 운해를 볼 수 있지만

오늘 같은 날 운해를 볼 줄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서리꽃을 만드는 구름은

고도가 높은 정상부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오늘은

고도 1200~1300m 지점에만 몰려있고 그 아래와 위쪽은 구름이 없습니다.

이런 풍경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오늘 행운입니다.

 

  

 

 

멀리 운해위로 솟아오른 지리산!

천왕봉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릉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무룡산과 남덕유산, 서봉.. 운해위로 솟아오른 덕유의 연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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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뒤로 월봉산과 금원산, 기백산도 시야에 들어옵니다.

언제나 덕유의 편에 서서 그리움의 눈길을 보내는 가까운 이웃의 또 다른 덕유...

비록 巨山에 가려 찾는이가 적지만  덕유의 영원한 응원자이기도 합니다.

만약 그들이 없다면 덕유산도 빛을 잃을 것입니다.

 

 

 

중봉을 올라서면 절대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됩니다.

왜냐고요? 그랬다간 그 황홀한 풍경에 넋을 잃어 몸이 굳어버릴지도 모르거든요.

중봉을 올라서면 매 번 느끼는 일이지만 그자리에 서서 돌이되고 싶은 곳..

그래서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싶은 풍경들..

 

어느 때 바라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덕유의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가 꿈꾸는 무릉도원이 덕유연봉과 지리산릉..

그 운해속에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중봉에서 바라본 운해>

 

 

 

 

 

 

 

이제 그리움으로 연모하였던 주목을 만나러 갑니다.

 

 

 

 

 

  

 

 

'덕유평전' 

 

봄부터 천상화원으로 변하기 시작해 여름이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원추리의 군무를 볼 수 있는 곳.. 덕유평전, 바로 주목이 있는 곳입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썩어 천년.. 그래서 주목은 삼천년을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주목은 죽어서 더욱 고고한 자태를 뽐냅니다.

 

겨울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덕유산 주목

오늘은 눈꽃과 상고대뿐만 아니라 멋들어진 운해와 하얀 설원이

더하여  주목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신이 창조한 예술이라 하기에도 모자랄듯..

자연의 신비는 가끔씩 우리를 혼돈에 빠지게하여 울리기도 합니다.

 

 

 

 

"아~! 오늘 여기서 죽어도 좋겠다."

 

갑자기 어느 산님이 외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함몰되어 그냥 죽어도 좋겠다는..

아~~! 오늘 정말 여기서 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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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백두대간능선들도 시야에 들어옵니다.

빼재에서 잠시 숨을 고른 대간은 덕유삼봉산, 대덕산을 향해 또 날개짓을 합니다.

그 시리고 시린 능선들.. 운해와 더불어 눈 앞에 펼쳐지는 이 아름다운 풍광앞에서

꼭지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이제 동엽령으로 되돌아 가는 길입니다. 운해가 조금 옅어졌네요.

  

 

 

오후가 되면서 눈꽃과 서리꽃이 녹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아름답네요.뒤돌아가는 길에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백암봉> 송계삼거리.. 북쪽으로 달리는 백두대간 갈림길입니다.

 

 

 

아침에 바라보았던 운해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잔잔한 감동을 전해줍니다.

 

 

 

마냥 행복해 하는 산님들.. 

 

 

 

 하얀 산호초처럼 피어난 상고대, 우리는 그를 서리꽃이라 부릅니다.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덕유산의 겨울은 모두가 꽃이 됩니다.

 

 

 

그리고는.....

 

 

 

우리를 유혹합니다.

 

 

 ㅡ The End ㅡ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