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지리산


 

        *산행일자:2008. 3. 8일(토)

        *소재지  :경남통영

        *산높이  :지리산398m, 달기봉399m

        *산행코스:내지선착장-절재-지리산-절재-달기봉-옥녀봉-대항선착장

        *산행시간:12시30분-16시18분(3시간48분)

        *동행    :다솜산악회 회원

 

 

  남쪽 나라는 누구에게나 한번은 찾아가서 머무르고 싶은 이상향인가 봅니다. 파인 김동환은 그의 시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에서 진달래 향기, 보리 내음새와 종달새 노래가 있는 남촌을 그렸습니다. 노산 이은상도 남쪽바다가 설사 그의 고향이 아니었더라도 가고파라 가고파하고 노래했을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또한 마지막 남은 단맛이 포도주에 스미게 하도록 이틀만 더 남국의 햇살을 베풀어달라고 주님께 빌었습니다. 21년 전 분단 이후 최초로 전 가족이 배를 타고 동해로 나가 북한을 탈출한 김만철씨 일가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머물고 싶다했습니다. 이렇듯 남쪽 멀리 남촌과 남국, 그리고 남해는 북반구 사람들이 한번은 가보고 싶은 이상향임이 분명합니다.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라는 시에 곡을 붙여 박재란이 부른 노래가 널리 애창된 것도 이상향에 가고픈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서입니다. 이 노래를 부른 박재란도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한창 인기가 올랐을 때는 “엘레지의 여왕”의 이미자 못지않게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갈채를 받았었기에 이 시가 널리 알려진 데는 그녀가 한 역할을 한 것은 확실합니다. 시가 대중음악을 만나 대중들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 사례는 더 있습니다. 요절한 시인 박인환은 박인희라는 가수를 만나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라는 시의 수명을 늘리는데 성공했고, 가수 송창식은 “그대 있음에”라는 노래를 불러 김남조의 시를 광장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렇다 해도 산 너머 남촌이 이상향을 상징하지 않는다면 유명가수 박재란이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가수로서의 그녀의 수명보다 더 오래 이 노래가 불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껏 가보지 못한 남해바다의 사량도 지리산이 산 너머 남촌이겠다 싶어 이 섬으로 산 나들이를 가겠다는 한 산악회에 전화를 걸어 재빨리 예약을 했습니다. 쪽빛바다와 기기묘묘한 바위, 그리고 넉넉한 인심 등으로 그냥 놓아두면 이상향으로 부족할 것이 없는 이 섬이 최근에는 관광객이 부쩍 늘어 몸살을 앓을 정도라 해 더 이상 제 모습을 잃기 전에 빨리 다녀오고 싶은 생각에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시작된 감기몸살로 컨디션이 그리 개운치 못한 몸을 이끌고 사량도 탐방 길에 올랐습니다. 삼천포에서 40분 남짓 걸려 사량도 내지포구에 이르기까지 제가 그린 이상향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감흥에 겨워 몇 번이고  박재란의 “산 너머 남촌에는” 노래를 속으로 부르며 흥얼댔습니다.


 

  한낮인 12시30분에 내지마을을 출발했습니다.

잠실을 출발한 버스가 삼천포에 도착한 것은 11시 40분경으로, 버스에서 내려 2-3분 거리의 선착장으로 이동해  대기 중인 배에 바로 올라탔습니다. 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다도해의 바다답게 여기 저기 섬들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어 항해 중에 흔들림이 전혀 없었습니다. 삼천포와 남해를 잇는 주홍색의 조형미가 빼어난 연륙교가 점점 멀어지고 삼천포화력발전소의 우람한 굴뚝 세 개가 가까워지는 가 했는데 어느새 배는 사량도 섬에 이르렀습니다. 날씨는 쾌청하고 따뜻해 당장이라도 남촌서 봄바람이 불어올 기세였습니다. 허름한 간판의 민박집 외에 이렇다 할 음식점이나 가게가 없어 여느 어촌보다 더 한가해 보여 해안가의 가지런한 자갈들도 파도가 밀려오지 않는다면 엄청 심심해할 것 같았습니다. 왼쪽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가 이름 모르는 커다란 나무들이 여러 그루가 서있는 마을 어귀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지마을을 지나는데 5-6분이 걸렸습니다. 내지마을 지나 길 섶 양쪽으로 돌담이 쌓인 좁은 길이 3-4분간 이어졌고, 이내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됐습니다. 얼마 안 걸어 쟈켓을 벗고자 걸음을 멈춘 몇 분들을 앞질러 산 오름을 계속하자 너덜 길이 나타났습니다. 이 길을 따라 15분여 걷는 동안 몸이 풀렸고 등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지마을 출발 45분이 지나 능선삼거리인 절재에 올라서자 먼저 오른 일행 몇 분들이 숨을 고르며 뒤따라 오르는 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3시44분 해발398m의 지리산(池里山)을 올랐습니다.

절재에 올라서자 산행대장께서 지리산과 반대방향으로 길안내를 해, 지리산은 오르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지리산보다 1m 더 높은 달기봉을 오르게 되며, 사람들이 몰리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줄 모르는 옥녀봉을 오르기 위해서 지리산은 생략한다는 답을 듣고, 저는 옥녀봉을 포기하고 주봉인 지리산을 다녀오겠다며 양해를 구한 후 오른 쪽으로 꺾어 0.6Km 떨어진 지리산으로 내달렸습니다. 상봉과 주봉이 서로 다른 산을 오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어서 시간이 없을 때 어느 봉을 오를 것인가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만, 저는 이런 경우 상봉을 포기하고 주봉에 올랐습니다. 어느 한 산을 대표하는 주봉은 통상 가장 높은 상봉으로 정하는데 산세와 위치 및 전설 등을 감안해 간혹 상봉보다 낮은 봉우리를 주봉으로 삼기도 합니다. 장자가 신통치 못할 때 둘째나  셋째에 임금 자리를 넘겨주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그렇다면 당연히 주봉을 올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절재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자리한 몇 개의 암봉들이 빚어 낸 기암절벽도 일품이려니와 이 산줄기에서 내려다본 해안선과 섬, 그리고 바다가 더 절경이었습니다. 돈지포구의 평화로운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다 건너 해발 700m대의 와룡산의 위용도 저 정도인데 해발 1,900m가 넘는 지리산(地異山)이 제대로만 보인다면 여기 지리산이 최고의 전망대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에도 보이지 않는 지리산(地異山)이 눈에 잡히기를 맥 놓고 기다릴 수 없어 자리를 뜬 저보다, 지리산의 현신을 이 산이 더 학수고대해왔기에 지리망산(地異望山)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것입니다. 바라봄(望)은 그리움의 몸짓이고, 그리움은 외로움의 발로입니다. 그러기에 외롭지가 않다면 누구를 바라보며 마냥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지리산(池里山)이 바다 건너 지리산(地異山)의 드러남을 그토록 갈망하며 기다리는 것은 이 섬이 외롭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이번에 지리산(地異山)을 볼 수 없는 것은 이 섬이 외지에 알려지고 나서 주말이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외로울 틈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갓진 주중에 다시 와야 지리산(地異山)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때이면 여기 사량도도 더 오래 머물다 가고 싶은 이상향으로 제게 다가설 것입니다.


 

  14시42분 이 산의 상봉인 달기봉을 지났습니다.

지리산에서 절재로 되돌아가는 데 20분 남짓 걸렸습니다. 절재에서 잠시 쉬며 김밥을 꺼내 든 후 달기봉으로 향했으니 일행들보다 대략 1시간 늦게 절재를 출발한 것 같습니다. 달기봉에 오르는 길 오른 쪽 아래로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 있어 이 섬이 이상향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하는 제 기대가 실없다 했습니다. 주봉인 지리산보다 1m가 더 높아 상봉으로 대접받는 달기봉은 암봉으로 설악산의 주상절리를 옮겨놓은 미나아춰(miniature) 같았습니다. 옥녀봉을 오르겠다는 욕심이 동해 달기봉을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우회해 대항과 옥동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로 내려서자 지나온 길에 “추억은 가슴속 쓰레기는 배낭속”의 플래카드를 걸어 놓은 달기봉매점이 이 사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옥녀봉을 거쳐 대항 선착장으로 내려가는데 한 시간 반가량 걸리고 길이 밀려 더 걸릴 수 있다는 매점아주머니의 말씀을 듣고 서둘러 옥녀봉으로 내달리는 바람에 가슴속에 묻어둘 추억도 배낭 속에 넣어둘 쓰레기를 만들 겨를이 없었습니다.


 

  15시56분 해발281m의 옥녀봉을 올랐습니다.

안부사거리를 출발해 오른 기마봉은 연습코스였습니다. 두 줄을 걸쳐 놓은 오름 길은 스탠스와 홀드가 양호해 힘들여 이 줄을 잡고 오르지 않더라도 별 문제 없겠다 싶었는데 철사다리를 놓은 내림 길이 안전하기는 하지만 직벽의 낭떠러지 아래가 아찔해 보였습니다. 집 떠날 때 릿지화를 신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옥녀봉을 외줄 하나 잡고 오를 때였습니다. 이 길이 위험해 안전한 우회길이 나있었습니다만, 젊어 한 때 바위를 했다는 제가 피해 가기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심호흡을 하고나서 바위에 붙었습니다. 막상 붙고 보니 발 딛을 틈도 손잡을 곳도 곳곳에 있어 밑에서 보고 생각한 것보다는 쉬웠습니다만, 비바람이 부는 날은 고전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오른 봉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옥녀봉의 돌탑이 보였습니다. 사량도 아래섬의 칠현산도 의젓해 보였고 위섬인 이 섬과 아래 섬  사이를 흐르는 동강으로 불리는 해협도 다른 곳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비경이었습니다. 대항선착장으로 길이 갈리는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줄사다리를 걸어 놓은 내림 길이 밀려 산악회가 정해준 16시20분까지 대항 선착장에 닿지 못할 까 엄청 마음 조렸는데 다행히도 대기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여기 지리산 옥녀봉의 입에 담기에 부끄러운 근친상간의 전설을 나중에 안 것이 다행이다 싶었던 것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옥녀봉 자체의 아름다움과 옥녀봉에서 조망하는 풍광의 빼어남이 제대로 느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 저기 옥녀봉에 얽힌 전설들은 주로 여자의 옥문에 관련된 것이어서 성과 밀접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만, 이 봉우리처럼 애비가 딸을 범하는 근친상간을 주제로 한 전설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요즈음도 이 섬에서 결혼식 때 대례를 지내지 않는 것은 혼례를 치러보지 못한 딸 옥녀를 위한 것이라니 아직도 참담한  전설이 살아 있는 이 섬이 이상향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16시20분 대항 선착장에서 삼천포행 배에 올라 사량도 탐방을 마쳤습니다.

청주에서 오셨다는 저보다 훨씬 연배이신 두 분들을 뵈어 이런 저런 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새 배는 삼천포항에 다다랐습니다.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했는데도 고속도로가 뻥 뚫려 밤11시 훨씬 전에 잠실로 되돌아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들을 정리하며 어쭙잖은 제 글보다 이 사진들이 사량도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훨씬 잘 담고 있다 했습니다. 사량도에 관한 이런 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옥녀봉에 얽힌 근친상간의 전설을 접해 이 섬의 명과 암을 함께 보고나자 사량도도 결코 이상향이 아니고 더러는 뱀같이 사특한 인간들도 같이 사는 그저 그런 섬임을 깨달았습니다. 시인 김동환이 그리는 산 너머 남촌을 찾기 위해 몇 번 더 남해의 섬 산들을 찾아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때마다 흥얼댈 이시의 전문을 아래에 옮겨 놓으며 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량도의 지리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南)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에 호랑나비때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제 나는 좋데나.


 

              3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