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산

 

                                 *산행일자:2007. 6. 20일

                                 *소재지   :강원 춘천/화천

                                 *산높이   :779m

                                 *산행코스:청평사선착장-청평사-1봉 나한봉-오봉산(5봉 비로봉)

                                               - 홈통바위-부용계곡-청평사선착장

                                 *산행시간:11시11분-17시29분(6시간18분)

                                 *동행      :나홀로

 

 

   한 나한님과 세 보살님 그리고 부처님 한분이 각각 한 봉우리씩 맡아서 자리 잡고 있는 오봉산도, 이 분들이 산 아래 속세로 내려오실 때 더 많은 중생들과 만나실 수 있도록 터 잡은 청평사도 원래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렸던 것은 아닙니다. 경운산 또는 청평산으로 불린 이 산이 오봉산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소양강댐이 만들어진 후의 최근의 일이고, 천여 년 전에 창건된 청평사도 원래의 이름은 백암선원이었으며  그 후 보현암과 문수원을 거쳐 오늘의 이름으로 불린 것은 1557년 보우스님이 이 절을 중건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이렇듯 산과 절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이름이 바뀌어왔듯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살다가 죽어가듯이 모든 무생물들도 이 세상에 나타났다가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자연의 섭리가 이러하기에 높은 암봉에 뿌리를 박고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머리 위의 다섯 봉우리와 저 아래 절을 어울러 온 암릉 길의 노송 한그루가 더욱 돋보였습니다.


 

  약 6천년 전부터 이 땅에서 자라오면서 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소나무들이 역사상 유래 없는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제껏 잘 지켜온 극상림의 자리를 지구의 온난화로 참나무에 물려줄 수밖에 없음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저희들이 제선충의 공격에 맥없이 죽어가는 소나무들을 이 땅에서 살려내지 못한다면 그 옛날 춘궁기에 구황식물의 역할을 단단히 해 우리조상들을 살려낸 소나무의 은공을 저버리는 것으로 이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조상들에도 크게 죄를 짓는 일입니다. 처한 상황이 이리도 다급한데 어제 오봉산의 암릉 길에서 만난 노송 한 그루는 마냥 느긋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박고 한 자리를 지켜온 이 소나무가 이 산에서 오랫동안 교유해온 오봉의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제선충의 공격쯤은 가볍게 막아줄 것으로 믿어서일 것입니다. 울퉁불퉁한 다리통과 팔뚝이 우람한데다 작은 키에 농축되어 있을 오랜 나이를 간단히 뛰어넘은 듯한 홍조 띈 발그스름한 얼굴이 앳되어 보였습니다. 이 고송의 참 아름다움은 모진 풍상을 온몸으로 이겨내느라 구부러지고 뒤틀린 줄기에서 여기 저기 뻗어 나온 가지들이 꽃피운 작디작은 송화 꽃에 있습니다. 뿌리와 줄기 및 가지는 해마다 나이가 들어 늙어가지만 송화 꽃만은 나이를 먹지 않는 대신에 해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바위에서 자리를 뜰 줄 모르는 이 소나무에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연차보고서로 만들어 들려주기에 그 마음씀씀이가 이 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는 생각입니다. 깎아지른 암봉 위에서 힘들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소나무가 저희들에게 강력하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리 살기가 힘들더라도 삶만큼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오전 11시11분 청평사선착장을 출발했습니다.

3분이 늦어 7시5분발 춘천 행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7시55분에 청량리 역을 떴습니다. 차창 밖 들판에는 얼마 전에 옮겨 심은 벼 포기들이 어느새 연두색에서 진초록으로 바뀌어 활기가 가득했습니다. 2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남춘천 역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10시10분에 소양호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반시간 남짓 걸려 다다른 소양호댐에서 몇 커트 사진을 찍은 후 11시에 출발하는 청평사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고작 10분을 타고 2,500원을 내기가 아깝다 했는데 청평사로 향하는 중 두 곳에서 입장료를 받아 이 코스로는 오봉산을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심통이 났습니다. 배에서 내려 15분 동안 땡볕 길을 걸어 청평사관광지 매표소에 다다르자 길섶의 나무들이 그늘을 만든 시원한 길이 시작됐습니다.


 

  11시50분 청평사에 다다랐습니다.

매표소를 지나서 오른 쪽으로 부용계곡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다다라 잠시 머뭇대다가 왼쪽의 청평사로 향했습니다. 청량리역 출발이 50분 늦어졌는데도 원래 계획대로 오봉산과 부용산을 연이어 산행하는 것이 가능할는지 시간을 계산하다가 청평사를 먼저 들러보고 1봉으로 바로 올라 5봉으로 가서 부용산을 오를까말까를 최종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일단은 청평사로 향했습니다. 식당가를 지나자 비로소 선동계곡 왼쪽으로 난 넓은 청평사 가는 길이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거북바위와 구성폭포 모두 청평사 가는 길 가에 있어 잠시 멈추어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계곡의 공주상에 얽힌 당나라의 평양공주와 상사뱀 전설이 이 절을 신비롭게 했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정원 안에 자리한 연못으로 원형이 잘 보존 된 청평사영지는 이 절의 나이를 짐작케 했습니다. 고려 광종24년인 서기973년에 백암선원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이 절에서 고색창연함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사찰들이 1984년에 다시 세워졌기 때문인데 창건 후 몇 번이나 사찰만 중건된 것이 아니고 이름도 백암선원-보현암-문수원-청평사로 여러 번 바뀐 것으로 보아 이 절의 역사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왼쪽으로 나한전과 오른 쪽으로 관음전이 자리하고 있는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회전문은 다른 절에서 보지 못한 단층 맞배지붕의 3량 집 구조로 되어 있다는데 공주를 따라 당나라에서 이 곳까지 온 상사뱀이 이 문을 돌아 나갔다하여 회전문으로 불린다 합니다. 똑바로 선 커다란 암봉이 뒤에서 아담한 이절을 지켜주고 있어 이 절을 떠나는 저의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습니다.


 

  13시31분 제1봉인 나한봉에 올랐습니다.

청평사에서 1봉가는 길이 지도상에는 나와 있지 않아 먼저 오른 한분의 산행기를 참조해 왼쪽 계곡 옆으로 난 비교적 넓은 길을 따라 일주문까지 갔습니다. 일주문에 휘갈겨 써넣은 한자 세자를 전혀 읽을 수 없었는데 다른 분들 산행기에서 이문의 이름이 해탈문임을 알았습니다. 이 문을 통과해 산속으로 깊숙히 들어가면 해탈하는 것인지 저 난해한 한자를 읽을 수 있어야 해탈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뱃길이 닿기 전의 옛날에는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아서 보통사람들이 이 문을 통해 해탈에 이르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제까지 이 산에서 해탈하신 분은 다섯 봉우리를 차고 앉아 계시는 나한님과 보살님 그리고 부처님 등 다섯 분밖에 안 계실 것 같았습니다. 12시30분에 일주문을 막 지나 두 계곡이 만나는 합수점에 다다라 여기에서 큰 길을 버리고 왼쪽 계곡 옆으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계곡 따라 12분을 올라가서 가파른 바위를 만났습니다. 마침 바위상단의 나무에 매어놓은 전선줄이 늘어져 있어 이 줄을 잡고 경사진 뺀뺀한 바위를 올라서자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이 양쪽으로 갈렸습니다. 오른 쪽 계곡을 조금 따라가다가 왼쪽 산등성을 치고 올라가 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지도상에는 상당히 경사진 곳으로 나와 있는데 경사도 심하지 않고 나뭇잎사이로 하늘이 가깝게 보여 길은 전혀 나있지 않았지만 그리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나침판으로 방향을 점검하며 나가느라 진행이 더뎠습니다만 길을 가로 막는 풀숲이나 잔 나무들이 없어 정맥의 풀 숲길보다 한결 수월했습니다. 저 혼자서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오르는 동안은 긴장을 풀지 못했는데 25분 후 아래에서 이어지는 큰길을 만나자 반가웠습니다. 1봉과 5봉을 잇는 주능선에 올라서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해 잠시 쉬어가고 싶다는 유혹을 잠재우고 바로 능선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정식 길을 만났다고 좋아했는데 여기서부터 깔딱고개가 시작됐습니다. 앞을 가로 막고 딱 버티고 서있는 커다란 암봉도 가까이가자  제게 길을 내주어 고마웠습니다. 보기와는 다르게 길도 잘 나있고 전혀 위험하지 않았지만 된비알 길을 오르느라 숨이 좀 가빴습니다. 20분 남짓 걸어 주능선에 올라서자 길은 엄청 넓어졌습니다. 1봉이 어디인지 제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 진행방향을 잡을 수 없었고 그래서 잠시 당황했습니다. 이리도 넓은 길이 제가 오른 주능선의 지점에서 양쪽으로 나 있는 것으로 보아 1봉과 2봉 중간의 한 지점에 서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4-5분을 내달리자 예상대로 나한봉이라 쓰인 1봉의 표지석이 나타나 뛸 듯이 기뻤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후배령의 휴게소 건물이 보였고 후배령 건너편으로 4년 전에 오른 용화산이 멀리 보였습니다. 1봉은 햇빛을 가릴 나무가 전혀 없는 암봉이어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바로 2봉 쪽으로 옮겼습니다. 조금 후 그늘진 나무 아래 자리 잡고 점심을 들면서 산행시작 2시간 20분 만에 처음으로 푹 쉬었습니다.


 

  14시46분 해발 779m의 오봉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1봉에서 5봉까지는 약 1시간이 걸렸습니다. 20분간의 점심시간을 끝내고 13시51분에 5봉을 향해 자리를 떴습니다. 관음, 문수 그리고 보현보살님이 정좌하고 계시는 2-3-4봉에는 표지석을  세워놓지 않아 정확한 위치확인이 힘들었습니다. 관음2봉은 삼각점이 서 있는 곳이고 문수3봉은 청솔바위 상단이 확실한 것 같은데 보현4봉은 그냥 지나친 게 분명했습니다. 1봉에서 2봉으로 가는 길은 넓은 토사 길이어서 종종 내림 길이 미끄러웠습니다. 1봉 출발 31분 만에 삼각점이 서있는 2봉에 다다랐는데 바로 전에 올라섰던 암봉이 전망처로는 훨씬 더 좋았습니다.  2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쇠줄을 잡고 진혼비가 서 있는 암봉에 올라서자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습니다. 다시 내려섰다가 방금 지나온 진혼비 봉우리보다 더 높고 경사도 더 가파른 청솔바위(?)를 올랐는데 이 암봉이 3봉으로 생각됐습니다. 최고의 전망지인 3봉에 올라 사방을 한바퀴 휘 둘러보았더니 소양호와 용화산이 잘 보였고 왼쪽으로 파라호(?)가 흐릿하게 조망됐습니다. 3봉 출발 5-6분 후에 평범한 봉우리하나를 오른쪽으로 에돌아 5봉에 도착했는데 이 봉우리가 4봉인 것 같았습니다. 지덕의 빛으로 온 누리를 두루 비치는 부처님의 진신이신 비로자나불은 오봉산 최고의 봉우리인 마지막 5봉에 정좌하고 계셨습니다. 정상석과 돌탑이 있는 5봉은 좁은 공터였지만 전망은 3봉보다 훨씬 못했습니다. 5봉에 올라 숨을 고르며 다시 시간을 계산해본 결과 부지런히 걸으면 부용산을 오를 수 있겠다 싶어 서둘러 5봉을 출발했습니다.


 

  15시50분 1.2Km 떨어진 청평사로 가는 길이 오른 쪽 아래로 나 있는 능선삼거리를 지났습니다.

5봉 출발 후  첫 번째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야 부용산으로 갈 수 있는 것을 그대로 직진해 한참을 내려선 후에야 길을 잘 못 들었음을 알았습니다. 다시 삼거리로 되올라가 부용산으로 간다면 저녁 6시에 출발하는 마지막 배를 탈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부용산행을 포기했습니다. 이 기회에 천천히 내려가며 오봉산의 속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겠노라고 마음을 바꿔 먹자 오봉산도 기뻐하는 듯 했습니다. 마적산과 부용산을 잇는 주능선의 중간쯤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칼날능선을 타고 매표소 방향으로 하산하는 시간이 모처럼 느긋했고, 쇠줄을 잡고 암릉길을 내려가는 재미도 오붓했습니다. 비좁은 홈통바위를 통과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지난달에 다녀 온 홍천 팔봉산의 해산굴보다는 한결 쉬웠습니다. 청평사의 해탈문으로 내려서는 길이 오른 쪽 아래로 난 안부삼거리에서 부용산을 마주보고 참외를 까먹으며 10분여 편히 쉬었습니다. 때마침 안부를 넘나드는 골바람이 불어와 암릉 길을 지날 때보다 훨씬 선선했습니다. 안부에서 다시 올라 688봉에 올라서자 바위 속에 뿌리를 박은 낮은 키의 적송 한 그루가 몸을 비틀고 서 있었습니다. 몇 줄기는 이미 죽어 있었고 또 다른 줄기에서 뻗어 나온 많은 가지들은 송화 꽃을 피우고 있어 생과 사가 이리도 가깝게 접해 있는가를 새삼 느꼈습니다. 오른 쪽 아래의 선동계곡이 깊어보였고 이를 둘러싼 주능선이 멀어 보여 오봉산의 산세가 거해 보였습니다. 능선 삼거리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칼날능선을 40분 가깝게 더 걸었습니다.


 

  17시29분 선착장에 도착해 간신히 배를 잡아탔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직진해 칼날능선을 타면서 느낀 것은 능선의 양쪽 사면이 모두 급경사의 낭떠러지이고 좌우 산줄기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마치 섬 안에 고립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암릉 길 여러 곳에서 쇠줄을 잡고 내려섰습니다. 암릉길이 끝나고 모처럼 편안한 흙길을 걸어 세 번째 청평사행 갈림길을 지나자 뻐꾸기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언제 들어도 구슬픈 뻐꾸기 소리를 듣고 나자 생각이 자꾸 옛 날로 뒷걸음쳐 도중에 다른 작은 산새들이 계속해 재잘대지 않았다면 다 밑에까지 쓸데없이 추억에 젖어 내려왔을 것입니다.  나무계단을 지나 내려선 다리 아래 부용계곡에서 15분여 탁족을 즐긴 후 큰 길로 올라섰습니다. 길 가 가게에서 급하게 맥주 한 캔을 사 마신 후 선착장까지 12분간 잰 걸음으로 내달렸습니다.  17시30분 발 배가 떠나기 직전 승선해 오봉산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갈 때는 제대로 보이지 않은 오봉산의 다섯 연봉이 올 때는 제대로 보였습니다.

아무리 산행기를 열심히 읽어도 오르기 전에는 그 봉우리가 그 봉우리 같은데 한 번 오른 산은 인근의 다른 산에서 보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산행에서 복습의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지도와 사진, 그리고 메모를 바탕으로 산행기를 쓰는 것만큼 더 확실한 산행 복습은 없습니다. 산행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하는 산행기 작성이 중요함을 잘 알고 있기에 다른 분들의 산행기를 정성들여 읽고 있으며 제 산행기도 꼼꼼히 읽혀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쓰고자 합니다. 아무려면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박고 생명을 이어가는 늙은 소나무의 처절한 노력에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만 이 소나무의 절박한 삶도 산행기를 통해 전할 수 있기에 더욱 그리할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