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산


                  *산행일자:2007. 6. 14일

              *소재지  :경기양평/가평

              *산높이  :유명산861m/어비산827m/대부산744m

              *산행코스:어비산장-어비산-유명산-대부산-동막계곡입구(화기물임시보관소)

              *소요시간:10시8분-16시10분(6시간2분)

              *동행    :나홀로

 

 

  2003년은 용문산의 웅장한 산세에 매료되어 이 산의 말산들을 하나하나 찾아 나섰던 한해였습니다. 이 해에만 세 번을 오른 유명산을 어제 다시 다녀온 것은 작년 12월에 개설한  블로그에  산행기를 올리고 싶어서였습니다. 그저 산이 좋아 정상을 오르는 것 외에는 별로 사진도 찍지 못했고 산행기를 쓴 다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때라 몇 가지 중요한 기록만 머리 속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가끔씩 불러내곤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오른 산이 100산을 넘지 않아 별반 문제되지 않았는데 기억용량이 점점 줄어들고 다녀온 산들은 계속 늘어나 더 이상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200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진도 찍고 산행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 후배의 도움으로 개설한 블로그에 그동안 쌓아온 자료들을 모두 옮겨놓고 나자 전에 오른 많은 산들은 자료가 없어 블로그가 엉성하고 짜임새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빠진 산들을 한산 한 산 찾아 오르면서 사진도 찍고 산행기를 쓰는 것을 올 한해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 과제를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산은 옛 산 그대로인데도 언제 올랐었느냐는 듯이 마치 처음 오르는 산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는 옛날에는 정상 등정을 목표로 삼은 결과중심의 산행을 해왔다면, 산행기를 쓰고 나서는 산을 오르는 과정 하나하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산행 그 자체에 무게를 두기 때문일 것입니다.


 

  몇 번이고 유명산을 오르면서  고마워하는 것은 용문산의 넓은 도량입니다.

9백m대의 폭산, 8백m대의 유명산, 어비산, 봉미산, 중미산과 중원산, 7백m대의 소구니산과 대부산, 6백m대의 통방산과 청계산, 그리고 5백m대의 옥산 등이 여기 용문산과 가까이 있지 않고 다른 고산에 붙어 있다면 **산이라는 어엿한 산 이름을 절대로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석봉, 연하봉, 영신봉, 덕평봉, 토끼봉, 반야봉과 노고단 등 모두 1,500m가 넘는 고봉임에도 지리산의 협량으로 산 이름을 얻지 못했고, 지난 주 호남정맥 종주 차 오른 도솔봉, 따리봉, 형제봉, 억불봉 등 높이도 만만찮고 산세가 수려한 봉우리들이 광양의 백운산에 붙어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해 **봉으로 불릴 것입니다. 용문산이 아니었다면 해발고도 862m의 봉우리로 유명산의 산 이름을 얻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기에 이 산이 산림청에서 선정한 명산 100산에 들어가는 일 또한  절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고산에도 그 산 이름으로 자리한 절이 없는데  유독 용문산만은 그 남동쪽 기슭에 용문사라는 고찰이 자리 잡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나라 스님들이 용문산의 넉넉한 마음 씀을 얼마나 높이 사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침10시8분 가일리의 어비산장 앞 들머리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상봉터미널에서 아침8시에 출발하는 유명산 행 첫 버스에 올랐는데 손님이 저 혼자였습니다. 청평에 가서야 설악 가는 손님 몇 분을 태웠을 정도이니 당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벌써 노선이 폐지되었을 것입니다. 상봉터미널 출발 1시간 반 만에  유명산 종점 바로 못 미쳐 가일리삼거리 정류장에서 하차해 왼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30분 남짓 걸었습니다. 어비1,2교를 모두 지나서 어비산장 앞에 다다라 잠시 숨을 돌린 후 오른 쪽의 어비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장마철에는 물이 흘러내려 갔을 수로의 돌길을 따라 얼마고 오르자 돌길이 임도수준의 넓은 흙길로 바뀌면서 수종도 잣나무에서 참나무 등 잎이 무성한 활엽수로 바뀌었습니다. 들머리를 출발한지 40분이 조금 지나 오른 쪽 계곡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나는 능선삼거리에 다다르자 주위에는 다시 잣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7-8분을 더 걸어 넓은 흙길이 끝나는 725봉에 오르자 때맞추어 불어오는 산바람과 정면으로 맞서기가 힘들어서인지 밑에서부터 동행해 온 날 파리들이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11시 27분 해발827m의 어비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725봉에서 장마가 지면 물고기들이 뛰어 넘는다는 어비산의 정상에 이르기까지 봉우리 3개를 넘느라 길은 좁아졌지만 고도차가 별로 나지 않고 암봉은 우회해 힘든 줄 몰랐습니다. 725봉에서 소나무 몇 그루의 줄기사이로 보였던 유명산의 정상봉이 정상에 오르는 동안 두서너 번 더 보였습니다. 커다란 노송 몇 그루가 몸을 뒤틀며 지켜선 능선 길 아래 우측 사면이 계곡으로 떨어지는 급경사면이었고 계곡 건너 유명산의 곧추선 절벽이 계곡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정상에 올랐어도 나무 잎이 무성해 하늘을 빼고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4년 전 입구지계곡으로 내려섰다가 유명산 가는 길을 찾지 못해 소나기를 맞으며 산등성을 타고 오르느라 엄청 고생해 이번에는 몇 번이고 개념도를 보면서 유명산 가는 길을 가늠해보았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정상에서 갈라지는 두 길 중에서 서쪽으로 난 유명산 자연휴양림행  길을 놔두고 용문산으로 향하는 남쪽 길로 잘 못 들어서 한참 후 되돌아오느라 20분을 까먹었습니다. 11시56분에 정상에서 서쪽 휴양림 길로 들어서 계곡으로 내려섰습니다.


 

  12시35분 입구지계곡으로 내려섰다가 합수점에서 바로 유명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어비산 정상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 경사가 급했습니다. 결국 4년 전에 내려온 길로 다시 내려와 계곡을 건넜는데 그 때는 그 근처에서 유명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하는 수 없이 산등성으로 바로 치고 오르느라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는 계곡을 건넌 후  2-3분 밑으로 내려가 합수점을 만나 왼쪽 위로 난 정상 가는 길을 쉽게 찾았습니다. 합수점에서 20분을 올라 정상 전방 0.8Km 지점 조금 못 미친 산 중턱에서 점심을 들면서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계곡이 깊고 아름답다고 널리 알려져서인지 입구지계곡으로 하산하는 산객들이 꽤 많았습니다.


 

  13시50분 해발 861m의 유명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산길 오른 쪽으로 밧줄을 쳐놓은 정상 전방0.8Km 지점에 이르자 된비알의 오름 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한참을 오른 후 시야가 트이는 구릉에 올라서자 동쪽의 어비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황토 길의 마지막 언덕을 올라 돌탑이 세워진 유명산 정상에 다다르자 70대의 노인들 몇 분들이 야호 하고 외쳤습니다만 그 분들 소리가 크지 않아 유명산을 울리지는 못했습니다. 수량이 풍부하고 소가 깊은 계곡으로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시원하게 펼쳐진 능선을 바라보며 달랬습니다. 산림청에서 세운 정상석이 이 산의 이름이 마유산이 아니고 유명산임을 일러주었습니다. 옛날에는 정상 주변의 넓은 초원에서 말들이 풀을 뜯어 먹으며 놀았다하여 마유산으로 불렀다는데 1973년 자오선종주탐험대가 이 산을 지나면서 홍일점대원인 진유명씨의 이름을 따 유명산으로 고쳐 부른 데서 이 산이 두개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국립지리원에서 펴낸 1/5만 지형도에도 유명산으로 표기된 만큼 김형수님이 펴낸 “한국400 산행기”의 마유산은 유명산으로 수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정상에서 둘러본 유명산의 산세는 자오선종주탐험대가 산 이름을 고쳐 부를 만큼 수려하고 장대했습니다. 특히 서쪽 맞은편으로 남쪽의 백운봉에서 시작되는 산줄기가 용문산을 거쳐 북쪽의 왕터산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이어져 그 장대함이 볼만했습니다. 동쪽에 자리한 소구니산은 한강기맥 종주 시에 오르기로 하고 이번에는 남쪽의 대부산을 오르고자 14시 정각에 정상을 출발했습니다.


 

  14시41분 해발744m의 대부산을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배너미고개로 이어지는 차가 다닐만한 임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정상 바로 아래 행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쓰이는 둔덕을 왼 쪽으로 돌아서자 넓은 초원이 전개됐습니다. 1990년도 산행기를 보면 고랭지채소밭이 분명한데 지금은 풀밭으로 변해 초록의 억새들이 바람에 출렁이는 모습이 장관이어서 잠시 멈춰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저토록 투박한 줄기에서 어찌 저리도 화사한 꽃이 필 수 있을까 싶은 자주색의 엉겅퀴 꽃들이 눈에 자주 띄었으며 순백색의 찔레꽃이 내보여주는 순박함과 바로 대비되었습니다. 큰 길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과 헤어져 왼쪽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봉우리 하나를 넘어 대부산을 올랐으나 울창한 나무숲이 앞을 가려 좁은 공터의 정상에 세워진 표지석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도를 꺼내 북동쪽으로 난 풀 숲길이 동막계곡으로 내려서는 하산 길임을 확인하고 배낭 속의 장갑을 꺼내 낀 후 대부산 정상을 떴습니다.


 

  15시23분 이제껏 걸어온 능선에서 오른 쪽 계곡으로 내려섰습니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진 가파른 능선 길에는 멧돼지(?)의 분뇨와 흙을 판 흔적이 뚜렷했지만 사람들이 다닌 자취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생각대로 길은 희미했고 길 찾기에 신경이 쓰여 하산 길이 더뎠습니다. 지도상의 하산 길 방향과 나침판이 가르키는 방향이 일치하여 조금 더 내려가면 큰 길을 만나겠다는 확신이 서 무섭거나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낙엽이 소북이 쌓인 길에서 남은 김밥 한 줄을 마저 먹으며 7-8분을 쉬었는데 이 쉼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길도 조금 넓어져 안심이 되었고 따가운 여름햇살은 나뭇잎이 가려주어 시원한 그늘에서낙엽위에 주저앉아 잠시나마 망중한을 즐긴 동안은 시간이 멈춰선 듯 했습니다. 다시 일어나 얼마고 내려서자 긴급구조안내판이 나타나 절대 안심했습니다. 오른 쪽 아래 계곡 상류에서 왼쪽으로 계곡을 따라 10여분을 내려가 계곡을 건넜습니다.


 

  16시10분 37번 국도가 지나는 동막계곡입구에서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계곡 건너 바위에 짐을 내려놓고 모처럼 느긋하게 20분 가까이 발을 닦았습니다. 깊은 산속의 계곡물은 여전히 차가웠습니다. 고개에서 시작해 고개에서 끝내는 능선종주 시에는 어디서도 물을 만날 수 없어 참으로 두 발에 미안한 노릇인데 이번처럼 하산 길에 계곡물을 만나 하루 종일 고생한 두 발을 담글 수 있다면 그래도 그날은 두발에 미안함을 확실히 더는 날입니다. 탁족을 끝낸 후 임도로 올라서고 나서는 하산 길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동막계곡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얼마고 더 내려가 산허리를 감아 도는 37번 국도로 내려섰습니다.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자 동막계곡 입구의 화기물임시보관소가 나타났고 길 건너 청산칼국수팬션 음식점에 들러 하산주로 맥주 한 병을 시켜들었습니다. 산행을 끝내고 안주 없이 혼자 마시는 하산주로는 맥주 1캔이 딱 좋은데 캔 맥주가 없다하여 병맥주를 시켰더니 시원한 맛도 떨어지고 양도 너무 많은 듯 했습니다. 맥주를 다 마시고나서 주인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그대로 앉아 있지 못하고 버스가 오면 손을 흔들어 세우고자 차도로 나가섰으나 햇살이 뜨거워 한자리에 오래 서있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설악에서 16시50분에 출발하는 양평행 버스가 이곳을 지날 때까지 반시간동안을 마냥 서있을 수 없어 저 아래 버스정류장까지 부지런히 걸어 내려갔습니다. 한화콘도 길과 만나는 삼거리를 조금 지나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기까지 땡볕을 쪼여가며 20분여 포장도로를 걸었는데 숲 속의 산길을 몇 시간 걷는 것보다 훨씬 더 짜증이 났습니다. 미국의 시인 조이스 킬머가 읊은 대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는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동안 몇 번 정상을 오른 산이지만 4년 전에 심하게 알바를 한 어비산에서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유명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확실히 알았고, 대부산 정상에서 37번국도와 만나는 동막계곡까지 하산 길로 처음 내려와 저 나름대로 어비산-유명산-대부산을 연이은  산행코스를 익혀두어 가슴 뿌듯했습니다. 이 산들에 산 이름을 내려준 용문산에 대표봉인 유명산을 대신해 감사인사 전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