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산행기

ꏚ산행일시 : 2006.10.21~22(1박2일)

ꏚ산행코스 : 용대리→백담사→영시암→오세암→봉정암→소청대피소(1박)→중청봉→대청봉

             →희운각대피소→양폭산장→비선대→설악산소공원(외설악매표소)

ꏚ산행동지 : 6명(조이리,이지요,전프로,유성장,신동보,김명수)

ꏚ산행일지

  산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이들이 요즘 부쩍 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모이면 산에 대한 이야기가 단골메뉴가 되었고 너도나도 각자 다녀본 산에 대한 얘기로 술안주를 한다. 내 친구 이지요는 산을 그리 잘 타는 친구는 아니지만 오래전 계룡산을 함께 다녀온 후 먼 산행을 같이 해본일이 없다. 그는 중학교동창으로 흉ㆍ허물없이 지내는 인생의 동반자로 몇 안돼는 친한 친구중 한사람이다. 내가 설악산 등반계획을 얘기하자 설레임반 두려움반으로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2006.10.21일 오전 5시 청주 예술의전당광장에서 우리는 신선한 새벽공기와 함께 만났다. 시간을 어기는 이가 한명도 없어 우리는 곧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요의 소렌토승합차에 간신히 6명이 몸을 길고 중부고속도로를 거처 중앙고속도로를 한걸음에 달려 강원도 홍천부근의 홍천휴게소(만남의광장)에 8시쯤 도착하여 황태국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설악산 전초기지(?)라 할 수 있는 용대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 차안에서 용대리에 영업점을 둔 대리운전영업소에 전화를 하여 차량이동에 대한 문의를 하였다 . 당초 우리는 백담사에서 출발하여 설악산을 종주, 다음날 천불동을 거처 설악동으로 하산할 계획을 한 것이다. 대리운전비용은 1일 주차비 포함하여 5만원이라고 하였다. 08:45분 용대리에 도착하여 차를 대리에게 설악동으로 이동해 줄 것을 부탁하고 용대리와 백담사를 오가는 백담사행 셔틀버스(09:00)에 올랐다. 버스는 낭떠러지 계곡을 휘돌며 곡예운전이다. 운전기사의 운전솜씨가 대단하다. “이곳이 바로 설악산이구나” 하고 실감이 날 정도로 입구에서부터 경치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5분후 도착한 버스는 백담사 주차장에서 많은 등산객들을 토해냈다.


 

                                                                        백담사전경

백담사는 익히 알고 있듯이 만해 한용운선생이 수도를 한 곳으로 만해의 흉상이 관광객을 반긴다. 지금 만해와 같은 지식인이 있다면 이 어지러운 세상에 어떠한 심정일까 하고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09:30분부터 우리는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하였다. 역시 나와 등반수준이 잘 맞는 유성장이 한조가 되었고 전프로와 이지요가, 그리고 김명수와 신동보가 함께 했다. 내설악의 단풍은 이미 절정을 조금 넘기긴 했지만 그래도 단풍의 색상은 순도 100이었다. 도회지에서는 도저히 감상할 수 없는 단풍들이 형형색색으로 폼을 재고 있었으며, 우리 일행은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예쁜단풍잎이 등산복을 물들이고 등산복은 단풍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자연을 이루었다.


 

수렴동대피소 못미처에 영시암에 도착했다. 영시암에서는 잘 삶아놓은 감자가 등산객들은 간식거리로 놓여져 있다. 방금 삶아 내놓은 감자는 따뜻했다. 모두 주먹만한 감자를 우적우적 먹으며 서로에게 덕담을 했다. 어떤 이는 영시암 창건에 쓸 기와에 이름을 적어 소원을 빌기도 하였다. 감자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약수가 앞으로의 등반에 힘을 보탰다. 수렴동대피소에 이르기 전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은 당초 계획했던 수렴동대피소를 거처 봉정암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오세암을 거처 봉점암에 이르는 길이다. 모두 3시간이상의 코스였지만 오세암을 거처 가는 길이 1시간정도 더 소요가 된다고 이정표에 안내되어 있다. 우리는 긴급회의를 하여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당초 계획대로 한다면 너무 일찍 소청대피소에 도착할 것 같고 12시정도에 오세암에 도착을 한다면 점심시간에도 적당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지요와 전프로가 설악산이 초행이라 걱정이 많이 되었다. 둘은 배낭도 작게 준비를 시켰고 스틱두개로 몸을 의지하여 등산하는 몸이라 걱정을 했는데 씩씩하게 변경산행을 동의해 주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을 했다. 김명수가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다고 소리를 친다. 앞서가던 나와 유성장은 길을 멈추고 몇 걸음 뒤로 와서 후발 동료들이 잘 보이는 곳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조금 뒤 김명수가 왔다. 나는 그의 머리를 감싸 마사지를 했다. 같은 일행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왔다는 등산객이 이 광경을 보고 있다가 청심환을 하나 건네준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산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고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내가 김명수의 배낭을 내 배낭위에 얹고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올라 나도 지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머리가 맑아지기를 기다리고 김명수는 미안한 마음에 말없이 뒤를 따를 뿐이다. 나도 가끔 산에 오를 때 느끼는 현상인데 뒷머리가 땡기고 아플 때가 있었는데 산에 적응하기 위해 그런 것 같다고 산행동지들이 가끔 말해 준적이 있었다. 한참을 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쉬고 있는데 우리에게 청심환을 주었던 일행이 올라온다. 무릎이 아프다며 앉는다. 나는 배낭에서 멘소레담을 꺼내 그의 무릎에 뿌려주었다. 그는 시원하다며 고맙다고 한다. 이제야 빚을 좀 갚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래서 산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출발을 하려는데 김명수가 이제는 되었다고 하면서 자기 배낭을 챙겨 맨다.


 

                                                              오세암전경

오세암에 이르는 길은 깊은 계곡을 따라 오르기 때문에 경치는 그다지 좋다고 할 수가 없다 이미 단풍도 많이 져서 묵묵히 앞만 보고 가는데 오세암이 눈앞에 보인다. 등산을 시작한지 2시간 40분만이다. 곳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무리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도 이리저리 점심식사 할 곳을 찾았다. 마침 등산객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긴 탁자와 의자가 마련된 식당이 있었다. 우리는 가지고온 배낭을 풀어 점심을 준비하였다. 근데 주변을 둘러보던 일행이 말을 한다. 이곳에서 점심을 제공하다는 것이다. 식당입구에는 몇가지의 반찬과 미역국이 있고 밥이 한 솥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 미역국에 밥을 한술 말아서 가지고 간다. 우리도 미역국을 떠서 가지고온 밥을 말아 먹었다. 밥맛이 꿀맛이다. 밥을 다 먹고서는 이곳에서 파는 커피를 한잔씩 하였다. 한잔에 천원씩한다. 커피 파는 옆 들마루에 바구니가 있는데 과자 캔디 초코렛들이 가득하다. 오세암에는 동자승이 있다고 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놓고 간다고 한다. 참 맑고 깨끗한 사람들이다. 또 이것을 부족한 사람이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등산객들을 배려하는 영시암 스님들의 정성에 목이 멘다.


 

                                                         봉정암 불사리탑

점심을 마치고 다시 산행은 시작되었다. 소청대피소까지는 4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나와 유성장이 선발대로 하여 소청대피소 예약을 위해서 부지런히 가기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등산을 하기로 하였다. 소청대피소에서는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기 때문에 너무 늦어서 낭패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오세암에서 봉정암까지는 여섯구비의 능선을 넘어야 했다. 이곳은 등산객보다는 봉정암을 찾는 여인네들이 많이 오른다. 우리도 오늘 하루는 구도의 마음으로 구도의 길을 가는 것이다. 능선을 넘을 때마다 펼쳐지는 설악의 경치는 참으로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높이 솟은 바위산이며, 바위산에 겨우 매달려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소나무의 안타까움이 우리에게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니 이것이 설악산만이 가지는 능력일 것이다. 봉정암을 향한 마지막 능선을 겨우겨우 올라가면서 처음으로 설악산에 도전하는 이지요와 전프로가 지금쯤 힘에 겨워 후회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김명수는 이제 머리는 개운해 졌는지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산을 좀 탄다는 우리가 이렇게 힘든데 그들은 오죽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능선에 올랐을 때 앞에 펼쳐진 광경에 우린 잠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면 아래로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1,244m)에 위치한  봉정암의 웅장한 고찰이 있다. 오른쪽 옆 조금 아래로는 봉정암 불사리탑이 있어 이곳에서 정성껏 기도를 하고 있는 수많은 신도들과 함께 높게 치솟는 용아장성이 구름이 가렸다 사라지고 다시 구름에 가리기를 여러번을 반복 그 웅장함을 드러내며, 기세등등하게 서있다. 왼쪽 산 중간에는 소청대피소가 손에 잡힐 듯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용아장성

우선 봉정암으로 내려갔다. 오세암을 출발한지 3시간만에 도착한 봉정암에는 많은 신도들과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다. 이곳에서 숙박을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방마다 사람들이 가득차 있고 사람들은 계속 밀려들어온다. 구름은 산허리를 휘돌아 이제 산 전체를 뒤덮었다. 봉정암 샘터에 흐르는 물을 한바가지 퍼서 들이키니 한번에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물은 꿀을 탄 듯 그 어디에서 마셨던 물보다 그 맛이 좋았다. 소청대피소까지는 다시 1시간을 올라야 했다. 소청대피소 예약을 4시부터 한다는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봉정암에 머무는 것도 잠시 뒤로하고 소청으로 향했다. 소청에 오르는 동안 구름이 바위산을 꼭대기만 남기고 운해를 이루고 있었다. 자연은 이렇게 신비스럽고 변화무쌍한 변신을 거듭하며 아름다움으로 선물 하는데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연을 소유하고자 얼마나 많은 욕심을 부리고 있는가? 과연 설악에 와서도 이러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사람조차 하나의 자연으로 받아들이고 있건만 사람은 왜 자연을 자기의 곁에만 붙들어 놓으려고 하는가?


 

백담사를 출발한지 6시간만에 도착한 1차 목적지 소청대피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밥을 짓는 이, 라면을 끓이는 이, 벌써 술이 거나하게 올라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군상들이 대자연의 품에 안겨 포근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여유 있는 표정이 역력하다. 내가 여기에 합류하였다는 사실이 꿈처럼 아늑하다. 산장지기를 만나 숙소를 정하니 2층에 6명이 함께 잘 수 있는 곳을 배정해 주었다. 5천원의 숙소사용료와 담요대여료 2천원이다. 숙소를 정하고 나니 하루일과가 끝난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 후발주자들이 걱정이 되어 이지요에게 전화를 하였다. 봉정암에 막 도착을 하였단다. 다행이다. 지금쯤 여섯번째 마지막 능선 아래서 헤메고 있는 줄 알았는데 봉정암이라니 1시간정도면 합류가 가능할 것을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소청대피소

돼지고기를 커내 찌게를 끓이기 시작했다. 아내가 정성껏 싸준 묵은 김치를 넣고 찌게를 끓이니 맛이 천하 일미가 되었다. 이제 친구들만 오면 된다.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구름은 바위산을 수없이 애무를 하며 지나간다. 설악산의 위용에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을 때 친구들이 온다. 반가운 마음에 서로를 안아준다. 전프로는 많이 지쳐 보인다. 모두 모여 소주를 꺼내 한잔씩 한다. 소청대피소를 알리는 태극기를 사이로 해가 진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석양을 보다니 내일 대청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저녁식사와 함께 소줏잔이 두어 순배씩 돌고 나서 유성장이 준비한 양주까지 마시니 서로의 마음이 좋았다. 술김에 잠을 청해 보려 하였지만 잠이 올 리가 없다. 유성장이 물을 찾는다. 뒤척이다 밖으로 나왔다. 샘물까지는 150미터다. 이마에 부착한 랜턴을 의지하고 물을 찾는 길에 설악산의 세찬바람과 칠흑 같은 어둠이 공포로 우리를 압도한다. 얼마쯤 내려왔을까 차리리 갈증이 어둠속을 헤메는 것보다 났다는 생각에 우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어둠속에서 시계가 12시를 가리킨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살갖에 닿는 느낌은 내 처음 아내를 만나 손을 잡았을 때처럼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마음은 한없이 상쾌하고 여유로웠다. 머리위에서 별이 쏟아진다. 구름이 강한 바람에 쓸릴 때에만 별이 보였다. 내 정수리로 유성이 떨어진다. 어깨위에서도 유성이 떨어진다. 유성장과 속세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찬바람이지만 이렇게 상쾌하고 맛있는 바람을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온몸으로 느끼는 짜릿함이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밤하늘에 작은 유성이 또 발아래로 떨어진다. 너무도 아름다운 밤이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설악산 깊은 밤의 추억이다. .


 

                                                            이른아침 대청봉

일찍 잠에서 깬 사람들이 두런두런 얘기를 한다. 새벽4시다. 야속한 마음에 한마디 한다. 조용해지자 다시 잠이 든다. 5시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어젯밤 느꼈던 그 상쾌한 바람은 새벽에도 다르지 않았다. 커피를 한잔씩하고는 이마에 불을 밝히고는 대청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소청봉을 지나 중청봉, 대청봉에 이르는 길은 각지에서 무박 산행길을 재촉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간간히 구름이 사라질 때는 동녘에 붉은 하늘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진다. 순간이지만 감탄사가 나오는 것은 이곳이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을 지척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청대피소에는 이제 막 도착한 사람과 떠나려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귀성열차를 기다는 역전대합실을 방불케 한다. 대청봉에 이르는 길에는 눈잦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작은 키는 세찬 바람을 이겨내느라 힘겨움이 엿보이고 굵은 가지는 세월의 성상을 말해주는 듯 하다. 7시에 도착한 대청봉정상에는 사람들로 인하여 대청봉의 정상 표지석을 찾을 수가 없다. 너도나도 표지석을 끌어안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긴 세월이 흐른 후 세월의 흔적을 기억하기 위해 전투하듯 대청봉을 알리는 표지석에 달려들어 사진을 찍었다.


 

차가운 바람을 뒤로하고 하산길에 접어든다. 소청봉에서부터 희운각대피소로 접어들면서 사람으로 인한 체증으로 꼼짝을 할 수가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설악의 아름다운 광경과 위용에 압도되어 지루한줄 모르고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개운하게 된장국으로 9시가 되서야 늦은 아침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지요와 전프로는 설악산에 오기를 잘했다고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아직까지는 싱글벙글한다.


 

                                         희운각대피소로 내려오면서 본 공룡능선

희운각을 출발하여 양폭산장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피로를 푼다. 너덜지대를 내려오느라 발이 꾀나 피로했을 것이다. 비선대까지만 가면 천불동계곡의 대미가 장식될 것이다. 비선대로 내려오는 길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청주를 출발할 때부터 일기예보를 들어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이제야 내리는 것이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유성장과 나 그리고 김명수가 비선대에 선착을 했고 20여분뒤 신동보가 도착을 했다. 이지요와 전프로가 뒤처져서 못 오고 있다는 전갈이다. 내려오는 길이라 잘 오겠거니 했더니 역시 리치와 너덜지대를 내려오기가 힘에 겨운가 보다. 한참을 기다려도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려왔던 길을 따라 올라가도 보이지 않는다. 10여분정도를 올랐을 때 전프로가 먼저 보인다. 뒤에 축 처진 어깨의 이지요는 희운각대피소에서 희희락락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걱정했던 마음에 가슴이 울컥한다. 두 사람의 배낭을 내 어깨에 둘러메고 선착한 동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왔다. 빗줄기는 제법 굵어지기 시작했다. 막걸리와 감자부침, 묵무침으로 기운을 돋우고는 다시 출발이다. 우의를 입고서는 개선장군들처럼 설악동에 도착을 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이지요가 친구들 덕분에 설악산을 종주할 수 있는 좋은 산행을 했다고 기분 좋은 마음에 속초에 가서 생선회 한사라에 소주한잔 산다고 한다. 모두 찬성이다. 기분 좋게 한잔씩하고 술에 취하고 기분에 취하고 설악산에 취해 좋은 추억을 뒤로하고 우리는 청주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