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만에 다시 찾은 지리산 천왕봉

산행일: 2004. 6.5~6.6(무박산행)
동행인: 늘푸른 산악 동호회 회원 44명
산행코스: 중산리- 법계사(로타리산장)-천왕봉-장터목산장-유암폭포-중산리(총 휴식포함 9시간)

작년 홀로 지리산 종주를 하고 늘 한번 더 미련이 남았는데 카폐 산악회의 공지가 있어 겁이 나면서도 신청을 하게되었다.

09:30 시청 모임장소 도착
모임장소인 프레스센터 앞에 도착하니 버스가 한 대 서있고 회원들이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고 있어 늘산동 모임 장소인지 물어보고 신입회원임을 신고한다. 여러 회원님들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신다. 늦게 신청하여 맨 뒷좌석에 몸을 싣고 출발을 기다린다. 회원분들 면면을 보니 전부 베테랑으로 느껴져서 산행속도가 무척 빠를 것이라 생각이 들어 혹시 폭탄이 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자꾸 들었다.

10:15 출발
늦은 회원을 기다리느라 약간 지체 후 차량은 출발하여 반포대교로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깜깜한 밤에 서울을 벗어나면서 지리산이 생각났다. 작년 10월에 혼자 종주한 지리산에 다시 선다니 감격스럽기도 하고 지난 몇 주간 음주로 체력이 될까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있는데 운영진 소개, 당부말씀, 회비 추렴, 회원소개 등이 있은 후에 생일잔치를 한다고 한다. 무심히 듣고 있는데 청산이란 닉이 호명된다.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축하를 해준다. 축가를 듣고 촛불을 불고 들어오면서 오랜만에 포근한 감동이 밀려온다. 새내기 신입회원까지도 잔치에 끼워주는구나 너무나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좌석에 같이 앉은 회원들이 주시는 술을 몇 잔 먹고 잠이 들었는데 실내등이 들어오고 잠에서 깼다.

02:40 중산리 도착
버스 문을 나서자 차가운 공기가 잠을 싹 날려보낸다. 청명한 공기는 도심에서 찌든 폐를 금방 회복시켜주는 것처럼 상쾌하게 한다. 깜깜한 하늘에 구름사이로 아직은 둥근 모습을 잃지 않은 달이 둥실 떠있고 가끔씩 나와 빛을 뿌려준다.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스틱길이를 맞추고 있는데 버스를 매표소까지 타고 가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곧 오늘의 산행대장의 결정으로 워밍업 차원에서 매표소까지 1.2km를 걷어 가기로 결정한다.

02:47 산행시작
아스팔트길을 선두 바로 뒤에서 걸었는데 뒤돌아보니 회원들의 랜턴 불빛으로 반딧불이의 잔치같이 보인다. 땀이 등에 촉촉해질 무렵 주차장이 보이고 매표소에 도착했다.

03:20 중산리 매표소 출발
님들이 속속 도착하고 단체로 적용 받아 일인당 1,400원의 요금을 지불하고 식당 앞에 식수대에서 물 한바가지 먹고 출발한다. 안내판에는 천왕봉 5.4km를 보인다. 해뜨는 시간이 05시 10분이라 도저히 그 시간까지 정상에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느긋하게 올라가자고 계백님이 말씀하신다. 계곡의 물소리가 정답고 랜턴을 보고 달려드는 벌레들이 불빛에 반사되어 화려하게 보인다. 호박돌과 아스팔트를 버무린 포장길은 발바닥에 무리를 준다. 조금 지나가니 등산로이다. 거의 돌로 이루어진 등산로는 정상까지 이어진다. 계속 오름은 이어지고 숨이 턱턱 막히니 항상 힘들 때만 생각하는 레퍼토리가 또 나온다. 왜 이 고생을 사서할까. 아내와 아이들은 지금한참 잠에 빠져있겠지 그 옆 자락에 누워있을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여기보다 덜 힘든 곳으로 가야지하면서 그러나 정상에 서면 다 잊어버릴 생각을.... 등산복 앞자락이 완전히 젖어 땀이 흘러내린다.

03:40 1차 쉼터 도착
주위는 깜깜하고 선두 제자리라는 소리를 듣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여러 회원님들이 방울토마토며 오이 등을 주신다. 다른 회원까지 배려하면서 무거운 짐을 기쁘게 지고 오신 님께 정말 감사 드리며 항상 나 자신만 생각하는 편인데
바람은 시원하게 불고 노출된 팔은 소름이 돋을 즈음 출발 신호가 떨어진다. 후미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오늘 코스는 경사가 심해 여러 그룹이 나뉘어질 수 밖에 없음으로 선두는 출발하고 그룹별로 관리하고 법계사에서 모이는 것으로 하자고 서로 협의하고 출발한다.

04:30 망바위 도착
이제 완연히 환해져서 랜턴을 끄려고 배낭 놓을 곳을 찾다가 나무계단을 오르자 회원 몇 분이 쉬고 있어 다가가니 안내판에 망바위라 되어있다. 회원 몇 분이 바위를 릿지하여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정말 산 아래가 다 보일 만큼 시야가 넓다고 했다. 그래서 망바위인가 했는데 실제 토벌군이 쳐들어오는지를 살피는 바위라 하여 명명되었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해발 1,068m ■천왕봉 3.0km, ■중산리2.4km라고 되어있다. 고도 900m정도를 3km만에 오르려면 대단한 경사도를 요구할텐데 넌더리를 치면서 다시 출발한다.

05:00 법계사 도착
망바위에서 출발하여 몇 차례 경사 길을 오르는데 왼쪽 장딴지에 쥐가 나서 좀 쉬는데 회원 한 분이 주물러 주고 많이 도와준다. 쉬는데 경상도 억양의 고참 산객이 쉬면서 이제 중산리 길은 힘든 곳마다 계단이 놓아져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 말이 꼭 요즘 군대 많이 편해졌다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예전에 중산리 길은 너무 거칠어 한시간 반이 더 소요되는 백무동 길을 많이 택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95년에 올 때 거의 초보수준에 운동화신고 산행한 탓인지 나중에 발톱이 3개나 빠진 어려운 길이었다.
법계사 앞의 넓은 쉼터에 가니 먼저 오른 회원이 박수로 맞이해 준다.
법계사는 천왕봉 자락에 기대고 서있어 천왕봉은 손에 닿을 듯이 가깝게 보이는데도 2km라고 한다. 그 곳에서 대원사 방향으로 봉우리가 줄지어 이어져 있다. 작년 10월에 혼자 저 곳을 6시간에 걸쳐 넘어갔었는데 벌써 8개월의 시간은 지나가고 다시 서있었다.
저 멀리 동쪽 하늘가가 점차 붉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태양이 뜨고 있었는데 수평선에는 구름이 많이 끼어 있어 정상에서도 해돋이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회원들이 속속 도착하고 각각 사진 몇 장을 찍고 출발한다.

06:20 개선문 도착
로타리 산장을 지나면서 물 한잔 먹고 등산 통제문을 넘어 더욱 경사도가 심한 등로를 오른다. 곳곳에 고사목이 눈에 띄고 가문비나무는 키가 아래보다 작다. 서울에서도 4월에 보았던 철쭉꽃이 많이 피고 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순종 철쭉은 외래종과는 달리 꽃이 크고 은은하고 밝은 보라색을 지녀 우아하고 아름다운데 외래종은 색이 진하고 화려하나 우아하지 않아 격에 떨어지는데 요즘은 외래종만 보이고 순종은 별로 보지 못했는데 이곳에는 지천에 깔려있다.
계단을 타고 한 참을 오르니 개선문과 많이 닮은 돌문에 도착했다. 안내판에는 ■천왕봉 0.8km 이다.
쥐가 났던 종아리는 아파 오는데 회원 한 분이 오셔서 보폭을 줄이라고 권한다. 돌계단을 지그재그로 보폭도 줄이고 천천히 오르니 훨씬 좋아진다. 푹 쉬다가 다른 회원들이 와서 방을 빼주고 오르자고 일어난다.

07:00 천왕봉 정상 도착
300미터 정도의 돌계단을 오르니 정상이었다. 바람은 매우 심하게 분다. 금방 체온이 떨어져 급히 재킷을 꺼내 입으니 한기가 좀 가신다.
정상석에 다시 서니 감개가 무량하다. 날은 흐려 있으나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워낙 이곳 날씨가 변덕이 심해서......
아내에게 전화하고 싶어도 자고 있을 꺼라 생각해서 참는다.
바람을 면한 곳에 서서 회원들이 족발에 정상주를 마시고 있어 한잔 먹고 서있는데 너무 추워 장터목산장으로 내려가기로 하고 운영진에 보고 후에 내려간다.

07:20 통천문 도착
내려가는 길 바위는 얼마나 많은 인파가 다녀갔는지 신발에 닳아 미끄럽다. 무심코 디뎠는데 쭉 밀린다. 식은땀이 흐른다. 노인 한 분이 통천문 앞에서 벽소령을 보면서 베사메무초란 노래를 부르는데 성악조로 정말 잘한다. 통천문 계단을 내려오면서 내내 멋진 노래를 듣고 돌아서서 박수를 쳤다.

07:35 제석봉 도착
회색빛 고사목이 많이 서있는데 풀은 누워 바람결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누인다. 맨손으로 천왕문을 오르는 사람은 대개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산객이어서 다시 장터목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07:50 장터목 대피소 도착
바람을 면한 대피소 뒤쪽은 화장실이 보여 왠지 싫어 바람에 먼지가 날리는 식탁에 앉아 볶음밥을 김치와 먹는데 꾸들꾸들한 것이 라면이 절로 생각이 난다. 식사를 마치니 회원들이 속속 도착하여 라면을 끊이고 도시락을 먹는다.
08:35 아내와 통화하여 축하를 받고 고맙다는 생각이 난다. 어제부터 도시락에 랜턴 배터리 등을 준비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09:20 장터목대피소 출발
식사를 마친 님들을 기다려 대피소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한 컷 찍고 출발한다.
소요시간이 두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내려오는 길은 끝까지 돌로 되어있어 다리에 특히 무릎에 무리가 온다.
병기막터교, 유암폭포, 법계사 장터목 갈림길을 지나 1.5km를 남기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11:00 탁족
웃옷을 벗어 등목을 하고 여벌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하늘을 나를 듯이 개운하다. 마지막 남은 오이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면서 상념에 젖어 있는데 산에서 늦게 회원들이 내려온다. 출발 신호가 떨어져 출발하여 중산리매표소에 도착하니 11:45이다.

12:00 점심겸 뒤풀이
매표소와 가장 가깝게 있는 용궁식당에 앉아 여러 회원들이 번갈아 오셔서 산방이야기, 산행이야기등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산방을 위해 몇 차례의 건배에 취한다.

14:00 버스로 이동
술기운에 취해 흐느적흐느적 버스로 이동하여 서울로 출발한다.
버스에서 여러 차례에 건배와 노래 회원과의 아쉬운 이별주에 취하여 한참을 자고 일어나 강남고속터미널에 내려주어 편안히 집에 왔다.
산행을 이끄시고 편안히 다녀올 수 있도록 애쓰신 운영진 여러분에게 감사 드립니다.


▣ 뚜벅이 - 즐산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혹시 서울에서 12시경 출발하셔서 산행시작을 5시정도에 시작하셨더라도 돌아오시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셨을까 해서 주제넘게 한말씀 드립니다. 기분나쁘게는 생각지 말아주십시요. 산의 주인인 집승이나 초목, 풀벌레들도 한밤중에는 쉬어야 되지 않을런지요. 자꾸 산중에사는 생명체의 개체수가 줄어드는게 우리의 죄가 너무 큰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 원정산행시 각 주체의 대장님께서 조금 더 생각해 주셨으면 해서 몇자 드립니다.
▣ 김용진 - 안내 산악회와 함께 이번엔 지리산.... 제 고향 뒷산을 가셨군요....수고하셨습니다... 늘 ~~~즐산하십시요
▣ 김용관 - 애증없이 휙 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