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의 약속 지리산에 서서 

 

일시 : 2005년 10월 22일


드디어 그 날이 왔다

2004년 10월 27일 회사업무에서 받은 과도한 스트레스, 과음, 흡연과 무기력증으로 인한 운동부족 등 이 원인이 되어서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렸고 결국은 목동에 있는 종합병원 신경외과에서 MRA 검사를 받게 되었다.
마치 관처럼 생긴 검사기 속 에 몸을 누이며 뼛속 깊이 떨어야 했던 공포감.......
다행히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금연과 체중조절이라는 처방전을 받아들고 머리통에 주사자국 몇 개를 남기고 병원 문을 나서면서 나는 결심했다

 

2005년 10월 22일 0시 동서울발 백무동행 시외버스 탑승(좌석번호 17번)
며칠동안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이던 하늘은 심술궂게 아침부터 비를 뿌려댄다. 젠장할 하늘도 나에게 아직 멀었다고 조금 더 정진하라는 계시인가? 그러나 얼마나 그리던 길인가 이를 깨물고 800M 동네 공원 조깅코스를 돌면서도, 조금씩 평지가 아닌 언덕길을 그리고 서울 근교 산길을 걷다가 쏟아지는 땀방울을 훔치며 고개들다 문득 생각나서 바라보던 남녘땅 바로 그 곳을 일 년안에 찾아가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어떤 약속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지만 이 약속은 내 자신과의 약속이고, 오늘이 아니면 기한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늦은 시간에 아니 이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선다 그 곳 - 지리산으로 

 

2005년 10월 22일 3시45분 백무동 도착
함양을 거친 시외버스는 달빛이 쏟아지는 백무동 주차장에 산객을 쏟아놓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주차해 있던 관광버스 속에서도 산객들이 쏟아져 내려 지리산 자락으로 스며든다.
장에 나와 엄마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잠시 어릿하다가 이내 흐르는 물대로 인파에 쓸려 백무동 매표소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매표소로 올라가면서 불꺼진 주변상가 수도에서 물을 보충하며 매표소에 도착하자, 단체 리더인 듯한 분이 매표구 입구를 막고 카운트하고 있다. 미친척하고 창구에 머리를 들이민다 "몇 분이세요?" "혼잔 대요" 공단직원이 아래위로 흘터보다가 표를 준다 - 마치 이 새벽에 혼자 오는 사람은 머리에 바람구멍이라도 있다는 듯이

2005년 10월 22일 7시 30분 장터목 대피소 도착
아 밝다 하동바위를 지나면서 올려다보는 지리산 하늘은 너무 밝아서 현기증이 난다 - 초장에 된비알에 애를 많이 쓰기도 했다.  초행길이고 혹시라도 멧돼지라도 만날까봐 5인조 산객일행 꽁무니를 졸졸 따라가다 한소리 듣는다. "아저씨 먼저 가시죠" "네? 아 초행이라 길을 잘 몰라서요" "그러면 제 뒤말고 앞으로 낑겨서 가세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 지......" "아~~ 나는 스틱 소리 들으면 신경이 곤두선다니 까요 그러니 앞쪽에서 가시라고요!" 결국 내 스틱 소리가 이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그 뒤로 침샘까지는 숨도 크게 못 쉬고 양손에 스틱들고 조심조심 따라갔다.
참샘에서 물 한잔하고 일가족인 듯한 산객 중에 우리 아들 또래를 보고 파이팅 해주고는 5인조를 추월해서 내달린다 -내 원래 토끼과라 오름 길에 강한 거든, 반대로 하산길이 쥐약이지만, 민폐는 이제 그만 끼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지만, 소지봉을 지나 이슬 젖은 산죽길을 지나오며 정말 많이 떨었다 춥기도 했지만 안개낀 수풀 너머에서 꼭 뭐가 나올 정도로 으스스 했다.
6시 30분 망바위에 도착하니 헤드랜턴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사위가 밝아오고, 단팥빵 두 개와 두유 한팩 마신다. 역시 산에서 먹는 음식은 뭐든지 맛있다 신 새벽에 빵과 두유라니 산밑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배반행위이다.
10월 하순 지리산의 새벽은 겨울이다 장터목 대피소에는 무서리가 아니라 눈보라(?)가 몰아친다 반장갑 가지고 온 것을 산행 내내 후회했다 정말 동상 걸리는 줄 알았다.

 

2005년 10월 22일 8시 19분 천왕봉 도착 
설원으로 변해버린 제석봉 통천문 구간을 지나며 천왕봉에서 내려오시는 여러 산님들과 조우했다 각양각색의 차림새와 장비였지만 이들의 모습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 벌벌 떨고 있었다. 고어자켓도 다운파커에 비닐우의를 걸쳤어도 모두 한결같이 오뉴월 개 떨 듯이 떨고 있었고, 이들의 모습을 보는 나의 눈빛도 떨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무례하게 산님 몇 분을 잡아 세워서 요염한 포즈로 사진도 몇 장 박으면서 10월 때 이른 겨울을 느껴본다.
죄많은 사람은 지날 수 없다는 통천문을 잠시 그 분이 한 눈 파시는 사이에 무사히 통과 드디어 천왕봉에 서본다.   오늘 이 곳에 서기 위하여 지내온 지난 일 년을 생각해 본다 - 정말 열심히 나를 변화시키며 살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3보이상 승차에서 3정거장 이하 도보, 하루 2갑이상 15년 간 피우던 담배와의 결연,  늦은 밤 허기에 지쳐서 냉장고를 열고 다른 것은 차마 먹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씹어먹던 생양파의 향까지도 오늘의 나를 위한 일년이라고 자위해 본다.
눈을 들어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확인해 본다 - 모 CF처럼 이제 나도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일까? 요즘 들어 부쩍 앞, 뒤를 돌아보게 된다. 예전에는 앞만 보고 왔었는데.......
정상석의 눈을 털어 내고 사진 몇 장을 부탁해 본다. 더 있고 싶어 오금이 저려서 못 버티겠다 배고픔보다 추위가 더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바람을 피해 올라온 길을 내려서는데 오른쪽 무릎이 뻣뻣해진다 바람을 피해 바위를 등지고 앉아서 케**를 바르고 소염진통제를 한 알 삼킨다 - 옆에서 지켜보시던 정 많은 산님이 걱정해 주신다 "슬개골이 아프신가봐요?" "아 장경근쪽이 뻣뻣하네요" "어떻게 내려가시게요?" "잘 내려가야죠" 일동 웃음

 

2005년 10월 22일 9시 장터목대피소
잠시 따스한 화장실에서 천국을 경험하고는 내쳐 길을 간다 어디로 처, 자식이 기다리는 성삼재로!
이것이 일 년전의 나자신과의 약속이다 천왕봉 노고단 주능선 당일 종주

 

2005년 10월 22일 10시 30분 세석평전
장터목에서 세석까지 전구간은 세석평전까지 설원으로 변해 있다 촬영 포인트에는 어김없이 여러 산님들이 풍광을 담고 있고 가끔씩 그 분들 곁에서 흉내도 내면서 지리산의 웅장함에 온몸을 떨며 걷는다. 다른 님들의 산행기에서 보던 연하봉도 보고(누군가 밑에다 페인트로 연하봉이라고 친절하게 써두셨더군요) 주능선 상에서 극과 극을(전라북도 쪽은 눈보라가, 경상남도 쪽은 햇빛이) 느끼면서 지리산의 깊이에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며 세석대피소가 보이는 세석평전에서 잠시 고민 하다가 풍광만 한 장 훔치고는 내쳐 길을 간다.       

 

2005년 10월 22일 12시 50분 벽소령대피소
발목 보호대를 하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갈길, 너덜 길에서 몇 번을 접지를 뻔한다. 진통제 효과인지 무릎도 괜찮은 것 같은데 조금만 방심해서 자갈을 밟게 되면 찌릿한 통증에 저절로 육두문자가 나온다. - 급하다고 서두르면 언제나 후회하게 된다 -  이제는 춥지는 않아서 자켓을 벗고 가는데 마주 오는 산객들에게 길도 양보해 주는 여유도 부려보다가 아무도 없는 길에서는 축지법을 이용해서 네발로 걷는다.
선비 샘에서 물 한잔 들이키고 (샘 주위에 왠 쓰레기가 그리 많은지, 그리고 뒷사람을 위해서 쓰고 난 바가지는 곱게 엎어놓지 왜 바닥에 팽겨 쳤는지) 가다보니, 아 정말 있다 앙증맞은 벽소령 우체통, 사진 한 장 박아주고 식탁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단팥빵 2개 소보루빵 2개 두유 한팩 그리고 뜨거운브래끼 1개를 까먹는다.  - 추워서인지 물은 예상보다 적게 먹힌다. 선비 샘에서 보충한 1리터 물병이 그대로 남아서 보충 없이 그대로 가기로 한다.

 

2005년 10월 22일 14시 10분 연하천대피소
어제 저녁 기차 편으로 구례구로 출발한 아내와 아들이 슬슬 걱정이 된다. 물론 작은 처남 가족과 함께 있지만 낯설고 물설은 타지에서 고생은 안 하는지, 출발하면서 늦어도 오후 6시까지 갈 수 있다고 큰소리는 쳤는데...... 몸이 지치는 것과 비례해서 자신감도 떨어진다. 핸드폰 밧데리는 이미 방전되었고 예비 밧데리는 없으니 연락할 방법이 없다. 표지목이 있는 곳에서 통화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세상과의 단절이 내가 선택한 것이라면 즐거움 되지만, 피치 못한 사유로 인한 단절이라면 생사가 걸릴 수 있다.
연하천대피소 도착 마지막 밧데리를 짜내서 아내와 통화한다 " 여기는 연하천 6시까지 꼭간다...삐삐삑" 데드라인이 설정된 것이다. 이 통화후 나중에 듣자하니, 아내가 성삼재 매표소 직원에게 물었답니다. "아저씨 연하천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걸려요?" "보통 5-6시간 정도, 왜요?" "우리 신랑이 지금 거기에서 이리로 6시까지 온다는데......." "야간산행하면 위험하니까 뱀사골대피소에서 1박하라고 하세요"  - 나중에 하산해서 켜본 핸폰 문자나 퀵보이스에서 그 당시의 다급함이 묻어 있다 "현종 아빠 지금 오다가 해떨어지면 오도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니까, 그냥 대피소에서 자고 내일 와요 제발~~~"

 

2005년 10월 22일 15시58분 삼도봉
이제는 마주 오는 산님도 거의 없고, 마음만 조급해 진다. 이미 풍광에 대한 흥미는 잊은 지 오래, 오직 노고단 고개를 향해서 네발을 놀릴 뿐이다.
총각샘은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고 토끼봉을 올라가면서 내가 알 고 있는 모든 욕을 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모든 약물을 비장하게 투여한다. (뽕가리쉐타, 뜨거운브래키, 진미채와 건포도 믹싱)
뱀사골 삼거리에 오자 제법 많은 산님들이 풍광을 즐기고 계신다, 아마도 뱀사골로 하산하시는 분들 이리라.
공포의 삼도봉 521계단 - 어느 산님의 산행기에서 역종주가 두려운 가장 큰 이유라고 하던 바로 그 계단-
올 6월 불수사도삼 종주시 탈진한 상태로 걸어 올라가던 도선사 아스팔트길이 생각났다. 욕할 기운도 아까워서 머리를 쳐박고 고무판을 악착같이 사수하며 무례하게 올라갔다 - 그 날 저 때문에 내려오시다가 자리 양보해 주셨던 많은 산님들께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그 때의 저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습니다. 삼도봉에서 한 숨 쉬고 삼도표지를 한 번씩 쳐다보고는 오늘 처음으로 길을 묻습니다. - 언제나 힘이 있고 여유가 있을 때는 도움을 구하지 않는 법인데, 절박하고 여유가 없다는 증거 입니다.  

 

2005년 10월 22일 17시 29분 노고단 고개
삼도봉을 지나니 더 이상의 거친 오름은 없고 이제는 거의 달리는 수준 노루목 이정표 확인하고 임걸령은 지나치고 능선 상에서 역광으로 비치는 석양에 눈이 뜨지 못합니다. 마치 저를 혼내는 것 같습니다. - 지리산을 그리 만만히 봤냐면서, 누가 노고단까지 업어다 준다면 100만원이라도 줄 것 같습니다.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쳐 한참을 가다가 마침 반대편에서 오시던 부부산객을 만나 염치 불구하고 전화기를 빌립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아내가 눈에 선합니다. "여보세요 나야 나 안 죽었고 건강하다 조금 있으면 노고단이고 6시까지 반드시 가니까 걱정 마라" 뭐라 걱정을 늘어놓으려고 하길래 한마디합니다. "이것 다른분거 빌린 거다 이따 보자"
돼지평전을 지나면서 일단의 산객들이 한 짐 가득 메고 가볍게 지나칩니다. 어디서 비박 하실 작정인가 본데 여자 분도 계십니다.  저 멀리 능선 상에 노고단 모형이 보이고, 등산복장이 아닌 사람들이 제법 보이자 마음이 놓이기 시작합니다. - 참 간사하기도 합니다.
노고단 고개에 도착 달려온 지리능선을 뒤돌아봅니다. 미처 못느껴던 풍광 속에 잠시 젖어봅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 왔는지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몸이 힘든 만큼 머리는 아주 맑아진 느낌입니다. 눈으로 지리를 담고 가슴에는 열정을 하나 가득 퍼 안고 돌아갑니다. 그토록 떠나고 싶던 그 세상 속으로 - 사실 오늘만큼 세상이 그리웠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있으면 해 떨어집니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세요" 라는 공단직원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사진 몇 장 훔치고는 노고단대피소의 거품소변기에 육수를 쏟아 붓고는 느긋하게 내려갑니다.

 

2005년 10월 22일 18시 성삼재
마음은 급한데 길은 왜이리 먼지, 아스팔트와 바위가 교대로 나타나는 하산 길은 지친 다리를 더 피곤하게 합니다. 작은처남과 아내가 죽은 사람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갑게 맞이합니다. 따끈한 어묵 한 그릇으로 하산주를 대신하고 구불구불 성삼재 길을 내려가 피아골 입구에 잡아놓은 펜션으로 가는데 아내와 아이에 대한 마음이 어제와 사뭇 다르더군요, 또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며 창밖으로 스러지는 지리산 마루금을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