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년 1월 25일
목적산 : 경남 의령군 칠곡면 궁유면 자굴산(897m)/한우산(764m)/산성산(741.4m)
산행코스 : 내조리- 절터샘- 신선바위- 금지샘- 자굴산- 한우산-
산성산- 벽계저수지(5시간 소요)
일행 : 새한솔산악회 회원 22명

설연휴 마지막날인 일요일 새한솔산악회 회원 22명은 8시 교대앞을 출발하여 목적산이 있는 의령군 칠곡면 내조리의 자굴산을 찾아나섰다. 찾아가는 길은 설연휴 마지막 날이라 막힘없이 시원하게 열려있었다. 자굴산은 영남학파의 거봉인 남명 조식선생이 젊은 한때를 세월가는줄 모르고 선유했다는 얘기가 있어 그 아름다운 경치를 새삼 강조하는 천혜의 절경과 신비한 비경을 간직한 금지샘이 있는 아름다운 산이 아닌가 자굴산은 조선중기 최고의 석학 조남명선생과 그의 제자이자 외손서인 망우당 곽재우 장군을 배출한 명산이다. 남명선생의 고향이 삼가면 외토리이고 망우당의 고향은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태어났다. 두곳 모두 자굴산의 기슭이다.

9:30 산행의 들머리인 내조리 마을회관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회관 왼편으로 산복도로가 말끔히 포장되어 있는 길을 따르다 등산로입구 표지판을 절개지로 올라 지능을 따라 오르는길은 앙상한 나무가지에 낙엽과 솔잎을 밟으며 매서운 겨울을 실감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등산로는 오르는 도중 두차례 쉼터를 만들어놓아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주위의 나무로 만든 휴식처의 의자는 나름대로 잘 만들어져 더운 여름철에는 좋은 휴식장소가 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10:00 선산김씨 묘에 도착했다.
묘의 봉주위를 돌로 쌓아놓아 무너질 염려나 짐승이 장난칠 수 없도록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후손에 조상에 대한 정성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상이 제법 준수히 다가올 즈음 길은 경사도를 더하면서 오른쪽 사면을 타고 부드럽게 물결친다.
굴참나무가 대단한 사면을 얼마간 오르니 시원한 감로수가 일품인 절터샘이 어서오라 반긴다.

10:30 절터샘에 도착했다.
파이프를 통해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너무나 약했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물이 고갈상태다. 우리가 오르는 길에도 먼지가 많이 났는데 절샘터의 물도 고갈직전까지 간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그래도 고드름과 같은 차디찬 물을 차례를 기다리면서 한 컵씩 받아 마시니 그야말로 꿀물이었고, 속까지 시원했다. 절 샘터는 아담한 휴식처도 마련되어 있었고 주위의 대나무숲 등 지난날 큰 집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잇었다. 절 샘터에서 길은 두갈래로 갈린다. 오른편은 홀할너덜을 지나 신선바위로 이어지고 왼쪽은 곧바로 사면을 치고 올라 주능선으로 이어진다.

그래도 지굴산의 최고의 비경은 금지샘과 신선바위인데 이것을 놓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금지샘을 향하니 신선바위 입구에는 새로 깨끗하고 말끔히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사고가 없도록 잘 정리되어 있었다. 철계단을 오르니 넓은 마당에는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200년된 참나무 한그루가 자기가 주인이라며 버티고 있는데 속이 텅 비어 있었으나 아직 시술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마당 왼쪽은 신선바위요, 오른쪽은 금지샘이다.

10:40 금지샘에 도착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에 약 3m깊이의 동굴이 있으니 그 동굴 속에는 천연적으로 생긴 샘이 있어 이 샘을 사람들은 금지샘이라 부른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명주실 끝에 돌을 메달고 실꾸러미를 풀어 넣어서 깊이를 재어 보았더니 실꾸러미 3개가 풀리고 나서야 겨우 샘 바닥에 닿았는데 그 끝이 수십리 밖인 정암진에서 나왔더라는 말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굴속에서 연기를 피웠더니 그 연기가 남강의 솔바위가 있는 곳에서 나오더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이샘이 그만큼 깊다는 뜻으로 꾸며낸 이야기들일 것이다. 또 금지샘에 관한 전설에는 이런 것도 있다.

병자호란떄 몽고군이 이곳까지 침입하여 자굴산의 산세를 보고 이 곳에 요새를 만들기 위해 자굴산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 때에 몽고 군사가 말에게 물을 먹일려고 하자 어떻게 된 셈인지 아무리 퍼 내어도 마르지를 않던 금지샘의 물이 금새 한방울도 남지않고 모두 말라 버렸으니 이는 필시 샘물도 적군의 군마에게 물을 줄 수 없다고 하여 무언의 항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전설과는 달리 절벽과 절벽사이의 금지샘에는 물 한방울 없이 누군가가 소원을 빈 흔적만 남아 있었다. 가파른 바위를 오르니 옛날 신선이 놀고 갔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강선암이 있으니 이 곳은 윗면이 편편하여 능히 수십 명의 사람이 앉아서 놀 만하다.

신선바위에서 올라온 길을 한숨 돌려 내려다보니 멀리 진주 시가지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으며 발아래는 칠곡 마을이 펼쳐지고 있었다.그런데 서암 저수지의 물이 황토물 색깔로 되어있어 혹시 저수지가 아닌가 싶었는데 지난 여름 태풍매미의 영향에 많은 비가와 산사태로 인해 자주빛 황토흙이 저수지에 쌓여 겨울인 지금까지 계속 황토물이 되어있지 않는가.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11:00 자굴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산불감시 초소와 함께 정상석이 나타난다.
자굴산 897m란 글이 앞면에, 뒷면엔 지리산 정상비와 똑같은 의령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라고 씌여있다. 자굴산에 대한 의령인의 자긍심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위경관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북으로 황매산이 하얀 눈으로 덮혀 있었고 그 앞으로 허굴산과 산성산 및 약경산이 합천댐을 감싸고 있었으며 그너머로 가야산의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었다.서쪽으로 지리산의 중봉과 천왕봉이 힌눈으로 덮혀 있고, 남으로 연화산, 동으로 무학산이 산너머 산으로 한폭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자굴산에서 봄철 철쭉과 진달래로 수놓고 있는 철쭉 군락지를 지나

11:30 쇠목재에 도착했다. 봄철 온산을 붉게 물들어 놓았던 꽃밭이 추운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만 남아 새봄이 오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12:10 한우산 정상에 올라 점심식사를 했다.
경상남도 의령군 궁유면 벽계리의 남쪽에 있는 산으로 자굴산으로부터 이어진 맥이다.
산 이름은 원래 산이 깊고 수목이 울창하여 시원하기가 겨울에 내리는 차가운 비와 같다고 하여 찰비산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한자로 찰 한, 비 우, 로 이름이 바뀌었다. 산세가 웅장하고 깊어 곳곳에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고 억새와 진달래, 철쭉군락이 철마다 아름다움을 달리하고 있는 산이다. 산 아래로는 사철 물이 흐르는 찰비계곡에 각시소와 농소, 아소 등의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근래에는 가례면 갑을리와 궁유면 벽계를 잇는 암도가 개설되어 산 정상까지 차량이 오를 수 있게 되었고, 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산길이 나 있어 궁유면 입사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정곡면에서 유곡면으로 넘어가는 막실고개와도 연결되어 있어 산길 드라이브코스로도 알려져 있는 산이다. 산에 오르다 보면 넓은 풀밭이 있어 신나게 달릴 수도 있고 암벽이 늘어선 암봉지대가 있어 힘들게 오르기도 하여 지루하지 않게 산행할 수 있다. 산정상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어 애호가들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었다. 잔디나 억새밭은 좋았지만 강한 바람으로 식사를 빨리하고 다음의 산행지인 산성산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당초 예정했던 찰비골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시간의 여유도 있고해서 산성산을 거쳐 찰비골로 가기로 했다.

13:10 산성산 정상에 도착했다.
산성산 정상은 억새밭과 늪지대로 되어있어 조용하고 아늑했다. 그리고 주위는 전부 소나무 천국이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자굴산과 한우산과는 달리 소나무가 많아 푸르름을 더해주고 잇었다. 그리고 말 못하는 소나무지만 살아 남기위해 자라는 모습도 달랐다. 위로 솟아 오르면 넘어지기 때문에 산성산 정상부근의 소나무들은 전부 키가 3m이상은 크지 않고 옆으로 자라 소나무가 집채 만한 것과 큰묘 만한 것도 있어 비바람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자기가 자기를 보호하고 있었다.

산성산에서 소나무 숲을 지나 백계마을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 가파른 비탈길이었다.
내려가는 길이 자신도 모르게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눈앞에 보이는 선암산(525m)과 사이의 찰비계곡은 너무나 깊은 계곡이었다.

13:30 찰비 계곡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심심산골이다. 불러도 대답없는 한우산과 산성산, 차다못해 가슴까지 얼얼한 찰비골의 벽계수, 그저 시간을 낚아도 삶의 피로를 깨끗이 씻을 수 있는 벽계저수지가 함께 하는 곳이 벽계관광지 일대이다.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는 봉황대를 비롯하여 제36회 대종상 영화제 최우수상에 빛나는 영화"아름다운시절"의 촬영장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영화"아름다운 시절"을 잠시 소개해 보겠다.

영화 "아름다운시절"은 영화사 백두대간의 이광모 감독이 제작한 작품 영화이다.
한국전쟁의 교착상태에 빠진 1952년 미군이 주둔해 잇던 어느 시골마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고난과 절망의 시대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국인들의 삶을 아름답게 조명한 작품으로 영화계의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배우 안성기, 송옥숙 주연의 이 작품의 장면 장면마다는 섬세한 구성과 자연스러운 배경화면 선정 등으로 우리들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연출자이자 영화감독인 이광모는 이 작품을 위해 사실묘사에 최대한 접근하기 위해 직접 전국을 다니며 장소물색을 하는 등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1997년 12월 2일, 어느 자동차 회사의 4WD 동호회 소식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감독, 조감독, 카메라 일행이 물어물어 이곳을 찾아왔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리얼하게 묘사하기 위해 인공조형물(전봇대, 전선, 시멘트도로)이 없어야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이곳(한우산 계곡)은 천혜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고 카메라 구성에 잘 어울리는 곳이라며 과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리하여 제작진 20여명이 이 계곡에서 이광모 감독의 큐 사인과 함께 촬영에 들어갔다. 안성기, 송옥숙 일가의 몰락하는 가정사를 우마차에 짐을 싣고 산자락 굽이굽이 내려와 떠나가는 모습으로 인생의 역경을 표현한 이 곳에서의 촬영작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되어 나지막 하게 깔리는 배경음악과 함께 긴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이곳도 그 유명한 전경도 지난여름 태풍매미의 상처가 심해 소와 폭포등 모두가 씻겨내려가 버려 상처뿐이었다.찰비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벽계 야영장이 잘 준비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방학기간이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어 썰렁했다. 야영장을 지나 벽계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다리도 태풍으로 인해 위험해 대형버스는 지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인기없는 곳이지만 경남의 아름다운 전망대이자 심심산골의 찰비계곡을 철쭉과 진달래꽃필때 꼭 한번 찾아 가보는 것 또한, 좋은 기행문이 될것으로 본다.

참고로 찾아가는 길을 소개해 본다면,
의령에서 대구방향으로(국도20호선) 가다보면 정곡면 삼거리에서 좌회전(궁유방향)하여 호암 이병철 생가를 스쳐 지나고 신촌 고개를 쉬엄쉬엄 넘어 쭉 가다보면 벽계야영장을 맞이하는 원통형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는 봉황대, 동굴법당의 일봉사, 폐교를 활용하여 창작공간을 마련한 의령 예술촌이 있는 길옆을 지나 벽계저수지에 다다른다. 벽계저수지는 농업용수로 이용하기위해 만든 못으로서 사시사철 강태공들이 붕어, 잉어, 빙어, 메기등을 잡기 위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월을 낚아 올리는 곳이다.

벽계저수지를 가로 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왼쪽 골에 벽계야영장이 위치한다.
이곳은 벽계관광지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제1차년도 계획으로 완공되었으며 배구장(족구장), 방갈로(12동), 물 미끄럼틀, 텐트장, 캠프화이어장, 샤워실, 취사장 등을 갖추고 있다.
상기내용은 참고로 하시고,
우리일행은 14:20 벽계저수지 다리를 건너 5시간동안의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감사합니다.





▣ 이수영 - 회장님의 산행기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도 회장님의 전철을 밟을까 합니다. 늘 이렇게 가르침을 받고있습니다. 건강 하세요.
▣ 이두영 - 부족한글 고맙게 읽어주어 감사합니다 지금 정년 퇴직 이란 머리 아픔이 잘 해결되지 못해 산에는 가도 산행기를 쓰지도 읽지도 못할것 같아 괴롭읍니다 접할시간이 자꾸만 멀어지는것 같읍니다 좌우간 부족한글 읽어 주어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