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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목판으로 만든 인왕산 정상, 안산 동 봉수대-


안산(鞍山)&인왕산(仁王山) 일부러 찾아간 수성동계곡(水聲洞溪谷)
2021078069호        2021-12-08()

자리한 곳 : 서울 서대문, 종로구
지나온 길 : 독립문역-독립문공원-경기대고개-안산-무악재하늘다리-선바위-인왕산-수성계곡갈림길-수성동계곡-경복궁역
거리및시간: 3시간 54(11:58~15:52)           도상거리   :   11,9km      보행수(步行數)   :   17,953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안개인지 미세먼지 많은 날씨 <해 뜸 07:34     해 짐 17:14           ‘최저 1,     최고 12>

간단한 산행 스케치
자투리시간이 발생했으므로 서울 도심 자연공원 안산과 인왕산을 다녀오기로 마음먹고, 가볍게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서 지하철 6호선으로 불광역에 도착 3호선으로 환승해  독립문역에 하차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들머리할 계획이였으나, 산행거리를 늘리자는 단순한 생각에 충정로 경기대학교 고갯마루로 이동한다. 안산도시자연공원 종합안내판을 들머리로 능안정에서 안산주능선을 충실하게 답사한다. 미세먼지가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그래도 행복한 마음으로 봉수대(안산에는 동, 서 양쪽에 봉수대가 있었는데, 1994년에 서울 정도 600년 기념으로 동쪽 봉수대만 복원해 보존하고 있다)에 올라서니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분빈다. 잠시 다리쉼하고 안산자락길 북카페쉼터에서 무학재(도로개설로 인하여 단절) 절개지에 건설된 무악재하늘다리를 이용해 안산에서 인왕산으로 넘어가며 하나의 생태로가 됐구나 생각된다. 선바위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따라 복원공사를 끝낸 한양도성 위를 걸어 범바위, 사연많은 치마바위를 경유해 호랑이산 정상에 올라선다. 하산로는 창의(자하)문에서 경복궁역으로 정하고 성곽을 따르다가 요즘 들어 새롭게 발굴 조명하고 있는 열리지(한양도성 부부소나무)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인왕산숲속쉼터(,인왕3분소)가 재탄생해 시민들에게 개방한 건물을 살펴보고, 계획에 없던 수성동계곡으로 코스를 수정하고 나무계단을 내려서 도로를 따르다, 석굴암 갈림길에서 수성계곡으로 방향을 잡아 경복궁역에서 4시간 가까운 시간의 산행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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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독립공원 풍경, 들머리 안산도시공원 안내판-

독립문역
(獨立門驛) :

서울지하철 3호선 무악재역과 경복궁역 사이에 있다. 1985712일 개업했다. 역명은 독립문이 인근에 있어 붙여졌다. 역 주변에 독립문, 서대문구의회, 서대문독립공원, 한성과학고등학교 등이 있다. 서울메트로 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지하 247번지(현저동 101번지)에 있다.
img.jpg-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목멱)산-

안산(鞍山)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으며 높이는 295.9m로 낮으막한 도심의 산이다. 산의 생김새가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사용한 길마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길마재라고도 하며, 모래재, 추모련이라고 불렀고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봉우재라고도 불러왔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어머니의 산이라고 해서 모악산(母岳山)이라고 불렀으며 호랑이가 출몰하기 때문에 여러사람을 모아서 산을 넘어가야 했기에 모악산라고도 불렀다는 설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이 건국되고 도읍을 정할 때 하륜(河崙)이 안산 남쪽을 도읍지로 추천하였다. 조선시대 인조 때인 1624년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한국전쟁 때 서울을 수복하기 위한 최후의 격전지였다. 서울 시내 중심에서 홍제동으로 향하는 통일로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해발 340m)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대문독립공원, 이진아도서관이 위치한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평안도에서 올라온 봉화가 안산에 연결되어 최종 남산으로 연결되었다. 정상 부근에는 큰 바위들이 많고 서울시 중구 일대를 관망하는 전망이 뛰어나다. 태고종의 총본산인 봉원사(奉元寺)가 남쪽에 있으며 관음보살을 닮았다는 관음바위가 유명하다. 그리고 근래 새로운 모습으로 보수한 봉수대(서울특별시 개념물 제13)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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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안산 암벽 연습바위, 무악산 봉수대 안내판-

안산봉수대(鞍山烽燧臺) :
태조 때부터 안산에는 봉수대(烽燧臺)를 설치하여 매일 저녁 봉홧불을 올리게 했다. 무사하면 봉홧불 하나를 올리고 외적이 나타나면 두 개, 국경에 가까이 오면 세 개, 국경을 침범하면 네 개, 싸움이 붙으면 다섯 개를 올리도록 했다. 따라서 평화 시에는 봉홧불 하나가 정상에서 타올랐다. 각각 동서 두 봉우리에 설치돼 있었는데 동쪽 봉우리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육지 쪽에서 오는 신호를 받아 남산 제4봉수대로 보내는 것이다. 즉 국경에서 전쟁이 일어난 사실을 조정에 알려주는 마지막 전령 역할을 했던 안산 봉수대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국가 위기상황을 조기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봉수대는 이괄의 난에서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봉수를 지키는 봉숭군만 포획하면 얼마든지 허위정보를 후방에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단점은 병자호란 때도 드러난다. 이괄의 난 이후 민심은 흉흉했다. 인조가 피난 갈 때 한강에서 배 한 척 구할 수 없었을 만큼 민심은 인조정권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환도 한 뒤에도 반군에게 붙은 도당들을 신고하라고 하자, 백성 가운데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해 반란군 머리라고 보고하고 상을 받는 자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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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무학재 하늘다리 풍경, 인왕산 안내도-

무학재(無學峴) :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홍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148m마루다. 태조 이성계가 도읍터를 물색하는데 하륜이 무악 남쪽을 찬성하였으나 일부에서 명당이 좁다고 반대하므로 태조 3(1394)에 태조가 몸소 무학대사(無學大師)를 데리고 와서, 다시 조사하였다는 설화가 있어 유래된 이름이다. 무학재, 무학현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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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인왕산 선바위, 한양도성과 남산, 정상 풍경-

인왕산(仁王山) :
서울시를 분지로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인 높이 338.2m산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도성(都城)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던, 조선조의 명산이다. 산의 높이 338.2m이며 인왕산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인왕사(仁王寺)라는 불교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산의 능선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남쪽으로 행촌동과 사직동이 있고 동쪽으로 필운동, 누상동, 옥인동, 신교동, 청운동으로 이어지며 북쪽 산허리에 자하문고개를 통해 북악산(北岳山)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서쪽으로는 서대문구 홍제동이 있다. 경희궁 뒷편 사직동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앞 인왕산로 1길을 서울성곽이 이어지며 인왕산 선바위를 지나 범바위를 지난다. 서울성곽은 인왕산 정상부로 이어지는데 메부리바위, 치마바위, 삿갓바위로 이어지고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지나 자하문(창의문)과 연결되고 그 다음 북악산으로 이어진다. 인왕산은 고려시대부터 불교사찰이 많았던 곳이며 현재도 5~6곳의 사찰과 암자가 있다. 조선 중기 명나라 사신이 임금을 보필한다는 의미에서 필운산(弼雲山)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 연유로 필운대(弼雲臺)와 필운동(弼雲洞)의 이름이 남아있다. 필운대에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의 집터가 남아있다(현 배화여자고등학교 교내 소재). 옥인동은 옥류동과 인왕동이 합쳐진 이름인데 계곡의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다. 북쪽 창의문을 지나 부암동에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石坡亭)이 있다. 인왕산 국사당(仁王山 國師堂)은 원래 남산(南山)의 산신(山神)인 목멱대왕(木覓大王)을 모시는 산신당(山神堂)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신사(神士)를 지으면서 국사당을 인왕산 현재 장소로 옮겨왔다. 호랑이 굴이 있는 남쪽 능선에 호랑이바위, 정상부에 이르면 뾰족한 메부리바위가 있으며 삿갓모양의 삿갓바위가 인왕산 정상이다. 그외 치마바위, 해골바위, 기차바위, 부처님바위 등이 있다.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곳곳에 약수와 누대(樓臺)가 있었다. 경치가 아름다워 이를 배경으로 한 산수화가 많은데, 특히 정선(鄭歚)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와 강희언(姜熙彦)인왕산도(仁王山圖)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仁旺이라 하였으나, 1995仁王으로 옛지명이 환원되었다. 청와대를 경호하는 군사적인 이유로 1968121일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3325일 정오부터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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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인왕산 능선에서 만난 연리지, 복원사업으로 회복한 수성계곡-

수성동계곡(水聲洞 溪谷) :
인왕산 수성동 계곡은 20101021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 31호로 지정되었다. 현 옥인아파트 일대는 조선시대 수성동(水聲洞)으로, 조선시대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경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되고, 겸재 정선의 <수성동> 회화에도 등장하며, 당시의 풍경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전통적 경승지'로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또한 이 일대가 조선후기 중인층을 중심으로 한 위항문학(委巷文學)의 주 무대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으며, 계곡 아래에 걸려 있는 돌다리는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하고,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보존된,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라는 점에서 교량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다. 따라서 돌다리를 포함하여 남아 있는 계곡부 전체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하여 옛 수성동의 수려했던 경관 자체를 보존하고자 한다.
img.jpg-수성계곡에서 날머리한 서울의 경복궁역-

경복궁역(景福宮驛) :
서울특별시 종로구 적선동에 있는 수도권 전철 3호선의 전철역이다. 한국의 명소 경복궁의 주역으로서 경복궁을 찾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유명한 역이다. 외국인들도 경복궁을 찾을때 경복궁역을 많이 이용한다.           -위키백과 등에서 옮겨온 글-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 찾아서 ~

2021-12-10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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