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러러 발길 머무는 곳까지(팔공산 갓바위-혜원정사)


“아따... 이 아제 가슴 좀 보소. 장난이 아니네.”
일개 중대는 넉넉해 뵈는 한무리의 산꾼을 피해 길옆에서 먼산 바라기로 피해 섰는데
웬 짓궂은 아저씨가 객의 가슴짝을 더듬으며 하는 말이다.
그리곤 성의 유혹 어쩌구 하면서 유창한 입담으로 주위 아지매들을 웃기신다.
햇볕이 제법 따가운 파계봉 근처에서 생긴 일이다.

감미로운 봄기운에 아련히 취했을 팔공의 꿈결같은 능선을 찾아 대구로 로시난테의
발길을 토닥인다. 비온날 악머구리 끓듯 번잡던 88로는 간간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젊고 기운찬 적토마들의 화등잔 같은 불빛만 마주칠뿐 홀애비 초상집 뒤끝처럼 한적하고
창문틈으로 밀려드는 싸한 공기는 달빛조차 얼려 분분이 날려 버릴 듯 차갑던 엄동의
삭풍이 아니라 흐드러진 여인의 이불속 온기처럼 훈훈하고 향긋하다.

파계사 갈림길을 지나고 동화사 스님의 새벽 예불 소리를 환청으로 들으며 갓바위
주차장에 닿으니 어디가서 육배기 간드러진 주모의 탁배기 한사발이라도 들고 산에
들었으면 하는 칠칠맞은 생각이 튀어나와 스스로 멋쩍어진다.
주차장을 나서며 힐끗 뒤돌아보니 비루먹은 개같이 황량한 로시난테의 애처로운 모습에
괜히 심란해진다. 좀 씻겨서나 데려올걸....

가로등이 환히 켜진 오르막길을 더위먹은 황소마냥 뻘뻘거리며 오르니 관암사가 갓바위
수문장격으로 투실하게 자리하고 있다. 경내 샘에서 시원하게 한표주박 길어 들이키니
불가의 급수공덕을 절로 느끼게 한다.
총총이 잇대어 오르내리기 편하게 깔아놓은 판자길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에 나서니
어라, 그 불량스런 계단길은 어디가고 역발산기개세의 항우가 가지고 놀았을 법한 둥굴
둥굴한 바위가 질펀하게 깔린 계곡으로 이어지네.

계산 안맞는 옹기장수 심통으로 불안스레 삼거리 능선에 닿으니 용주사 절이 밥먹는
손편에 번듯하고 갓바위는 왼편 관봉에 도리천으로 높직이 솟아있다.
대체 어디서 그놈의 길이 틀어진 것일까...? 잘난체하며 올라왔으니 남에게 물어보기가
삿갓 벗어 똥덮는 격이라 무조건 출입금지가 걸린 왼편 능선을 따라 관봉을 향해
올라선다. 길은 산불이 났었는지 군데 군데 화마의 자국이 완연하고 조금 올라서니 전망이
그럴싸한 헬기장에 부려진다.

헬기장 바로 아래 사거리부터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듯 핧아놓은 개 죽사발같이 반질반질하게 길이 잘 나있다. 아마 계단을 피하여 이쪽으로 많이 오나보다.
팔열지옥의 쇳물처럼 곧장 끓어 오르던 길은 갓바위 아래에서 잠시 한숨을 돌려 우편
사면으로 접질렀다가 용을 쓰며 갓바위에 닿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신심을 돋우며 기도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도 여기서 일출을 보게 될줄은 정말 뜻밖이였다.
아름답게 솟는 해와 갓바위 부처님께 조그만 소원 기원하고 팔공의 품으로 길을 재촉한다.
두어해 전에 왔던 원래 길은 낙석의 위험으로 폐쇄되고 조금 더 내려가 왼편 사면으로
길이 열려있다. 인봉 어드메의 기막힌 조망대에서 온갖 시선으이 호사를 누리며 한양 구경
처음 간 시골 선비의 감탄을 연발한다.
능성재 까지는 절묘한 암릉 천지 인지라 신바람을 내며 올라선다.
은해사와의 갈림길인 이재를 지나면서 암릉은 사라지고 전형적인 육산의 면모로 일신한다.
소나무와 싸릿대 그리고 진달래가 의좋은 이 길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편안함이 묻어나
참으로 고즈녁하다. 느긋한 걸음으로 신령재에 이르니 이정표만 한가하게 인적없는 잿머리를 지키고 아침 햇살에 마사토만이 더 하얗게 빛날 뿐이다.

제법 땀품 깨나 들이는 된비알을 지난 길은 요염한 꽃뱀의 허리처럼 이리저리 감돌아
정상을 향해 스멀스멀 기어 오른다. 일찌거니 일어나 아침을 설쳤던 탓에 뱃속에 거랏
귀신들이 밥을 들이라며 아우성을 친다. 본격적인 암릉 구간이 시작되는 조암 근처에서 도시락을 헤치니 잡곡밥 두어술과 나물무침이 담백한 조촐한 소찬이 팔공산 어느 선방의
스님네의 찬과 별반 다를게 없어 절로 웃음이 인다.

육식을 전혀 못하는 서방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려 나름대로 고민했을 곁의 여린 맘이 뵈
는 것 같아 문득 곁이 보고파진다. ‘그래. 팔공산 정기 흠뻑 머금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디저트로 깎아놓은 오렌지는 나중을 기약해 아껴두고 사탕은 부리를 헐어
모조리 바지 괴춤에 담았다. 불법이 성한 산인 만치 객도 뭔가 보시의 덕을 짓고 싶어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산행을 힘들지 않게 하는 보약이라며 한두개씩 나눠주니 톱날
능선도 채 못가 거덜이 나고 말았다. 받는 사람의 인사가 있으니 보시는 아닌가보다.

식후의 길은 언제나 사람을 힘들게한다.
병풍암 염불봉등의 화려한 암봉이 눈에 들어오기는커녕 뭐하다 일어난 변강쇠의 콧김
같은 거친 숨소리가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지만 식후의 금강산
산행도 만만치 않다면 장부의 너무 졸한 소견일까 ? 곤장맞은 춘향의 쑥대머리 귀신
형용 상판이되어 동봉에 오르니 저자거리의 주막 봉노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도차지
해 변변히 쉴 곳이 없다.

국가 시설물을 잔뜩 짊어진 갈 수 없는 팔공 정상을 안타까이 바라보다 미련없이 서봉
으로 발길을 돌린다. 오도재를 지나 서봉 어깨줌치에서 암릉을 붙잡고 오도가도 못하는
아지매 한분의 손을 잡아드리고 고소 공포증을 없애는 특효약 이라며 사탕을 두어개
드리니 갱상도 아지매의 소박한 모습이 담긴 미소로 답해준다.
질척 거리는 서봉 정상부를 내려서면 일명 톱날 능선으로 명명된길이 폼나게 장맞이
해주며 어서 오랜다.

객의 눈에는 꼭 공룡의 등날 돌기처럼 보여지는데 대부분의 사람의 눈에는 농경 민족으로
살아온 정서답게 생필품인 톱으로 연상 되어지나보다.
톱날능선은 지난번 파계사 갓바위 산행때 원없이 노닥거린 탓에 우회로를 이용해 잽싸게
빠져 나간다. 솔과 바위의 매치가 절묘한 오솔길을 터벅거리던 발길은 어느새 마당재를
지나 파계봉에 이른다. 서두에서 얘기했듯 왈패 산꾼에게 봉욕을 당했던곳도 여기 어드메이다.

투실하고 낙낙한 가산의 능선을 바라 파계재로 내려오는 길은 진창으로 인해 곁길이
많이 생겨 맘에 흐뭇하지 못하다.
팔공산 가산 구간중 가장 복스런 길이 여기 파계재에서부터 한티재까지 열린다.
아이들을 데려온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곳일 만큼 능선이 순하고 부드러워 더없이
좋은 원점회귀 가족 산행 코스이다.

파계재에서 잠시 오르막을 지으며 오르던길은 시골 소학교 운동장 많나 헬기장을
지나고 성철 스님이 철망을 쳐두고 정진했다는 성전암 갈림길을 왼편으로 이별하고
오른쪽으로 유연하게 물결쳐 한티재로 내닫는다.
하이얀 은어의 뱃살처럼 아늑하고 매끄러운 정취가 풍기는 길은 줄곳 그 품위를 잃지
않아 마음에 기껍고 고맙다.

수많은 차량들로 발 디딜틈이 없는 한티재에 닿아 휴게소 식당에 들러 자린고비 숙수가
음식을 했는지 짜기만 하고 맛은 별로인 비빔밥을 들고는 물좀 달래니 입구쪽 보온통을
가리킨다. 냉수인줄 알았더니 더운물이다. 젠장 소금섬에 자빠졌다 일어난 놈처럼 온몸
에 염가루를 뒤집어 쓴 놈에게 더운물이 가당키나 한가?
어쨋던 놀부네 밥을 먹었던 자린고비 밥을 먹었던 식후 산행의 부담 때문에 은근히
걱정이 주리틀 듯 조여온다.

휴게소 뒤로 시작되는 연이은 몇 개의 암봉을 지나노라니 영판 죽을 맛이였다.
젯밥에 관격들린 사미승 꼴이되어 가리산 지리산 걸음에 대중이 없는데 그놈의 웬수같은
왼쪽 발목마저 시큰거리며 애를 달군다.
사랑방님 말마따나 황금능선이 눈물의 고갯길로 바뀌어 짓나니 한숨이요 디나니 탄식
이라 바지에 똥싼놈처럼 뭉그적 거리며 봉충걸음을 걷다가도 마주 오는 산꾼이 보이면
비틀어진 웃음으로 인사를 하며 스스로 당당한체 한다.

불맞은 멧톳마냥 이리비척 저리비척거리며 끙끙대던 길이 치킨봉을 지나면서 조금씩
여물어져 할배방구를 지날즈음 오르막에서도 제법 여유를 부리며 까짓거 온김에 학명리
계정사로 하산을 해볼까 하는 시건방진 생각도 든다.
그나 그도 잠시 한티재에서부터 삐거덕 거리던 왼발목이 급작스레 숨넘어 가는 시늉을
하며 야료를 부린다.

겨우 어르고 달래어 다시 길을 잡으니 곧이어 가산 갈림길 이정표가 비웃듯이 서있다.
학명리 운운하던 호기롭던 기운은 어디가고 째보 엿가락 물디끼 애써 고개를 삐뚜룸이
돌리고 호씨(범) 에게 쫒기는 사냥꾼처럼 꽁지가 빠져라 동문으로 줄행랑을 놓는다.
동문엔 한가한 유산객의 발길이 아직도 어릿어릿하고 제법 길어진 해는 봄기운에 취한
사람들의 얼굴을 더욱 불콰하게 달아 오르게 한다.

모두들 웃고 떠들며 즐겁게들 내려가는데 갓바위까지 돌아갈 길이 기약 없는 객은
스산해지는 마음 가눌길 없다.
사랑방님께 전화나 해볼까, 제매에게 하소연 해볼까나...
에라 관두자 거지도 봐 가며 동냥 이라는데...
사랑방님도 드셨다는 어묵 포장마차에서 큰소리로 괜한 객기를 부린다.
“아지매, 그 썬한 콜라 한병 주소마”

2004 3월 28일 끝.

#각 구간별 도달시간
*06시17분...갓바위
*08시12분...신령재.
*09시45분...동봉
*13시17분...한티재.
*13시42분...동문.
*16시20분...혜원정사.


▣ 김정길 - 옹골찬 구구절절 어쩌면 저리도 맛깔스러운 표현이 나올까 감탄하며 감사합니다. 곁님 건강은 어느정도 인지요.
▣ 산사랑방 - 님의 산행기를 읽노라니 깔딱깔딱 저의 숨이 넘어갈듯 합니다. 제가 12시에 할베바위를 지나서 14시에 한티재에 도착했는데 그 비슬산보다 좋은 황금 능선길을 지나면서 저와 꼭지를 스쳐지나셨네요.. 언젠가는 산에서 만나게 되는 산님과의 인연의 끈은 이렇게 다가오나 봅니다. 에구 전화 때렸으면 진짜 딱이었는데...^^
▣ 빵과버터 - 낄,낄,낄....으이구 재밌어라....사모님 간병하신다고 수 십 삭을 잠적하여 산하가족들을 안달뽁달하게 만들더니 이렇게 가려운데 씨원하게 긁어줄 폭탄 만드셨든거 아닝교? 손오공이 여의봉 가지고 온갖 조화를 부리듯이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어휘력에 어느 시러베 아들놈이 웃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에구...보고 잡퍼라 로시난테여....시방 저는 입언저리 근육에 쥐가 날 지경입니다. 맹익님 덕분에 오늘 하루는 뽕맞은 놈처럼 넉끈히 실실거리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낄,낄,낄...
▣ 똘배 - 마치 판소리한마당 본 느낌..... 부부의 애틋한 정도 엿보입니다. 잘보았습니다.
▣ 윤도균 - 님의 육자백이 한가락같은 질퍽한 어휘력의 산행기를 대하니 무엇보다도 이제 님이 제자리로 돌아온듯한 느낌에 글을 읽으면서 한결 마음이 편안함을 느꼈답니다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운 시어같은 글들을 구상을 하여 산행기를 만드실 수 가 있어요 맹익님 정말 넘넘 훌륭한 산행기 굿입니다 부럽습니다 즐겁게 감상하고 감니다 아무쪼록 건강에 유의 하시면서 즐산 자주자주 이어지시기를 기원 합니다 사모님의 빠른 쾌유를 기도드립니다
▣ 권경선 - 예전같은 현란한 문장에 저도 덩달아 신이 납니다. 잘 읽고 갑니다.
▣ 이우원 - 바지에 똥싼놈처럼 뭉그적 거리며.....킥킥킥 혼자 산행기를 읽다가 넋나간 사람처럼 웃고 말았네요. 무슴 책을 많이 봤길래 그렇게 구수하게 산행기를 쓰십니까? 정말 재미있는 분이군요. 남도 상견례때 얼굴이라도 봐야될 것 같아서 꼭 참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진맹익 - 컴맹의 부끄러운 이름을 뒤집어 쓰고 사느라 일일이 답글 충실치 못함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언젠가 뫼시고 웃을 날 꼭있으리라 믿고 촌놈 그때를 기다리며 선배님들의 그저 그저, 또 그저 건강 기원 합니다. 총총...
▣ 구자숙 - 오래 살고시퍼 건강검진 받고 늦게 진해 시루봉을 다녀온늦은밤. 벚꽃도 좋았고 산행도 안민고개에서천자봉까지 5시간 동안 루라루라였는데...글을 읽고 너무 웃다보니 배가아프군요. 진작에 절 애닿게 하지 마시고 나오시지...애구~~ㅎㅎㅎ어서빨리 곁에 건강이 회복되시길...기원드립니다.
▣ 윤기웅 - 같은날 갓바위에서 아침을 맞았답니다. 혹여 스쳐 지났을법도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짧은 머리에 멀대같이 생긴 모습을 보셨는지도 모르지만요. 암튼 구수한 산행기에 감탄을 하며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이송면 - 오늘(31일) 집사람과 그 친구 , 그리고 내 친구 1명하고 같이 도락산을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 야간 근무들어와서 일 도중에 잠깐 들어와 보니 님께서 팔공을 다녀 가셨더군요. 그날 저에게라도 전화 하시지.. 오후에 집에 있었는데..ㅎㅎㅎ. 며칠뒤 저도 그 길로 가려고 합니다 다녀와서 뵙지요... 늘 건강하세요
▣ 진맹익 - 팔공의 인연은 언제라도 이어질듯 조마 합니다. 그날을 기다립니다. 참 남도 모임이 의상봉으로 결정 되었던데 그날 모두 뵐 수 있기를 희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