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 관내에는 이렇다 할 산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팔공산과 금오산의 일부가 칠곡군 관내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팔공산은 대구의 산, 금오산은 구미의 산으로 알려져 있다. 칠곡군 북동부에는 학(鶴)과 관련된 지명이 많은데, 鶴鳴洞, 鶴山里, 鶴上里·鶴下里, 黃鶴里, 등이 있고 山 이름으로는 遊鶴山, 黃鶴山, 巢鶴山, 등이 있다.

대구에 일이 있어 하루를 보낸 뒤 올라오는 길에 칠곡군 관내의 산중 소학산, 숲데미산, 유학산, 봉두암산, 등을 답사해보기로 하였다.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을 거쳐 석적면 도개리 덕인사 삼거리에는 7시 46분 경 도착하였다.

▣ 덕인사~岐般山(464.7m)~巢鶴山(622m)~덕인사 산행기

•도상거리: 7.1km
•일시: '04년 5월 1일
•날씨: 맑음, 14℃
•오전 7시 52분 경 석적면 도개리 덕인사 삼거리 출발

덕인사 앞에 차를 세우고 소학산을 바라보니 어디서 올라야 할지 막막한데, 일단 기반산 쪽으로 먼저 올라보기로 하였다.

(07:52) 덕인사 간이주차장을 출발, ‘요술의 고개 2.9km’ 표시판을 따라 남동쪽 포장도로를 따르다가 오른쪽 ‘무지개동산’ 가든 쪽으로 난 길로 들어섰다. 가든을 지나니 농로가 이어졌고, 이 농로는 다시 포장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만나기 직전 염소 농장으로 들어서니 사나운 개가 짖어대면서 달려들려고 하였다. 손짓으로 쫓아도 막무가내로 다리를 물 기세인데, 마침 농장 주인이 보다가 개를 야단치니 그제사 얌전해졌다. 주인에게 산으로 드는 길을 물으니 농장에서 골짜기로 이어지는 소로를 따르라고 하였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소로를 따르니 건계를 건너서 계속 이어졌는데,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듯, 거미줄이 걸리적거렸다. 이내 산판길이 이어졌고, 무덤이 연이어 보였으며, 방향이 동남쪽으로 휘어 가팔라졌다.

(08:11) 아마도 채석장에서 개설한 듯한 임도를 만났는데, 길에서 채석장은 보이지 않는다. 남쪽으로 나아가니 다시 산판길이 이어졌고, 오래전에 벌목된 나무들이 성가시게 한다. 善山金氏之墓에 이르니 여기서 길 흔적은 끊어졌다.

(08:20) 동남쪽으로 사면을 치고 나가려다가 기반산 정상을 어림해보니 남서쪽인 듯하여 남서쪽 사면의 성긴 나무 사이를 헤집고 나아갔다. 동서 방향의 흐릿한 사면길을 가로질러 남남서쪽, 이어 남쪽으로 오르니 흐릿하나마 능선길이 보였다. 왼쪽(남동쪽)으로 조금 나아가니 기반산 정상이다.

(08:37) 삼각점이 설치된 기반산 정상은 평평하고 나무를 베어놓았으나 그래도 주위의 나뭇가지가 시야를 가려 유학산과 소학산 정도가 나무 사이로 바라보일 뿐이었다. 바로 남쪽 수풀 사이로 나물 캐러 오신 할머니 한 분이 보여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08:39) 기반산 정상을 출발, 동쪽으로 나아가니 길 흔적이 비교적 뚜렷해졌다. 길은 북동쪽으로 휘어 내려 안부에 이르니 빛바랜 흰색 표지기가 눈에 띄었다. 다음 언덕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서니 길은 더욱 뚜렷해졌고, 조금 뒤 동북쪽으로 이어지는데, 안부에 이르러 오른쪽을 보니 남쪽 산자락에는 절개지와 함께 골프장이 자리하였다. 길은 다음 둔덕봉이 아니라 표지기와 함께 그 왼쪽 사면으로 이어져 커브진 도로 곁 임시사무소 공터에 닿았다.

(09:03) ‘지천면’과 ‘요술의 고개’ 표시판이 설치된 고개에 이르니 차들이 몇 대 세워져 있었다. 표시판에 의하면 요술의 고개 길이는 180m 정도로서 2.388%의 상향 구배를 가진다고 되어 있는데, 10%의 가파른 오르막에 이어 약한 구배가 이어지기 때문에 마치 내리막길인 듯한 착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도로를 건너 북북동쪽으로 오르니 나물을 채취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고개에 세워져 있던 차들은 이들이 끌고 온 것이다. 도중 다소 길 흔적이 애매해졌으나 다시 뚜렷한 길 흔적을 만났다. 길은 북쪽으로 이어지면서 경사가 가팔라졌다.

(09:31) 의외의 육각 정자가 자리한 소학산 정상에 닿았다. 정상의 바위 위에 ‘소학봉 정상 해발 629m’ 스텐리스 표식이 있고, ‘←(서쪽) 황학산 갈림길 550m·낙엽송 군락 쉼터 950m·등산로 입구 1900m, 소학골 쉼터 900m·등산로 입구 1950m→(동쪽)’ 이정표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황학산은 소학산의 동쪽에 위치하는데, 이정표에는 방향이 서쪽을 가리키고 있어 다소 의아스러웠다. 정상에서는 나무가 시야를 가려 조망은 좋지 않았다.

(09:35) 정상을 출발, 서쪽으로 내려서니 임도 수준의 길이 이어졌다. 8분쯤 뒤 벤치가 설치된 데 이르니 너른 길은 오른쪽(동북쪽)으로 이어졌는데, 잠시 따라가보니 소학산과 황학산 사이의 안부로 이어지는 듯하였다. 그러니까 아까 본 이정표에는 제대로 적힌 것이다. 되돌아서 다시 벤치에 이른 뒤 서북쪽으로 난 흐릿한 능선길을 따라 내려섰다. 조금 뒤 길 흔적이 다소 뚜렷해졌고, 오른쪽 뒤에서 소로가 합류하면서 경사가 완만해졌다.

(09:56) 언덕을 지나니 방치된 ‘內部主事安東權公之墓’에 이르니 나무를 잘라놓아 길 흔적이 애매해졌으나 무덤 오른쪽(서북쪽)으로 다시 소로가 이어졌다. 길 흔적이 흐릿한 데도 있으나 능선을 따르면 헷갈릴 염려는 없다. 큰 무덤인 ‘石泉居士礪山宋公’ 墓를 지나니 서쪽으로 길 흔적이 뚜렷해졌다. 방치된 무덤 두 개를 지나서 2차선 도로에 닿았다.

(10:19) 도로 맞은 편에는 창고가 딸린 가옥이 자리한다. 오른쪽(서북쪽)으로 나아가가다 뒤돌아보니 두리뭉실한 기반산과 뭉툭한 소학산이 대비를 이루었다. (10:23) 덕인사 삼거리에 도착하였는데, 마침 새로 지은 듯한 덕인사에는 자칭 ‘솔향기’ 약수가 있어 작은 패트병 두 개에 채운 뒤, 다음 산행지로 향하였다.

▣ 성곡~숲데미산(516.7m)~팥재~遊鶴山(838.6m)~불바위 산행기

•도상거리: 14.5km
•날씨: 맑음, 22℃
•오전 10시 44분 경 석적면 남율리 성곡교 출발

소학산 산행을 마친 뒤 석적면 남율리 성곡교를 건너 새로 지은 정자 앞에는 10시 42분 경 도착하였다.

(10:44) 정자를 출발하여 남쪽으로 가니 곧 두 갈래 길인데, 오른쪽(남쪽)으로 동네길을 따르니 古宅과 중화요리집인 듯한 ‘음식백화점’을 지나니 작은 古宅이 나오고 이를 돌아서 동쪽으로 나아가니 처음의 갈림길을 만났다. 동남쪽으로 농로가 계속 이어졌다.

(10:57) 농가 직전에 이르니 길은 오른쪽(남쪽)으로 휘었다. 이내 방향이 남서쪽으로 휘면서 방사된 오골계 몇 마리가 보였고, 원두막과 밭 사이를 지나니 왼쪽(남쪽)으로 소로가 보였다. 그 쪽으로 나아가니 파헤쳐진 밭 흔적을 지나 풀섶 사이 산판길이 이어졌다.

(11:08) 버려진 물통이 왼쪽에 보이는 건계를 가로지르니 남서쪽으로 잠깐 이어지다가 산판길은 끝나고 길 흔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남쪽으로 사면을 치고 나아가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흐릿한 족적을 만났으나 올가미가 있는 데서 족적은 사라졌다. 할 수 없이 남쪽으로 성긴 잡목 사이로 올라 구릉성 능선(도상 ×293m 봉)에 닿으니 드디어 길 흔적이 보였다.

(11:22) 동북쪽으로 나아가니 소나무가 우거진 능선길이 이어졌다. 오른쪽에서 흐릿한 소로가 합류하였고, 나일론 끈 표식도 보이면서 길 흔적이 보다 뚜렷해졌다. 능선과 골짜기 사이로 오르막이 한참 이어졌는데, 永川李氏之墓에 이어 玉山張公 무덤을 지나 언덕에 이르렀다.

(11:38) 언덕에서 남남동쪽으로 휘어 내려 안부에 이르니 왼쪽으로 흐릿한 내리막길이 보였고, 남동쪽으로 나아가니 오른쪽에서 소로가 합류한 데 이어 둔덕 바위(1/50000 지도상의 숲데미산)에 올라서니 잡목 사이로 유학산, 황학산, 소학산, 봉화산, 누진산, 등이 바라보였다. 동북쪽으로는 숲데미산 정상이 지척이다.

(11:51) 둔덕 바위를 출발, 북동쪽으로 내려서니 길 흔적은 흐릿하나 흰색의 빛바랜 표지기가 보여 그런대로 간간히 사람들이 다님을 알 수 있었다. 왼쪽 뒷편에서 소로가 합류하였고, 바위를 비껴 길은 동쪽으로 이어졌다.

(11:59) 오래되어 퇴색한 삼각점이 있는 둔덕봉(△518.7m)에 이르니 영암산, 금오산, 뿌연 가스에 쌓인 구미시내가 바라보였으나 나머지 방향은 잡목에 시야가 가렸다. 조금 뒤 출발, 북북동쪽으로 내려서니 왼쪽에서 갈림길이 합류하면서 방향이 동쪽으로 휘었다.

(12:16) 둔덕에 이르니 남동쪽으로 능선길이 이어졌고, 짧은 덤불 지대를 지나 다음 언덕에서는 방향이 동북쪽으로 휘었다. 가파른 내리막을 거쳐 안부의 철탑을 지났다.

(12:34) 안부에 이르니 뚜렷한 고갯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언덕을 지나니 오른쪽으로 흐릿한 갈림길이 연이어 합류하였다. 얕은 안부에 이르니 폐묘가 보이면서 길 흔적이 다소 뚜렷해지고 쓰레기도 몇 점 보였다. 나물을 채취하던 남자가 동료를 찾느라 소리 높여 부르더니 혹시 사람을 못 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졌는데, 왼쪽 앞으로 갈림길이 보이더니 길 흔적이 다소 흐릿해지더니 폐묘 세 개를 지나 둔봉에 이르니 잡목으로 시야가 막혔다.

(13:12) 동북쪽으로 내려서서 무덤 흔적을 지난 뒤 북동쪽, 이어 북쪽으로 내려섰다. 길 흔적이 거의 없어지길래 포크레인 소리가 들리는 북쪽을 향하여 내려섰다.

(13:20) ‘도봉사 800m’ 표시판이 세워진 고개에 내려선 뒤 도로를 건너 시멘트길을 따르니 ‘↑도봉사 700m, ↓도개온천 2.2km’ 표시판과 ‘유학산 6·25 격전지 순례 탐사로’ 안내도가 보였다. ‘유학산’ 안내판에는 쉰질바위(학바위)의 유래와 6·25 전쟁 당시의 상황이 적혀 있었다.

(13:25) 오른쪽(동북쪽)으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보였는데, 건조주의보가 해제되어 통제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도봉사로 이어지는 시멘트길을 벗어나 그 쪽으로 가 보았다. 너덜 지대 아래의 기도터에 닿으니 샘이 있어 시원한 물을 들이켰다. 돌 사이에 돼지인지 개인지 동물의 머리뼈가 두어 개 보여 간간히 굿판을 벌임을 알 수 있었다.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 바위 밑 기도터를 지났고, 너덜 지대 아래쪽에 이르니 길 흔적이 흐릿해졌다. 계속 동쪽으로 흐릿한 길을 따라가니 이내 땅재에서 올라오는 길인 듯한 뚜렷한 오르막길을 만났다.

(13:36) 왼쪽(북쪽)으로 오르니 경사가 매우 가팔랐다. 위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오길래 정상에서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13:52) T자 형 갈림길에 이르니 오렌지색 표지기가 걸려 있었다. 어느쪽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오른쪽(동북쪽)으로 나아가니 바위 지대를 오른쪽으로 돌아가는데, 70~80도의 경사를 이룬 쉰길바위에 이르니 열 명 정도 되는 암벽꾼들이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까 들린 고함소리는 이들이 낸 함성이었던 것이다. 오렌지색 표지기와 흰색의 ‘大邱高等’ 표지기도 눈에 띄었고 너덜 지대를 지나 ‘유학산 5번 구조 지점’ 표시판에 이르니 북쪽으로 가파른 너덜길이 잠시 이어졌고, 노란색의 ‘왜관유학산악회’ 표지기도 눈에 띄었다.

(14:05) 주능선에 이르니 ‘유학산 6번 구조 지점’ 표시판이 걸려 있는데, 왼쪽(서쪽)으로 나아갔다. 828m 지점으로 여겨지는, 나무가 시야를 가리는 헬기장을 지났다. 안테나가 설치된 언덕에 이르니 시야가 트여 팔공산, 황학산, 소학산, 영암산, 등이 바라보였고 서쪽으로는 정상의 팔각정이 지척이었다. 넓어진 길을 따라 정상에 이르니 나무에 걸린 김정길님의 ‘유학산 1125번째 산’ 표식이 눈에 띄었고, 삼각점은 뽑힌 채 방치되어 있었다. ‘유학산’ 안내판에는 6·25 때의 탈환전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14:17) 팔각정에 오르니 사방으로 시야가 트였다. 금오산, 낙동강, 구미시 일원, 천생산, 냉산, 팔공산, 가산, 황학산, 소학산과 그 밑의 도개온천 지구, 숲데미산, 영암산, 등이 바라보였다. 서쪽은 뿌연 가스로 인하여 시야가 흐렸다.

(14:23) 팔각정을 내려서서 ‘↑헬기장 160m, ↓820고지 1.35km’ 이정표를 뒤로 하고 서쪽으로 돌계단길을 내려서면 곧 오른쪽(북쪽)으로 초록색 ‘적봉산악회’ 표지기가 걸린 갈림길이 보이는데, 학하리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이어 ‘박부성 선생 추모비’가 보였고, 너른 헬기장에 이르니 왼쪽으로 내리막길이 있고 이정표에는 ‘↓839고지 160m, ←도봉사 640m·팥재주차장 1340m’로 적혔다. 봉두암산으로 가기 위하여 서쪽으로 나아가니 임도 수준의 너른 길이 이어졌다.

(14:31) 너른 길이 오른쪽으로 휘는 데서 ‘자연사랑’과 오렌지색 표지기가 걸린 서쪽 길로 직진하였다. 생각과는 달리 호젓한 숲길이 이어졌다. 잠시 뒤 남서쪽 내리막길이 잠깐 이어지다 곧 북서쪽으로 길이 휘었는데, 능선이 뚜렷하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하니 여기서 봉두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잘 찾았어야 했다) 길은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북동쪽으로 휘어 내렸고 북북서쪽으로 이어지면서 둔덕을 넘었다. 당초 봉두암산으로 가려고 했는데, 지도로 확인해보니 그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놓친 것이다. 하기야 정맥 종주도 아닌데, 굳이 그 쪽으로 가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15:03) 언덕(×530m)을 지나니 폐묘가 보였고, 오른쪽 뒤에서 붉은색 표지기가 걸린 소로가 합류하였다. 다음 언덕에 이르니 뚜렷한 길은 북서쪽으로 이어져 학하리 쪽으로 내려서는 듯하였다.

(15:07) 남서쪽으로 난 흐릿한 능선길로 들어서니 길 흔적이 뚜렷해지기 시작하였고, 방향은 대략 서북서쪽이다.

(15:29) 삼각점이 설치된 언덕(△290.1m)에 이르니 주위는 벌목되어 있는데, 정면으로 봉두암산과 금오산이 바라보였다. 잡목을 뚫고 북서쪽으로 소로를 따르니 철탑을 지나게 되었고, 떼가 벗겨진 무덤도 지났다. 남남서쪽으로 잠시 휘었다가 서쪽으로 이어지면서 延安李氏之墓를 지났다. 咸安趙氏之墓을 지나면 길이 서북쪽으로 이어져 작은 밭에 내려섰고 이어 시멘트길이다.

(15:43) 시멘트길에서 왼쪽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백곡지 둑이 보였고, 오른쪽으로는 방치된 듯한 축사가 보인다. 곧 T자 형 갈림길에 이르러 오른쪽(북쪽)으로 농로인 시멘트길로 나아가니 천생산이 정면으로 바라보였다.

(15:50) ‘푸른동산’ 가든이 자리한 4차선 904번 지방도에 닿았다. 왼쪽(서쪽)으로 나아가 구평제1수퍼와 ‘구평유봉주유소’를 지났고, (15:54) 불바위 삼거리에 닿아 유학산 산행을 종료하였다. 주차해 둔 성곡으로 가기 위해서는 봉두암산을 넘어야 하는데, 시간에 여유가 있어 인근 중화요리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 불바위~鳳頭岩山(~440m)~성곡 산행기

•도상거리: 7.7km
•날씨: 맑음, 20℃
•오후 4시 27분 경 불바위 삼거리 출발

(16:27) 불바위 삼거리를 출발, 4차선 도로를 따라 막다른 데 이른 뒤 왼쪽 동네길을 따라 개울을 따라 난 마을길을 만났다. 남쪽으로 나아가 작은 다리를 건너니 ‘봉두암산 입산통제’ 표시판이 세워져 있고 옆에는 산불감시요원이 타고 온 승용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 많은 사람들이 나물 채취를 하러 산에 올라갔을 터이므로 입산을 금지하지는 않을 듯하였다. 백곡지 둑을 지나니 시멘트길이 흙길로 바뀌면서 임도가 이어지는데, 낚시꾼들과 나물을 캐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놓아 기르는 닭들이 많이 있는 간이 가든을 지나니 舊임도는 직진이고 새로 만든 산판길은 오른쪽(남서쪽) 능선으로 이어진다.

(17:02) 능선에 이르러 유학산 쪽으로 능선길이 있음을 확인하고는 서북쪽으로 나아갔다. 철탑을 지나 완만하고 부드러운 산판길이 이어졌다. 고사리를 채취하고 내려오는 부부를 마주쳤고, 무덤 세 개에 이르니 본격적인 등산로가 이어졌다. 하늘색 표지기가 보이면서 경사가 가팔라졌고, 왼쪽에서 흐릿한 길이 합류하면서 완만하게 북북서쪽으로 이어졌다. 호젓한 숲길이다.

(17:21) 언덕에 이르니 Y자 갈림길인데, 오른쪽 길은 백곡지 뚝으로 이어지는 듯하였다. 왼쪽(서쪽) 빨간색 ‘구리산맥클럽’이 걸린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경사가 누그러지면서 바윗길이 잠시 이어졌고, 나뭇가지 위로는 뭉툭한 봉두암산 정상이 바라보였다.

(17:31) 얕은 안부에 이르니 오른쪽에 빨간색 표지기가 대여섯 개 걸린 내리막길이 보였고, 직진하여 오르다 보니 길 왼쪽에 급한 벼랑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데, 아마도 쉰길바위인 듯하였다. 쉰길바위 위에서는 동~남~서쪽으로 시야가 확 트인다. 이 시각에도 나물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몇 눈에 띄었다. 헬기장에 이르니 바로 오른쪽 7m 높이의 바위에는 생나무 사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17:44) 바위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확 트여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과 금오산, 구미시 일원, 냉산, 천생산, 북동쪽 멀리 의성의 비봉산, 유학산, 황학산, 소학산, 숲데미산, 누진산, 영암산, 등이 바라보였다.

(17:46) 바위를 내려와 서쪽 무덤이 이르니 ‘자연사랑, 나라사랑’ 표석이 설치되어 있는데, Y자 갈림길이다. 보다 뚜렷한 왼쪽(서쪽) 길을 따르니 곧 왼쪽으로 흐릿한(주등산로와 비교하여) 갈림길이 보여 그 쪽으로 내려섰다. 가파른 내리막이 남남서쪽으로 이어졌는데, 급경사에는 동아줄도 걸려 있었다. 떼가 벗겨진 쌍묘와 무덤 몇 개를 지나니 대숲이 나오는데, 길은 민가로 바로 내려서지 못하고 동쪽으로 휘어 공사하다가 만 절개지 공터 아래로 이어졌다. ‘1987호 공사방해금지가처분’ 고시판을 지나 동네길을 따르면 중리에서 다부동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만난다.

(18:12) ‘↓석적면 장곡 보건진료소’ 표시판이 걸린 도로에 닿아 서쪽으로 가다가 부경자동차 학원과 장곡초교 사잇길을 거쳐 (18:30) 성곡교에 이르니 동쪽으로는 봉두암산, 유학산, 숲데미산이 올려다 보였고 서쪽으로는 얼굴 모양을 한 금오산 바로 오른쪽에 석양이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