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03년 3월 27일, 4시간

들머리 : 불광동 대교정 ~ 족두리봉 남릉 ~ 족두리봉 직사면 ~
향로봉 ~비봉 ~ 문수봉 ~ 청수동암문 ~ 남장대지 ~
행궁지 ~ 중흥사지 ~ 북한산장 대피소 ~ 용암문 ~
북한산장 매표소 : 날머리

누구랑 : 나 혼자

내일의 암릉 산행을 위해 목욕재계는 물론 부정탈까… 이 다음에 사리(舍利) 나오겠네. 일찍 자는데 우리 집 (개)장금이가 얼굴을 마구 핥아댄다. 이걸 내일 당장 된장을…
오늘 오후에 교회에서 심방 온다는 집사람 경고에 도망치듯 집을 나선다. 난 아직 세례도 안 받은 나이롱인데 뭘.

불광역에 하차, 대교정 골목으로 오늘 산행의 들머리를 삼는다.
족두리봉 남릉길로 오르면서 줄기차게 떨어지는 굵은 땀방울이 예사롭지 만은 않은데 저 멀리 첫 아이 날 때까지 살았던 녹번동 현대아파트가 보여 내심 반가웠다. 족두리봉에 접근할수록 바위 오름은 더욱 심해지고, 족두리봉 직사면 바로 밑에서 바라보는 암릉(일명 공룡슬랩)은 가히 입을 못 다물 정도. 오름 초입은 직벽에 발을 낄 수 있는 틈이 3개 정도, 그 위에 중생대 공룡이 만들어 놓은 것만 같은 구멍들이 송송송. 오를수록 잡을 수 있는 틈이나 홀드는 안 보이는 것 같다. 바위에 붙었다 떨어지기를 몇 번, 건너 편 우회 바위 위에는 몇 명이 가지도 않고 관심 있게 쳐다본다(‘저 쪼다’ 하는 것도 같고). 이른 아침이라 선등자도 없고 도저히 오를 자신이 없다. 그래 ‘가늘고 길게 살자’로 여지껏 버텨온 난데. 아무도 안 보길래 슬그머니 좌측 우회 바위로 빠진다. 하지만 그것도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은데, 웬 오십줄의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우회로로 가라 하면서 바위에 붙으시길래 오르다 말고 멋 적어 거기로 오르나요 하면서 여쭤 본다. 새가슴 음메 기죽어.
애써 내려오는 동안 아저씨는 바람 같이 올라가시고, 도로 나 혼자.

그래 쥑기 살기로 다시 붙어 보자. 설악 용아장성 개구멍 바위도 껌이었는데.
붙었다 내리기를 다시 몇 번, 직벽 초입은 어거지로 올랐으나, 다음도 만만치가 않다. 손가락 낄 틈도 발을 거치할 데도 없이 급경사를 무릅까지 동원하여 네 발과 두 손, 열 손가락, 고매한 인격(배)까지 깔아 비벼대며 온 몸으로 접지, 엉금엉금 기어오르고 마지막 아찔 구간은 우주 유영하듯 뒤도 안 돌아 보고 뛰어 올랐다. 족두리봉을 이렇게 오르니 앞으로는 억수로 굵고 길게 살란다.

산님, 벗님, 산하 가족 여러분, 족두리봉은 절대 오르지 마세요. 장비없이는 인간이 오를 데가 아닙니다. 예각으로 접힌 무릅을 발 힘만으로 일으켜 온 몸을 솟구쳐 세워야 합니다. 그래도 오르시려거든 온 몸을 바위에 믿고 맡기세요. 지구를 지긋이 밟고 있는 인간의 몸은 자기장과 같은 마찰력이 있습니다. 자꾸 밑을 내려다 보고 겁이나 발 떼기가 무서운데, 발 받침없어도 온 몸을 바위에 밀착시키면 안 미끄러 지더라구요, 오르다 깨우쳤읍니다. 온 몸을 바위에 믿고 맡기세요. 타이태닉호 선수 난간에 캐더린 윈슬렛이 몸을 맡기듯 오르려는 바위와 하나되세요.

족두리봉 정상을 지나 바위 능선은 좌우 낭떠러지에 축소판 용아릉 같았고, 향로봉 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놀란 가슴에 향로봉은 우회키로 했으나, 일진이 나쁜 건가, 이번에는 아까 그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금지 구간 쇠철망 지나 향로봉 직벽에 앞세웁니다. 미끄러지면 장기 6개월, 떨어지면 장기 3년 각오하고 올랐으나, 의외로 족두리봉에 비해 힘들지 않고 올랐습니다.
내친 김에 비봉, 문수봉을 우회없이 오르고 대남문으로 빠졌으나, 내가 가야할 길은 청수동암문을 지나 남장대지, 행궁터임을 뒤늦게 알았지요.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사온 김밥을 풀어 먹자니 당근 두 개, 단무지 한 쪽, 시금치가 전부네. 해도 너무하네.

본의 아니게 알바 5분. 청수동암문에서 의상능선으로 조금가다 행궁터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조금 가다 남장대지터, 그 길로 쭉 내려가면 행궁터다. 나라의 변란시 왕의 피난처로,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비련의 조선 왕가는 국내에서 살기 힘들어 반은 미국에 살며, 반은 전라도 광주에서 왕조 복원을 꾀한다는데, 몇 일전 신문 기사에는 파시스트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쫒겨나 스위스에 망명중인 이탈리아 사보이왕가의 남정네들을 56년만에 귀국시키기로 의회에서 결의를 했다나. 우리도 상징적인 왕가 복원후, 무자비하게 몰수된 재산(토지만 수억평이라 함) 대신 조그만 궁 하나 내줘 살게 함이 어떨런지. 됐심더, 아주 벌떼처럼 일어나네.

중흥사지까지 내려와 생각하니, 지금 산성 입구로 하산하면 목사님 심방 시간인 2시에 걸릴 것 같아 북한산장 대피소로 다시 0.8km 오름길을 선택한다. 진한 육수를 빼내면서 북한산장 대피소를 지나 용암문을 통과, 도선사 뒤 산장 매표소로 오늘의 날머리를 삼는다.

제일 싫어 하는 지루한 도선사 내림길, 위험한 암릉 오르내림에 전에 없던 양발 발가락이 앞으로 쏠려 아파온다. 산 벗이나 있었으면 동무 삼아 내려갈텐데. 12시 조금 넘은 시간, 북한산 산자락에서 혼자 막걸리나 한 잔 하고 가야겠다. Manuel 너 어딨니?

내일은 산초스팀에 동반산행을 요청하여 숨은벽과 호랭이굴을 경유, 백운대 북서벽을 오른다. 올 겨울 세번의 숨은벽 탐색과 호랭이굴 진입 실패의 아픈 기억이 있는데 서로 의지하며 기대되는 산행임에 틀림없다.

산 벗님들, 오늘의 단독 암릉 등정을 축하해 주세요. 너무 두려웠읍니다.
언제나 즐산, 안산입니다.


▣ 백두 -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저도 그루투 자주 이용합니다 언제 함께 산행하시죠 기본장비는 준비되어있습니다
▣ manuel - 친구 ! 바위는 할수록 중독되네. 지난 가을 아내를 전구간 우회시키고 혼자 오르내린 수리봉(족두리)부터 향로 남서직벽, 비봉, 문수봉까지의 암릉길, 자네와의 용릉길, 내일 맞이할 숨은벽 길, 그리고 함께하기로 했던 염초 리지길, 그후엔 인수봉, 아니면 자운봉 표범길 ... 삼각, 도봉의 숨길이 100개 아니 1,000개는 넘을테고, 늘 님을 가슴에 담고 넉넉히 지나면 안전할걸세. 님은 언제나 우리 위에 있음일쎄. 바위하는 사람의 제 1덕목은 준비일걸세. 고생많았네. 그리고 한결 당당해진 친구의 모습에 내 고개를 숙임일쎄, 진정으로 ...
▣ 주왕 - mjlhalla님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생하며 오른 산행기인데 왜이리 재미있는지 모르겠네요. 지난번에 보다 손쉬운 서쪽으로 족두리봉을 올랐는데 다시 가보고 싶네요. 내일 산초스팀 여러분들과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되시기 바랍니다. 부럽당~~ 건강하세요.
▣ 빵과버터 - 거참! 승질 한 번 디게 급하네요. 벌써 산행기를 올리면 저는 우짠다요? 봄볕이 길다고는 하지만 8시간 운전하고 4시간 산행한 후 이빨 사이에 낀 고추가루 씻어낼 짬도 없이 컴 앞에 읹으니 바지런한 님의 글이 눈에 들어옵디다.... 저도 목사님 심방때 많이 도망 다녔습니다.... 도망도 힘이 있어야 도망갑니다.....그러나 결국을 마지막 까지 같이 가야할 사람은 식구입니다..... 관악산 만남때 버스칸에서 보았던 mjlhalla님의 준수한 얼굴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 김정길 - 교회에서 심방 온다는 집사람 경고에도 도망치는 뱃장 좋은 한라님, 심방시간을 피하려고 산행을 연장시키는 한라님, 한라님의 심정을 잘 이해한다는 빵과버터님, 당신네들 도대채 뭘 믿고, 그러다가 늙어서 어쩔거며, 죽어서는 또 어쩔겨, 장가들은 잘 가셨구먼? .. 오늘 집 이사하고 PC방에 나와서 .. 엉아가
▣ 운해 - 족두리봉 치마바위 쪽으로 오르셨군요.오금이 저립니다.항상 안전산행 하시고 .산쵸스팀과 합류하신다니 반갑기도 합니다.건강하세요.
▣ 라파에루 -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요즘 암벽타기의 글이 올라오는군요. 나처럼 초보 산악인은 암벽타고 싶어도 자제를 하고 있는데요. 자꾸 글이 올라오면 부화뇌동하지 않을지.. 아무튼 안전산행하세여~
▣ mjlhalla - 덧 글 주신 여러 산님들, 감사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산초스 형님들 의지하며 호랭이굴 무사히 지나 칼바위로 내려왔읍니다. 김선생님, 여전히 산과 함께 하시죠. 1500산 무사 등정 주님과 함께 기원합니다. 빵과 버터님, 달마산 잘 다녀오셨지요. 형수님 잘 계시죠. 안부 전해주세요. 주왕 아우님, 남녘 산행 갈거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꾸벅.
▣ mjlhalla - 덧 글 주신 여러 산님들, 감사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산초스 형님들 의지하며 호랭이굴 무사히 지나 칼바위로 내려왔읍니다. 김선생님, 여전히 산과 함께 하시죠. 1500산 무사 등정 주님과 함께 기원합니다. 빵과 버터님, 달마산 잘 다녀오셨지요. 형수님 잘 계시죠. 안부 전해주세요. 주왕 아우님, 남녘 산행 갈거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꾸벅.
▣ 산초스 - 아 어제 숨은벽에서 토요일 족두리봉에서 엄청 고생하였다더니 이제 봅니다.우리산행기는 점심먹고 작업하려고 준비마치고 하여간 향로봉이나 호랑이굴에 비하면 대단히 위험한 구간이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살떨려 길게 안전하게 오래 산행합시다.^^**
▣ 김찬영 -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지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안산하십시요
▣ san001 - 재미있는 산행을 하셨군요. 잘 읽고 갑니다. 안산 즐산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