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소나무 춘양목의 주산지인 각화산·왕두산

 (경북 봉화)

 

 


 

                < 한국의 자랑인 명품 소나무 춘양목>

 

 

 


    각화산과 왕두산 개요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의 경계를 이룬 각화산(1,177m)은 산세가 중후하고 모난 데가 없는 육산으로 그리 특징 있는 산은 아니지만 워낙 고산준령에 막혀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점 때문에 이곳에 태백산사고지(史庫地)가 설치되어 조선왕조실록·왕실족보 등을 보관했던 곳입니다. 춘양목이라 불리우는 재질 좋은 이 지방의 소나무를 군목(郡木)으로 삼은 이 고장 사람들은 곧게 자란 춘양목을 닮은 듯 높은 기개를 자랑합니다.


  왕두산(1,044m)은 각화산에서 남동 방향으로 약간 가지를 틀어 약 2km지점에 위치한 산입니다.

 

 


  각화산 가는 길

 

  2006년 7월 8일 토요일 아침, 중앙고속도로 풍기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온 등산버스(G산악회 주관)가 5번 국도를 타고 안동방면으로 가다가 36번 국도로 갈아타고 봉화를 향하여 달립니다. 예로부터 안동에서 울진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는 말이 국도이지 길이 매우 꼬불꼬불하고 또 왕복 2차선 도로가 대부분이어서 속력을 낼 수 없는 험로입니다.

 

  그래서인지 현재 국도의 확장과 선형개량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중간에 길이 끊어져 915번 지방도로로 빠졌다가 다시 국도로 재 진입하는 등 길을 찾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관광버스 대신에 자가용을 운전할 경우 길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큰 고생을 할 것입니다.


  어느 순간 좌회전하여 88번 지방도를 타고 영동선 철도가 지나가는 춘양역에 이르러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석현리에서 각화사 이정표를 보고 우측으로 들어갑니다. 차량 두 대가 교행할 수 없는 좁은 마을길이지만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이 없으니 마음놓고 들어가 사찰입구에 정차합니다(11:15).

 

 


  천년고찰 각화사(覺華寺)

 

  버스에서 내리자 산악회장의 유도로 몸풀기 운동을 한 다음 전부 모여 단체사진을 찍습니다. 하차하는 즉시 등산대회를 하듯 숨 돌릴 틈도 없이 산 속으로 사라지는 산악회도 있지만 이곳은 한결 여유가 있습니다.


  약 5분간 지체한 후 위로 올라가니 각화사입니다. 범종각을 겸한 일주문에는 "태백산 각화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뒤에 있는 산 이름이 각화산인데 왜 태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독자들은 의아할 것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태백산은 우리 민족의 모산이자 영산입니다. 최근에는 백두대간(1대간 9정맥)이 우리의 산하를 대표하는 산줄기로 인식되고 있지만 백두대간 개념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는 태백산맥이 이 위치를 점했다고 생각합니다.


 

                                    <태백산 각화사 현판>

 

 


  산맥이라는 말은 일제가 사용한 용어라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태백산맥의 존재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소설가 조정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해냄출판사)에서 동족상잔의 아픔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산악인 남난희는 "하얀능선에 서면"(수문출판사)에서 60일간 엄동설한기간 중 감행한 2천리 태백산맥의 단독연속종주를 실감나게 묘사해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줍니다.


  이와 같이 태백산맥을 낳게 한 태백산은 국토의 중심에 서 있는 중요한 산이기에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사찰도 태백산이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영주의 부석사를 들 수 있습니다. 부석사의 뒤에 있는 산은 봉황산(819m)이지만 일주문에는 태백산부석사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 각화사도 태백산의 지류에 있는 각화산 대신에 태백산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각화사는 서기 676년(신라 30대 문무왕16년) 원효대사가 다른 곳에 있던 사찰(람화사)을 이곳으로 이전하고 각화사라고 명명한 천년고찰입니다. 창건당시 800여 승려가 수도하여 국내 3대 사찰로 손꼽혔습니다(자료 :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서 일부 인용).


  각화사는 조선시대 때는 태백산 사고의 수호사찰이었습니다. 태백산 사고는 1606년(선조39년)에 지어져 1913년까지 약 300년 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해왔습니다. 오늘날 태백산 사고는 불타 없어졌고 그 자리에는 부서진 기왓장과 축대만이 들풀 속에 흩어져 있지요. 사고에 보관되어있던 조선왕조실록(진본)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중입니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서니 대웅전의 모습이 제법 화려합니다. 오른쪽으로는 각화선원이 있는데 출입구가 닫혀있는 이유는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선원으로 등록하여 전국의 수좌들이 모여 공부하는 도량으로 이름이 나있기 때문입니다. 


 

                         <아담한 대웅전(오른 쪽은 각화선원)>


 

                        <등산로로 접어 들면서 내려다본 사찰>

 

 


  춘양목의 주산지

 

  봉화군 춘양면은 우리나라의 수목 중 가장 쓰임새가 많은 재목인 춘양목의 발상지입니다.  각화사 왼쪽 등산로로 들어가니 이름 그대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하늘로 죽죽 뻗어있습니다. 이들 소나무는 각화산에서 왕두산을 거쳐 형제봉을 돌아 갈 때까지 계속 이어져 사람들에게 신선한 솔내음과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를 선사합니다. 
 

                                                <춘양목>


 

                                           <춘양목>


  춘양목은 봉화의 명물이요 대명사로서 자랑스런 특산물입니다. 그러나 춘양목이라는 종류의 소나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춘양면을 중심으로 한 반지름 60km안팎의 산지에 자라고 있는 나무를 뜻하며, 일명 적송이라고 합니다(자료 : 봉화교육청 홈페이지).


  춘양목은 질이 단단하고 낙엽송처럼 곧게 수직으로 성장해 국내에서 가장 좋은 목재로 인정받아 한국이 자랑하는 최상의 목재입니다. 춘양목은 춘양을 비롯한 인근지역의 특수한 기후로 잘 자라며, 특히 춘양역이 목재 집산지가 되면서 더욱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춘양목의 특성을 보면 보통 소나무보다 생장이 3배 이상 느리고 곧게 자랍니다. 심재(나무의 가운데 부분)가 붉으며 재목으로 사용하였을 때 뒤틀림이 거의 없는 나무입니다. 조선조에 궁궐에서 쓰이는 나무는 거의가 이 나무를 사용하였고 최근에는 유명사찰과 고궁보수 등에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한옥재목으로는 최고입니다. 춘양의 산기슭에 자라는 아름드리 소나무들 중 재목감이 많습니다(자료 : 봉화정보화마을 홈페이지). 

 

  춘양목은 해발 600m 이상의 높은 산지에 연간 평균 기온이 4∼10℃의 차가운 기온과 사질양토 중 약산성 토질에 적합하다고 합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춘양목 규모는 봉화군에 1,200정, 울진군 불영계곡 주변에 800정, 강원도 삼척·정선·영월일대에 1,500정 정도인데, 태백산 주위의 자연환경 속에서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소나무로서 성장과 품질면에서 가장 우수한 품종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자료 : 봉화교육청 홈페이지).
 

 

 

  각화산 정상
  
  각화사에서 각화산능선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매우 가파른 오르막이 간혹 나타나기는 하지만 부드러운 흙 길입니다. 그러나 능선이 아니어서 바람 한 점 없습니다. 머리띠를 두르고 등산모자를 썼지만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부지런히 훔쳐야 할 지경입니다. 산 속의 기온이 섭씨 21도라고 하는데도 습도가 많아 체감온도는 그 보다 훨씬 높은 것입니다.


  등로에는 "누런하늘말나리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어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짙은 숲 속이라 다소 어두운 가운데서도 유난히 노랗고 붉은 빛을 띠는 나리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 꽃은 긴 꽃대에 두 개 또는 세 개의 봉오리를 맺고 있으며, 한 개는 봉오리로 남겨둔 채 다른 것만 꽃을 피우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 개의 꽃을 동시에 피운 나리꽃을 보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누런 하늘말나리>


                             

 


  능선 삼거리에 도착해 왼쪽으로 들어갑니다(12:20). 등산로 주변은 온통 짙은 초록세상이어서 원시림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풀숲 사이를 약 200∼300m 정도 걸어가니 각화산정상입니다(12:24). 산행을 시작한지 약 1시간 만입니다. 
 

                                        <초록의 세상>


 

                                      <초록의 세상>

 


  정상에는 대구신암산악회에서 A4 용지에 코팅을 해서 걸어 놓은 "각화산(1,176.7m)" 이정표가 있어 그나마 증명사진을 찍습니다. 운반상의 문제로 표석을 세우기는 어렵겠지만 봉화군과 춘양면 관계자는 춘양의 자랑인 춘양목을 이용해서 아담한 이정목이라도 세워두기를 기대합니다.

 

  정상은 풀숲으로 둘러 쌓여 전혀 조망을 할 수 없는 것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겨울철에는 북쪽의 이름난 태백산(1,567m), 북동쪽의 청옥산(1,277m), 서쪽의 소백산 줄기, 그리고 남쪽으로는 저 멀리 청량산(870m)이 보일 것입니다.  
 

                                   <각화산 정상 이정표>

 

 


  각화산에서 왕두산으로 

 

  각화산에서 몸을 돌려 세워 삼거리로 되돌아와 능선을 따라 진행합니다. 곧 이어 나타나는 넓은 헬기장에는 다른 산악회에서 찾아온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습니다(12:30). 이미 정오가 지난 시각이라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지만 갈 길이 멀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오늘도 산악회를 따라 거의 50여명이 산행을 나왔지만 사진을 찍다보니 또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산행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남들이 쉬는 시간에도 부지런히 걸어야합니다. 반면 사진을 찍는 시간은 한편으로는 다리품을 쉬게 되지요.


  지나가는 길에 여러 종류의 야생화를 만납니다. 노루오줌, 산꿩의 다리, 기린초, 냉초(산꼬리풀), 미역줄나무 그리고 털중나리도 보입니다. 야생화에 문외한인 필자의 눈에 보이는 것만도 이러한데 전문가일 경우 더 많은 야생화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왕두산에 도착할 때까지 딱 한번을 제외하고는 조망을 전혀 할 수 없습니다. 능선을 따라서 길이 계속 이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조망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그 만큼 숲이 울창하다는 반증입니다. 

 

                                     <노루오줌>


 

                                           <산꿩의 다리>


 

                                             <기린초(?)>

 

 

                                         <냉초(산꼬리풀)>


 

                                         <미역줄나무>


  군데군데 자생하고 있는 아름다운 춘양목을 카메라에 담아보지만 사진을 확인하니 일반 소나무와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이것이 아마추어 사진의 한계입니다. 잔뜩 흐린 날씨 탓에 등산로는 거의 어두울 정도로 침침하다가도 다소 숨통이 트이는 공터에 나오면 그래도 밝아져 음산한 풍경은 사라집니다. 
 

                

                                 <포근한 길>


  등로 한쪽에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고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오르막의 공터에 이르니 같은 산악회 소속 회원 서너 명이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냥 지나치려니 필자를 안다고 하면서 떡을 주기에 사양하는 척하다가 받아듭니다.

 

  예로부터 미운 이에게 떡 한 개를 더 준다는 말이 있지만 이 경우는 예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미운 짓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이들의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고맙습니다. 산에 오면 누구나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미덕을 발휘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도 오랜 지기처럼 친해지는 곳이 산이기 때문입니다. 떡을 한 입 베어 물고는 바로 뒤편에 또 다른 공터가 있는 것 같아 바삐 오르니 왕두산 정상입니다(13:33). 각화산에서 1시간이 걸렸습니다. 

 

 


  왕두산 정상

 

  정상에는 각화산과는 달리 가늘고 긴 나무를 깎아 세운 이정목이 있습니다. 볼품은 없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한결 낫습니다. 가는 방향으로 큰 춘양목 한 그루가 서 있는 가운데 이곳에서도 역시 조망은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북쪽으로 산의 능선이 조금 보이지만 흐린 날씨로 인해 그나마도 매우 희미하여 산세를 분간하는데는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왕두산 정상 이정목>

 


  기념사진이라도 남기려고 셀프기능을 이용할 까 망설이고 있는데 다른 산악회 소속 등산객 몇 명이 올라와 이정목을 점령하고 맙니다. 다행히도 이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틈을 이용해 단체 사진을 찍어주고는 필자도 증명사진 한 장을 확보합니다.

 

 


  형제봉 가는 길

 

  경사가 급한 왕두산 정상을 조심스럽게 내려옵니다. 길바닥은 많은 습기를 머금고 있어 발걸음이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길고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지다가도 급한 오르내림이 반복됩니다. 푹신한 낙엽과 보드라운 송엽이 쌓인 등산로는 흡사 양탄자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등로에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누런하늘말나리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고 또 참꽃나무겨우살이와 물양지꽃 및 동자꽃도 목격됩니다.  
 

                                <기품있는 춘양목>

 

 

                               <양탄자 같은 길>


 

                            <참꽃나무겨우살이>


 

                                                <물양지꽃>


 

                                             <동자꽃>

 


  높은 봉우리에 올라 지도상에 표시된 형제봉이기를 기대했으나 아무런 이정표가 없습니다. 다시 내려와 큰 봉우리를 보고 오르다가 오른쪽 사면으로 등산로가 비스듬하게 꾸부러지더니 앞의 전망이 확 트이는 능선에 도착합니다. 바로 산불이 발생했던 장소입니다.

 

 


  가슴아픈 산불의 흔적

 

  이제부터 등산로는 남쪽을 향하여 이어집니다. 눈앞에는 거대한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곳이 원래부터 초원지대가 아니라 산불로 인하여 울창한 수림이 불타버린 후 초원지대로 변한 것입니다. 하산하는 능선의 왼쪽 산과 계곡 그리고 그 반대편에도 산불이 난 자리입니다. 얼마나 시일이 경과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나지막한 식물들로 푸른 초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산불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시커멓고 큰 나무등걸이 그 당시의 참혹상을 잘 말해줍니다. 그동안 사소한 부주의로 인하여 크고 작은 산불이 많이 발생했지만 특히 지난해 4월초 강원도 양양에서 발생한 산불로 유명한 문화재인 낙산사가 잿더미로 변한 것은 두고두고 아까운 일입니다. 
 

                                              <화마의 상처 1>


 

                                          <화마의 상처 2>


 


  이곳의 산불도 능선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거의 피해가 없는 대신 왼쪽은 모두 불타버렸는데 자연의 복원력은 놀라운 것이어서 이제는 초원지대가 된 것입니다. 산 능선의 모습이 꼭 한쪽은 머리를 깎고 다른 쪽은 머리를 그대로 둔 이상한 종족의 머리모양처럼 보입니다.
 

                       <산 능선을 중심으로 산불이 발생한 왼쪽지역>

 

 

                                          <춘양목>

 

              

  
  지도를 보니 산불지대의 제일 처음 도착한 높은 봉우리가 형제봉834m)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무런 이정표가 없습니다. 이 경우 산세를 잘 아는 선두대장이 형제봉임을 알리는 표식이라도 해서 바닥에 두거나 나무에 걸어 놓았더라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많은 참고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림길에는 어김없이 산악회리본을 붙여두어 홀로 길을 걸으면서도 산악회의 가이드를 따라 걷는 느낌이 들도록 배려한 것은 참으로 사려 깊은 조치입니다.    

 

 


  하산과 인삼밭

 

  능선을 따라 앞서 내려가는 등산객들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니 꼭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주인공의 자녀들이 알프스를 배경으로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목가적인 풍경입니다. 또한 지나온 능선을 되돌아보는 경치도 볼만합니다. 한쪽 산기슭에는 무더위 속에서도  주민들이 제초기를 가지고 잡목을 자르고 있습니다.
 

                                      <초원으로 변한 산불지대>

 

 

            

                                <뒤돌아본 지나온 능선>



  능선으로 이어지던 등산로가 좌측으로 꼬부라져 민가가 위치한 도로에 도착합니다. 폐가된 가옥의 방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습니다. 인근 밭에는 인삼을 재배하고 있는데 꽃대에는 초록과 붉은 색의 꽃술덩어리가 맺혀있습니다. 인삼의 꽃씨가 익은 후 바람에 날아가 산에서 자라면 자연 산삼이 될 것입니다.   

 

                                               <인삼밭>


 

                                       <인삼>


  지루한 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니 산악회 측에서 운행하는 봉고차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시냇가에 도착합니다(16:30). 오늘 산행에 5시간 1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차량이 사람들을 태우고 운행하는 동안 밑으로 내려가 땀을 씻은 후 옷을 갈아입으니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아 금방 땀이 흘러내립니다.

 

 


  에필로그  
                  
  다시 올라온 봉고차를 타고 소로2리 경노회관에 도착합니다. 산악회 측에서 제공하는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는 주변을 둘러봅니다. 개울 건너편 축사의 닭장에는 토종닭들이 꼬꼬댁거립니다. 하루에 시골버스가 두 차례씩 운행된다는 적막한 산골마을이어서 그런지 가옥도 몇 채 없고 동네 주민들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마을회관 앞 정자에는 무더위를 피해 나온 할머니 몇 분이 쉬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삶의 터전인 외딴 산골마을까지 외지에서 배낭을 매고 찾아온 이들을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어미닭>

 

                        

                 


  각화산과 왕두산은 그 산세가 멋있거나 아니면 이들 산에 올라 시원한 조망을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다만 겨울은 예외이겠지요). 그러나 춘양목의 본고장인 이곳에 들러 그윽한 솔잎향기를 맡으면서 인적이 드문 푸른 숲 속을 호젓하게 걸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은 도심의 공해에 찌든 현대인에게 청량제가 될 것입니다.


  장마전선이 걸쳐있는 있는 가운데 제주도지방부터 점차 북상하는 제3호 태풍 "에위니아"의 영향을 받아 주말에 비가 온다는 예보로 산행을 신청하면서도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도 하산하여 귀가할 때까지 날씨가 좋아 시름을 떨친 하루였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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