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산(933.0m) 상주시 모동면

⊙언 제 : 2004년 5월 1일(토) 대체로 구름 많음
⊙어디로 : 수봉리-백화산-반야사-주행봉-반야사
⊙얼마나 : 도상거리 약 15.0km, 8시간 00여분(알바 1.8km, 40여분포함)
⊙누구랑 : 언제나 외톨이
¤해뜸 ; 05 : 37(33) 해짐 ; 19 : 22(13) 서울기준. ( )안은 대구지역

08 : 50 수봉리 버스승강장에서 출발
09 : 02 ~ 05 주차장 앞 안내판
09 : 38 ~ 40 산성이 시작된 첫째봉
09 : 00 ~ 10 싹아진 묘지봉
10 : 20 ~ 25 산성 오른봉
10 : 36 안부(우)삼거리
11 : 00 ~ 30 백화산 정상(중식, 주행봉 3.1, 금돌성 1.7km)
11 : 56 ~ 12 : 00 헬기장
12 : 12 ~ 20 반야사가 잘 보이는 바위
12 : 33 ~ 40 급수보살상
12 : 45 넓은길 만난 삼거리갈림길
13 : 05 ~ 50 백화산과 주행봉갈림길
14 : 10 ~ 15 주능선안부
14 : 37 ~ 40 조망이 좋은 첫 번째 암봉
14 : 50 ~ 55 반야사가 잘 보이는 평평한 바위봉
15 : 12 ~ 15 정상 앞 바위최고봉
15 : 26 ~ 50 주행봉(874.0m)
16 : 05 ~ 10 전망바위
16 : 40 날머리 석천잠수교

세조 어필의 미련은 남겨두고...

언젠가 오봉산산행 때 머잖아 고속철도가 개통이 되면 통일호열차도 비둘기열차 짝 나겠다고 했더니 우려하던 현실이 그대로 연출되고 보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작년 이맘때 통일호열차로 황간까지 2,500원이면 갈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무궁화호로 5,100원을 들여서 가야하니 두 배가 넘게 드는 셈이 돼버렸다.

동대구역(07:07)을 출발하여 황간(08:21)에 도착한 시각이 버스시각(모동행 08:30)과 용하게 맞아떨어져 작년과는 달리 민폐를 끼치지 않고 대중교통(수봉리까지 750원)으로 마음 푸근하게 갈 수 있었다. 그것도 거의 전세를 내다시피 하여 그 큰 직행버스에 운전기사를 포함하여 단 네 명만이 타고 간다. 더구나 멀지 않는 곳에서 한사람이 내리고 뒤이어 내가 내리면 기사와 승객 단둘이서 버스는 그렇게 떠나고 있었다.

수봉리 버스승강장에 내린 후 열차와 버스에 실려온 뻐근한 몸을 잠시 풀고는 바로 출발을 한다. 가게 옆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작년에 공사중이든 석천교는 완공된 새 다리로 변모하고, 새로 쌓은 제방을 따라 주차장에 이른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큰 안내판을 바라보며 보현사를 거쳐 지난번 하산코스를 거꾸로 가려했는데 보현사를 거치지 않고 능선을 따라 바로 오르는 코스가 있기에 그 코스를 택해 가기로 한다.

들머리가 어디쯤 있는지 그것을 찾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지라 좌측 능선 쪽을 바라보며 보현사 방향으로 천천히 가는데 한 백여 미터정도 가니 도로우측 철파이프 전주 맞은편쯤에 살짜기 드러나는 산길이 보이지만 단 하나의 리본도 걸려있지 않아 약간은 의심스러워도 능선에 올라서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아 그냥 그렇게 들어가 본다.

큼지막하게 조성된 장수 황씨 묘지가 드러나고 그 뒤로 등로가 열려진다. 관리가 잘되지 않은 벗겨진 묘지가 연이어 세기가 나타나고, 어느 정도 능선에 올라서고서야 간간이 낡은 리본도 하나씩 보인다. 살짝 비켜 가는 첫 번째 봉우리를 지나 또 하나의 벗겨진 묘지를 지나고서 너부러진 돌들이 모여있는 산성의 흔적도 나타나고, 솔숲사이 끼워 자란 연달래도 활짝 피운 꽃들로 반겨주기도 한다.

또 하나의 봉우리를 지나면 우측으로 낡은 리본이 있는 것으로 삼거리내림길이 있음을 말해주고, 이어 살짝 치받아 뚝 떨어진 안부를 지나 다시 치받은 다음 산성을 따라 안부네거리에 이른다. 능선 오름길에 좌로는 열두굽이 석천이 감돌고 우로는 금돌산성에서 뻗어 내린 능선줄기가 보는 즐거움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계속해서 산성 따라 오른 싹아진 묘지봉에서 한숨을 돌리는데 어느새 뒤따른 산님이 다가온다. 나처럼 홀로 다니는 모습이 너무 반가워 가볍게 인사하고 쉬어가기를 권했더니, 사적인 일로 올라갔다 바쁘게 내려가야 한다며 잠시 머뭇거리다 바로 올라 가버린다.

엄청나게 큰 경사진 바위에 이르러 좌우 골짜기조망에 황홀경에 빠지고, 이어 오른 봉우리에서는 비록 흐릿하나마 멀리 드러나는 산줄기 조망도 멋지게 펼쳐진다. 우로 비켜 돌아가는 봉우리를 지나 안부자리에선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다시 오른 길에 산성을 밟고선 전망바위에서 내려다보는 석천의 조망은 너무나 화려하다.

정상막바지에 이르자 사면으로 오르는 길은 뚜렷하지 않는 길에 코가 땅에 닿을 듯이 가파르다. 바위능선에 올라서자 그 가파르던 오름길은 끝이 나고 좌로 반야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 잡목사이를 헤치고 들어서면 자그만 한 까만 정상석이 먼저 반긴다.

'포성봉 933m 영동군'이라고 쓰여진 정상석이다. 대부분의 주변사람들은 한성봉이라고 부른다는데 뜻과 느낌이 좋지도 않는 이름을 버젓이 붙여놓은 것이 영 마음에 거슬린다. 제대로 된 고증이나 확인도 없이 건성으로 한 것처럼 느껴져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정상의 조망은 잡목으로 인해 그다지 훤하지는 못하다. 조망을 하기 위해서는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비켜가면서 해야할 정도다.

정상은 네 갈래로, 올라온 두 갈래와 좌측으로 주행봉 가는 길 그리고 우측으로 금돌산성 가는 길이 그것이다. 좌우로 두 갈래 길은 지난번 다녀갔던 길이라 이번에 반야사로 가는 길을 택해간다. 다시 돌아가다 갈림길에서 새벽 일찍 밥을 먹고 나온지라 허기가 들어 아직 점심시각으로는 이르기는 하나 그냥 여기서 도시락을 풀어헤친다. 굽이치는 석천을 바라보며 민생고 해결을 하는 이 또 무엇이 부러우리!!!.....

반야사로 향하는 능선은 아까 산성을 타고 올라올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중간중간 바위능선을 타고 내리는 것이 좌측아래 아찔한 광경도 봐가며 혹은 바위 옆을 돌아가기도 하면서 참나무와 소나무사이사이 활짝 핀 연달래도 한껏 분위기를 띄워 주기도 한다. 감상에 젖어 가며 가는 길에 오늘 두 번째 만나는 대여섯 분의 지나치는 산님들과도 반가워 일일이 다 인사를 나눈다.

헬기장을 지나고 반야사가 잘 보이는 바위능선에 이르러 조망을 즐기며 잠시 쉬었다 간다. 경사가 많이 누그러지면 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이어 넓은 공터에 최근에 조성이 된 듯 목마른 중생을 위하여 급수공양을 하는 보살상이 자리하고 있다.

고목아래 그늘에 비켜 앉아 물 공양을 하는 보살상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반야사로 들어가 세조 어필의 전설을 느끼러 가느냐 아니면 여기서 다시 주행봉을 향하느냐의 귀로에 선다. 아무래도 새벽 일찍 나선관계로 시각이 너무 일러 지금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많을 것 같아 다시 주행봉을 향해 오른다,

내려온 곳에서 우측 계곡을 따라 오르면 조금 넓은 길을 만나고 이어 나타나는 삼거리갈림길에서 좌측 개울을 건너는 코스를 택한다. 작은 너덜지대와 지계곡을 건너고, 계곡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얼굴에 젖은 땀을 씻어 내기도 한다. 계곡을 건너 한참을 지능선을 따라 오르는데 아뿔싸! 이게 어쩐 일이냐? 안부자리 주능선은 점점 멀어지고, 다시 백화산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허탈할 때가 있나! 긴 한숨과 함께 돌아선다.

아무래도 욕심이 너무 과했나 보다 서둘러 돌아서는 길에 삼거리갈림길에 와서 보니 안부로 가는 길에 붙은 리본은 보질 못하고 많이 달려 있는 쪽으로 생각 없이 따르다보니 알바가 되었다. 40여분의 허비로 다시 가자니 진이 빠지고, 돌아서자니 아쉬움이 남고 그래도 남는 게 시간이라 한참 쉬었다 다시 가기로 한다.

다시 방향이 다른 지능선에 올라서고, 잠시 뒤 묘지 한기와 함께 지능선 안부를 지나 주능선 안부에 이른다. 여기서 좌측 주행봉 가는 길은 지난번 산행의 역순이 된다.(아래 작년 산행기 참조)

나지막한 첫봉우리를 필두로 서너 개의 육봉과 예닐곱의 암봉이 줄줄이 다가서는데 못 되도 십여 개는 족히 될 봉우리들이 서로 잘 낫다고 뽐을 내는데 좌우 낭떠러지의 스릴과 조망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흡사 황석산 북봉가는 길(몇 해전 눈길산행 때 생각... 장비가 없어 고생 무지했음)이 이보다 더 할까?

조망과 암릉타기를 원없이 하고도 정상에서 또한 보여줄 건 다 보여준다. 원경과 근경의 조망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정상의 무덤까지도...
산꼭대기 묘지 보는 것이야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이곳과 황석산 북봉 아래에 있는 묘지는 뭔가 좀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향로봉 헬기장 옆의 무덤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다. 물론 바로 올라오는 길이 있긴 하지만 험한 암릉구간 사이에다 묘지를 섰다는데 대하여 유족들의 마음을 읽어야 할지 아니면 망자의 마음을 읽어야 할지?...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많다. 작년 이맘때 이곳은 무덤 위에 할미꽃이 만발했었는데 올해는 어떻게 된 게 몸통만 남아 있고 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작년보다 이틀이나 빠른데도 그새 다 떨어졌나? 그것을 보기 위해 힘듬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찾아 왔건만 올해는 우째 이다지도 보여주길 꺼리는지...

주행봉 할매요!!! 빼지 말고 제대로 좀 보이주소!...
안에 누워 계신 분이 할밴지 할맨지 모르지만 옷(?)입은 걸로 봐서는 할매가 확실할 것 같은데?... 아까 올라올 때부터 못 올라오게 도로 백화산으로 올려보내더니만 기어이 몸통만 남기고 다 숨겨 버렸네 쩝!...

요즈음은 옛날 뒷동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할미꽃도 보기 어려워 이런 곳까지 오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단석산에도 할미꽃군락이 있다던데 자주 가는 곳이라도 물때를 제대로 못 맞추니 원!... 가장 최근에 제대로 본 것이 침곡산 정상에 제법 많이 피었는걸 본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벌써 삼 년이나 지나버렸다.

여기서 남쪽봉우리를 거쳐서 가면 지난번에 올라왔던 코스가 되기에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반야사로 향하는 길을 택한다. 비좁은 바위사이 밧줄도 타고 전망바위에서 조망도 즐기며 쉬엄쉬엄 내려온 길은 반야사 조금 못 미쳐 석천잠수교가 있는 곳으로 내려온다.

아까 백화산을 내려왔을 때 갈려다가 시각이 너무 일러 하산 후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던 반야사를 가려는데, 마침 황간으로 나가려는 짚차가 있어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얹혀감에 따라 반야사 세조 어필의 미련은 또다시 남겨두고 떠난다.황간역에 막 도착하는 순간 열차(동대구행 16:58분 발)는 떠나고 정확히 두시간 후에 있는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기에 버스를 이용하려다가 괜히 저녁 무렵에 정체가 되면 별로 덕볼게 없다는 생각에 아예 개울에 나가 손발과 머리도 감고 깨끗이 씻어 땀에 찌던 옷도 갈아입는다. 옆자리 앉은 사람에게 땀에 찌던 냄새로 인한 불편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니 자가운전 할 때보다 훨씬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 점심도 일찍 먹은 관계로 저녁도 때 이르지만 해결을 하기 위하여 작년에 찾았던 그 식당을 찾았다. 이름을 몰랐었는데 다시 보니 '동해식당'이다. 그런데 1년 만에 다시 와보니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단지 음식값만 올랐네!... 1인분에 5,000원...

♠주행봉(874.0m) 영동군 황간면

◇산행일자 : 2003년 5월 3일(토) 맑음
◇산행코스 : 독점삼거리-주행봉-백화산-금돌성-보현사-수봉리버스승강장
◇산행거리 : 도상거리 약13km
◇산행시간 : 7시간 00여분
◇산행방법 : 나홀로 산행
◇일출 ; 05 : 35(32) 일몰 ; 19 : 24(14) 서울기준. ( )안은 대구지역

09 : 10 독점삼거리 버스승강장에서 출발
09 : 25 ~ 30 석천 물막이 수중보
09 : 50 ~ 55 소나무 아래 쉼바위
10 : 13 ~ 15 묘지
10 : 23 첫째 능선봉
10 : 45 둘째 능선봉
10 : 56 ~ 11 : 00 주능선봉
11 : 12 ~ 25 주행봉(874.0m)
11 : 48 첫째 바위봉
11 : 55 중간 바위봉
12 : 04 ~ 30 마지막 삼거리봉(중식)
12 : 41 ~ 45 안부네거리
13 ; 04 ~ 10 중간 바위봉
13 : 40 ~ 50 백화산 정상(주행봉 3.1km, 금돌성 1.7km)
13 : 56 뒷 바위봉
14 : 05 ~ 15 조망 바위봉
14 : 25 ~ 35 금돌성(정상 1.7km, 보문사 터 1.5km)
14 : 44 보문사 터(금돌성 1.5km, 갈림길 2.5km)
14 : 50 대궐터, 절터 가는 삼거리
15 : 10 ~ 30 삼거리 갈림길(보문사 터 2.5km, 보문 3.0km)
15 : 48 보현사
15 : 53 ~ 55 주차장
16 : 10 수봉리 버스승강장

城지기는 어디 가고...

동대구역(06:35)을 출발한 통일호(황간까지 2,500원)열차는 예전 비둘기호 열차와는 달리 연착 없이 거의 정시에 도착(08:28)하였다. 타지에 오면 습관적으로 주위를 살펴본다. 다른 역과는 달리 역 광장이 높아 앞에 나지막한 집들 위로 아담한 시가지가 펼쳐진다. 그 너머로 우뚝 솟은 주행봉 줄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 오면 으레히 민주지산으로 가리라 생각되지만 오늘은 정반대 방향으로 앞에 바로 보이는 산줄기라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중교통은 늘 시간이 문제였다. 황간정류장에서 모동가는 버스가 방금(08:30)떠나버리고, 다음 차가 9시30분에 있다하니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서 택시를 알아봤더니, 반야사까지 만원이라기에 선뜻 마음에 내키지 않아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린데 싶어 걸어가려고 백화산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면서도 혹시나 싶어 요행을 바라는 심정으로 지나가는 차를 향하여 손을 들었더니 승합차 한대가 선다. 얼씨구나 하고 얼른 차에 오른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반야사로 간다니까 백화산을 갈려면 보현사에서 가는 것이 더 좋다고 친절하게 일러주기에 고맙지만 생각하는 바가 있어 독점 삼거리에서 내렸다.

09:10 독점삼거리 버스승강장에서 신발을 고쳐 신고 가방도 야무지고 걸머메고 반야사 이정표를 보고는 그쪽으로 향한다. 포장도로지만 조용한 시골길의 정취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한참을 가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면서부터 석천이 옆으로 따라 붙는다. 강을 끼고 걷는 걸음이 한결 가볍다. 그런데 여기쯤서 강을 건너야 하는데 건널 곳이 없다. 뒤로 돌아다보니 저기아래에 물막이 수중보가 있기에 그리로 건너가려고 돌아섰다.

09:25 ~ 30 물막이수중보 위로도 일부 물이 살짝 넘어 그냥 건너가기엔 무리였다. 아직 산행을 시작지도 않았는데 그대로 건너 신발을 적실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신발을 벗고 강을 건너서 다시 신발을 신으면서 생각을 하니 오늘 산행도 무척이나 빡시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발은 아니지만 강발 일지라도 산이 가지고 있는 제 높이는 거의 다 올라야 될 것 같기에.....

밭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외딴집 쪽으로 들어가 두릅을 따고 계신 아주머니에게 산으로 오르는 길을 물었더니 밭 뒤로 난 길을 가리켜주신다. 덕택에 오늘 들머리는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출발 후 약간의 사면으로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가파른 경사로 오른다.

09:50 ~ 55 소나무아래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있으니 나뭇가지사이로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준다. 그래도 조금 올라왔다고 내려다보니 굽이치는 석천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땀을 식히고는 또 오른다. 얼마쯤 올랐을까? 능선위로 하늘이 보이는가 싶더니 묘지가 나타나고, 그 위로 작은 봉우리에 오를 때까지 오르막이 쉼도 없이 이어진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 약간의 암릉이 있고 주능선에 다가갈 때쯤엔 마지막 암릉으로 오른다.

10:56 ~ 11:00 주능선 봉우리에 올라섰다.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멀리 남쪽으로 민주지산과 삼도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대간을 따라 화주봉을 거쳐 황학산으로 힘차게 뻗어있다. 잠시 조망 후 주행봉으로 향한다. 가는 길이 쉽지가 않다. 바로 앞인 듯한데 암릉길이 깊이 떨어졌다 다시 치받는다. 암릉길의 묘미를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11:12 ~ 25 주행봉정상에 오르자 묘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험한 곳까지도 묘지를 섰다는 것이 너무 놀랍다. 햇볕이 잘 드는 묘지주위로는 할미꽃들이 만발하다. 바로 앞으로 뻗은 암릉길은 백화산을 향하고 저 아래 열두굽이 석천변엔 반야사가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12:04 ~ 30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지루한 암릉길이 끝나고 마지막 우회로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면 경사가 심한 내리막구간이다. 안부에 내려서면 좌우 내림길이 보이고, 좌로는 길이 좀 흐릿한 반면 우로는 제법 많은 리본도 붙어있고 길도 대체로 뚜렷하다. 반야사로 내려가는 길인가 보다. 안부를 지나자 곧 바로 오르막이 시작된다. 한참을 올라 중간쯤 작은 바위봉에 올라서서 숨을 좀 돌리고 또 다시 치받는다. 약간의 너덜지대도 지나면서 정말 줄기차게 오른다. 막바지에 다가와서는 땅을 집고 기어갈 정도다.

13:40 ~ 50 정상의 백화산은 지나온 주행봉과는 달리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역동감이 있는 주행봉을 포용하고 열두굽이 석천의 몸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육산(오를 때는 바위산 같더니)으로써의 푸근함이 느껴진다. 정상을 내려오면 중간봉우리를 하나 넘고 조금 더가면 조망하기가 좋은 곳이 있기에 그곳에서 또 조망을 즐긴다. 남동으로 추풍령을 넘은 대간 줄기는 국수봉을 지나 백학산을 향해 치닫고, 북쪽으로 충북알프스의 시작능선인 구병산줄기가 가로놓여 형제봉아래에서 대간과 만나 속리산 천황봉으로 이어진다. 한참동안 조망을 하고서는 천천히 내려간다. 산성터를 밟고 조금 가다보니 좌측으로 성벽을 쌓아 놓았다. 복원된 금돌성이다.

14:25 ~ 35 금돌성【금돌성은 신라시대 김흠이 쌓은 석성으로 전하는데 내·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성길이는 약 20km로써 신라 김유신(595∼673)장군이 백제군과 격전한 높이4m. 폭3.6m의 석성으로 1978년 국방유적 보수사업으로 성벽80m를 원형대로 복원한 곳으로 무열왕이 친히 이 성에서 5만의 신라군을 독려하였던 곳이기도 하다.-이상자료발췌】앞에 안내판을 바라보며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본다. 왜 하필 이 높고 험한 곳까지 올라와서 싸웠을까?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기기 위한 싸움은 아니었을 텐데. 모두들 어디 가고 이렇게 빈 성곽만 남았는지 복원된 산성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14:44 금돌성을 뒤로하고 사면으로 급경사로 내려가다가 어느 정도 완만해지고, 계곡의 물소리가 들릴 때쯤에 잡초가 무성한 넓은 터가 나타난다. 여기가 보문사 터. 표시기가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대궐 터 오르는 삼거리가 나오고, 개울을 건너고 길이 넓어지면서 마침내 합수지점 삼거리갈림길에 이른다.

15:10 ~ 30 양쪽 계곡에서 맑은 물이 모여드는 합수지점을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손발을 적시고 더위를 식힌다. 여기서부터는 비포장도로다. 물길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콘크리트로 만들어 물을 넘기기를 몇 번, 좌측으로 조금 떨어진 용소도 뒤로하고 길가에 바로 접한 보현사도 지나치면서 주차장에 이른다.

16:10 수봉리 버스승강장, 가게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한잔하면서 아주머니한테 차시간을 물어보니 한시간(대략17시30분 경)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차라리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는 게 쉽다기에 올 때처럼 또 한번 민폐를 끼치게 됐다.

황간역에서 부산행무궁화호(17:57분발 동대구까지 기본료 5,200원)열차표를 끊고 보니 여유도 있고 해서 저녁이나 먹고 갈까하고 식당(역에서 좁은 계단으로 내려와 좌측집 상호를 잊어버렸음)에 들렀는데, 올갱이국이라기에 뭔가 했더니 우리식으로 고디탕(1인분 4,000원)인데 우리와는 다르게 아주 얼큰하고 시원한 게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한 맛을 표현하면 된장,수제비,고디,매운탕이라고 붙이면 말이 될려나?...

※아래는 자료에서 발췌한 내용

백화산 하면 먼저 문경의 백화산을 떠올리지만 같은 이름의 백화산이 상주의 중화지역에도 우뚝 솟아있다. 그 이름하여 한성봉【백화산(구捕城峰). 포성봉은 일제가 우리민족의 문화말살과 국운을 꺾을 목적으로 금돌성을 포획한다는 뜻에서 이름 붙였다고 한다.】이라고 백화산 주변의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몽고의 차라대(車羅大)가 황령사(상주시 은척면 소재)승(僧) 홍지사(洪之射)에게 대패하여 성을 넘지 못하고 한탄한 데서 한성봉(恨城峰)이라고 부르던 것이 한성봉(漢城峰)으로 되었다고 한다. 해발 933m인 한성봉을 중심으로 샛별봉. 주행봉. 만경봉. 헌수봉이 솟아 있고, 이러한 산세에 의하여 금돌산성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행봉은 경북과 충북의 경계에 솟아 있는 암봉으로 산세가 험하여 등산하기에 힘든 산의 하나로 전설에 의하면 이 봉으로 그 옛날 천지개벽 때에 배가 지나갔다고 하여 주행봉이라 하고 두 산봉우리가 쌀개와 같이 나란히 솟아 있다고 하여 일명 쌀개봉이라고 했다고 한다.

반야사는 신라 성덕왕 19년(720) 의상(義湘) 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분인 상원(相源)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것이 없는데, 영동군에서 펴낸 책 『내고장 전통 가꾸기』등에 의하면 세조 10년(1464) 큰 중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복천암에서 법회를 마친 세조가 신미스님 등의 청으로 중창된 반야사에 들러 두루 살피고는 대웅전을 참배했다고 한다. 충청·경상감사는 물론 인근 고을 수령들이 모두 모여드는 야단법석이었다.
그런데 대웅전 참배를 마친 세조가 법회를 열도록 명을 내리자 어디선가 사자 등에 올라탄 문수동자가 나타난다. 절 뒤 망경대(望景臺)의 영천(靈泉)에 이른 문수동자는 세조에게 기도와 목욕을 권하고는“상감마마의 불심이 갸륵하시기에 그 공덕으로 말미암은 부처님의 은총이나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망경대 넘어 사라졌다.
영천에서 목욕 후 오랫동안 앓아오던 병이 나은 세조는 절로 돌아와 글씨를 써서 반야사에 하사하였다. 이것이 지금까지 반야사에 전해 내려오는 세조 어필이다. 사자를 탄 문수동자상도 조각되어 최근까지 전해져 왔으나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 해인 - 나홀로님의 산행기를 여기서 접하게 되니 무척 반갑습니다. 독자이며 대구근교 산행에 관한건은 자료로 잘 이용 하고 있으며 정보를 제공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 부족한 글 자료로 활용 하신다니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늘 근교산 위주가 되다보니 아직 전국구가 되지 못하고 지역구에만 살짝살짝 올리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신데 대하여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 도덕산 몽이 - 저도 어제 백화산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 3시간 30분 걸려서 버스로 45명이서 올랐습니다 덤으로 취나물도 뜻고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