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재-청화산-조항산-대야산-버리미기재 (백두대간)


2004. 4. 17/18            날씨: 맑음




4:10 늘재에서


성황당 엄나무가 서있는 언덕위 얕으막한 밭드렁을 따라 제법 운치있게 출발한 발걸음이 급경사를


만나면서부터 약간 경직되는 것 같다. 계속되는 급경사에 헐떡대는 가슴을 조율하려니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청화산에 오르면 속리산조망이 가히 절경이라던데 어떤 모습일런지 호기심을 자극해


가며 숨고르기를 해봐도 단내가 나고 입술이 바삭 말라온다.




민가의 불빛이 한참 아래에 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목을 휘감으니 비로서 정상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 힘이 솟는다. 초장 워밍업에 녹초가 되면 안 되는데 선을 넘었는지 염려스럽다.




5:10 청화산에 애써 올랐으나 속리산은 아직 새벽잠에 뭍혀있는지라 조용히 물마시며 가쁜 숨만


돌린 후 물 빠져나가듯이 정상바위를 넘어선다. 동쪽하늘이 훤해지면서 또 흥분이 일기 시작하는


것은 늘상 보는 일출이지만 항상 새로움이 있는 듯 기대를 갖게하기 때문인가.


여느때와 같은 시뻘건 태양앞에서 편안한 휴식을 잠시 갖는다. 다행스럽게 조망이 훌륭한 곳에서


일출의 시작을 맞게 되었으니 그 행복감은 말할 수 없이 증폭되었다.


 


 


시야가 트이면서 조항산의 윤곽이 드러나고 거리짐작도 가능해져 한시간여를 족히 걸으면 조항산 


정상에서 아침식사가 가능할 것 같아 걸음을 채찍질한다. 




7:10 조항산(961m)에서


정상옆 숲에서 아침을 펼친다. 덜덜대는 버스에서 꼬박 밤을 새우고 3시간여를 1000m에 가까운


고봉을 둘이나 넘어 단내나도록 달려왔으니 시장기는 고사하고 이글거리는 속부터 달래야겠다싶어


에켜 한가롭게 사방을 둘러보며 어슬렁거린다.


 


 


                         


                         (조항산에서 본 청화산과 속리산)


청화산에서 갈지자로 이어온 능선길도 또렷하고 속리산능선도 어렴풋하지만 절세가인의 품위를  


잃지않고 청화산 뒤켠에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고모치채석장과 폐광산이 대간길 양쪽에 도려내진 속살처럼 남아서 인간들에게 수난당한 수취심을


감출길 없는 듯, 대야산의 아침햇살 받는 모습을 근사하게 한방 찍고보니 우박맞은 호박잎처럼


흉물스럽게 남아 대야산의 풍광을 잠식하고 있다.



갈길이 구절양장이라 도시락 풀어 속은 달랬지만 한양길에 지레 겁먹은 시골선비처럼 소문난


대야산 벼랑길을 어쩌고, 곳곳에 박힌 암릉은 별 탈없이 통과할 것인지 발목의 취약함이 눈에


가시처럼 걸리적거린다.




능선길 양편으로 각시붓꽃과 제비꽃이 유유상종하듯이 아름다운 보라색을 연출하고 현호색도


뒤질세라 물감먹은 잠자리날개처럼 청아한 색깔을 바람에 흔들어 댄다.


화무십일홍이라고 진달래가 어느새 가는 곁에 철쭉이 꽃망울을 터트려 봄의 전령사로서의 바톤을


잇고있다.


어느새 봄은 무르익어 연한 녹색지대는 3,4부능선까지 올라와 녹음방초(綠陰芳草)로 치닫고 있다.


능선에서 몇 발짝 내려간 곳에 샘터(고모샘)가 있어 갈증도 해결하고 물통도 채우지만 가문 날씨


때문인지 스폰지처럼 한도없이 물을 빨아드리는데야 속수무책이다.


 


 


대야산이 빤히 보이는 발아래 널찍한 바위에 그림같은 노송 한 그루가 그늘을 만들어 놓고 길손을 


맞는다. 스스로 자라 가꿔지기를 대야산 조망과 어찌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솔솔 불어대는 바람 


쏘이며 임걱정의 기개를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솟꾸쳐 천금같은 휴식을 갖는다. 


물 한 모금은 신선약수요, 오랜지 한쪽은 천하의 보약처럼 심신을 새롭게 한다. 호구지책으로  


챙겨간 것들이 이렇게 지친 몸을 톡톡히 보살펴줄 줄이야..,.




어느새 대야산 턱밑에 다달아 호흡을 가다듬는다. 마사토에 미끌리며 그늘 속을 돌아 오르니


고래바위 뒷덜미에 올라앉는다. 다시 또 한 장의 호흡을 하니 미륵바위가 다가서고 코끼리바위


턱밑을 지나 몇 걸음 더하니 고인돌형상의 거대한 입석이 비좁은 지지를 받으며 버티고 있다.


석문을 통과하듯 입석을 빠져나와보니 동헌뜰만한 널찍한 마당바위에 수려한 조망이 펼쳐진다.


아..! 여기가 대야산 정상인가 ?


 


                    (대야산에서 본 조항상,청화산,속리산)


 


 


                                  (대야산 기슭)


 


 


좌청룡 우백호처럼 늘어선 암릉벼랑이 가히 절경이고 속리산의 잔영이 기억되는 듯한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이쪽저쪽에 수두룩하니 산세와 어울려 명산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들추는 것 같다.




선두로 간 일행들의 인기척이 있어 정상이 멀지 않음을 짐작하고 돌아나와 능선길에 서서보니


정상은 고도가 엇비슷한 봉들이 그믐달 모양으로 오른쪽으로 휘어 이어지면서 맨 끝의 주봉으로


향하고 지친걸음에 만만치 않은 품을 더 팔고서야 정상으로 안내된다.




9:30 대야산(936m)에서


길이면 다 길이더냐, 오른 자 만이 맛보는 것. 가물가물한 속리산줄기를 돌아내려와 청화산을


넘고 조항산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달려와서 얻는 이 쾌감, 물 한 모금은 달디달고 염장기


배어나온 육신은 정상바람에 마비되어 고통을 일거에 날려보냈으니 대간길의 참맛이야말로


별미중의 별미로다.




지난번에 앞 구간인 휘양산 밑자락까지 다녀왔으니 사방 수십리가 눈에 익은 산하다.


산이름도 아직 기억이 생생해 서로 안부라도 전하는 듯 이별하자니 아쉬워 자꾸 바목을 잡는다.


 


 


 


 


 


정상에서의 포효도 잠시 내려갈 걱정에 사뭇 시선이 산만해진다. 어떻게 생겼길래 그 흔한


사진 한 장 없이 겁만 주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몇걸음 내려와 행여 여긴가 저긴가 하다가


발아래 떨어진 밧줄을 보고서야 악! 소리가 터진다. 저승길처럼 앞서간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또 오라는 듯 흔들거리는 밧줄엔 양태산님이 매달려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허우적댄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소리에 일발장진(?)하고 로프에 매달린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려니


이어지는 로프를 바꿔잡고 잡목가지속으로 떨어지기를 두어행차 더하니 언제 내려왔냐는 듯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터는 여유까지 생긴다. 그러나 이내 그 길은 신출귀몰한 괴물처럼


나뭇가지속에 사라져 사진한장 얻지 못하고 먼 산이 되고 만다.




자라보고 놀란 토끼, 연신 뒤돌아보며 줄행랑치 듯 달려와 한가진 소나무 밑에 서고보니


남은 길은 나지막한 촛대봉뿐이라. 기고만장하다가 거리를 가늠해보니 만만치 않은 거리에


한번 더 악을 써야할 곰너미봉이 그 뒤에 버티고 있다. 아직 활공할 시기가 아님을 깨닫고


발목을 조심하며 애써 걸음을 늦춘다. 허나 내리막에 혹사당한 발가락은 아픔을 참기에 한계에


다다른양 몸을 비틀고 팔자걸음을 간청한다.




촛대봉에 오르고 보니 아직도 산 넘어 산일세. 낙타등 같은 두봉을 다 넘을 줄도 모르고 달겨


들었다가 체념하듯이 마지막봉을 어기적거리며 접수해 버리니 그제서야 버리미재로 들어서는 포장길이


쪽달처럼 산능선아래로 내비친다.


 





      


                                                                 (철쭉)


 


                                                                  (각시붓꽃)


                                                                   (현호색)


                                                                                   (분홍제비꽃)


                                                                                       (흰제비꽃)


 


이제사 장정의 길이 마감되는가. 애써 여유를 찾으니 낙엽에 묻힌 내리막길이 한가로운 오솔길처럼


정갈하고 원추리군락도 6월경이면 덕유평전만치나 아름다울 것 같은 상상을 한다.




버스로 조금 이동해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아이그! 짜릿해라!


통통부은 말을 어루만지며 뿌듯한 행복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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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타행 - 수고하셨습니다. 일출이 참으로 보기가 좋군요. 늘 안전한 산행하십시요
▣ 범바위 - 김석기님 산행기 잘보고갑니다 산에서 한번뵈야할텐데..... 낙동에서나뵐수있을런지
▣ 범바위 - 김석기님 산행기 잘보고갑니다 산에서 한번뵈야할텐데..... 낙동에서나뵐수있을런지
▣ 각시붓꽃 - 잉걸불 한덩어리 뜨겁게 껴안으며 시작하는 대간길이 어이 그리도 그림 같으면서도 버거운지요. 님따라 한참 숨을 몰아쉬다 피아노 건반 조율하듯이 조율 끝내고 돌아서는 걸음에 귀신도 곡할 나뭇가지 사이로 자취를 감추어버려 그림 한장 남기지 못하는 그 길이 정녕 대간 길이던가요. 꿈꾸어 오던 그 길에 대한 환상이 단내나는 거친 숨결이 전해지는 듯 하여 한방에 깨어지는 듯 합니다만 와중에 어이 그리도 각시붓꽃만큼이나 아름답고 유려하게 표현되는 글귀에 하얀제비꽃 같은 웃음 짓게 됩니다. 발목도 튼튼하셔서 가시는 걸음 훤하게 되소서 허경숙드립니다.
▣ ** - 두타행님, 범바위님, 허경숙님, 격려 감사합니다. 엄살이 지나쳐 행여 누는 안되었는지요. 어설픈 산행을 하고 있으니 혹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용서하여 주시길... 그럼.
▣ 불암산 - 대간길을 홀로 탄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요, 인간 한계의 시험대라 할 수 있는데 역시 홀로 대간을 타시는가봅니다. 언제나 안전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너무나 많은 생사의 갈림길이 기두리고 있더군요. 고행길, 오늘도 안전이 항상 함께 할것입니다. 행복하십시요.
▣ 운해 - 속리산919봉에서 조망해 보던 대야산 청화산 조항산 백악산중 대야산과 조항산을 김석기님의 산행기에서 상세한 설명과 함께 대하니 감격 그 자체 입니다 불암산님의 충고 받아 드리시고요. 늘 안전 산행에 힘쓰시길 바랍니다.잘 보고 갑니다.
▣ ** - 불암산님,운해님, 격려말씀과 지당하신 조언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대간길의 의미를 폭넓게 배우고 있습니다. 계속 조언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