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유산

2008년 2월 14일 목요일(청목)
날씨 : 조금 추움 시계는 별로
 




흔적:영각사-영각매표소-영각재-중봉-남덕유산-월성치-삿갓봉-삿갓골재-삿갓재대피소-삿갓골-황점마을(5시간20분)



♣ 남덕유산  
산의 유래는 지리산 다음으로 크고, 넉넉하고 덕이 있는 덕유산이며, 덕유산의 연봉들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덕유(德裕)산에 남녁 남(南)자를 앞머리에 붙여진 이름이다.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 일대를 북덕유산, 장수군에 있는 서봉을 장수덕유으로 일컫는다. 장수군 지역에서는 장수덕유산을 5대 명산의 하나로 꼽고 있다.

덕유산하면 북쪽의 북덕유산과 주봉인 향적봉, 그리고 무주구천동의 33경만 생각하기 쉬우나 장수덕유와 이곳 남덕유산까지 덕유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남한에서는 지리산국립공원 다음으로 웅장하고 넉넉한 산이다. 덕유산의 한 봉우리는 무주에서 시작되고, 또 한 봉우리는 장수에서 일어나는데, 장수의 봉우리를 남덕유산이라하며 해발 1,507m이고, 무주의 봉우리를 북덕유산이라 하는데 해발이 1,615m로서 남덕유산보다 북덕유산의 향적봉이 108m가 더 높다.

남덕유산의 산상에는 참샘이 있는데,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온수이고, 여름에는 손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찬물이 솟아난다. 임진왜란때 일본인들이 이 산하에 와서 산을 보고는 크고 덕이 있는 산에서 싸울 수 없다 하여 퇴군했다고 전해진다.

남덕유산(동봉 1,507.4m, 서봉 1,510m)은 주봉인 향적봉(1,614m.북덕유산)을 먼 발치에 두고, 결코 낮지 않은 남덕유산 정상도 오르는 산행의 멋을 만끽하는, 일석이조의 시산제를 겸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또한 남도 산의 조종인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남덕유산 하면 1,507.4m의 동봉을 두고 일렀다. 하지만 백두대간 종주가 성행하면서 서봉을 거치는 등산인들이 많아졌고, 서봉이 동봉보다 높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서봉을 남덕유산의 주봉으로 치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 장수 덕유산이라고도 부름). 영각사에서 등산로 표시판을 따라 부지런히 2시간 정도 오르면 동봉에 오른다.





2003년 12월 19일. 육십령을 들머리로 할미봉-서봉-남덕유산(동봉)에서 영각사를 날머리로 다녀간 후
다시 들기까지 4년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마음속에 품어온 연정은 먼지같이 쌓인 시간 속의 탑처럼 높
아만갔는데......하마터면 순창 회문산으로 내뺄 뻔한 걸음이 운좋게 남덕유의 그물망에 걸려던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영각사 가는 길에 뒤돌아보면 왼쪽에서 쫓아오는 봉우리의 모습이 만만치않다.




영각사입구

주차장에 풀어놓기 무섭게 입산으로 치닫는 무리에서 소리 없는 마이동풍이 되어 빠져나왔다. 사찰은
언제나 마음에 평온이라는 달가운 보퉁이 하나 얹어준다. 그렇다고 마음으로 부처를 섬기는 것은 아니
지만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믿음' 이라는 것은 삶의 족적을 이어가는데 하나의 지팡이가 되어준다고 여
겨지기 때문이다. 산사는 고요했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적막감에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영각사 화엄전




영각사 경내에서

영각사를 되돌아나가 오른쪽으로 부도전을 지나면 영각통제소가 있다 통제소 안은 텅비어있다. 입산 신고 절차도 없이 들어간다.
굳게 박힌 철심같은 규제도 물 흐르 듯 순한 자유의 깃발 앞에 선 무너진다. 그렇게 문화재관람료를 사칭하는 비양심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그것이 양심인 것이다. 내 선 땅 앞 지나간다고 통행료 받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사람아! 사람아! 순리대로 살자꾸
나. 역행은 화를 자초하는 칼이다. 모두를 함께 무너뜨리는 어지러움인 것이다. 산의 유장한 흐름을 그대로 따름이 도리인 것이다.




12:10분에 영각재에 올라섰다. 막아논 철책 뒤로 제법 우뚝한 하봉이 유혹을 하지만 잠시 관망하다가 돌아섰다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덕유 주릉 산그늘 드리운 곳이 월성재이다. 그 재를 따라가면 각을 세운 삿갓봉의 위세가
제법 당당하게 다가온다 뒤로 이어지는 무룡산의 등로도 훠언하고 멀리 구름 아래 중봉의 모습이 선명하다. 무
룡산을 지나 푹 꺼진 안부가 동엽령이 되겠다 몇 주 전 안성에서 동엽령을 따라 향적봉으로 갔었는데 그새 옛 일
이 된 것이다. 이렇게 인생의 물살은 원하든, 원치않든 쉼 없이 노년이라는 낡은 물길을 향해 흐르는 것이다.




 중봉으로 향하는 첫 번 째 철계단이 눈에 들어선다. 4년 전 기억이 한꺼번에 일어나네. 그 날은 오늘보다 시계가 안
좋았지 산행내내 운무가 온 몸을 휘감는 가운데 헤매였으니......생초보의 맘에 남덕유는 혹독한 시련을 남겼었고 행
여 앞사람 놓칠새라 동동구르는 걸음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사진 몇 장 찍는새에 달아나는 일행 붙잡는게 일
중에도 큰 일이었다네. 참! 할미봉 돌아내려 서봉으로 가는 길에 어떤 여산님 밧줄 타다 바위에 끼어 대롱대롱 매달렸
지 여럿이 달려들어 잡아떼느라 애 썼었는데... 급박한 상황임에도 분위기 파악 못한 몇 사람은 킥킥대다 대장님 호
통에 잠잠했었는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철계단이 없다면 어떻게 올라서야할까? 공연한 걱정을 하며 올려다보니 콧대가 제법 세다




영각사와 교육원이 내려다보인다 오른쪽 부채꼴 모양으로 다가오는 할미봉의 시작은 육십령에서 이어진다.
육십령에서 느긋하게 시작되던 산행길은 할미봉에 이르면서 얼굴을 확 바꾼다. 한겨울 그 길은 꽁꽁 얼어붙어
시야 확보도 안된 상태에서 걸어내려니 난감했지만 초보의 느낌엔 약간의 두려움과 재미가 어울려 근사한 벗
이 되어주었으니 어찌 남덕유를 잊어 버리겠는가 그렇게 오매불망하던 남덕유에 오늘 몸 담았으니 묵은 소원
하나 푼 셈이다.




 맨 앞봉이 하봉, 그 뒤로 뾰족 내민봉이 수리덤(칼날봉)에서 이어지는봉이 월봉산, 왼쪽봉이 금원산, 오른쪽 멀리 기백산
수리덤 뒤는 수망령이고 하봉 뒤엔 남령이 숨어있다




중봉 철계단길




청목 어여쁜 회원님들




 영각재에서 올라선 첫봉에서 본  중봉과 남덕유산 정상모습

까마득해 보이지만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이유는 저절로 거북이가 되는 마음 때문인 것이다. 하얀 도화지에 그리움을 풀어
놓은 풍경을 놓고 허위허위 오를 마음이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며 뒤돌아보지 않고 휘딱 몸돌려 떠나는 사람이 못
되는 나는 되도록 오래 머물 궁리로 최대한의 굼벵이가 되는 것이다. 앞서 오른 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경을 버리고
가는 용감(?)이 어리석다고 여겨진다. 내 안을 비워 채운다. 산
당신으로 내 텅빈 마음을 채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크으~ 철계단@@@@
눈 앞에 펼쳐진 것이 아득할 뿐이다. 시간을 놓아두되 보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덕유의 골격이 우람하다. 산에만 들면 도지는 병(?) 그리움을 저 산자락에도 묻어 놓고 가는 것이다.




선경에 취해서 한걸음 걷다 서고, 놀고, 바라보고,




가지 못하는 건 나 뿐이 아니었다. 바람을 맞서는 저 나무들도 그랬을 것이다. 나처럼, 꼭 내 마음처럼 선경을 두고 떠나지 못해
자리다툼하며 저기 섰을 것이다. 여기서 삿갓봉이 잘 보인다고. 저어기 저 천왕이 잘보인다고 바람 맞으며 섰을 것이다. 나처럼.




바닷속 신비??




산상낙원




영각재에서 올라 만났던 첫봉 한참을 머물렀는데 이제 내려다 본다.




신비경에 빠져 길이 줄어들지 않는다. 에고@@@ 언제 삿갓봉을 돌아 황점으로 내려가나?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진행형에서 쉼표를 남발한다. 그리고 마음이 하자는대로 시간의 끈을 놓아 버린다. 아무때나 용감해선 곤란하다
그러나 지금같은 시간 용감해야한다. 되도록이면 처언처언히~




당신을 두고 떠나려니 내 마음 아득해지고 눈시울 공연히 젖어온다. 애써 다시 올 날 꿈꾸며 달랜다. 손 놓는 내마음을.




중봉에서 바라보는 남덕유의 모습은 오히려 담담하다. 중봉의 격동적인 몸부림에 비하면 동봉의 몸짓은 차분히 가라앉는
중이다. 떠남의 고통을 서서히 삭혀주는 몸짓으로 산도 가라앉는다.







나는 대체로 사람은 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보일 때는 산에서 만났을 때인 것이다. 예순을 훨씬 넘긴
이 분은 안성청목산악회 카페방장님이다. 성실과 노력으로 젊은피를 채우는 것이다. 나는 끼가 있는 사람도 좋지만 끼 없이
실과 부지런함으로 자갈 투성이 돌밭 기경하는 사람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이다. 부족한 나를 채워 만드는 사람이 좋은 것이다.




영각재에서 오르면 만났던 첫 봉우리 온전히 내려다 본다. 낮은 산이 더 낫다고했던가? 작은봉우리가 더 아름답다.







교육원과 합미봉(할미봉) 멀리 배경으로 지리가 떠올라야하는데 시계가 좋지않다




갈비뼈들이 서로 깍지라도 낀 듯하다




사면으로 잘 나있는 길을 따르면 남덕유 고스락이다







암릉사이 산호초











나도 저 바위 되어-
산상설원 바라보는 바위되어 남아 버릴까  
내 숨 쉬며 여기저기 오를 근력 없을 때 너를 생각해보리
여기 하필이면 이 자리에 선 네 모습을 기억해내리
까닭은 알아 무엇하리
다만 네 선자리 나도 서고 싶어
사방 산들을 휘둘러보며 비바람도 견디리

꽃 피는 봄에만 좋을까
여름 머리 벗겨지는 땡볕 받아내는 뜨거움도 좋을까
온갖 산 것들 색깔 뒤집어지는 가을 빛 바라보는 것도 좋을까
다시 겨울이 되면 시린 몸으로 서게 되는 날
너를 기억해내리
나도 저 바위 될까








그들도 무릉객이었다




구상나무 한 그루 향적봉을 향해 섰다. 귀한 몸짓으로 나를 불렀다. 여기 내 옆에 서봐 향적봉으로 향하는 저 길 좀 보라구.




 


마음을 끄는 힘이 있었다 저 난간에 선 산사람!







중봉




월성재에서 이어지는 삿갓봉을 미리본다




정상으로 가며 뒤 돌아 본 중봉 모습




장수덕유(서봉)가 드러난다. 지척인 것 같지만 겨울산행때는 더 멀게 느껴진다




남덕유산 정상석




동봉(남덕유산)쉼터에서 서봉을 배경삼아 쉬어가는 객들




산도, 하늘도, 눈도 흑백의 그림이 되면 알 수 없는 중압감을 가져온다. 세상이 온통 회색이라면 사람들의 마음도
회색이 되어 밝은 빛 아래에서도 늘 어두움에 젖어있을 것이다. 원색이 때로는 세련미 부족으로 촌스러울 수도 있
겠지만 그 원색이 주는 경쾌함과 청량감이란 어른을 때로는 아이같은 순수함으로 되돌릴 수 있는 원천이지 싶다.




월성재에서 서서히 고도를 높혀가는 삿갓봉 위로 무룡산 백암봉 중봉을 지나 향적봉 능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금원, 기백산의 모습이 왼쪽 뒤에 섰다 오른쪽은 수리덤에서 이어지는 월봉, 거망산이다




뒷짐 지고 섰던 서봉(장수덕유)을 두고 월성재로 내려선다.







월성재로 내려서니 북사면이라 적설량이 깊어진다. 당연히 코를 박는다. 눈길을 미끄러지 듯 내려서는 것도 요령이다
미끄러져도 눈이불이 두꺼우니 별로 위험하지 않지만 제 구실 못해내는 아이젠 덕택에 신이난건 어른아이들이다. 한
참을 미끄럼타다 돌아서서 올려다보니 동봉이 십자가(?)하나 세우고 빙그레 웃고섰다.




월성재를 지나  뒤돌아보니 두고 온 남덕유가 따라온다




 월성재(치. 1240m) 바로 위에서 본 황점으로 내려가는 바람골과 멀리 금원산,기백산모습이 따라온다




장수덕유(좌)와 남덕유(우)를 한 눈에 넣어본다




흔적은 갈수록 길어진다




삿갓봉을 지나쳤다. 러셀된 길을 따르다보니 고스락을 비껴가게 된 것이다. 잠잠하던 바람이 잠 깨어 일어났는지
산길에 바람만 무성하고 북사면을 도는 길이라 잦아 들었던 추위도 더해가고 모자를 뒤집어 쓰는 일이 많아지고
더러 가파른 내림이 재미를 보태주지만 이마저 즐길거리는 못된다. 여지껏 넘어지는 법(?)이 없던 산친구가 내 앞
에서 미끄러지고, 아예 구르기도하고, 그바람에 카메라 눈(眼)에 눈(雪)이 들어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ㅋㅋㅋ
단 번에 일어나기 어려워(뒤집힌 거북) 눈언덕을 발로 밀어 붙이며 일어나서 보니 알몸이었던 카메라가 가관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삿갓재대피소가 지척이다. " 얼른 가입시더 조오기 대피소 보이네예. 거 가서 카메라 닦아줍시더"
불난집 부채질이랄까봐 겉으로 웃지 못했지만 좀처럼 넘어지는 꼴을 안보여주던 산친구가 두 번 씩이나 생쑈를 하니
어찌 우습지 않겠는가. 천연덕스럽게 입가에 웃음꼬리 처덕처덕 매단 내 꼬라지도 가관일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눈에 굴러 얼어 버린 카메라 몸 삿갓재 대피소에서 녹여간다. 아이젠 벗고 들어가기 귀찮은지 아예 노상 카페를 차린 님들이
즐거워보인다. 우리는 취사장 안으로 들어가서 늦은 점심과 카메라 목욕재계 끝내고 느긋하게 황점마을로 하산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비바람이 만든 나무의 선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수리덤을 살짝 당긴 그림을 마지막으로 남덕유의 아쉬움도 끝났다. 언제나 하산길은 입산보다 조심스럽다.
겨울산행이라 더더욱 그렇고 삿갓골로 내려서는 내~ 바닥 동정을 살피느라 하산의 즐거움은 챙기지 못했고
두터운 얼음이불이 모자라는지 눈이불까지 뒤집어 쓴 계곡의 돌멩이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에서 봄의 희망이
움트는 듯 그러나 아직은 투정에 가까운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서는 발걸음 거기에 산사를 닮은 황점마을이 엎
드려있었다. 노는 아이들 소리도 없었고 한 잔씩 불콰해진 노인들의 얼굴도 없었고 다만 텅빈 마을을 채우는
건 아이러니하게 작은 가게 하나, 손 두 부 그리고 막 ( ) 리 라고 쓴 간판에 빠진 '걸'자가 사람 사는 마을임을
알게했다.

 내 여기 벗어날지라도
몇날 며칠 저 산정을 기억하며
가게 유리문에 빠진 걸 자도 기억하며
눈으로 더듬었던 칼날봉도 기억해내리라

덕유여!
그 중에 남덕유여!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