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창틈으로 새소리를 들으며, 참 상쾌한 아침이라고 생각했다. 잘 만큼 자고, 쉴 만큼 쉬고 있는 백수로서의 2주일
째... 그러나 매주 산에 오르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박힐 것 같았기에, 북한산! 그곳에 가는 오늘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불광역 3번 출구 앞에는 북한산에 오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난 생수와 막걸리 등 간단한 행동식을 챙기고
일행을 따라 불광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처음부터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일주일 동안 먹고 자고 놀았더니 뱃살이 붙고, 몸무게도
1kg 이상 는 것이 문제였다. 자꾸만 걸음걸이가 처지고, 숨이 차올랐다. 불광사를 지나 족두리봉 올라가는 길은 벌써부터 산행객들이 줄을
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들, 그 틈바구니에서 나는 쉼 없이 땀방울을 뚝뚝 떨구었다. 뜨거운 태양에 익은 땀방울은 용광로처럼 온 몸을
달구었다. 코스는 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칼바위능선, 이 코스를 제대로 밟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족두리봉부터 풍광은 일품이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향로봉, 비봉, 문수봉 등 봉우리들은 속살을 드러내놓고 유혹의 눈짓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풍경을 보는 재미도 잠시였다. 족두리봉 내리막길에서 만난 가파른 암벽은 아마추어 산행객인 내겐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 접한
10여m 가파른 암벽은 보기만 해도 아찔했는데, 철재형과 산이랑 누나가 막 내려서는 걸 보면서 나도 주춤주춤 발걸음을 내딛였지만 도저히 그 길로
내려설 수 없었다. 망설이다가 우회길을 돌아서 내려서니, 또다시 가파른 암벽이 나타났다. 기울기는 족히 70도를 넘어보였다. 이 암벽에 선 나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갈 길만 재고 있을 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시간... 그렇게 30여 분이 넘었지만 난 자석에 달라붙은 듯 발을 떼지 못했다. 걱정스러운 듯,
한참만에 오봉이 되돌아와 나에게 몇 가지 방법을 일러주었으나, 도저히 앞으로 전진할 수 없었다. 이 바위에서 미끄러져 즉사할 것 같은 공포감,
족두리봉에서 내려온 산행객들은 자꾸만 보채고, 난 옆사람들만 보내고 우뚝서서 움직일 수 없었다. 보다 못한 한 남자 산행객이, 나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가파른 암벽 옆으로 크랙이 나 있었는데, 초보자에겐 그곳이 편하다는 것이었다. 난 엎드려 두 손바닥을 스파이더맨처럼 펼치고, 떨리는 두
발을 쭉 뻗으면서 그 300시간 같았던 30여 분의 공포를 떨칠 수 있었다. 정말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오봉은 암벽 등산을 안 해봐서 그렇다고
위로했지만, 안 해본 것의 후회감, 내 용기의 나약함이 드러난 것 같아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족두리봉에서 기겁을
했던 나는 철재형, 오봉, 산이랑누나를 바라보다가 창공, 산수유, 케이남과 청솔님을 따라 우회로로 따라 걸어갔다.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났고,
앞선 사람들이 지날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리고, 날씨는 더욱 뜨거워져 등줄기가 흥건히 젖어있었다. 딸기우유를 먹고 힘을 내보았지만, 그야말로
악전고투! 컨디션도 좋지 않고, 암벽 타기의 부담감 때문에 난 그대로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첫 산행은 손가락 탈골, 두 번째 산행은
손등의 타박상, 이번 세 번째 산행은 암벽 공포와 찌는 듯한 더위라니… 더구나 향로봉 지나 비봉으로 가는 능선길에 올랐을 때 먼저 간
일행(케이남, 청솔, 산수유, 창공)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트산악회와는 코드가 안 맞는 것일까? 검단산에서 액땜을 했는데 부족한가? 봄산은 날
받아주기 싫어하는 것일까? 등등 오만가지 잡념이 들끓었다. 잠시 기다리다 비봉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무래도 아트팀원들이 나보다 걸음이
빠르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봉 들머리에서도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길을 재촉했다. 이번엔 사모바위께, 갑자기 핸폰이 울렸지만,
오봉의 음성만 확인하고 금방 꺼져버렸다. 그 다음 핸폰은 울리지 않았고, 내 핸드폰은 통화불능상태! 집채만한 바위가 올려진 사모바위에서 한참
기다린 후, 난 뒤처진 것이라 믿고 승가봉으로 향했다. 승가봉이 코 앞에 보일 즈음,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비봉을 타지 못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오봉의 음성이었고, 사모바위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내가 가던 길을 되돌려 사모바위에 도착하자 금방 아트산악회 일행이 보였다. 어긋난
길에서의 상봉이었다.


거대한 바위가 압권인 사모바위에서 일행과 합류하고, 언덕을 내려 소나무 우거진 능선에서 점심을
먹었다. 참치가 버무려진 주먹밥과 김밥, 과일과 막걸리, 시원한 바람까지 느끼며 잠시나마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돌문을 지나고
뾰족뾰족 가파른 바윗길을 내려가고, 승가봉을 지나 문수봉 앞에서 난 다시 섬칫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가파른 암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아래서 위를 보니 아찔하기 그지 없었다. 철재형은 전원 진격 앞으로!를 외쳤고, 난 더 이상 물러설 이유가 없었다. 위만 쳐다보고 가라는
누군가의 말만 들렸다. 문수봉 암벽에 다닥다닥 붙어서 가는 사람들이 위태로웠다. 제대로 눈에 띈 건, knam님이었는데, 중턱에서 쉬고 있는
모습 속에는 두려움이 역력했다. 나 역시 다리가 후들거렸다. 더구나 아래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 암벽 중간 쯤에서 아래를 보니 저 아래 비봉과
향로봉이 허연 살을 드러내고 있었고,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지만, 발 아래를 보는 순간은 섬칫했다. 난 서서 갈 수 있는 곳도 네 발로 기었다.
원숭이띠에 원숭이 주법? 막판 암벽에서는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좁은 바위난간에서 떨어지면 끝장이었다. 크랙 사이로 움켜쥘 만한 바위부리가 있어
다행이었지만, 정말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문수봉 정상에 올라서니 정말 큰일을 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만하면 산행의 8할은 끝낸 듯
싶었다. 목이 타들어갈 만큼 날씨는 초여름 같았고, 어느새 내 두 팔은 검게 그을려져 있었다. 모자는 희부옇게 소금기에 절여져 있었고, 이마의
땀으로 젖어있는 모자는 구불구불 산봉우리처럼 얼룩져있었다.

길게 이어진 북한산성. 그 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니, 낯익은 대남문이
보이고, 북적대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무계단 옆 샛길로 내려가니 문수사가 있었다. 길 가에는 노랗게 흔들리는 물양지꽃이 반가이 맞아주고
있었다. 문수사 샘터 옆에는 동굴 속 법회실이 있었는데, 너무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어 고찰의 면모가 퇴색한 느낌이 들었다.
물은
역시 차고 시원했다. 빈 물통에 물을 채우고, 전망이 좋은 곳에서 서너번 사진촬영을 했고, 막간을 이용해 빨간 딸기도 나누어먹었다. 그때 2시
30분쯤이었던가, 갑자기 헬리곱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사고를 당한 것일까, 아직도 사량도에서의 일들이 남아있던 나는 걱정이
앞섰으나, 헬리곱터의 프로펠러 소리는 금방 희미하게 사라졌다.

문수사에서 20여 분쯤 후, 대성문으로 올라 갔을 때, 칼바위능선
아래로 가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그 연기를 보며 산불인지, 밥짓는 불인지 의아해 했다. 그러나 대성문 아래 공터에 서니 그
연기는 더 굵어지고, 한 중년남자는 산불임을 확신하고 핸드폰을 들어 관리공단측에 긴급상황임을 알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10여 분이 지나도
헬리곱터는 뜨지 않았고, 불길이 확연해지자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보국문에 들어섰을 때 헬리곱터가 액상 소화제를 딱 한번 부리고는,
진달래능선쪽으로 사라졌고, 얼마 후 다른 헬기가 달려와 화재진압용 소화제를 흩뿌렸다. 불길이 잡히는가 싶더니 다시 한번 헬기가 다가와 소화제를
뿌렸다.

그리고 우리는 칼바위능선길 입구 성벽에서 창공이 싸온 배로 허기진 배와, 마른 입술을 적셨다. 그곳에서 본 만경대와
인수봉, 백운대의 위용은 대단했다. 과연 북한산이구나 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 배경으로 오봉능선을 타고 자운봉과 사패산 등이 구불구불
이어져있었다. 나는 흑백필름에 북한산의 풍경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몸을 식히고 난 후 칼바위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차고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갑자기 북받치는 감정이 솟구쳤다. 내가 지금 여기 있다니! 이 칼바위능선에 무사히 올라 아름다운 북한산을 한눈에 보다니!
이렇게 진한 감동을 느껴본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암벽 타기의 공포, 거북이처럼 느린 걸음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행과 엇갈린 만남과 미안함,
그냥 그대로 하산하고 싶었던 그 순간들을 보내고 맛보는 칼바위 정상에서의 감회는 남달랐다.

산불이 났던 길에는 대여섯 명의
산악대원들이 남은 불씨를 끄고 있었다. 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순진한 연분홍 철쭉들은 활짝 웃고 있었고, 맑고 푸른 초록빛이 넘실대고
있었다. 물소리가 가슴을 훑고 지나가자 속이 시원해졌다. 자연의 그 순수함이 어수선하게 만든 한낮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있는 것이다. 길에 앉아
먹는 오렌지의 향기, 오가는 말들의 넉넉함, 뒤풀이의 맛있는 감자탕과 닭도리탕, 그리고 정감어린 농담과 사심없는 웃음들까지... 한껏 봄향기에
취한 산행이었다. 후회와 망설임 속에서 만난 북한산의 정경은, 오금이 저리면서 내려온 족두리봉이나 사지를 떨며 오르던 문수봉처럼 잊혀지지 않는
산행의 기억이 될 것이다.

































































































































































▣ 김성기 - 포근한 북한산의 경관을 다시 접하게되니 반갑군요.족두리봉과 향로봉 오르고 싶군요.늘 안전산행 하십시요.
▣ 수객 - 대단한 사진 입니다.글이너무 빡빡했지만 사진으로 충분하네요.감사합니다
▣ 풍류 - 이번에는 인물사진이 전혀 없네요 ,그래도 몇장정도는 삽입해주시면 더욱더 좋을것 같아요
▣ 김현호 - 문수봉의 두꺼비바위(?) 가 멋있게 보이네요! 역시 art 명칭이 어울리시네요~~
▣ ART - 예쁘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