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산(天台山) 714.7m
위 치 : 충북 영동군 양산면, 충남 금산군 제원면
산행코스 : 영국사 – A코스 – 천태산 – D코스 – 남고개 – 옥새봉

산행일자 : 2004년 3월28일/우리부부
▣ 가는길
풍기출발05:43 - 상주06:50 - 아침식사07:19/07:43 – 옥천08:12 – 천태산주차장08:42
▣ 산행코스
주차장08:50 – 영국사09:10/09:24 – 슬램위09:56/10:01 – 천태산10:30/10:41 – C코스갈림길10:59
– 전망바위11:12/11:32 – 남고개11:40 – 옥새봉12:09/12:15 – 진주폭포12:45 – 주차장12:55
▣ 오는길
천태산주차장13:00 – 영동에서점심13:24/13:54 – 상주14:52 - 풍기도착16:03

◈ 슬랩의 스릴과 조망이 일품인 천태산 산행
오늘따라 잠에서 깨어나기가 몹시 힘이 듭니다.
자명종이 울린지 10여분이 지난 뒤에야 뒤척이다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켜 봅니다.
어제(3.27) 직장 동료들과의 소백산 산행과 늦게까지 쉬 들지 않는 잠으로
누적된 피로가 온몸을 축~ 처지게 만드는가 봅니다.
당연히 계획했던 시간을 넘기고서야 둔한 몸을 이끌고 황급히 집을 나서 봅니다.

안개탓에 줄지어 늘어 선 가로등이 물먹은 풍선처럼 힘겹게 떠서 가물거리고 있습니다.
라디오도 끄고 다른 어떤 소리도 거부한체 적막을 즐기며 어둠속을 달려갑니다.
상주를 지나고 옥천을 얼마 안 남긴 국도변에 차를 세워 아침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따끈한 보온병의 물이 컵라면을 익히는 잠깐의 기다림 속에 여태 한마디도 없던 아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엽니다.
“아이구! 배낭을 잊어먹고 안가져왔다”.
허걱!!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랍니까?
등산하러 가면서 배낭을 못챙겨 오다니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옵니다.
벌써 1시간 반이나 달려 왔는데….

성질은 나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일단 아침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하지만 아침을 다 먹도록 뾰족한 방안이 나올리 만무하니 무조건 천태산으로 차를 몰아 갑니다.
옥천읍을 거쳐 누교리 천태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8시 42분……
승용차 몇 대 만이 주차 되어 있을 뿐 넓은 주차장이 텅텅 비어있습니다.

물만 한 통 손에 들고 빨리 다녀올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데 아내가 야외용 돗자리 가방을 들고 와서는 물병을 넣어가면 되겠다며 좋아합니다.
물병을 그냥 손에 들고 가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 물병과 떡 한 조각을 넣고 배낭처럼 끈을 양어깨에
걸치니 꼴이 우습기는 해도 걸을 만 합니다.
아침에 잠시 게으름을 피운 결과이니 모두 잊고 아늑하고 편안한 등산로로 빠져듭니다.

등으로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황토 빛 짙은 넓은 길을 가볍게 걸어 갑니다.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한 파릇파릇한 새순은 멀리서 보면 수줍은 꽃인양 아름답기 그지없고 냇가에
줄지어 늘어선 버드나무의 버들강아지는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니 벗꽃인듯 착각한 등산객에게선
환한 미소가 피어납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봄기운 물씬 풍기는 풋풋하고 상큼한 등산로에서 아침을 열고 있습니다.
가볍게 불어주는 봄바람에 살랑 실려 시원한 물썰매를 타고 싶은 생각이 드는 멋진 삼단폭포를 지나고
나지막하게 깔린 나무계단을 살짝 올라서니 등산로 옆으로 설치해 놓은 철조망에서 수백개의 등산리본이
나풀나풀 흔들리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듯 줄지어선 리본사열대를 지난 가벼운 발걸음은 거대한 은행나무앞에서
멈춰 섭니다.
1000년은 되었다는 거대한 은행나무는 용문사 은행나무에도 뒤지지 않을 듯 웅장한 모습입니다.

1000년의 은행나무가 수문장처럼 앞을 지키고 천연 요새 천태산에 병풍처럼 포근히 쌓인 영국사는
생각보다 소박한 모습입니다.
정적마저 감도는 영국사를 조심스레 한바퀴 돌아보고 본격적인 산행길에 오릅니다.

작지만 소나무들로 꽉 찬 오솔길을 잠시 지나니 급한 오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숨을 헉헉 거리며 오르는 등로곁엔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진달래가 부끄러운 듯 분홍빛 얼굴로
새초롬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그모습에 힘을 얻어 성큼 올라서니 본격적인 암벽 등반길의 시작인 듯 꽤 가파른 슬랩이 앞을
딱 막아 섭니다.

물론 우회하는 길이 있지만 잠시 머뭇거리던 아내는 당연하다는 듯이 밧줄을 잡고 바위를 오릅니다.
힘들게 오르는 아내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동시에 같은 밧줄을 잡으면 오르기가 더 힘들 것 같아 아내가 밧줄 한 구간 끝냄을 확인하고서야
뒤따라 올라봅니다.

반질반질한 표면에 경사도 제법 심하니 자연스레 밧줄 잡은 팔과 다리엔 힘이 잔뜩 들어갑니다.
힘은 들어도 스릴을 느낄수 있으니 스릴도 즐길 겸 한구간 한구간 쉬엄쉬엄 올라갑니다.
어렵게 슬랩을 통과하고 잠시앉아 숨고르기를 하며 올라온 슬랩을 내려다 보니 까마득합니다.
아내는 많은 힘을 한꺼번에 소비해서 그런지 맥이 탁 풀리는 게 팔,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며
흐느적 흐느적 걷는 것 같습니다.

계속되는 급경사를 올라 정상을 수십미터 남겨둔 지점에서 딱딱딱딱…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쉴새없이 들려옵니다.
너무 오랬만에 들어보는 소리라 딱따구리 모습을 찾아보니 만만해 보이는 나뭇가지에 붙어 정신도 없이
쪼아대고 있습니다.
요새는 멸종 위기라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고 있는 그모습이 신기해 한동안 바라보다 정상에 오릅니다.
천태산 정상엔 정상석과 더불어 방명록이 먼저 눈에 띄니 다녀간 흔적을 살짝 남겨 봅니다.

참나무 가지에 겨우 매달려 추운 겨울을 모질게 견딘 마른 나뭇잎이 잔잔한 바람의 소리를 만들어 내니
힘들게 올라와 지친 육체를 잠시 맡겨 두고 풍경을 조망해봅니다.
흐릿한 조망이지만 덕유산을 비롯한 계룡산등 주위의 굵고 힘찬 산맥의 모습은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합니다.
카메라를 안가져 왔으니 마음씨 좋아보이는 젊은 부부에게 부탁하여 정상증명사진을 한 장 찍고
D코스 내림길로 내려섭니다.

내려서는 길에 보이는 텅 비었던 주차장엔 어느덧 버스가 가득하고 정상을 향한 비탈진 경사면엔
등산객이 줄지어 오르고 있습니다.
C코스 갈림길 까지는 노오란 꽃망울이 보기 좋은 개동백이 이따금 보이는 편안한 등로가 이어집니다.

갈림길에 서니 C코스는 위험하니 D코스로 갈 것을 권유하는 팻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옥새봉을 거쳐 내려가야 하니 당연히 D코스로 방향을 잡습니다.
갈림길을 지나 D코스로 조금 내려오니 길고 특이하게 생긴 바위가 벼랑 끝으로 쭉 뻗어 있습니다.
유달리 바위를 좋아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바위위로 이어집니다.

바위의 끝은 까마득한 절벽을 이루니 그 위에 서서 바라보는 전망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특히 아내와 같이 서고 보니 타이타닉의 유명한 명장면이 언뜻 떠오릅니다.
그들은 바다위에서
이보다 더 좋은 조망을 즐겼을까?
멍하니 넋을 놓고 경치에 몰입을 하다 보니 마음도 둥~둥~ 몸도 둥~둥~ 허공을 잠시 떠도는듯 하더니
이내 현기증이 납니다.
.
겨우 정신을 차려 계속되는 암릉길을 내려오니 펑퍼짐한 바위전망대가 나옵니다.
연이틀 고생한 다리도 쉬어 가자하고 속에서도 먹을 것을 달라 조르니 비록 떡 한조각이 메뉴의 전부인
야외식당이 임시로 차려집니다.
물 한 모금에 떡 한 조각 이지만 이처럼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먹는 맛은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굵직굵직한 바위가 마디마디 맺히며 굽이쳐 떨어져 내린 모습이 힘차게 느껴지고 시원한 바람과 빽빽히
들어선 초록의 송림이 한결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다만 채석장의 방치된 모습이 눈에 거슬릴 뿐…

잠깐의 휴식에 힘을 얻은 발길은 남고개를 거쳐 옥새봉으로 향합니다.
옥새봉을 오르며 천태산을 바라보니 비탈진 슬랩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자신도 신기하다는 듯 아내가 한마디합니다.
“야! 우리가 저길 타고 올랐단 말이야?”
막상 오를 때 보다 멀리서 다른 사람들이 밧줄을 잡고 오르는 모습을 보니 더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옥새봉 정상에 오르니 고만고만한 바위들이 좁은 정상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한가로이 우뚝 솟은 옥새봉에서의 풍경도 정말 좋지만 푸르름이 완연한 분재 같은 소나무가 여기저기
널려있으니 그모습이 더욱더 보기 좋습니다.
이제 주차장으로 내려설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절경을 한번더 휘~둘러 보는데 뒤따라오신 등산객이
“옥새봉에 옥새가 있는 줄 알았더니 신선이 한분 계십니다”하며 환하게 미소짓습니다.

듣기 좋은 덕담에 마음이 즐거우니 내려서는 발길도 무척 가볍습니다.
오랜세월 풍파에 깍이어 기기묘묘한 형상을 하고있는 바위들을 감상하며 진주폭포를 거쳐 주차장에
도착하니 여러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상점에서 틀어놓은 관광버스노래가 번잡한 세상인양 또다시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 김현호 - 김밥가게에서 김밥사고 돈지불하고 그냥나온것보다 더하시네요^^ 천태산! 가보질않았지만 여기저기서본 사진을 종합하여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요번연휴때 함 가볼까 생각도 해보구요 길문주님 건강하시길~~
☞제가 평상시에 지갑이나 휴대폰등 물건을 잘못챙기는 습관이 있습니다.... 먼저번에 속리산 산행에서는 지갑을 안가져가서 또 한바탕 난리를 친적이 있거든요^^*
▣ 산초스 - ㅋㅋㅋ 전쟁터에 가면서 총도없이 싸우러 나간 군인하고 똑같은 경우인가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머나먼 천태산까지 무사히 다녀오셨으니 축하드립니다. 사진으로 보았던 천태산의 아름다운 바위를 보고 저히팀도 한번 가려고 생각중인데 잘 읽었습니다.
☞산초스님! 생각보다 천태산이 좋아보였습니다. 슬랩도 좋았고 특히 바위위에서 보는 조망은 정말 좋았습니다.... 꼭 한번 다녀 가시길 권해드리고 싶네요...
▣ 김정길 - 머시기를 떼어놓고 장가가는 사람이나 진배가 없군요, 이렇게 웃길수가,,, 아우님 내외 두분 다 똑 같구먼 그러니까 함께 살지,,,, 깔판 손잡이를 어깨에 걸러메고 산행하는 모습이 눈에 선 하니 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웃었을꼬,, 그 모습으로 물병과 떡 한 조각 만으로 A코스로 올라 D코스로 한바퀴 제대로 돌으셨군요. 그래서 더욱 보고싶은 아우와 제수씨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형님! 아우가 이렇게 멍청합니다. ㅎㅎㅎ 욕심이 없어서 그런지 남들보다 물건같은걸 잘 챙기질 못합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주로 물건을 챙기는데 그날을 집사람까지 날 닮아가는지 깜박하는 바람에 그만.... 항상 건강하시고 즐산하세요
▣ 물안개 - 우리부부 겨울에 찾았다가 아주 혼이 났던 기억이 나는군요 .바위슬랩 얼마나 미끄럽던지 눈이 살짝 얼어붙어....배낭을 놓고 가셔서 잊지못할 추억하나를 만드셨군요,먼훗날 오늘을 기억하며 미소지을 두분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물안개님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배낭이 없어도 등산 할만 하더라고요. ㅎㅎㅎ 사진을 못찍어서 그렇지 한바퀴 휘~ 둘러봤으니까요. 항상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수영 - 배낭을 잊어먹고 배낭대용으로 돗자리 케이스를 어깨에 매셨다니.. 한마디로 멋진 아이디어 입니다.크~ 그래서 사진이 없군요. 하지만 내용이 재미있고 알찬 것 같습니다. (배낭을 가져오지 않았다?) --나 같으면 어떻게 할까? 결코 일어날 수 없는일이지만..
☞이수영님! 배낭대용으로 돗자리케이스 한번 매어보세요.. 그런데로 다닐만 합니다. ㅎㅎㅎ 남들보기에 좀 챙피해서 그렇지만 등산에 몰입하다보면 내가 돗자리케이스를 매고 다니는지 모르니까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번 계속 할일은 결코 아니겠지요. 건강하시고 즐거운 산행계속 이어가시길...
▣ 주왕 - 지난번 대둔산 다녀올때 충남 최고봉이라하는 서대산은 알았어도 천태산은 모르고 있었네요. 너무 재밌고 아름다운글에 사진한장 없어도 아름답고 멋진 그림이 그려집니다. 두 분 늘 행복하시고 좋은 산행 이어지시길. 건강하십시요.
☞저도 아직 초보산꾼이라서 새로운 산을 대할때 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모르고 지냈던 좋은산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덕분에 매주 새로운 산을 찾아다니는 발걸음이 가벼워 질수 있는것이기도 하구요... 주왕님도 건강하시고 좋은산행 하세요...
▣ 김학준 - 풍기에 사시는군요. 저는 지금은 인천에 살지만 고향은 풍기인데
▣ 김학준 - 산행기 재미있게 읽었구요 풍기 어디에 사시는지 궁금합니다?
☞김학준님 고향분이라니 더 반갑습니다. 고향에서 먼 인천에 사시는군요. 저는 풍기읍내에 살고있습니다. 계속 풍기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것같습니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잘되시길 바랍니다.
▣ 정희식 - 산을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산행기 잘 읽었서요. 건강하시고 다음에도 더 좋은 글 올려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