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쌓인 낙엽을 밟으며(관악산 신년산행)

누구와 : 아들과 함께
어디로 : 서울대 입구--제4야영장--삼거리 약수터--무너미고개--계곡따라--삼성상정상--안양쪽으로--국기봉--삼막사--장군봉(국기봉) ---도사바위--철쭉바위--제4야영장

신년산행을 어디로 정할까 생각하다 관악산을 오르기로 마음을 먹고 아들놈에게 가자고 하니 입이 삐죽 튀어 나온다. 하기야 철모를 때는 그냥 따라나서던 놈이 나이가 들수록 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하니 한번 같이 산에 오르기가 여간 힘든게 아닌데 오늘 신년 산행에 동행하려니 이놈이 글쎄 이불을 둥둥 감 고 버틴다. 협박과 회유를 반복한 끝에 겨우 약속을 받아내고는 베낭을 꾸렸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대 입구역에 내려 413번을 타고 서울대 안으로 들어가 공학관 옆으로 난 쥐구멍을 통해 30여 미터 오르다 오른쪽으로 걸으면 4야영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가을이 끝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곳의 낙엽 길은 뒹굴고 싶을 정도로 수북이 쌓여 있다,
발로 걷어차며, 손으로 한 운큼 잡고 집어 던지며 장난을 쳤다.
아들놈도 마음이 좀 풀리는지 낙엽을 걷어차고 뒤다가 뒹굴기도 했다.
이곳에서 제4야영장까지 내리막 길이라 몸을 풀기에 좋은 곳이라 자주 가족등반에 이용하는 길이다.

4양영장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고른 뒤 삼거리 약수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깔딱고개를 통해 연주대 오르는 길과 삼거리 약수터로 올라 오봉으로, 무너미 고개를 넘어 8봉을 통해서 연주대로, 무너미 고개에서 우측 능선을 타고 삼성산 삼막사로 오를 수 있다.
호젓한 산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여유를 부리며 걷다보니 삼거리 약수터다.
새해 첫 산행의 목마름을 샘물로 채우는 행운을 얻었다,
빨간 바가지 3개가 산꾼의 손을 기다리며 걸려있다. 누가 쓸었는지 샘 주위는 깨끗하게 비질되어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
물 한 쪽배기를 담아 아들놈과 나눠 마셨다,
가슴속까지 시려오는 차거움에 묵은해의 체증이 쓸려내려 가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무너미 고개 쪽으로 오르니 응달진 곳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아들놈은 신이 났는지 눈을 한 움큼 쥐고는 나에게 던졌다. 유난히 비가 많이 온 계미년이었지만 온난화 탓인지 눈이 귀했는데 이곳에서 눈을 보니 신기한 모양이다.

평소 오르던 길을 선택하지 않고 계곡을 따라 오르는데 낙엽 위에 눈이 살포시 덮혀있어 눈 밟는 소리는 상쾌하다 못해 짜릿함 마져 가져다주었다. 어리적에는 눈이 오면 골목에 나가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위에 발자국을 내며 걷다가 뒤돌아 보면 뒤따라온 발자국이 신기하여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났다.
살짝 언 눈발이 바스락 바스락 부서지며 귀를 즐겁게 했다.
관악산을 좋아하는 산꾼님들 눈 녹기 전에 이길 한번 걸어 보세요,
한참을 오르다 바위 뒤 양지 바른 곳에 베낭을 풀고 1차휴식.
"아빠 컵라면은 언제 먹어"
아들놈은 산에 오면 꼭 컵라면을 찾는다. 어쩌면 그 재미로 산에 따라오는지도 모른다.
간단히 간식으로 시장기를 달래고는 삼성산 정상으로 곧바로 오르는데 헬기장 부근에 눈이 맣이 쌓여있다. 이곳에서 잠시 눈싸움으로 산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삼성산 정상에서 국기봉으로 가는 길을 누군가가 비로 깨끗이 쓸어 두었다. 삼막사 스님들의 울력 같았다, 이곳에서 삼막사 가는 길을 대리석 돌계단인데 얼음이 덮혀 있어 조심스러웠다.
칠성각 쪽에 가면 남녀근석(경기도 유형문화재3호)을 함께 볼 수 있는데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민족 고유신앙에 남근석 숭배사상이 있는데 여기는 남녀근석이 마주하고 있는 특이한 곳이다. 여근석에는 살짝 얼음까지 덮혀 있어 보는이의 마음을 쑥스럽게 만들었다. 장군봉 아래의 남근석이 크고 웅장하여 서양적이라면 이곳은 아담하고 예쁜게 생겨 동양적이라 말할 수 있다.
삼막사에 관음전에 들러 새해 첫 삼배를 올렸다.
삼배를 올리고 가부좌를 틀고 참선 삼매경에 빠졌다.

자신의 몸을 태우며 세상을 밝히는 촛불을 보면서 이기심에 찬 내 삶을 반성하는 기회를 가졌다.
나를 태워 세상을 비출 수 있는 삶을 살도록 좀더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막사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아들놈은 다음에 또 따라 오겠다는 말을 했다.
산의 너그러움과 포옹력이 이놈의 마음을 움직여 놓은 것 같았다.
삼막사에서 장군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장군봉 오르는 길을 바위능선이라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애를 쓰며 오르는 아들놈이 대견스러워 보인다.
드디어 국기봉! 국기봉에 뽀뽀를 하라고 시켰다.

나와 아들은 국기봉을 꼭껴 안고 체온을 나누었다. 모처럼 만에 나눠보는 아버지와 아들의 체온, 더구나 산 정상에서의 포옹은 색다른 의미가 있다.
"올 한해도 건강하고 열심히 살아라" 하고 덕담 한마디를 던지니 "아빠도 건강하세요"하면서 응수를 한다. 오늘 산행은 성공이다. 가지 않으려고 떼를 쓴 아들놈 입에서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우러나왔으니. 하산하는 길은 위험했다. 응달진 곳에는 아이젠을 필요로 할만큼 길이 얼어 있었다.
아들놈과 같이 낙엽위에 쌓인 눈을 밟으며 오른 삼성산 신년산행.......
5시간동안의 무언의 대화, 올 한해 부쩍 커 벌릴 것 같은 아들놈의 뒤를 따라 걸어내려 오며 혼자 미소를 지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