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화사와 각화산 풍경-


각화지맥 1<각화사-각화산-왕두산-노루재>

2019030022호        2019-06-01()


자리한 곳 : 경북 봉화군

지나온 길 : 각화사-진입능선-각화지맥능선-각화산-왕두산형제봉-큰재-설파재-화장산-노루재

거리및시간 : 9시간 44(09:23~19:08) : 총거리 약 24.7km (들머리, 알바 포함)

함께한 이 : 둘이서(고송부님과 계백)

산행 날씨 : 맑음


산행하기보다 준비가 더 번거롭고 분주하며 힘들던 5월 31일

31() 퇴근 후 초등동창들에게 주말모임에 많이 참석해 달라는 문자를 발송하고, 카메라 메모리칩에 가득 담겨있던 사진을 외장 메모리칩에 옮긴다. 랜섬웨어(악성 프로그램)에 감염되어 새로 장만한 컴퓨터라 기능조작이 익숙하지 못해 미뤄둔 12, 19일 산행하며 메모한 기록을 타이핑해 한글파일에 저장하고, 집을 비울 이틀간 블로그에 올릴 2개의 글을 만드느라 그러지 않아도 타이트했던 시간이라 배낭꾸리기도 빠듯한데, 저녁식사까지 해결하느라 바쁜 시간이 정신없이 흐르지만 무사히 청량리-안동(1913분, 무궁화 1609열차)행 열차표를 주문하니 청량리-양평까지 입석, ‘양평-영주까지는 좌석으로 매표했으니 양평까지는 카페전용(4호차)를 이용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4호차에 올라서니 立錐餘地(입추여지): 송곳 의 끝 을 세울 만한 빈 데도 없다는 뜻처럼, 서울 지하철 러시아워 시간대의 전동차처럼 복잡해 버티지 못했다. 공간적으로 조금은 여유가 있는 3호차로 탈출해 서서 버티자 무정차로 양평역에 도착한다. 지정좌석을 찾아 앉으니 참고있던 졸음이 밀려온다. 원주역을 지나며 고송부님께 문자로 위치와 도착시간을 알린다. 졸고 있는 사이에 영주역에 도착했다.(22:29) 먼저 도착하신 고송부님과 만나서 가벼운 안부를 나누고 편의점에 들려 소주 한 병을 사들고 투숙할 모텔을 살펴 고르는데 고송부님! 잠자리만큼은 깨끗하고 좋은 곳에서 자야 한다며 호텔투숙을 주장하니 따를 수밖에.... 아날로그 시대 사람인지라 디지털화된 신형(자동화)된 전자제품 사용이 미숙해 이런저런 해프닝을 남기며 밤이 깊어간다.


6월이 열리는 초하룻날의 조금 특별한 여정

신록이 출렁이는 6월의 첫날 중에서도 새벽이다. 고송부님께서는 어젯밤 약주가 과했는데도 평소의 부지런함이 몸에 밴 습관인지 4시에 일어나 샤워하고 하루를 준비하느라 분주했으나 열차시간에 맞춰야하기에 호텔방에서 뒹굴다 730분부터 무료식사가 가능한 호텔직영 8층 식당에서 조식을 해결하고 예매한 826분 무궁화(영주-춘양)호 열차로 춘양역에 도착하자 고송부님께선 택시부터 불러 각화사로 가자고 주문한다. 그렇다면 오늘은 가볍게 각화사에서 지맥능선으로 올라붙어 각화산-1177.9m-백두대간 분기점(신선봉과 깃대배기봉 사이의 1,214m)에서 석문동으로 내려오면 일찍 끝나겠다고 머릿속으로 그리며 각화사에 도착한다. (09:20)


覺華寺(각화사) :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각화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봉화군태백산각화사중건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각화사 귀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89) 안내표지판에는 686(신문왕 6)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 예종 때 국사 무애계응(無礙戒膺)이 중건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쳐, 1606(선조 39) 삼재불입지(三災不入地) 중의 하나인 이곳에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를 건립하여 왕조실록을 수호하게 한 뒤 8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여 국내 3대사찰의 하나가 되었다.1913년 의병을 공격하기 위하여 일본군이 사고와 절을 불태웠다고 하며, 혹은 1945년 광복 후 소실되었다고도 한다. 1926년에 달현(達玄)이 법당을 비롯한 다섯 동의 건물을 중건하였고, 1970년에 금오(金烏)가 요사채를 중건하였고, 1979년 범종을 주조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사고 건물을 발굴하고 사고지를 정비하여 1991226일 사적 제348호로 지정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2층의 누각인 범종각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된 귀부(龜趺)와 삼층석탑이 있다. 이 중 귀부는 가로 2m, 세로 1.85m의 방형석(方形石) 위에 놓인 길이 1.75m의 것으로서, 시대나 유래 등은 알 수 없으며, 비석이 꽂혔던 자리만 남아 있다. 삼층석탑은 완전히 도괴된 것을 다시 모아 조성한 것으로, 높이는 약 3m이며 체감률이 낮고 상륜부가 없다.

절이 있는 석현리와 인접한 서동리의 춘양고등학교(春陽高等學校) 부지에는 각화사의 전신인 남화사지(覽華寺址)가 있다. 원효는 이 절을 이건하여 각화사를 창건한 뒤, 옛 절인 남화사를 생각한다고 하여 각화사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남화사지에는 보물 제52호로 지정된 봉화서동리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2기 가운데 동탑에서 사리병과 99기의 소형 토탑(土塔)이 둘려 있는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사찰 남쪽 약 200m 지점에 백월대사(白月大師) 10기의 부도가 보존되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각화사 대웅전, 능선에 올라서며, 각화산 정상-


각화사에서 각화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은 가팔랐다.

6월의 햇볕이 생각보다 따갑다 느끼며 산행복장을 꾸려, 사찰을 천천히 돌아보며 신라의 호국불교를 생각해보며 해우소 우측, 들머리로 능선에 들어서니 太白山 史庫址<(태백산 사고지: 사적 제348호 조선왕조는 다음 지역에 각각 사고를 지어 실록을 보관(300)하던 5(오대산· 마니산· 적상산· 춘추관· 그리고 태백산)사고 중 하나다.>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파름은 더해가며 머리와 등에서 부터땀이 흘러 등산복이 젖어들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 90여분동안 수고로움의 보상으로 능선을 경유해 정상에 이른다. 헬기장에 보도블록이 깔려있는 안부 한쪽에 아담한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는 각화산(1176.7m)에 닿는다.(10:58)


覺華山(각화산) :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 소천면

각화산(해발 1,177m)은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에 걸쳐 왕두산(1,044.3m)과 나란히 솟아있다. 각화산은 고산준령에 막혀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조선 5대사고 가운데 하나인 태백산사고지(사적348)가 설치되어있었다. 각화산이란 지명은, 본래 춘양면 서동리의 람화사(覽華寺)를 서기 676(신라 30대 문무왕 16)경에 원효대사가 이곳으로 이전하고 람화사를 생각한다하여 생각 ""자로 바꿔 부른데서 기인한다.

각화산에는 창건 당시 800여 승려가 수도하여 국내 3대 사찰로 손꼽혔던 각화사가 위치해 있으며, 봉화군 춘양면은 우리나라의 수목 중 가장 쓰임새가 많은 재목 춘양목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각화지맥 중요 봉우리인 왕두산, 944m봉 풍경-


분기점을 빠트리고 산줄기를 종주한다 어딘지 모르게 찜찜하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하며 땀을 닦아내고 출발하는데 고송부님의 진행 방향이 기이하다. 직진해서 분기점(백두대간)으로 가는 것이 정석이라 믿는데 뒤돌아 왕두산으로 가기에, 반대방향으로 가야 맞지 않나 물으니 분기점은 다음에 가고 오늘은 노루재까지 가기로 계획했다니 따를 수밖에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찜찜함은 분기점을 빠트리고 중간부터 종주를 시작하는 기형적인 산행을 더러 했었지만 지금껏 결과론에서 자투리를 깔끔하게 진행했거나 어떻게 하겠다는 확실한 계획이나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느낌이 씁쓸하지만 도리가 없으니 지금 산행중인 산줄기나 정리하고 지켜보기로 한다.


覺華枝脈(각화지맥)이란 ?

백두대간 태백산 남서쪽 7.3km지점인 신선봉(1,295m)과 깃대배기봉(1,032m)사이의 1,214m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해 각화산(1,176.7m),왕두산(1,046m),화장산(862m),월암산(608m)을 지나면서 서진해 경북 봉화군 명호면 명호나루 도천교에서 낙동강으로 운곡천이 합수되며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6.2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운곡천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신산경표-




-형제봉지나 기상관측 장비까지 지독한 잡목지대 힘든 구간-


조선 십승지에 관하여

정감록이 아니더라도 '조선 십승지'를 이미 완주했거나 현재 진행중 아니면 계획하고 있는 산꾼들이 많아 하산주를 나누는 자리에서 자주 들었으며 산행중에도 이따금 목격했던 현장인데 각화지맥 산줄기 봉우리 정상석 마다, 능선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는 단어가 바로 천하명당 조선십승지에 대해서 이쯤해서 한번은 살펴보고 넘어가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十勝地(십승지) 이야기

풍수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세 가지 악재가 들어올 수 없는 땅을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전쟁, 흉년, 전염병 등 재앙이 닥치지 않는 10곳을 지정하여 십승지(十勝地)라고 불렀다.정감록』 『격암유록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간은 끔찍한 질병과 굶주림, 추위와 더위, 공포에 시달리게 되고 대다수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해 놓았다. 그러나 십승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자손이 끊이지 않고 후세에까지 보존될 것이라고 하여 재난을 피하는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십승지를 언급한 책은 정감록』 『남사고 비결』 『남격암 산수 십승보길지지』 『장비록』 『유산록』 『감결』 『운기구 책60여종이 있으나 우리나라 십승지의 정확한 위치는 책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 예언서들은 파자(破字)등으로 기록하여 이해하기가 어렵고 표현 또한 직설법이 아닌 우회적으로 하여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책을 쓴 저자와 시기가 불분명한데 당시에는 이러한 책들이 나라와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여 소지하거나 배포하는 것을 금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쓴 필사본이기 때문에 쓰는 사람에 따라 실수든 의도적이든 내용을 누락 삭제하거나 첨가하여 보충하였기 때문에 똑같은 책이라도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십승지로 전해지는 열 곳은 영월 정동 상류(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봉화 춘양(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보은 속리 난증 항(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남, 화북면 일대) 공주 유구 마곡 두 강 사이(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풍기 차암 금계촌(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예천군 금당 동북쪽(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합천 가야산 남쪽(경남 합천군 가야면 만수동 일대)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부안 변산 동쪽 호암 아래(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남원 운봉 두류산 아래(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등이다.

일반적으로 풍수를 이야기 할 때 십승지 하면 양택지로써 아주 좋은 길지를 연상케 하는데 십승지란 의미는 풍수적 길지라기보다 전쟁이나 질병 기타 등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 대체적으로 깊은 산중에 위치하여 외부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그러므로 전쟁이 일어나도 피할 수 있고, 인구가 적어 1년 농사로 3년을 버틸 수 있으니 흉년이 없고,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없으니 전염병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므로 삼재(三災)로부터 안전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의 모든 땅이 풍수적으로도 길한 조건을 갖춘 땅이라는 뜻은 아니고 현 시대에 있어서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양삼열 경주대 사회교육원 풍수지리학 교수-





-춘양목의 멋진 자태를 감상하며 높은터, 화장산, 노루재에 이른다-


에필로그

오늘산행은 상당히 장거리나 백두대간 분기점부터에서 시작하지 못한것 아니고는 지적도상 마루금에서 어긋남 없이 각화산에서 노루재까지 도면상으로 20km 가까운 산줄기를 10시간여 산행을 충실하게 진행하며, 힘들었던 구간은 형제봉 지나서부터 흐릿한 족적조차 찾을 수 없는 지독한 잡목지대가 조망까지 전무해 산짐승처럼 땅과 나뭇가지만 바라보며 진행하느라 등산복이 찢어지고 피부는 여기저기 가시에 찔려 쓰라리고 고통스럽다가도 모처럼 바위를 만나 올라서면 조망이 시원하게 트였다. 고사목 군락은 산불지대임을 추측 가능하게 해준다. 멋진 춘양목을 눈요기하며 힘을 얻어 100여분 최악의 고행길이 지속되다가 799m(산악기상 관측장비)에 도달해서야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사실만을 기억하며, 택시를 호출해 춘양면소제지로 이동해 기사님의 도움으로 저녁식사를 겸해 하산주를 나누는 것으로 고단했던 각화지맥 첫날을 위로하고, 여관방을 잡아 따뜻한 온수로 땀을 씻어내며 하루를 마감한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 찾아서 ~



2019-06-20

계백 (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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