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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산 정상, 형제봉 정상의 차이-



동악산(動樂山)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곡성의 진산

2021025021호      2021-04-17()

 

자리한 곳 : 전남 곡성군

지나온 길 : 주차장-캠핑장-깃대봉-형제봉(성출봉, 대장봉西)-배넘어재-동악산-청류동계곡-보림사-캠핑장-주차장

거리및시간: 5시간 30(11:14~16:44)   도상거리 : 12.0km  <걸음 수 : 21,618>  초반 들머리 800m 알바포함

함께한 이 : D-산악회원 17

산행 날씨 : 맑음 짙은 황사 바람 강함 <해 뜸 05:55 해 짐 19:09         ‘최저 10, 최고 17>

 

근무자의 엉뚱한 안내로 어처구니없는 발품 팔다.

캠프장을 지나면 도림산장 옆으로 주차장이 있었으나 거리두기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도림사국민관광단지 주차장에 주차하고 해우소에 근심을 내려놓고 산행복장을 꾸리는 사이에 일행들은 서둘러 출발해 뒷모습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지도상으론 오토캠핑장과 야외음악당 사이 합성목재 테크가 형제봉 진입로라 표시됐으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이 생각나 근무자 두 사람이 초소에서 진입하는 차량들을 도로 한가운데에 정차시키고 체온을 체크하고 있다. 수고하신다는 인사말도 잊지 않았고 저기 테크가 형제봉 가는 길이 맞는지를 물으니 아니라며 도로 따라가다 보면 좌측으로 등산로가 있다는 안내에 새로 형제봉들머리를 만들었나보구나 생각으로 도로를 따르다 상가끝 동악산장에서 장작을 쌓고 있는 사람에게 형제봉 진입로를 물으니 왔던 길을 되돌아가 테크로 가야한다고 알려준다. 도림사입구에 있다는 등산안내도를 확인하러 가는 길목에서 나보다 앞서갔던 산객 두 사람도 안내를 잘못 받아 안내도를 확인하고 되돌아간다고 귀띔한다.

알지 못한 등산로를 엉뚱하게 안내한 근무자의 무심코 뱉은 한마디에 왕복 800m가량의 어처구니없는 발품을 팔았지만 산행에 무관심함을 탓하거나 원망하고 싶은 마음 없이 테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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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캠프장, 형제봉 들머리 풍경-

 

곡성고을과 동악산 공부에 인색했음을 반성한다.

특별하게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곡성고을과 동악산에 대한 공부가 미미한 탓이겠지만 개인적으로 곡성군하면 우선적으로 맑은 물의 섬진강과 관광명소인 기차마을이 떠오른다. 그러나 곡성을 단순하게 섬진강하나로만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고 아쉬움으로 가득함을 이번 산행에서 실감했다. 고을을 이름을 곱씹으니 골짜기 곡()에 높은 고개 성(), 골짜기와 언덕이 많다는 고장답게 곡성8경에는 다양한 골짜기와 재 너머 풍경이 포함되어 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원 고리봉과 나란히 솟아오른 곡성의 동악산행 전에는 정말이지 이토록 아름다운 명산인 줄은 미처 몰랐으며 지도에서는 읽을 수 없었는데 직접 대면하니 높이에 비해 웅장하고 큰 산세를 지니고 있으며 이름이 암시하듯 기암괴석을 보듬고 있을 뿐 아니라 청류동(도림사)골짜기를 경계로 800m에 미미치 못한 높지 않은 산이지만 명산으로 갖춰야 할 기본만은 확실하게 갖춘 산이며. 특이한 것은 동악산 정상(737.1m)보다 마주보고 있는 형제(성출)(758.5m)21.4m 더 높고 유서 깊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청류동(도림사)골짜기를 경계로 두 개 산군으로 나뉜다. 골짜기 북쪽은 동악산, 남쪽은 형제봉(759m)줄기인데, 동악산은 섬진강변에서 산자락을 끝맺지만 형제봉은 남쪽으로 최악산을 거쳐 보성강에 산자락을 담근다.   (월간2002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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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지대, 깃대봉, 형제봉에서 바라본 황사먼지, 동악산 정상-

 

들머리-깃대봉-형제봉-배넘어재

들머리서부터 10여분을 허비했고 산객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솔향기 그윽한 완만하지만 꾸준한 오르막능선을 올라서며 나무 허리춤에 걸려있는 격려문구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산행을 격려에 힘입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형제봉의 솟대역할에 충실한 돌탑과 돌탑군을 지났으니 어느 정도는 고도를 높였겠지? 했는데 형제봉까지는 1.0km가 남아있고 고도는 526m이니 233m를 극복해야 형제봉에 오를 수 있다는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서 산행 하시간만에 하산중인 산객부부를 처음으로 만났다.(12:32)

깃대봉에서 바라본 형제(성출)봉이 울창한 송림사이로 위용을 드러낸 험한 바윗길을 숨을 헐떡거리며 안내판이 자리한 형제봉중의 동봉(성출봉:758.5m)에 올라선다.(13:14) 길상암터(0.8km) 계단에서 진행할 산줄기를 가름해보고 건너편 동악산에게 이따 보도록 하자는 눈인사를 나누는데 강한 바람이 심술이며 짙은 황사로 지리산은 조망이 불가해 불만이다.

헬기장에서 대장봉우회로를 진행 육산능선을 빠르게 이어가 임도와 팔각정이 자리한 고갯마루(배넘어재)에 내려선다.(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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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 동악산군 경계 배넘어재 풍경-

 

동악산(動樂山) : 전남 곡성군 곡성읍 월봉리에 있는 높이738.5m 산이다. 남쪽으로 형제봉, 최악산으로 이어지고, 북쪽 아래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곡성읍 서쪽에 위치한 동악산은 겉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산으로 보이나 산속에 들면 골짜기가 깊고, 바위로 이뤄진 산세는 범상치 않다. 산 남쪽 성류구곡에 위치한 도림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이 절의 처음 이름은 신덕왕후가 행차한 곳의 절이라는 의미의 신덕사였으나 현재는 도를 닦는 승려들이 수풀처럼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도림사로 불리고 있다. 곡성 고을 사람 중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인물이 나올 때마다 산이 흔들리며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렸다고 하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출처 :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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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형제봉과 지리산-

 

배넘어재-동악산-청류동계곡-보림사-캠핑장

맑은 날씨가 분명하지만 황사가 짙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낮아 바람을 막아주는 팔각정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앉아 떡과 사과 한쪽으로 점심을 때우고 형제봉 영역에서 동악산자락이 시작됨을 알리는 배넘이재안내목(해발 548m,동안산2.2km 도림사2.6km)을 뒤로하고 소나무 오솔길을 여유롭게 진행한지 50분만에 귀하디귀한 1등삼각점(남원11)을 확인하고 바위에 아찔하게 걸려있는 철탑(무인산불감시초소)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철계단을 곡예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오르는데 때마침 들이닥친 강풍에 몸이 날려 왼쪽안전봉에 결렸고 철계단이 휘청거려 머리털이 쭈뼛 서지만 조금전에 지나온 형제봉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외치는 소리가 강풍을 타고 희미하게 귓전을 때리지만 해석이 불가한 돌탑아래 곡성군에서 설치한 동악산(735m) 정상석이 강풍과 맞서고 있다(15:06)

잘생긴 소나무아래 넓게 조상된 테크(조망대)에 올라서니 강풍에 황사먼지가 조금은 흩어졌는지 곡성읍내와 들녘 뒤로 지리산이 흐리게라도 조망되는 능선을 따르다 갈림길에서 만난 안내판(곡성읍(향교) 2.9km 도림사 2.2km)에서 도림사로 방향을 정하고 청류동계곡으로 하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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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류동계곡 암반위 글-

 

청류동계곡 : 신라 사찰 도림사(道林寺)가 있는 곡성 동악산은 계곡이 아름답다. 도림사를 끼고 있는 청류동(淸流洞) 계곡은 특히 그러하다. 넓은 반석 위로 얇게 퍼지듯 물이 흐른다. 그 풍경도 아름답거니와, 암반과 바위 곳곳에 새겨진 각자(刻字)들도 아름답다. 산수(山水)는 산수이되 그 각자 또한 아름다워 청류동 풍경은 문화산수(文化山水)라 불린다.

동악산 청류동 계곡은 조선 성리학의 성지 해동무이(海東武夷)이고, 조선의 선비들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유학의 본지(本旨)를 찾고 도통의 연원을 이어 가면서 민족자존의 항일의병과 민족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위정척사 사상의 모태였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김인후(金麟厚,1510~1560), 고경명(高敬命,1533~1592), 유형원(柳馨遠,1622~1673), 허생(許生), 박세채(朴世采,1631~1695), 김창협(金昌協,1651~1708), 김창흡(金昌翕,1653~1722), 이익(李瀷,1681~1763), 정약용(丁若鏞,1762~1836), 기정진(奇正鎭,1798~1879) 등을 비롯하여 구한말 최익현, 전우, 송병선, 황현, 기우만 등 쟁쟁한 선비들과 나라를 위해 절의를 지킨 열사들이 동악산으로 들어온 것은 조선 유학자들의 성지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곡성의 숨은 선비들이 남긴 발자취를 찾아본다.

이곳에 춘기(春沂) 정순태(丁舜泰)와 하정(荷亭) 조병순(曺秉順)이 설치한 청류동 구곡이 있다. 일곡(一曲)에 쇄연문(鏁烟門) 춘기(春沂) 하정(荷亭)의 각자가 있다. 일제강점기 곡성에 살던 유학자들로 정순태 집안은 만석꾼이고 조병순 가문은 천석꾼이었다. 춘기 정순태 집안은 조병순과 같은 이치로 재산을 털어 학교를 세우고 '자금'을 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문중에서 7대를 모아온 장서 1만 권을 1931년 연희전문학교에 기증했다. 양반가의 정신적 목숨을 그리 내놓았다. 근처에 향회입연식(向晦入宴息계구근독(戒懼謹獨)이 있고, 하천 건너 또 일곡(一曲)인 도채위경(淘採爲耕), 옆에 간재 전우가 창시한 성사심제(性師心弟)가 있고, 아래쪽으로 제법 떨어진 곳에 귀기간소(歸奇顅慅)가 있다.

이곡(二曲)은 도림사 일주문 가기 전 범바위 맨위 입천정에 해당하는 곳에 거연천석(居然泉石)이 있고 바로 좌측에 소아(小啞) 양덕모(梁德模) 8명의 각자가 있다. 다음은 그 아래 혀에 해당하는 곳에 무태동천(無太洞天), 혀 밑에 독호수선(篤好守善), 선사어제(鮮史御帝)는 턱 중앙에 있고 그 좌우에 새긴 각자는 우측으로부터 송석(松石) 이중희(李重禧한주(寒洲) 곽임선(郭林善봉산(鳳山) 오관순(吳寬淳사운(沙雲) 유인영(柳寅永매운(梅雲) 조영가(趙泳嘉오강(梧岡) 김정호(金正昊근암(近庵) 박인섭(朴寅燮남강(南岡) 조원승(曺元承가곡(可谷) 이정식(李正植소봉(小峰) 조상천(趙相天법재(法齋) 정일필(丁日弼죽당(竹堂) 신봉국(申鳳國두후(斗後) 조상묵(曺相黙춘기(春沂) 정순태(丁舜泰회천(晦泉) 조병선(趙秉善금강(錦岡) 정신태(丁信泰하정(荷亭) 조병순(曺秉順)까지 17인과 좌측 끝에 묵용(黙容)을 새겨 놓았다. 그리고 범바위 우측에 심재(心齋) 이곤수(李崑壽) 16, 그리고 범바위 좌측 볼에 해당하는 곳에 난사(蘭史) 김학묵(金學黙) 10명이 있다.

또 길 아래 하천 좌측에 이곡(二谷) 영과후진(盈科後進) 방호사해(放乎四海), 춘기 정순태·하정 조병순이 있고, 하천 우측 조금 아래에 사무사(思無邪), 사무사 암벽에 오헌 조병식 외 12명 각자가 있다. 사무사에서 하천 상류로 오르면 주자(朱子)의 시() 소간(小澗)이 각자되어 있다.                     -유교신문 2020-05-17 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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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사 풍경-

 

도림사(道林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660(태종무열왕 7)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는데, 그 당시 풍악의 음률이 온 산을 진동하였다 하여 동악산이라 하고, 도인(道人)이 숲같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582년경 신덕왕후(神德王后)가 절을 창건하고 신덕사(神德寺)라 하였는데, 660년 원효가 사불산화엄사(四佛山華嚴寺)로부터 옮겨와서 도림사로 개칭하였다고도 한다.

그 뒤 876(헌강왕 2) 국사 도선(道詵)이 중건하고 지환(知還)이 중창하였으며, 조선 말기 처익(處翼,18131888)이 산내암자인 길상암(吉祥庵)을 창건하였다고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보이는데, 당대의 유명한 목수장(木手匠)이자 승려인 영해(影海)도 도림사에서 주석하였다. 길상암은 현재 옛터 위에 토굴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중심건물인 보광전(普光殿)을 비롯, 나한전(羅漢殿명부전(冥府殿약사전(藥師殿응진당(應眞堂궁현당(窮玄堂칠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보광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으로 겹처마에 단청이 있고, 응진전은 정면 3, 측면 1칸의 맞배기와집이며, 명부전은 정면 3,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집이다.

문화재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된 도림사괘불이 있는데 1730(영조 6)에 제작된 것으로 크기는 세로 300, 가로 278이다. 절 앞 약 500m 지점에 5기의 부도(浮屠)가 남아 있고, 절 앞 계곡에는 반석이 좋아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에필로그

동악산 청류동계곡의 골짜기는 빼어난 기암절벽과 암반으로 이루어져 육산과 골산의 산수미를 겸비한 곡성의 진산이며, 섬진강 너머로 하늘을 가를 듯 산줄기를 길게 뻗은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이 눈에 선해 정말이지 아주 오랜만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사색하고 즐기는 힐링한 동악산이 소중하게 간직한 많은 비밀들을 산객이 노력하고 투자한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어온 유익하고 행복한 산행을 기분 좋게 마감했고 귀경시 교통상황도 비교적 순조로운 모든 것이 만족한 멋진 날이라 나의역사에 푸른 하루라는 고운 기록을 남기며 산행을 마감한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 찾아서 ~


2021-04-26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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