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J형! 

 참으로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세월인가 봅니다. 어느덧 신록이 제 빛깔을 온전히 드러내는 5월의 문턱에 서있습니다. 그 누가 뭐래도 봄의 피날레는 철쭉이 장식하는 것 같습니다. 봄의 마지막 여흥을 자축하듯 호사스러움을 뽐내며 호들갑을 떨더니 아쉬움만 남긴 채, 짙어가는 신록의 향연 속으로 밀려갑니다. 이처럼 세월은 무상해도 일관해서 변하지 않는 이치는 원형이정(元亨利貞) 4계절의 순환입니다. 덧없이 지나간 나날을 애련(哀憐)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또 다른 추억거리를 엮어놓으려고 오늘도 산으로 갑니다. 
 

 그동안 동료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순탄하던 직장생활이었지만 지난 2여년 전에 실시된 선거전에 휩싸여 엄청난 데미지를 입고 휘청거려 숨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엉겁결에 닥쳐온 시련은 실로 잃어버린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질곡(桎梏)의 세월 속에서 진정한 삶의 방향과 올바른 가치기준을 채득(採得)하기까지는 수많은 통고(痛苦)를 감내(堪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참담(慘憺)함에 젖어 눈물을 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움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이렇게 산정(山頂)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아보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마음 아픔의 원인은 지나친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당장 이루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압박감에 사로잡혀 나눔의 정이 가득담긴 따스한 시선을 묵살해버리고 주위의 조언을 거부한 채, 독선기신(獨善其身)의 사고(思考)에 매몰(埋沒)되었기 때문입니다. 배려하기보다는 배려받기를 원했고, 이해하기보다 이해받으려는 일방적인 태도에서 모든 것이 비롯되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왜 그 당시 그토록 성급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J형! 

 잃어버린 시간동안 참을 수 없었던 고독의 갈증은 엄청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얄팍한 염량세태(炎凉世態)를 예상했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처럼 정말로 그러지 않을 사람들의 조소와 외면은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줘 자포자기(自暴自棄)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웠던 시간을 절망감에 휩싸이지 않고 내적으로 또 다른 내 자신을 키울 수 있는 터전이 산행이었습니다. 
 

 꾸준한 산행과 독서로 체념(諦念)의 시간을 슬기롭게 극복하려고 나름대로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뒤돌아서 외면하고 비웃음을 던지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울분이 솟구칠 때마다, 힘들게 산을 오르는 자세로 용서와 화해를 간구하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만약 그 당시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미혹(迷惑)에 빠져 쾌락만을 쫒아 다녔다면,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까 늘어난 주름살을 바라보면서 쓴웃음을 짓는답니다. 
 

 산이 있기에 산에 오르고 산에 오르기에 그곳에서 평상심(平常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서 오는 사람을 박대하지 않고 싫다고 돌아설지라도 원오(怨惡)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오가는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그러기에 지치고 고달픈 사람들이 안온한 안식을 취하려고 산을 찾습니다. 오르고 또 올라도 또다시 오르고 싶은 욕념(欲念)이 사그라지지 않기에, 많은 산우들이 오늘도 피안의 쉼터인 산을 찾아 고난의 레이스를 펼칩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자연인(自然人)으로 살아가려는 도리를 기자불입(企者不立), 과자불행(跨者不行)이라고 가르칩니다. 발꿈치를 들고 서있는 사람은 오래 서있을 수 없고 발걸음을 크게 내딛는 사람은 오래 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과장하지 않고 인위적인 가식과 위선에서 벗어나, 자기 모습 그대로 꾸밈없는 질박(質朴)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자연인이 되는 첩로(捷路)입니다. 

  

 J형! 

 지나간 어제에 매달려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또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오늘만 생각한다면 균형(均衡)의 일상을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멈춤과 비움의 의미를 깨우쳐가면서, 다시는 성급함에 빠져들지 않고, 비교하지 않는 삶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하렵니다. 누군가가 왜 뒤쳐져가는 이유를 묻는다면, 서둘러 바삐 가다가 넘어지는 것보다, 탈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지혜로운 여로(旅路)를 걸어가겠다고 말하렵니다. 비교하는 삶은 영원토록 만족감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우리사회도 하루빨리 양적 비교에서 벗어나 질적 비교에 비중을 둬야합니다. 지나치게 양적인 비교에 골몰하거나 민감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도 남의 인간적 가치를 감히 평가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인간적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거울을 들여다보지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 할애에 너무 인색합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자아의 눈을 뜨기 위해서는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는 아욕(我慾)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의 눈을 뜰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노심(勞心)을 경주하며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기지 못한다면 퇴보한 삶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공의 척도를 어디에 두느냐가 관건입니다. 매사를 네거티브(negative)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면 절대로 만족감을 거머쥘 수 없으므로, 항상 포지티브(positive) 사고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꿔놓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사유(思惟)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진짜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자세를 견집(堅執)하고 행동하면 모든 일이 원만하게 잘 풀릴 것입니다. 
 

 J형! 

 점점 시들어가는 철쭉을 바라보면서 지난날 형과 함께 이곳을 거닐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니 형이 더욱 그리워져 “年年歲歲花相以, 歲歲年年人不同”“해마다 꽃은 같은 모습인데,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네”라는 詩句가 생각납니다. 오늘은 괜스레 응석을 부리는 마음으로 고이 간직해온 푸념을 늘어놓아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저의 부덕함을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못 다한 정담은 언제쯤 지리산을 누비면서 나누기를 기대하며 이만 줄이렵니다.



▣ 아차산 - 현촌님 화이팅!화팅
▣ 느림보 - 현촌님을 통해 산행의 기초를 배우고 산을 사랑하게 된 이 느림보는 현촌님의 산행기를 통해 인생을 배웁니다. 요즘 저는 평정심을 갖다가도 흔들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산과 산을 사랑하는 이들을 붙잡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려 합니다.
▣ 현촌 - 느림보님아! 명산대천 찾아갈 때 이 못난이도 한번쯤 동행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학수고대하면서 언제나 건강하시고 즐거운 산행 이어가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