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양산(II)▲국내 순수산문인 희양산문의 봉암사


- 언제 : 2004.5.26(수)
- 얼마나:2004.5.26 11:10~15:20(4시간 10분)
- 날 씨 : 흐림
- 몇명:47명
- 어떻게 : 새한솔산악회 따라서( http://saehansol.hihome.com )
▷봉암사
- 개인산행횟수ː 2004-22
- 산높이ː희양산 998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희양산의 남쪽기슭에 위치한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879)에 지증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계종 제8교구의 말사이다. 창건이후는 지증국사의 문손(門孫)들이 국사의 뒤를이어 중수(重修)하였는데, 웅장하고 예술의 극치를 이룬 건물들이 즐비하였으나 안타갑게도 소실되었으며, 그 후 고려 태조 18년(935) 정진국사(靜眞國師)가 봉암사에 주석(駐錫)하면서 중창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고, 몰려드는 많은 선승(禪僧)들을 가르쳤다.

이로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 인 희양산문으로 전성기에는 3,000여 명의 수도승이 도를 닦았다는 거찰이며 지금도 많은 승려가 선(禪)에 전념하고 있는 참선도량이다.



15:27
다소 긴장한 마음을 안고 등산복차림에 배낭을 메고 용감하게 정진대사원오탑비가 있는 풀밭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봉암사로 접근한다.여러사람들이라는 익명성에 뭍혀 함께 휩쓸려들어가는 인해전술입장이다.


:::정진대사원오탑비
고려 태조는 정진대사의 덕을 흠모하여 꿇어 앉아서 설법을 들었으며, 혜종 정종 광종의 예우가 극진하였고 광종이 즉위하자 증공대사(證空大師)라 존호하며 사나선원(舍나 禪院)에 머물게 하였다. 956년에 세상을 떠나니 광종은 시호를 정진, 부도명을 원오라 내리고 그의 비문글씨는 한림원박사를 지낸 당대의 명필 장단열(張端說)이 썼다고 하는데 글씨가 흐릿해서 명필의 글씨를 제대로 못보는 것이 다소 아쉽다.

15:32~37
드디어 봉암사로 들어선다.애써 태연한척하지만 숨막히는 긴장감이 가슴을 짓누른다.정말 훌륭한 참선도량이다.




:::봉암사 경내

15:41
연등은 흰색한지로만 만들어 여기가 참선도량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단순하면서도 장중한 압박감이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대웅보전은 중창불사로 더 커진것 같다.금색전이 과거의 대웅전으로 보이는데 현재의 대웅보전엔 참배객들이 절을 하느라 분주하지만 조용하다.



:::대웅보전




빈 자리 - 박영호

법당 안에 사람들이
절을 하는 동안 심심한 부처님은
슬며시 뒷문을 빠져 나와
뒤뜰에 가득한
햇살에 쓸어내고 있다
금박의 무거운 옷을 벗고 있다
허물을 벗은 부처님의
속살은 희고 눈부시다
법당 안의 사람들은 빈 자리를
향하여 아직도 절을 하고 있다



15:42
지증대사 적조탑과 적조탑비가 보인다.신라 헌강왕 8년(882)에 만들어져 봉암사 3층석탑보다 3년 뒤에 만들어졌는데 신라의 다보탑처럼 너무 양식이 아름답다.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756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이 불국사에 세운 다보탑보다 120여년 뒤 만들어진 것으로 한눈에도 다보탑을 영향을 받은 것을 알수있다.동시대이니 양식도 비슷하다.

봉암사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1년내내 오직 참선으로 수행·정진하는 도량이다. 이 사찰의 최대 자랑 거리는 장중한 형태와 정교한 조각이 일품인 지증대사적조탑(보물 제137호)과 탑비(보물 제138호)다.



:::지증대사적조탑 일부

15:45
봉암사 선원이 보인다.희양산문태고선원이라는 한문 현판이 보이는 이 건물의 크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봉암사 선원은 해방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한국불교의 현대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한 결사도량으로 거듭난다. 이름하여 '봉암사 결사' 가 그것이다. 봉암사 결사는 19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 자운. 우봉스님등 4인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원을 세우고 결사도량을 찾으니 그 곳이 봉암사였고 여기에서 비구승들의 용맹정진이 오늘 하루도 빠짐없이 일년내내 안거하고 있는 것이다.

九山禪門 중 희양산문(봉암사)은 순수 국내 산문으로 일년내내 안거하는데 구산선문 중 유일하게 중국에 들어가지 않고 산문을 성립시킨 희양산문의 개창자 지증선사(824∼882). 그는 다른 선문 개산조와는 달리 유학에 밝았고 선승으로서의 특별한 인연을 나타내는 탄생·금기·출가 등 6이(異)와 불사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6시(是) 등을 주장했다


:::희양산문태고선원이라는 현판이 보이는 봉암사 선원

15:47
금색전 앞에 봉암사 3층석탑이 있다.3층석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엔 금색전이 대웅전이었던 모양이다.금색전 뒤쪽에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봉암사 3층석탑은 756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이 불국사에 세운 석가탑 보다 123년 뒤 헌강왕(憲康王) 5년(879)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탑으로 세련된 멋과 안정된 비례등 통일신라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15:49
유명선승들이 모셔져 있는 조사전을 얼핏보니 가장 최근인 2003/12/04 입적하신 영축총림 방장 월하대종사의 영정이 보이고 봉암사의 넓은 도량넓이 때문에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봉암사 경내

15:50
극락전이 보인다.


:::극락전은 임진왜란때에도 봉암사의 다른 건물은 병화로 전소되었으나, 이 극락전 만은 장작 개비에 불을 붙여 지붕위에 올려 놓았더니 장작개비는 날려갈 뿐 신기하게도 불에 타지않아 왜병들이 극락전 소각을 단념하였다고 한다. 유일하게도 수차의 대화재에도 건재한 이 극락전은 신라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전하는 목탑형의 건물이다.

15:51~4
봉암사 경내를 좀 더 둘러본다.




16:04
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일주문을 나선다.고려시대 조성된 마애불을 못보는 것이 다소 아쉽다.일주문에 사천왕상이 보이지 않는다.사천왕상(四天王像)은 우주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을 형상화한 상(像). 즉, 동방 지국천(持國天), 서방 광목천(廣目天), 남방 증장천(增長天), 북방 다문천(多聞天) 등 사방의 천왕을 사천왕이라 하는데 이를 도상화한 것이다.봉암사의 사천왕상은 토함산 석굴 사천왕상이 조성되던 전·후기에 신라 석탑 탑신부에 사천왕상을 활발히 새기기 시작했는데 봉암사의 사천왕상은 봉암사지증대사탑(鳳巖寺智證大師塔, 884년)에 새겨져있다.그래서 일주문엔 사천왕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추측된다.·



16:11
봉암사를 빠져나오며 보는 희양산의 모습은 좌우균형이 완벽한 몸짱을 자랑하는 유명 연예인의 모습과 흡사 닯았다.


:::희양산

16:32
도로를 따라 가은초등학교 희양분교에 주차한 버스까지 걷는데 작년 여름 계곡에 텐트를 치고 일박했던 장소 근처의 당집 보호수가 신령스럽다.




가은초교에서 가오리회와 하산주를 하며 맘졸이던 상황은 전혀 걱정 할 것 없었던 상황으로 바뀌었고 그동안 보여주지 않아서 더 보고 싶었던 희양산과 봉암사를 들러 본 행운에 감사한다.

10시 이전에 부산에 도착했는데 연산동에서 하산주를 한번 더하고 집에 오니 12시가 넘었다.부처님 오신 날까지 하산주를 한다는 것이 뭔가 앞뒤가 안맞지만 땡초가 어디 가겠수?!


♬: Gheorghe Zamfir/The Lonely Shephe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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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添: 2004년 산행후기 모음 보기
別添: 2003년 산행후기 모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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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永漢 - 트래픽 관리를 위해 이미 작성해 두었던 봉암사편을 조금 늦춰 다시 올렸습니다.

▣ 산초스 - 국내 유일의 일년일회 개방하는 희양산 봉암사의 멋진 모습을 영한님 덕분에 보게 됩니다. 아쉽지만 그래도 희양산 등산로를 봉암사를 피해 멀리 돌아가게해서라도 다닐수 있게하면 좋을것 같은데....
▲우리나라 불교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봉암사 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1년 1회만 개방하다보니 산이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수풀이 많이 우거져서 봉암사 스님들의 노력의 단맛을 느끼고 왔습니다.

▣ 김정길 - 산하에서 처음 쳐보는 기립박수!! 저는 아직도 들어가 보지 않아 궁금해 하던 봉암사의 실체를 영한님 덕분에 알아보게 됩니다. 답사 촬영 공부 제작 등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는지요, 그러고도 직장에 지장은 없으신지요, 참으로 대~~단 하십니다. 감사!!!
▲큰형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제가 개인홈페이지가 있어 미리 짜투리정보를 모아두었고 직접 본 느낌과 섞으면 바로 글이 됩니다.1부와 2부 모두 글을 올리는데 4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 이두영 - 희양산과 봉암사 구경 마음놓고 하신점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축하를보냄니다.
▲회장님이 당일 안계셔서 재미난 설명을 못들어 팩트위주로 적다보니 재미는 없어지고 정신무장에 가까운 글이 되었습니다.^^*

▣ 빵과 버터 - "빈 자리를 향하여 아직도 절을 하고 있다" - 나를 향하여 던져지는 멧시지에 화들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나는 진정 무엇을 위하여 절을 하고 있는지? 오카리나의 서늘한 선율에 젖은 이른 아침 빈 사무실에서....
▲지적하신 싯구의 글은 마음으로 읽으면 가슴이 찡해오는 부분입니다.누군가 저의 의도때문에 가슴쓸어내릴 분이 게실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한분 딱 걸렸네요.^^*...뒷뜰에 앉아있는 희양산이 바로 부처님 같다는 의미에서 이 시를 선택했습니다.오카리나와 비슷한 소리의 팬플룻입니다.팬플룻의 대가라는 George Zamfir(쟘피르 게오르규)이 연주한 곡명은 The Lonely Shepherd(고독한 양치기)"이고 James Last가 작곡한 곡입니다.봉암사는 한국불교가 썩지 않도록 노력하는 고독한 양치기라는 의도에서 이 곡을 선택했습니다.팬플룻의 소리가 참선의 서늘한 죽비소리와도 느낌이 비슷하기도 하고...선곡이 괜찮나요?^^*

▣ 브르스황 - 자세한 봉암사 설명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역시 박사라니까,,,, 근데 희양산 등반은 안하셨습니까? 평상시 희양산등로는 개방이 되나요? 오랫만에 고독한 양치기 팬풀릇 소리 들어보내요. 대학때 한참 음악다방에서 아드리느를 위한 발라드와 함께 인기가 있어서 즐겨 듣곤 했었는데.... 건강하시고 항상 안산, 즐산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희양산 등반에 관한 부분은 앞부분 18663번 희양산(I)에서 보시기 바랍니다.평상시 등반에 관한부분도 설명해두었습니다.그나저나 1기가 트래픽으로는 감당이 안되니 사진이 자주 끊어집니다.^^*브르스황님은 초파일에 산에 안가셨는지 아직 산행기가...

▣ 불교신자 - 사찰앞으로 자기네땅 밣고지나간다는 이유로 문화재관람료(사실은통과세) 를 강제로 징수하는 스님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무엇인지요.그러니 염불보다 잿밥이라는....일반사람들 한테는 욕심을 버리라 하면서....
▲다른 사찰과 달리 봉암사는 입장료나 문화재관람료는 받지 않습니다만 초파일 등값은 받습니다.^^*

▣ 운해 - 개방 하지 않는다는 봉암사의 사찰 내부를 永漢님의 산지과 설명을 곁드리니 지금부터는 다녀 온걸로 하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봉암사가 나아갈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기회되면 한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 산사랑 - 희양산 그리구 봉암사 잘보았슴니다...그것도 1.2 .편으로 쪼개어서 .. 봉암사의 연등은 모두흰색으로 만들었다는것도 오늘처음 알았슴니다..글 그림 잘보았슴니다...
▲잘 지내시죠?.이번주는 3번이나 산에 갔습니다.^^*

▣ 김용관 - 보기가 쉽지않다는 1-2편으로 나누어진 희양산-봉암사 즐감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즐감하셨다니 감사합니다.아무래도 신비감이 커서 더 보고 싶은 곳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