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思母曲으로 달래는 운장 구봉산 이야기.

 

-산행 일시: 2005.03.30.

-산행구간: 신궁항리-서봉-운장산-동봉-복두봉-구봉산-상명마을.

-함께한 사람: 나 홀로.

 


 



 



 

            <광양 청매실 농원에서>

 

어제는 심야근무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무릎관절 때문에 함께 산행하지 못한

아내에 대한 배려입니다.

아마,

그것은 앞으로 나 혼자만의 산행에 대한

보상 심리인지도 모릅니다.

광양 매화마을의 홍 매화 청 매화 백 매화가

파란 하늘과 섬진강 그리고 지리산과 조화된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산수유 축제는 끝났지만 아직 만개하지 못한

노란 산수유를 보면서 입으로 씨를 깨물어 뱉어낸

그 옛날 산동처녀의 애절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보리밭 산수유와 만복대를 바라보며>

 

저녁 9시를 넘겨서야 내일 산행약속을 허락 받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허락이 아닌 보고였지요.

그리고 지난 가을 C 카페 합동산행 때 하지 못한

운장의 비경을 가슴에 담기로 하였습니다.

갑자기 밀려오는 그리움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00카페를 알고 난 뒤 그곳 사람들이 더욱 그리운 건

산으로 맺어준 인연의 끈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난 밤

쌓고 또 쌓는 모래성은 허물어 졌지만

가슴에서 토해낸 수 많은 단어들은

새로운 여명을 잉태하면서 아침을 맞습니다.

홀로 산행은 언제나처럼

이른 여명 속에 어둠을 가르는 기차와 함께 합니다.

어제 저녁 늦게 나의 산행을 알린 H 님이

벌써 저를 반기고 있습니다.

오늘 운장산의 산행초입인 신궁항리로 향합니다.

 


 



 


 

 

-이별연습.

지금 나는 또 다시 이별연습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 고향과 타향을 수십 번 오가면서

끈질긴 인연들과 母情으로 수 많은 이별연습을 하였습니다.

대밭 모퉁이 돌아 뒤 돌아 보았을 때도

다리 건너 신작로에서 희미한 어머니의 모습은

미동도 하지 않으신 채로……

그런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 노쇠하신 백발의

초췌한 老母가 안쓰럽게 느껴짐은

피할 수 없는 세월만 한탄하기가 부끄럽습니다.

궁항리에 남겨두고 떠나야 할 H 님은 멀어져 간

자신을 바라보며 마치 우리들의 어머니처럼

그곳에 서 있습니다.

행여 초입을 못 찾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하지 못한 산행의 아쉬움이 범벅이 된 채로……

이 몸은 그런 아쉬움을 빨리 탈피하고 싶어

잡목 숲으로 잽싸게 몸을 숨깁니다.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제서야 그 자리를 뜹니다.

이제 나 홀로 시작되는 사색의 산행이 시작됩니다.

 


 



 


 

 

300고지에서 시작된 나의 산행은

처음부터 빡 센 산행이 이어집니다.

몇 번의 숨 고르기를 한 뒤부터는

고도에 따라 뱀 허물 벗어내듯

자신의 허물을 벗어 냅니다.

마음속에 감춰둔 내면의 세계를 펴 보이면서……

 


 



 

           <구봉산에서 바라보는 조망>

 

-산에 미친 사람들.

그 중 한 사람이 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떤 심오한 철학이 있어서도 아니고

유명한 산악인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입니다.

거리낌 없이 자신을 산에 맡길 때

산에 미친 그들은 진정으로 겸허 해 집니다.

높은 산정에 올라

발 아래 있는 사람들을 바라 볼 때에도

그들은 결코 오만하지 않고 선량해집니다.

이렇게 산은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저도 그래서 그냥 산이 좋습니다.

 


 



 



 

           <전망바위에서:사진 위/산오름에 서봉을 바라보며/가까이에서 본 서봉:사진 아래>

 

주섬주섬 흥얼대며 올라 와 보니

700고지 송림 숲 사이를 지나

벌써 전망바위에 와 있습니다.

이따금씩 양 옆으로 산죽 밭이 있지만

누군가 산 객들을 위해 길 단장을 해 놨습니다.

요 앞에 보이는 서봉이 마치 연인의 심벌 같다면

저에게 앙큼하고 퇴폐적인 생각이라고 하시겠지요.

 


 



 

           <서봉의 정상석에서>

 

-서봉에서

이윽고 헬기장지나 서봉을 향해 갑니다.

암봉을 우회하여 갈 수도 있으나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해갑니다.

등산화에 묻은 진흙더미가 미끌미끌 하기도하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낭떠러지는 간장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이윽고 산행 후 한 시간 만에 서봉에 섰습니다.

다시 H 님께서 준비 해 주신

운장산의 상세도를 펼쳐 보입니다.

갑자기 이뤄진 산행이라 전혀 준비하지 못한

나에게 이런 배려를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그들이 이곳으로 올라올때를 생각 하며:피암목재에서>

 

10여분의 아쉬운 조망을 뒤로하고 정상을 향해 갑니다.

이곳 산행구간은 뚜렷한 이정표가 맘에 듭니다.

잠시 지난가을과 최근에 다녀간

그들이 피암목재에서 올라왔을 코스를 바라봅니다.

허상과 실상이 교차되면서

0.6km 구간의 거리를 지나 운장산 정상에 섰습니다.

남으로 마이산과 지리자락이 보이더니

동쪽 구름 속에 피어있는 덕유산이 산수화를 그립니다.

북으로 어렴풋이 대둔산이 보이며 서쪽으로는 연석산과

흐릿한 전주 시가지가 눈에 비칩니다.

 


 



 

           <시그널과 정상석>

 

-사색의 시간.

특이하게 이곳 산정에는 벤치가 있습니다.

잠시 여유를 갖기로 하고 만장처럼 널려있는

시그널 앞에서 동쪽 덕유산 산그리메를 바라봅니다.

유난히도 눈이 많았던 올 겨울에 이른 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동트는 여명을 함께하기 위해

그분들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운장산 바람서리꽃을 노래한 H 님과

지난 늦봄 빗속의 운장산을 그린 S 님

최근에 다녀간 P 님의 모습을 떠 올려봅니다.

 


 



 



 


 

 

서봉과 정상 그리고 동봉의 고도는 비슷합니다.

이쪽사면에서 보면 이쪽이 높은 것 같고

저쪽 사면에서 보면 저쪽사면이 높은 것 같습니다.

정상에서 동을 지나 복두봉을 향합니다.

북 사면을 내려설 때 때아닌 빙벽이 버티고 있습니다.

따스한 햇볕을 받은 고드름은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천연 얼음과자로 메마른 나의 목을 축입니다.

그러면서 고도를 이내 800까지 끌어내리더니 임도인

칼크미재에 다 달았습니다.

 


 



 



 



 

           <무명봉에서 풍과을......>

 

-무명봉에서(1087).

어느 회원의 말처럼 금남정맥의 1000고지가 넘는 중심에

무명봉으로 남겨둬야 하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느 카페에서 이곳에 이름을 짓자고 한동안 의견수렴은 있었지만

아직 올려진 산마루의 표지기는 보이질 않습니다.

수많은 산 객들이 이곳에서 산하의 풍광을 즐기고 있건만

오늘도 무명봉에는 덩그렇게 앉아있는 묘지 위에 비쩍 마른

억새만이 이곳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과 북두봉에서>

 

-복두봉에서.

무명봉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죽과 억새 사이로 이어지는

능선길입니다. 이윽고 헬기장이 나타나고 임도에 닿은 후

12시 15분에 복두봉에 섰습니다.

쎌프 타임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복사해봅니다.

맘에 들지 않아 다시 지우고 다시 찍습니다.

역시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인물 그대로 입니다.

 


 



 

          <구봉산을 향하여>

 

H 님께서 아침에 건네준 사과 맛은 꿀맛입니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에 또다시 목 메입니다.

70년대 우리나라 경제를 대변하듯 그때는 계란이 몸보신의

대용이었지요. 서울로 유학 떠나는 저에게 어머니께서

싸주시는 계란 꾸러미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버렸죠.

미쳐 챙기지 못한 찐 계란을 호주머니에 넣고 3등 열차에

부딪치고 부딪치는 초만원 열차에서 행여 어머니 사랑이

깨지지 않을까 싶어 소중히 간직했던 모습 등등이……

이따금씩 건네주시는 날 계란이 그때는 역겨웠지만……

 


 



 



 

           <구봉산 정상에서 바라 본 조망>

 

-구봉산.

구봉산에서 조망은 동쪽으로 9개의 봉우리들이 전남 고흥의

팔영산을 연상하게 합니다. 갑자기 배낭 속의 산행수첩을 꺼내면서

유영봉-성주봉-생황봉-사자봉-오로봉 등으로 이어지는 팔영산으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이곳은 1봉-2봉-3봉-4봉 순으로 되어 있어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앞으로 이름 지어져야 할 우리들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서쪽사면으로는 내가 걸어온 운장이 그리움으로 보여지고

있으며 발 아래의 용담 댐이 은빛 비늘로 반짝입니다.

이곳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두 길이 있습니다.

남쪽사면을 따라 천황사길 못 미쳐 마을로 빠지는 길과

9개의 암봉을 타고 내리는 코스, 물론 이 길을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빙벽타기와 암벽타기.

8봉 아래 쉼터까지는 무난한 난 코스입니다.

또다시 직 벽으로 떨어지는 빙벽타기와 암벽타기를 병행해야 합니다.

너덜이 많은데다가 바닥까지 빙벽으로 이어지며

바위벼랑에는 주렴처럼 고드름이 늘어져 있습니다.

이 계절에 신기하기도 하여 몇 컷을 담아봅니다.

이렇게 고도를 낮추어 닿는 곳이 돈내미재 안부입니다.

 

이제 슬랩과 릿지구간에서 짜릿한 스릴감과 아찔한 순간의

리듬을 이용하여 솔솔 한 재미를 느낄 때입니다.

고도 50~60 차이를 이용하여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다 보면

짜증도 납니다만 또 다른 암봉에 올랐을 때 펼쳐지는 풍광에

스스로 자신을 다스립니다.

 


 



 



 


 

 

한가지 아쉬운 건 이렇게 오르다 보니 내가 지금 어느 봉에

와 있는지 자꾸 뒤 돌아 셈하여 봅니다.

드디어 14시50분에 오늘의 마지막 1봉에 올랐습니다.

올라선 능선 길과 좌우의 지형들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1봉 찍고 2봉에서 양명마을로 하산길이 이어집니다.

갑자기 핸폰이 울려 댑니다. 하산 길은 나 혼자 알아서 하기로

하였건만…… 부지런히 길을 내려옵니다.

양명마을의 인삼밭 길을 한 없이 걸어보고 싶습니다만……

 

 

-고마운 사람들.

산행 중 내내 신경 써주신 H님과 S님 그리고 전주 역까지

아무 말없이 히치 해주신 마음 착한 시골 내외분께 감사 드립니다.

역 근처에서 저의 모습이 남루하고 애처로웠던지 이름 모를 사모님

두 분께서 건네주시는 커피 맛은 잊을 수 없습니다.

저녁만찬에 비빕밥을 대접 못하셨다는 S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정말 비빕밥 이상의 맛이었습니다.

위의 모든 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에필로그>

우리는 산에 가기 전에 산행 지도를 펴보고 산에 다녀와서 눈을 감고

기억의 지도를 떠 올립니다. 누가 그랬듯이 산행 기는 마치 바둑을

복기하듯이 기억의 지도를 따라 간답니다.

눈을 감고 다시 오르는 산 그 산속에 박혀있는 시간만이라도 내 진실

모두를 털어내고 싶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나의 생에 황홀했던 순간과

어려웠던 순간 순간들이 수 없이 교차됐지만 지금도 서럽도록 잊지 못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무릎 꿇어 용서 빌며 이 산행 기를 어머님께 받칩니다.

  

 

2005.04.6

전 치 옥 씀.

-일정정리.

08:20 산행 시작(신궁항리에서).

08:55 전망바위.

09:20~9:30 서봉에서(1120m)

09:45~10:05 운장산 정상에서(1126m)

10:15 동봉에서(1127m)

10:55 칼크미재.

11:30~11:45 무명봉(1087m)

12:15~12:30 복두봉.

13:20~13:40 구봉산 정상(1002m)

14:00 돈내미재.

14:30 제 5봉.

14:50 제 1봉.

15:10 산행종료(상명마을).

 

-산행거리: 약15.0km.

 

-소요시간: 6시간 40분.

-연락처: jeon820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