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아래 반주검되어 혼자 넘었네. 한계령-귀때기청봉-대승령 (사진)

 

산행일시 : 2004년 7월29일 (목)

산행지    : 한계령 -한계삼거리 -귀때기청(1604) -1408봉 -

                1289봉- 대승령(1210)- 대승폭포 - 장수대

산행자    : 단독산행 (자가용 이용)

산행시간 :  <-1일차>

                2004년7월28일(수)

                  14:00 서울출발

                  18:00 한계령 옥류탕 휴게소 도착(휴식)

                  19:00 한계령 도착(저녁취사)

                  21:00 옥류탕 휴게소 주차장 차량내 취침

                  

                <1일차>

               2004년7월29일(목)

                  04:00 기상 (아침취사)

                  06:00 한계령 도착

                  06:19 주차후 산행 출발

                  07:20 한계령 안부도착

                  07:59 한계 삼거리 샘터 도착(휴식)

                  08:20 샘터출발

                  08:35 대청- 귀때기 분기점 도착

                  10:20 귀때기청 도착 (휴식)

                  11:05 12-18 표시목 도착 (비박지)

                  11:11 첫 번째 밧줄 도착

                  12:58 두 번째 밧줄 도착

                  13:12 세 번째 밧줄 도착

                  13:51 1408봉 도착

                  15:44 1289봉 도착

                  15:49 직벽 하강

                  16:18 대승령 도착 (휴식)

                  17:30 대승폭포 도착

                  18:00 대승폭포 하단에서 목욕

                  18:58 장수대 도착

                  19:25 한계령까지 차량 히치

                  20:00 장수대 회차 (옥류탕 휴게소 매식)

                          옥류탕 휴게소 주차장 차량내 취침  

 

                  <+1일차>  

                2004년7월30일(금)

                   06:00기상(아침취식)

                   08:00옥류탕 출발

                   12:00서울 도착

 

-산행기-

 

돌아도 단단히 돌았습니다.

돌지 않은 다음에야 10년만에 찾아온 여름무더위로 온 대지가 열기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는 판국에 설악산을.....

그것도 35도가 넘는 태양열로 뜨겁게 달궈져 복사열기가 훅훅 뿜어지는  

돌무더기 봉우리 귀때기청봉을 넘자고 했으니....

더구나 혼자서 말입니다.

 

산행도중 "늦바람"이라는 분의 노란 표지기를 보며 내의 꼬라지를 보는 듯하여

픽하고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돌아 버린 확실한 증표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왜 이렇게 돌아 버렸는지

지극히 정상적으로 최근까지 산을 오르지 않고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는데

도대체 뭔 바람이 불어 인간사 세상사를 "그까짓 것들...." 해가며 픽픽거리고  

말도 않되는 똥배짱도 부려가며 산을 오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애당초에는 겨울산만 좋아하려고 했는데.....

뭔일로 한 번 돌아 버리고 나니 봄엔 봄대로  여름엔 여름대로  가을엔 가을대로  

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신경중추가 온통 산으로만 향해 있으니 도저히

수습 될 줄을 모릅니다.

 

오른 쪽으로 도는지  왼쪽으로 도는지는 몰라도 돌긴 돌았습니다.

하기야 빙글빙글 도니 그 어지러움에 세상사 동전짝만하게 보이고

똥배짱도 내밀고 하는 것인가 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돌고 있는 사람을 보며 "미쳤다"라고 하지요.

 

"돌았다"의 미래완결형은 "미쳤다"입니다.

 

여하튼 "돌았다"의 경지이던 "미쳤다"의 경지이던 간에 이 뜨거운 여름 날

귀때기청봉을 넘어 대승령까지 설악의 서북주능을 종주하고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안산을 거쳐 치마바위를 지나 한계산성 쪽으로 내려 와

 

차를 몰아 고성의 폐허가 된 최북단 건봉사를 찾아 저녁공양과 

예불 참관을 하고 은은한 "범종 소리를 듣자....."는 야물딱 떨어진

계획이었습니다.

 

겨자씨 한 알에 온 우주의 삼라만상을 올려 놓았다 내려 놓았다 하는

경지에 그까짓 것 쯤이야

"돌아 버린 자"의 사유는 그 끝이 끝이 없으며 그 너비 또한 억만 겁을

가도록  무량한 법입니다.

 

그러나

돌아 버린 것은 내적 사유의 존재일 뿐

붉게 작열하는 태양과 너덜의 복사열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육신은 미쳐 돌아 버리지를 못했으니...

 

 

이하 사진으로

 

 야물딱 떨어진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산행 전날 오후 2시

열기에 녹아나는 서울을 출발 설악으로 향합니다.

차창 곁을 흐르는 강물과 푸른 숲을 즐기며 시속 80km를 유지합니다.

오후 6시경 설악 초입에 도착. 푸른 설악과 암봉을 보니 또 세상사가

동전짝만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설악초입 옥녀탕 휴게소 뒷편을 흐르는 설악의 계류에 잠시

발을 담근 후 내일 산행의 들머리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

이 곳에서 하룻밤을 잘까 아니면

 

 

 

 

 한계령을 조금지나 필례로 넘어가는 고개턱에서 하룻밤을 잘까

장소 헌팅을 합니다.한계령은 밤새 시끄러울 듯 하여 고개턱에 자리를

잡기로 합니다. 중앙부에 망대암산으로 오르는 들머리 초입 감시초소가

보이고 멀리 망대암산 연봉들  아래는 양양방향 도로입니다.

 

 

 

 

 이동식 살림살이들.

버너와 코펠과 침낭과 메트리스 그밖의 비상약품과 약간의

먹거리와 식수등 최소 생존을 위한 것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돌아 버린 후에 변화된 모습입니다. 왜 돌았을까?

라면으로 저녁을 대신 한 후

 

 

 

 

 육신은 편한 것만을 추구합니다. 아무래도 고개턱은 잠자리로 편치를

못할 것 같아 다시 옥녀탕 휴게소로 내려와 주차장에 자리를 잡고 하룻밤.

새벽 2시경 주위가 소란스러워 잠을 깨니 옆 주차선에 웬 텐트가 한채 세워져 있습니다.

 

검은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총. 별똥별 한 개가 서에서 동으로 떨어집니다.

새벽4시 기상하여 다시 라면과 커피 한 잔.

6시19분 한계령주차장에 주차 후 드디어 귀때기청봉을 향해 오릅니다.

6시가 넘었는데도 입구초소는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래서 1600원 횡재.

 

 

 

 

 초입부터 가파른 숲 속 오름길입니다.

하늘이 틔여 뒤돌아 보니 산 봉우리 사이로 흰 구름이 구름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것만으로도 돌아 버린 이유를 합리화시킬 수 있을까.

 

 

 

 

 

 

07시20분 한계령 안부에 도착,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니 온통 흰 구름으로

가득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돛단배 한 척이 두둥실 흐르고 있다면 참으로 멋진

풍광일 듯 싶습니다.

그래서 한 척 띄어 보기로 합니다.

오랫동안 신선이 되어 구름 바다를 노젓고 뭍에 오르니 20여분이 흘렀습니다.

하기야 억겁의 시간이 겨자씨 위에 올려져 있으니....

 

 

 

찰라가 억겁이며 억겁이 또한 찰라입니다.

한계샘터로 내려가기 직전 서북쪽 방향의 운해에서도 세상사를 젖혀 놓고

스르렁 스르렁 노를 젓습니다.

푸른 하늘과 흰 운해 사이엔 맞 닿은 경계조차도 없습니다.

오르며 내리며 그렇게 노를 젓다보니 인간사의 시간은 마냥 흐르고

 

 

 

 

 07시20분 한계샘터에 도착. 완전 폐허로 변해 버렸습니다.

작년 8월 설악 종주때 대승폭포에서 잃어 버린 아들녀석의 카메라를 찾은 곳.

지금도 그 때 그 카메라입니다. 이제는 고물이 되어 버렸지만...

좋은 것을 하나 사주고 이 고물을 대신 불하 받았습니다. ㅉㅉㅉ

샘터의 물은 여전히 돌틈 사이로 흐르고 있어 식수 보충을 합니다.

4명으로 구성된 대청봉 팀을 만나고 귀때기청봉만을 왕복하겠다고 어린 딸과

아들을 앞세운 부부를 먼저 보냅니다.

 

 

 

 

08시34분 한계삼거리, 대청봉과 귀때기청봉이 갈라지는 길목입니다.

이 이정표가 없다면 동서남북의 방향을 잡기가 참으로 애매한 곳.

특히 동쪽과 서쪽의 방향감각이 완전히 뒤집히는 곳입니다.

나침반을 꺼내 다시 한 번 더 확인을 한 후 서쪽으로 향합니다.

숲 속에 숨겨져 희미한 오솔길, 귀때기청봉으로....대승령까지 5.1km

 

 

 

상투봉이라기 보다는 꼬깔봉이 더 어울릴텐데

앞의 검은 색 바위는 뾰족 봉우리 위에 기묘하게 자리 잡고 있어

손가락으로 톡 튀기면 저 멀리 울산까지 날아갈 듯 합니다.

언젠가는 굴러 떨어지고 말텐데 내게 주어진 시간 내에 그 소식을 접할 수 있을까

어떤 감회를 갖고 다가설지 궁금해 집니다.

 

 

 

08시58분 동자꽃과 나래꽃이 군락을 이룬 숲길을 지나

드디어 돌무더기 너덜의 시작입니다.

등로 표시를 위해 밧줄로 이어져 연결해 놓아 진행에 무리는 없으나

맨 너덜위에 쏟아지는 붉은 태양의 열기가 훅하고 코를 찌르기

시작합니다.

이제 고난이 시작될 줄이야 전혀 생각도 못하고 진행.

 

 

 

 

 

돌무더기 너덜을 오릅니다. 두 개의 스틱에 의지하여 네발로....

초입에 보이던 너덜 봉우리를 귀때기청봉으로 착각하고 오르니 뒷 켠에

또 다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귀때기청봉.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고 뜨거운 열기 속에 한 걸음 내딛기가 버겁습니다.

 

 

 

 

뒤돌아 보니 용아능선과 공룡능선이 열기 속에서도 그 웅장한 모습을 숨기지 않고

다가 섭니다. 공룡과 용아는 산행 중간 중간에 그늘이라도 있지만 여기 귀때기청봉

오르는 너덜은 몸을 숨길만한 여유가 전혀 없이 그저 뜨거운 열기의 연속.

마치 바위로 이루어진 사막 한 가운데를 걷는 듯한 느낌입니다.

 

 

 

남쪽으로 건너다 보이는 가리봉의 검은 모습이 더위속에 두렵기조차 합니다.

돌아 버린 이후로 언젠가 한 번 가 봐야 할 곳으로 자리매김한 가리봉이지만

지금 귀때기청봉을 오르는 심사로서는 도저히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듯 합니다.

 

 

 

너덜 사이의 노란꽃 돌채송화가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뜨거운 열기를 먹고 사는 강인한 생명력에 대한 경외로움이랄까

곳곳에 무리지어 힘들어 하는이의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09시21분 와- 이 놈의 너덜은 끝이 없을 듯 이어지고

눈이 시도록 파란 하늘의 뜨거운 태양광은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바람 한 점없이 너덜의 복사열은 뜨겁게 쳐오르니 숨쉬기조차 버겁습니다.

더욱이 온 신경을 너덜을 뛰어 넘는데 쏟아내느라 이마에서 흐르는 땀은

닦을 사이도 없이 눈 속으로 흘러드니 이런 고역은 없습니다.

 

 

 

자칫하여 너덜 사이에 다리라도 빠져 부상을 당한다면 오고가는 이 전혀 없는

이 뜨겁디 뜨거운 귀때기청봉 오름길에서 속절없이......상상만해도 끔찍합니다.

하지만 바로 코앞에 다가서있는 귀때기청봉은 너덜길을 가도 가도 좁혀지지를

않으니 이런 경우를 두고 "미치고 환장하겠다"라고 하는 것인가 봅니다.

 

 

 

또 다른 생명력.

너덜 틈바구니에서 뜨거움을 견디는 어린 가문비나무입니다.

너덜틈에 얼마나 깊이 그 뿌리를 박고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경의로움으로 다가섭니다. 과연 저 어린 가문비나무가 한아름 되는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 답은 귀때기청봉을 오르기 전 어린 고사목지대를 지나며 볼 수 있습니다.

 

 

귀때기청봉 오름길에서 본 먼 곳의 점봉산.

육산인 점봉산의 분풀이로 이 곳에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돌무더기를 쏟아부었답니다.

그 돌무더기 하늘에서 쏟아지는 굉음은 어떠했을까.

가만히 상상해 보면 아마도 몇날 며칠동안 굉장했을 것입니다.

 

더위를 먹으면 돈다고 하던데 드디어.....?

 

 

 

점봉산 끝자락을  배경으로 가문비 고사목

이 만큼 자라준 것만해도 대단한 생명력입니다.

제행무상의 실천. 안타까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그저 윤회의 수레바퀴. 지금의 존재에 충실할 뿐입니다.

 

 

 

소문만으로 들었던 귀때기청봉 바로 아래 지점 비박지.

작년 설악 단독 종주시 그토록 찾고자 했으나 찾지 못했던 곳입니다.

많은 산님들이 저 곳 누워 검은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과 둥근 달을 보았겠지요.

또 어떤 산님은 저 곳에서 쫄닥 비를 맞으며 견디기도 했겠고...

만일 또 기회가 된다면...또는 조금 만 더 돌아 버릴  수만 있다면....한 번쯤.

 

 

 

귀때기청봉 바로 직전에서 바라다 본 설악의 암봉들.

 

 

 

돌무더기 너덜이 내리 흐르는 마른 강줄기

육신도 무겁고 등 위에 올라 앉은 배낭은 더욱 무겁고 그러나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니 아니 멈출 수도 없고 꺼내기 조차 귀찮은 디카는 꺼내야 되겠고.....

뉘님의 표현대로 이 무슨 부질없는 짓인가 하는 회의도 들고....

그러나 이 어려움이 지나고 나면 무엇으로 이 어려웠움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셔터 한 방을 또.

 

 

 

10시20분 드디어 귀때기청봉의 정상에 서다.

변변한 표지석도 없이 널빤지에 검은 페인트로 씌여진 귀때기청봉 표지목입니다.

홀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산다운 소박한 표지목이 오히려 정답습니다.

"우리 순이"생각이 나는 것은 나 만의 생각일까?

한계령 갈림길에서 불과 2km. 도상으로는 1시간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1시간 40분이

소요됩니다.

 

구름 한 점없는 새파란 하늘에서 내리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열과 그 열을 되받아 내뿜는

너덜의 찌는 듯한 복사열과 너덜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 쏟아부은 신경과 잠시 잠시 멈추어

디카를 꺼내는 수고로움이 몽땅 합쳐진 시간입니다.

휴___

 

귀때기청봉엔 잠자리가 한 창입니다.

 

 

 

약 5분간 머물며 간식을 할 마땅한 자리를 탐색해 보았으나 쏟아지는 태양열을 막아 줄

그늘이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바람도 전혀 없고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이마를 타고 비오듯

내리 흐르고 등으로도 땀이 강을 이룹니다.

그래서 내려섭니다.겨우 5분간 머물자고 죽을 고생을 해가며 올라 왔단 말인가?

이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실존철학에서는  실존의미라고 합니다만 글세...

 

멀리 안산의 봉우리가 가물가물. 대승령을 향하는 봉우리들의 도열입니다.

지금까지의 진행이 너무나도 힘에 겨워 저 곳까지 갈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모락 모락 솟아 오릅니다.

 

 

 

더구나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1408봉으로 착각하여 그 이후로는 거의 그로기상태가 되어

아래와 같은 햇볕 내리 쬐는 관목 사이를 진행합니다.

새벽 4시에 먹은 라면은 200% 소화가 되어 하도 배가 고파 땡?에 퍼질러 앉아 인절미와

방울 토마도 몇 알과 어린아이 주먹 만한 자두 한 알로 배를 채웁니다. 그리고 물

 

 

 

11시5분 역시 동자꽃과 나리 꽃과 모싯대로 군락을 이룬 비박지를 지나  

11시19분 첫 번째 로프에 도착합니다.

로프를 올라 선후엔  내림길 원시림을 지나며 방향감각을 잃어

혹시나 하는 염려에 나침반을 꺼내 방향 확인을 하고....

 

 

 

비상연락 전화번호를 기억해 둡니다.033-119

헌데 시험삼아 친구에게 통화를 시도해 보니 수신은 되는데 송신이

되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불러봐도 여보세요---소리만 들려오고...

혹시 문자 송신을 가능할까 벼라별 궁리가 몽땅 동원 됩니다.

밧줄을 올라 뒤돌아 보니 귀때기청봉은 아직도 눈 앞에 버티어 서있고....

 

 

 

오르락 내리락 진을 몽땅 빼어 놓습니다.

땡볕 아래 귀때기청봉을 오르느라 거의 반주검이 되었는데 이번엔 숲 속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오름길과 내림길.그리고 올라서면 역시 내리 쪼이는 땡볕

점점 체력이 소진되어감을 느끼며 걷습니다.

어느 이름없는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사태지역.

어제 한계령을 오르며 보았던 장수대지역인듯 합니다.

 

 

 

내림길 원시림을 지나며 드디어 검은 등산복을 입은 두명의 여성 산꾼을 만납니다.

남교리에서 어제 출발하여 1408봉에서 비박을 하고 귀때기청봉을 지나 대청봉을 거쳐

희운각에서 하루 묵을 참이랍니다. 머리를 넘는 배낭의 무게가 만만치 않을텐데...

그래도 두사람이 한 팀이 되어 서북주능을 넘는다니 서로 의지가 되겠지요.

표정은 그들이나 내나 모두 말이 아닙니다. 조심하라고 인사를 주고 받은 후....

서북주능에서 처음으로 만난 반가운 "사람" 들이었습니다.

 

 

 

 

지극히 위험지역입니다.

오른 편으로는 수천길 낭떨어지. 로프는 허공에 메달려 있어 실족의 위험이 크고

그러나 반대 쪽으로 우회하면 배낭을 먼저 올려 놓고 겨우 겨우 올라 설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로프를 올라서 바라본 귀때기청봉.

어떻게 된게 귀때기청봉의 그늘에서 벗어 날 줄을 모릅니다. 빨리 저 귀때기청봉이

보이지 말아야 하는데...그래야만 대승령이 얼마남지 않은 1289봉입니다.

도대체 얼마를 가야만 하나?

우려했던 사고가 드디어 터지고 맙니다.

 

 

 

13시18분

귀때기청봉을 출발한지 2시간이 넘었으니 아마도 1289봉이

조금만 가면 나오리라는 희망으로 세 번째 로프에 메달립니다

이 로프만 올라서면 1408봉은 이미  지나쳤고 1289봉인 줄 알았으나

낑낑거리며 올라서보니 웬걸 엉뚱한 원시림으로.....

다시 나침반으로 방향 확인하고 원시림 속으로 빠져 듭니다.

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

 

 

 

13시51분

이미 지나친 것으로 알았던 1408봉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귀때기청봉에서 1408봉까지 도상 1시간 40분 거리를 무려 3시간여...

온 몸의 힘은 빠지고 갑자기 오른 발은 허벅지에서 쥐가 오르고 왼발은

발까락이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한 발만 내딛으면 쥐가 오르고 발까락은

마비가 되어 통증을 일으키니...

만일 이 곳에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조금전 여성산꾼들이 묵고 떠났던 비박터에 앉아 발을 주무르고 맛사지를 하고

멘소레덤을 바르며 온갖 처방을 합니다. 비상전화번호를 다시 한 번 더 기억하고

1408봉에서 1289봉을 지나 대승령까지 도상 1시간 30분 거리이니 약 두시간 소요

16시쯤 도착되리라 계산을 합니다.

 

그러나 허벅지와 발까락은 마비가 끊이지 않고.....걱정입니다.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15시44분

공룡능선과 용아능선을 감?던 짙은 안개가 서북주능까지 몰려와 뜨거운 태양볕은

막아주지만 시야가 거의 없어져 으시시한 기분을 자아내는 어두운 원시림을 통과합니다.

두다리를 끌다시피 조금만 힘을 주어도 마비되는 다리를 주물러가며 통과하니

나무에 메어달린 표지목이 결정적으로 어퍼컷을 날립니다.

-대승령까지 1,5km-

거의 다 왔다고 용기백배 했는데 가야할 산길이 아직도 1.5km라니....

이젠 죽었습니다.

 

 

 

더욱이 10여m나 되는 직벽을 아픈 다리를 끌며 로프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헌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작년 종주때와는 다른 감을 벗어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엿가락 늘어지듯 늘어지는 거리가 아닌데.....

아마도 작년의 초행길은 거리감각이 없어 그랬겠지 하며 묵묵히 걷습니다

조심 조심 왼발과 오른 발에 온통 신경을 쏟으며 걷자니 도저히 진행되지를

못합니다.

 

 

 

16시18분

와.드디어 대승령 도착입니다.17시쯤에서나 도착할 줄 알았는데...

그러면 그렇지 표지목의 거리 기록이 잘 못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안심이 되어서일까 오히려 힘이 더 나는 듯 합니다.

배낭에 남은 것이라고는 인절미 3개, 방울도마도 5개, 자두 1개

2리터 짜리 물병은 바닥을 보이고 0.5리터 짜리 물병 두 개도 비었습니다.

몽땅 처분하려 했으나 지쳐서인지 목을 넘지 못합니다.

 

 

17시30분

장수대까지 내림길 2.6km

대승폭포 관망대에서 바라 본 주걱봉과 가리왕봉이 참으로 멀게도 느껴집니다.

전에 같으면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겠지만 오늘은 아니올시다입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장수대로 내려가 한계령까지 히치를 하여 차량을 회수해야만 합니다.

 

 

 

 

내림길 도중 숲속 계류에서 전라로 알탕을 하는 분을 만납니다.

숲속에서 비박예정이라고 하시는군요. 내일 남교리로 내려가겠다는데

아무런 장비도 없이 숲속에서 비박을....? 비닐만 준비해 왔다고 합니다.

대단한 분의 함께 하자는 호의를 버리고 조금 더 내려와 역시 홀라당 벗고

계류 속으로 뛰어듭니다.

 

얼굴은 태양볕과 복사열에 익어 버렸는지 물 속에서도 화끈거리고 뒤 목

역시 화상으로 따금거립니다.

아픈 다리는 여전하지만 아직까지 조금 더 걸어야 하기에 맛사지와 멘소레덤으로

도포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장수대 메표소를 통과하니 18시59분

무려 12시간 땡볕을 몽땅 맞아가며 서북주능을 걷다 내려 왔습니다.

 

돌지 않은 다음에야 이게 할 짓입니까?

 

 

 

남정네들은 차를 세워도 그냥 통과했지만 어느 여인네들의 친절한 호의로 한계령까지-

한계령엔 낮 동안 그토록 뜨겁게 내리죄던 태양이 짙은 안개 속에서 서쪽하늘을 붉게

물드리며 내려 앉고 있습니다. 저 붉은 태양

 

 애당초의 야무진 계획은 함께 돌아 버리지 못한 육신의 탓에 포기를 하고

다시 옥녀탕 휴게소 주차장으로 내려 옵니다.

옥녀탕 휴게소의 특선 나물 비빔밥으로 저녁을 하고 한 잔하고 싶었으나 주류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영업방침에 아쉽기만...

 

차창을 모두 열어놓고 밤하늘을 보다 잠이 들어 깨어보니 다음날 아침 6시입니다.

계류 곁에서 비박을 하신 분은 지금 시간쯤 대승령으로 오르고 있겠지요.

그 분처럼 육신과 마음이 함께 돌았어야 하는데 반쪽짜리 돌아버림에 힘겹기만 합니다.

 

아침 식사후 08시에 출발 원통 인제 홍천 양평을 거쳐 돌아오니 12시입니다.

강원도로 향하는 차량은 끝없이 이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