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수요일)은 장마가 그치고 난 후에 그나마 비소식이 없는 날이라서 수일간 연기해 온 산행을 계획했다.
 장소는 강화도의 마니산, 비가 올 지도 모르는 흐리고 불안정한 날씨라서 비교적 산행이 쉬운 해발 469 미터의 마니산을 택했다. 마니산은 처음 가 보지만 강화도는 인삼막걸리와 밴댕이회를 먹기 위해 최소한 대여섯번 이상 찾은 곳이다.
 그런데 정수사나 함허동천 쪽으로 오르려면 강화읍에서 오전에 06:00, 07:20, 09:20, 11:30분의 시간대 밖에 없다. 여유있게 오전에 산행을 시작하기 위해 9시 20분 차를 타려면 신촌 터미널에서 강화읍 터미널까지 한 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므로 넉넉히 신촌에서 7시 30분발 강화행 버스를 타야 된다. 이 시간대에 맞추기 위해 6시 20분에 집을 출발해서 지하철을 타고 신촌 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 15분, 5시 40분부터 21시 30분까지 10분 간격으로 배차되는 강화읍행 버스에 오르니 7시 20분에 출발한 버스는 강서구와 김포시를 지나 강화대교를 건너서 강화읍에 도착하니 정확히 1시간 30분이 경과한 8시 50분. 그런데 주변의 가까운 산들을 살피니 안개가 자욱히 끼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가기도 그렇고 1600원의 정수사행 표를 끊어서 30분을 기다려 차를 탄다. 9시 20분에 출발한 강화군내 버스로 함허동천 입구의 다음 정류장인 정수사 입구에 도착하니 30분이 지난 9시 50분경.
 정수사 입구에서 일단 사진 한 장을 찍고 주위를 둘러 보니 마땅히 식사할 곳이 없어서 고개를 넘어 한 정류장 전의 함허동천 입구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 간다. 식당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 중에서 함허동천 매표소 옆의 묵밥을 파는 집에서 묵밥을 시킨다. 다소 비싼 6천원이었지만 한번도 먹어 보지 못 한 음식이라서 호기심에 주문해 본 것이다. 가게 주인이 직접 주운 도토리로 만들었다는 도토리묵에 신 김치를 잘게 썰어 넣고 당근, 양파 등의 야채와 참기름, 참깨 등의 양념이 들어간 그릇에 찰밥을 비벼서 먹는 것이었는데 고소한 도토리묵과 신 김치의 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꽤 맛있다. 고추 조림, 감자 볶음 등의 밑반찬도 맛이 좋아서 한 그릇을 다 비우니 찰밥 한 공기의 양이 적었지만 도토리묵의 양이 많아서 그런지 꽤 배가 부르다. 이렇게 둔한 몸으로 산행이 제대로 될지 걱정될 정도이다.


함허동천 입구에서 버스로 한 정류장 더 가서 있는 정수사 입구.


식사를 하러 고개를 넘어 한 정류장을 걸어 내려 온 함허동천 입구.

 다시 정수사 입구로 돌아 오니 10시 40분경. 아침에 비가 왔었는지 정수사로 올라 가는 포장도로는 젖어 있다. 포장도로를 지루하게 걸어 올라 가니 정수사로 올라 가는 계단길이 나타난다. 일단 정수사에 들러 보기 위해 등산로를 벗어나 계단길을 오른다. 꽤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니 정수사는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어서 볼 게 없어 실망했다. 그러나 정수사 좌측으로 등산로와 연결돼 있고 매표소가 있어서 도로 내려 가야 하는 불편은 없었다.
 매표소를 지나니 좌측은 주차장이고 우측은 너덜바윗길이고 등산로라는 나무표시판이 있다. 너덜바윗길의 중간에 있는 약수터에서 식수도 보충하고 나서 한참 올라 가니 흙비탈길이 나온다. 흙비탈길이지만 로프도 잡아야 되고 경사는 더 가파라진다.


정수사 매표소에서 한참 걸어 올라 온 너덜바윗길을 내려다 보며...

 숨가쁘게 오르다 보니 길이 다시 내리막이 되는 지점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잠시 쉬다가 반대방향에서 올라 오는 사람에게 물어 보니 그 길이 마니산으로 가는 길이 맞단다. 그런데 한참 내리막길이 지속되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함석제 표시판에 자신이 20분 정도 내려 온 곳이 마니산으로 가는 길이고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함허동천으로 가는 길이라고 표시돼 있다. 다시 한참 내려 온 길을 되올라가니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부근의 죄측에 암릉으로 올라 가는 좁은 길이 나 있다. 결국 40분을 손해본 것이다.


함허동천으로 내려 가는 길에서 클로즈엎으로 찍은 이름모를 곤충.

 그 곳을 지나니 본격적인 정수사 암릉길이 시작된다. 이 암릉길에 고소공포증이니 위험한 사고발생장소라느니 하는 표현을 한 인터넷의 설명에 잔뜩 긴장돼 있었는데 막상 오르고 보니 좌측의 낭떠러지 부근에 일부러 접근하지 않으면 그리 위험할 것도 없는 암릉길이다. 그리고 우측으로 바로 밑에 안전한 지릉길이 있거나 로프가 설치돼 있어서 굳이 함허동천의 먼 우회로를 이용하지 않아도 됐다.
이 날 마니산에는 서해 바다에서 끊임없이 올라 오는 안개가 자욱히 깔려 있어서 서해 바다의 조망은커녕 바로 앞 봉우리의 조망도 힘들 정도이다. 이토록 안개가 많이 끼어 있는 날, 조망이라고는 지척의 암릉과 바다에서 끊임없이 올라 오는 안개의 움직임 뿐이다. 낭떠러지 밑은 안개로 가리워져 있어서 안개의 바다를 항해하는 기분이다.
 13시 13분에 참성단까지 1 킬로 미터가 남았다는 스테인레스제 안내표시판에 도착한다. 그리고 13시 21분에는 시루떡바위 위에 멋지게 자리잡은 소나무를 촬영한다. 13시 30분에 마니산 정상에 도달하는데 정상안내표시판은 눈에 잘 띄게 세워 놓았지만 해발 469 미터라는 삼각점은 찾기 힘들어 못 찾고 말았다. 안내문 좌우로 더 높은 바위가 하나씩 있었는데 과연 어느 쪽이 정상인지 단정을 할 수 없었다.


정수사 암릉길에 올라 서서 첫 번째 찍은 사진.


정수사 암릉길 초입의 아름다운 바위들.


정수사 암릉길 초입의 방향표지판 - 참성단까지 1 킬로 미터.


시루떡바위 위의 멋진 소나무.


정수사 암릉의 시루떡을 포개 놓은 듯한 모습.


마니산 정상 - 좌측과 우측에 더 높은 바위가 있는데 과연 어느 쪽이 정상인지?


웬 시루떡바위가 이리도 많은지...

 그리고 두시 경에 통과한 곳은 노란 색 페인트로 좌측 절벽 쪽의 접근 금지를 표시해 놓았고 빨간 색 페인트로 위험 표시도 해 놓았다. 이 곳은 우회로가 없어서 참성단으로 가기 위해서는 암릉길을 꼭 통과해야 하는 곳인데 아마 예전에 이 곳에서 사고가 있었나보다. 이 곳을 통과하고 나니 참성단 중수비가 나타난다.(14시 20분)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1716년 강화유수로 부임한 최석항이 열흘이 채 되지 않은 기간에 보수 공사를 끝냈다는 내용을 바위에 새겨 놓은 것이다. 참성단 중수비를 지나서 10분 만인 14시 30분에 참성단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20여분간 긴 휴식을 취한다.


우회로가 없는 암릉길의 추락주의 표시판이 있는 길로 올라 가며...


빨간 색 페인트로 사고가 있었던 장소를 알리는 위험지대.


유별나게 바다안개가 짙게 밀려 올라 오던 날의 지독한 안개 속의 정수사 암릉길.


참성단 중수비 - 1716년 강화 유수 최석항이 그 옛날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는 참성단을 보수한 후의 기념비.


철조망으로 보호해 놓은 참성단.

 참성단 등산로라고 일컬어지는 계단길로 내려 가려고 하다가 하산 시각이 너무 이른 듯하여 선수포구로 가는 등산로를 택한다. 암릉을 두어 군데 넘으니 흙비탈길의 소로가 나온다. 산행객은 아무도 없고 좌우로 수풀이 무성한 비탈을 내려 가다보니 바로 내려 가는 길과 좌측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방향표시판도 없고 길이 의외로 협소하고 정비되지 않은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내려 가는 길을 택한다. 우측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계단길을 내려 가는 사람들의 말 소리가 뚜렷이 들려 온다. 약간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 가다보니 군데군데 나무 밑둥과 흙비탈의 경사면에서 뱀 출입구 같은, 지름 3~4 센티 미터 정도의 동그란 구멍들을 대여섯 개 이상 발견한다. 산에서, 특히 호젓한 길에서 이런 구멍이나 뱀굴로 의심되는, 바위틈이 크게 벌어진 곳을 보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된다. 뱀, 특히 독사의 공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밟거나 건드리지만 않으면 물릴 위험이 없다고들 하지만 옆을 지나치다가도 독사에 물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이 길이 중간에 화도면으로 내려 가는 길이라고 생각되어 30분 정도 내려 가니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바로 밑에 소로를 벗어난 넓고 완만한 경사의 수풀지대가 보여서 거의 다 내려 왔음을 직감한다. 그런데 약 1 미터 정도 거의 직각으로 깍인 사면 바로 밑의 몇 미터 앞에 웬 길이 20 센티 미터 정도의 큰 지렁이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잠시 멈춰서 보고 있으니 천천히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움직이자마자 머리가 다이아몬드형으로 변하면서 몸의 얼룩이 선명해진다. 순간적으로 이 것은 불독사 새끼라고 직감한다. 두 달 전에 용문산에서 마주친 뱀 때문에 인터넷에서 뱀에 대한 지식을 약간 접했었는데 한국의 뱀 중에 다이아몬드형 머리에 지렁이보다 연한 주황색 비슷한 바탕의 얼룩무늬가 있는 뱀은 불독사 이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처음에 지렁이라고 생각한 것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도 비가 그친 후에는 공원 등지에서 큰 지렁이를 가끔 봐 왔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가만히 멈춰 있을 때에는 붉은 색의 지렁이보다 약간 색깔이 옅어서 주황색이 돌고 몸통이 좀 더 굵다는 것이외에는 속기 십상이겠다. 작은 독사는 붉은 흙에 위장이 잘 돼서 조금 움직이니 어디로 갔는지 찾기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새끼가 있으면 이 근처에 어미도 있고 무리도 있을 것같아서 소름이 끼쳐 얼른 배낭에서 스패츠를 꺼내 착용하고 걷어 붙인 소매도 내리고 다시 오던 길로 되올라 가기 시작한다. 이 때가 15시 40분경. 30분을 내려 왔으니 최소한 30분은 올라 가야 하리라. 괜히 인적이 드문 길을 택해서 내려 온 것이 후회가 된다. 선수 포구에 가서 철지난 밴댕이회를 안주삼아 인삼막걸리를 먹고 싶은 욕심 때문에 오늘도 또 고생을 하는구나. 그래도 독사에 물릴 위험보다는 안전을 택해서 조금 힘들더라도 독사를 피하는 길을 찾아 되올라 간다. 뱀구멍들을 다시 보니 아까보다 훨씬 더 섬뜩해진다. 용문산에서 본 뱀은 클 지언정 독사는 아니었고 자신을 피해서 허둥지둥 달아났는데 독사는 덩치는 작아도 자신의 독성을 믿고 여유만만하지 않은가.
 흙비탈길을 숨가쁘게 되올라 와서 한 암릉에 도착하니 16시 10분경. 암릉에 앉아 안도하며 숨을 돌리고 있는데 서해 바다에서 올라 오는 습한 기류가 서서히 산 위로 올라 가는 게 선명히 눈에 보인다. 이 안개 때문에 지척의 암릉도 보기 힘들다. 그러다가 수분간 안개가 옅어지면서 산비탈이 부분적으로나마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 사진을 몇 장 찍고 30분이 넘도록 쉰 다음에 16시 45분경에 참성단 등산로라고 일컬어지는 계단길로 향한다.


바다 안개가 자욱히 올라 오고 있는 봉우리.


바다 안개가 옅어졌을 때의 봉우리.


잠시 바다 안개가 걷혔을 때의 봉우리.


안개 사이로 잠시 모습을 드러낸 암릉 밑의 정경.

 이 계단길을 내려 가는 것은 심한 관절염이 없는 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계단 한 단의 높이가 고르지 않고 최소한 한 자는 넘기 때문에 올라 갈 때에는 꽤 힘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독사를 본 곳은 수도꼭지가 설치돼 있는 약수터와 교회가 있는 곳에서 참성단 등산로와 만나는, 참성단 등산로와 단군 등산로 사이에 있는 간이 등산로라고 생각된다.
 그 다음날 인터넷을 뒤져 보니 불독사는 다 큰 것도 35 센티 미터 안팎의 길이라고 하니 자신이 본 것이 아주 어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르고 밟거나 바로 옆을 지나쳤으면 어떻게 됐을지 소름이 끼친다.
 어쨌든 화도면의 마니산 국민관광지 입구까지 오니 18시 10분경. 그 곳에서 인삼막걸리 한 병을 사고 5분 정도 좌측 길로 걸어 가 화도면 터미널에서 19시 정각에 출발하는 신촌행 버스를 타고 신촌에 도착하니 20시 40분경. 신촌에서 지하철로 갈아 타고 귀가하니 22시가 다 됐다.


안개가 자욱한 참성단 등산로(계단길)을 내려 가며...


한참 내려 온 참성단 등산로(계단길)을 올려다 보며...


물가의 오리들의 휴식을 방해할까 봐 조심조심 다가가서 한 컷.


화도면의 마니산 국민관광지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