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기

ㅇ 일시 : 2005. 8. 27-28
ㅇ 코스 : 백무동-장터목-천왕봉-장터목-백무동
ㅇ 누구와 : 가족 산행

 

   오래 전부터 아이들에게 지리산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리산의 장엄한 산줄기와 장터목의 일몰, 천왕봉의 일출.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는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빛들을 오래 전부터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핑계가 많았겠지만 무엇보다도 저의 게으름 탓이었을 겝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방학도 끝나가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아이들과 몸이 좋지 않지만 가족 산행에는 빠질 수 없다는 아내를 데리고 지리산으로 출발합니다.

 

   며칠 동안 날씨가 좋지 않더니 오늘은 다행히 맑습니다. 천천히 올라가는 백무동 계곡길에는 그동안 내린 비가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오랜만에 가져보는 가족 산행에 아이들은 신이 납니다. 가다가 쉬고, 쉬었다 가고, 먹다가 가고, 가다가 먹고. 길고 긴 백무동 길을 그렇게 한 발 한 발 오르다보니 어느덧 장터목 산장에 도착합니다.

  

  장터목 산장에 도착하니 날씨가 매우 쌀쌀합니다. 대피소 온도계를 보니 12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얼른 뜨끈한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데워서 저녁을 먹이니 가족들이 한결 여유를 찾습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조금 여유를 찾고 있자니, 하루를 마감하는 생애가 장엄하게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만복대를 배경으로 먼 구름들이 늘어서고, 장터목 계곡을 넘나드는 구름들이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며 타오르는데, 그 붉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광경은 무어라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그저 말없이 바라볼 뿐입니다. 인간의 어떤 언어가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그 뜨거움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장터목의 노을에 한번 빠져든 아이들이 많이 흥분을 합니다. 역시 집안에서의 백마디 보다 이렇게 한번 여행을 하는 것이 훨씬 교육에 좋을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러다 시간이 되어 산장에서의 일박준비와 이것저것 짐을 정리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보니, 어느새 밤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얼른 밤하늘을 쳐다봅니다. '야 별이 참 많다. 별이 참 입체적으로 보여요. 멀리 있는 별과 가까이 있는 별이 또렷하게 구분되네요' 밤하늘을 쳐다보고 아이들이 한 첫마디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북극성을 찾아보고, 카시오페아 자리를 찾아보고---그러다 은하수를 찾아보고는 무척 신기해합니다. 은하수는 처음 본다고 합니다. 제 어릴 적 고향하늘에는 매일 떠오르곤 하였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밤하늘을 보고 이야기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여자들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혼자 남자들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합니다. 그런데 까다로운 잠자리 탓인지 잠이 영 오지를 않습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시간을 죽이고있는데,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큰아들에게서 문자가 옵니다.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래, 잠도 오지 않는데 잘 됐다. 마시다 남은 소주를 챙겨서 아들과 함께 밖으로 나옵니다.

 

   밖으로 나오니 비박을 하는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아직도 잠들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무엇이 이 사람들을 불러모았고, 무엇 때문에 저 맨바닥에 몸을 누이는 고생을 하는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겠지요. 장터목의 이런 풍경 속에서 이제 조금 있으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큰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나누는 이야기야 어떻든 오늘의 이 산행이 아이의 앞길에 두고두고 기억되는 산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큰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들어와 잠깐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누가 또 잠을 깨웁니다. 3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큰아들이 쫓아와 얼른 천왕봉을 가자고 합니다. 일출이 5시 50분이니 아직 시간이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 다 갔다고 얼른 가자고 졸라댑니다. 하는 수 없이 야간산행 준비를 해서 천천히 제석봉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후레쉬 불빛에 의지한 채 산을 오르는 재미가 아이들에게는 쏠쏠한가 봅니다. 힘에 겨워 쳐지는 아내와는 달리 아이들은 저 앞에서 잘도 올라갑니다. 제석봉을 지나고 통천문을 지나고 드디어 막판 힘겨운 철계단을 타고 올라 천왕봉에 도착합니다. 

 

   드디어 천왕봉. 천왕봉에 도착하자 드디어 아이들에게 천왕봉을 보여주는구나 하는 마음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바람을 피해 얼른 바위틈에 아이들 몸을 숨기고, 가만히 일출을 기다립니다.

 

   얼마를 지났을까. 드디어 짙은 운무를 뚫고 아침햇살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장엄하고 찬란합니다. 그 햇살이 드디어 아이들의 얼굴과 몸으로 퍼지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마음도 그 햇살 속으로 온통 빨려 들어가 버립니다. 붉고 뜨겁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어떤 감동만이 세상을 뒤덮습니다. 그 속에, 그 풍경 속에 우리 아이들이 머물러 있음이 참으로 기쁘게 느껴집니다. 

 

   일출이 끝나자, 한편의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자리를 털 듯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길을 떠납니다. 우리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천천히 하산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참 맑습니다. 저 멀리 노고단 반야봉을 시작으로 지리의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에게 사진기를 맡기고 마음껏 찍어보라고 했더니 신이 나서 풍경을 담습니다. 어제의 일몰에서부터 오늘의 일출, 저 장엄한 산줄기까지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 줄 수 있음에 마음속으로 산들바람이 살랑거리다 갑니다.

 

   장터목 산장에 내려와 아침을 먹고 아내와 아이들의 상태를 살펴보니 아내가 많이 힘들어합니다. 사실 아내에게는 많은 무리가 있었을 텐데 그동안 잘도 참아 주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세석산장으로해서 한신계곡으로 하산을 하려고 하였으나 아내에게 무리일 것 같아 그냥 하산하기로 합니다.

 

   다시 백무동 길을 터벅터벅. 아이들은 저 멀리 저희들끼리 달려 내려가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데리고 천천히 하산을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동행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아내. 그런 아내도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나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저런 고생을 어찌 다 이겨낼까요. 긴 하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깃집에 들러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아이들은 사이다로 한 잔, 나와 아내는 소주로 한 잔. 지리산 산행을 무사히 마침을 자축하며, 맛있기만 한 행복을 푸짐한 산행 뒷이야기에 싸서 먹습니다.

 

 

(장터목 노을)

 

 

(장터목 노을속에서 -작은 아들-역광이라 얼굴이 좀--)

 

 

(장터목 노을 속에서-큰아들)

 

 

(장터목에서의 저녁식사)

 

 

(천왕봉 일출)

 

 

(천왕봉 일출)

 

 

(천왕봉 일출속에서)

 

 

(중산리 방향 풍경)

 

 

(정상의 야생화들)

 

 

(지리능선)

 

 

(백무동 방향-아들작품)

 

 

(정상부근의 고사목-아들작품)

 

 

(지리능선-아들작품)

 

 

(정상풍경-아들작품)

 

 

(백무동으로 하산하며 본 지리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