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04년2월6일 - 2월7일(무박2일)

산행지   : 豊基 소백산

산행코스: 죽령휴게소-1145봉- 제2연화봉 (회귀) -죽령휴게소-

               희방사 휴게소

 

쌩쌩 불어 제키는 바람이면 바람,

펑펑 쏟아져 발길을 가로 막는 눈이면 눈.

 

이렇게 단순하게 알고 있던 겨울 소백산의 개념이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이 두가지 한겨울의 대표주자가 서로 어울려 빚어내는 겨울산 소백

상상을 초월합니다.

 

충청 호남 지역에 한파와 폭설과 강풍이 불겠다는 뉴스가

연이어 나오는 날 2월6일 금요일.

 

성당 교우 부부 4팀과 함께 지리산을 오르려 했으나 폭설로 인한 입산통제라는

소식에 미리 예매해 두었던 구례구 까지의 열차표를 10% 위약금을 물고 취소 후 

부랴부랴 소백산으로 방향을 틉니다.

 

청량리 발 강릉행 23:30분 무궁화호 열차로 풍기 도착 새벽 02:40

황량한 광장을 나서니 소백산자락의 세찬 바람이 휘몰아칩니다.

잔뜩 긴장은 되지만 긴장과 정비례하여 의기도 상승됩니다.

 

죽령까지 25000원의 택시비를 지불하고 새벽 3시30 흰 눈 쌓인 죽령고개 정상에 도착,

택시의 문을 여는 순간 휘몰아 치는 강풍에 택시가 휘청! 합니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로 세찬 바람이 눈보라와 함께 몰려와 정신을 온통

헤집어 놓습니다. 풍기역전에서의 바람과는 그 차원이 다른 듯 합니다.

 

택시 곁에 겨우 겨우 몸을 숨겨 방한복에 오버쟈켓에 두건에 방한 장갑에

스패츠에 아이젠에 단단히 무장을 하지만 한겨울 소백산의 강풍 앞에서는

한 장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 듯 합니다.

 

귀로 들려오는 소백산의 칼바람은 마치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

날카롭기 그지없어 그대로 날아와 몸에 콕콕 박혀 버릴 듯 합니다.

 

칼바람과 함께 휘몰아 치는 눈보라, 이것 또한 상상을 초월합니다.

눈을 뜨기 조차도 버거울 정도입니다.

 

오버쟈켓 사이 한 치의 틈도 허용치 않습니다.

그 미세한 틈새로 파고드는 눈보라는 내피에 금방 수북히 쌓여 얼어 버리고 맙니다.

 

잠시 갈등을 합니다.

올라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더구나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살을 에이는 칼바람은 불어 제키고 눈보라는 휘몰아 치는데....

무모한 산행은 아닐까?

그러나 함께 모여 파이팅을 외친 후 헤드랜턴을 켜고 일렬로 진행을 합니다.

 

소백산 죽령매표소 입구에서 들머리 초입까지는 군부대에서 제설작업을 해 놓았는지 아니면

강풍에 쌓인 눈이 휩쓸려 나갔는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그대로 드러나있고 양 옆으로는

눈더미가 허리를 넘게 쌓여져 있습니다.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완만한 경사의 오름길, 코스선택은 오히려 잘됐다 싶습니다.

발에 채워져있는 아이젠으로 시멘트 포장길을 피해 눈 길을 밟으며 오르기를 얼마,

 

정강이를 넘게 쌓인 눈이 포장도로를 덮고 이제 부터는 쌓인 눈을

럿셀을 해가며 진행을 합니다.

아무도 앞서 진행하지 않은 새로운 눈 길입니다.

 

불어제키는 칼바람과 휘몰아 치는 눈보라와 새벽 4시의 어둠 속에 시야는 전혀 없고

다만 눈 속에 빠지는 등산화 발굽만 보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갑니다.

 

능선을 타고 올라 불어제키는 칼바람을 맞는 왼쪽 팔과 왼쪽 다리는 벌써 차갑게 느껴지고

얼굴을 때리는 눈보라는 양볼과 코를 무감각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방한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때리는 칼바람과 눈보라를 막아 보려 하지만 어림없는 짓.

안면마스크에 쌓이는 눈보라는 그대로 얼어 붙어 마치 얼음마스크를 한 듯 합니다.

 

쌓이는 눈보라에 배낭커버를 해야겠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을 벗을 엄두가 나지를 않아

그대로 진행을 합니다.

 

진행 곳곳에 등로표지판과 생태계안내판이 서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흰 눈에 덮혀 있을 뿐만

아니라 허벅지를 넘는 눈 속에 파묻혀 있어 감히 접근하여 확인할 처지가 안됩니다.

 

중간에 쉼터가 있어 잠시 올라가 쉬려고 했으나 강풍과 눈보라는 엄청난 추위를 몰고와

잠시의 휴식도 허용치 않습니다.

 

생전처음 대하는 험상궃은 날씨에 들머리 초입 파이팅을 외치며 보무도 당당히 들어섰던

교우분들의 표정이 팽팽한 긴장으로 잔뜩 굳어져 있는 듯 합니다.

다만 앞사람의 발자국만 묵묵히 따라갈 뿐입니다.

 

1145봉을 지나고부터는 소백산의 상황이 더욱 더 악화되어

이제부터 칼바람은 방향을 잃고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불어제킵니다.

눈보라는 더욱 세차져 얼굴에 쌓이는 눈을 털어보지만 어림없는 짓일 뿐입니다.

 

도무지 정신을 가다듬을 수 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고개를 깊숙히 파묻은체  칼바람속, 눈보라속을 뚫고 무작정 걷고 있는 앞서 가는

분들의 뒷 모습을 보니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시 갈등을 합니다.

계속 진행할 것인지 중도에 포기해야 할 것인지.

 

그러나 조금만 더 진행 하면 천문대가 나오고 그 곳에

도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계속 진행을 합니다.

 

날씨는 더욱 더 험악해지고.....

점점 더욱 깊게 쌓여지는 눈과 정강이를 빠지는 눈을 헤치며 앞장서 럿셀하시는

분의 어려움이 전해져 옵니다.

그것보다도 함께 하는 자매님들의 상태가 뒤에서 보아도 정상이 아닌 듯 합니다.

 

분명히 앞장 서시는 분의 발자국을 따라 짚어야 할 텐데 자꾸만 옆 눈 속으로

발걸음이 휘청거리며 빠지는 것입니다.

 

진행속도는 더욱 늦어지고 발걸음을 멈추고 정신을 놓은채 멍하니 서있는 횟수가

점차 늘어납니다.

 

그러나 조금만 뒤쳐지면 새롭게 쌓여지는 눈과 강풍에 앞사람의 발자국이 지워져

다시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곤 합니다.

 

그렇게 힘겹게

제2연화봉 못미쳐 한국통신중계소와 천문대의 갈림길까지 왔습니다.

왼편으로 돌아 진행하면 천문대로 가는 길.

 

앞장서서 럿셀을 해가며 오르시던 분의 발걸음이 멈춰섭니다.

"오른 쪽이야, 왼 쪽이야?"

 

오른 편 중계소로 오르는 길은 정강이 높이의 눈이 쌓여있고

왼쪽 천문대로 오르는 길은 그 쌓인 눈의 깊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잠시 우왕좌왕합니다.

지도를 꺼내보니 왼편 길이 천문대를 지나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40분.

예전 같으면 주의가 훤해져 사물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이여야 할텐데

날씨는 더욱 험악해져 어둠은 오히려 더 짙어지는 듯 합니다.

 

교우 한 분이 왼 편으로 길을 잡아 진행을 합니다.

헌데 진행하자마자 허벅지를 넘어 허리께까지 쌓인 눈에 그대로 빠져 버리고 맙니다.

산등성을 타고 올라온 칼바람이 눈을 몽땅 이 곳에 쌓아 놓은 것입니다.

 

자매님들의 외마디 놀라는 소리에 앞으로 뛰어 들어 가보니 역시 허리께를 넘는

눈 밭, 도무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자매님들이 들어간다면 아마도 어깨까지도 눈 밭에 빠질 듯 합니다.

럿셀은 커녕 제설차량으로 눈을 치워도 쉽지는 않을 곳입니다.

 

이 곳만 통과하면 천문대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진행할 수 있을텐데.....

칼바람 속에서, 눈보라 속에서 구수회담을 엽니다.

 

자매님들의 돌아가자는 강력한 암묵적 요구에 조금만 더 나가보자는 의견은

차마 내어 놓지도 못합니다.

 

진행이 어려운 지점에서 발길을 되돌리는 것도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하는 것

못지 않은 용기라고 합니다.

해서 되돌아 나가기로 합니다.

 

우리 일행의 뒤를 쫒아와 잠시 앞서가던 건장한 네분의 산님들도 도저히

진행을 못하겠는지 갈팡질팡후 발길을 되돌려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밤을 새워 찾아왔는데 아쉬운 맘이 가득가득 합니다.

발길을 돌려 조금 내려오니 그제서야 겨우 주위를 식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뭇가지에 걸쳐진 함박 눈 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면에는 강풍이 만들어 놓은 눈 성들이 높다랗게 세워져 있음이 보입니다.

 

강풍과 눈보라가 휘몰아치기는 하지만 눈 꽃 세상은 역시나 눈 꽃 세상입니다.

아름답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디카를 꺼내 소백의 눈 쌓인 풍광을 찍으려 했으나 허사입니다.

쉼없이 불어내치는 칼바람과 눈보라에 디카가 얼어붙어 버린 것입니다.

 

발길을 돌리는 것도 용기라고는 하지만 마치 쫒겨내려가는 것 같아

못내 아쉬운 마음에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어차피 산에서 보내기로한 시간, 비로봉을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에 못지 않은 눈 밟기로 희방사까지 걸어 내려가자고.....

 

우리가 언제 죽령고개를 걸어서 내려가 보겠습니까.

소백산은 다시 오를 수 있지만 죽령길은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입니다.

 

멈추지 않는 칼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죽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아침 9시.

라면과 휴게소 막걸리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몸을 녹인 후 죽령 고갯길을 내려섭니다.

내리 꽂는 칼바람과 눈보라는 멈출줄을 모르고....

 

오고가는 차도 별로없는 죽령길을 마치 전세라도 낸 듯 활보하며

2시간여를 놀며 놀며 내려오니 희방사입구 휴게소입니다.

 

소백산 정상을 바라보니 강풍에 흰 눈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짙은 안개가

몰려가는 듯 합니다.

 

잠시 기다려 풍기행 버스로 새로 개발했다는풍기온천(?)에 도착,

온천물에 드니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을 가누기가 어렵습니다.

무려 3시간을 온천에서 보낸 후

 

풍기역전 서부식당(?)에서 인삼돼지고기 주물럭과 처음 보는 소주를

앞에 놓고 아쉽지만 무섭고(!) 재미(?)있었던 산행이야기를 나눕니다.

 

20:04분 서울행 기차를 타자마자 골아떨어져 눈을 뜨니 23:40분

청량리역입니다.

 

2004년 2월이 가기 전에 소백산 다시 한 번 더 찾을 생각입니다.




▣ 산초스 - 엄청난 칼바람과 많은눈이 쌓였었군요. 고생하셧습니다. 그래도 복수혈전을 하시겠다니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 최병국 - 칼바람에 고생하셨습니다.디카가 얼어서 아쉽네요. 한겨울에 무박2일 산행이라... 쩝 ! 슈퍼맨과 원더우먼 인가요? 저는 잠을 못자면 맥을 못추는데... 즐산하세요.
▣ 고석수 - 과연 칼바람한테 쫒겨나셨군요..자매님들도 계셨다는데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근데 후반이 아주 좋네요^^
▣ 포도사랑 - 정말로 정말로 하산 결정 잘하셨습니다. ....되겠지 하는 마음때문에 조난은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오죽하셨으면 어려운 발걸음하셨는데 되돌리셨는지 그 상황 충분히 이애가 가고도 남습니다. 저는 금요일 새벽 지리에 들 예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업무가 생겨 못가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근요일 새벽에는 통제도 하지않았다고 하던데 분명 중간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뻔 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산그림자 - 안녕하세요,. 산그림자 입니다.. 소백산의 칼날 같은 바람과 싸우시면서 걸음하신 님의 강한 마음과 한껏 욕심없이 되돌아 설수있는 겸손과 겸허의 마음에 경의를 표합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듯이 언제가는 가시겠지요 다시 한번 발걸음 하시는 날에 늘 건강하시고 힘찬 발걸음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 길문주 - 소백산 언저리에 사는 관계로 강풍에 익숙해진 몸이지만 소백의 칼바람은 감당할수가 없습니다. 후일 기약하신 결정은 정말 잘하신것 같네요. 소백은 언제나 그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릴 테니까요..
▣ san001 - 고생하셨네요. 저도 예전 바람 때문에 중도에 하산한 기억이 있죠. 잘 읽었습니다.
▣ 봉래산 -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산행을 하셨군요 .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 권경선 - 현명하신 판단이라 생각 합니다. 겨울 소백산은 바람의 영향으로 한길이 넘게 눈이 쌓인곳도 있더군요. 저도 야간산행을 해보았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진저리쳐지도록 눈길을 걸었습니다. 가도가도 끝없는 눈길... 지금은 벌써 추억이 되었네요.
▣ 구본식 - 중간에 포기하고 되 돌아선것, 정말 현명한 판단입니다. 그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 한울타리 - 여유가 있으십니다. 지명이 豊基 에서 風基로 바뀐 이유를 알겠군요. 즐산하십시오. 건강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