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떠날 것은 떠나고  올 것은 옵니다.

 

 

엊그제 내린비에 촉촉히 젖어있는 낙엽덤불 틈새로 연두색 빛깔이 비치는 듯 했습니다.

두껍게 흙을 덮고 있는 가랑잎 더미를 들추자 어느새 성미 급한 들풀의 새싹들이 파랗게

웅크리고 숨어 있었습니다.

봄에게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 같든 겨울 ,그러나 기어이 떠날 것은 떠나고 올

것은 오고야 마는 모양입니다.

잿빛 나목으로 뒤덮힌 邊山의 산자락에도 노란기운이 감도는 것 처럼 보입니다.

매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겨울의 끝자락이요 봄 들꽃의 개화기가 시작되는 이 시기가 되면 잔설더미를 뚫고서 피어

나는 복수초나 변산바람꽃의  앙증스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자 변산반도를 즐겨찾는 

들꽃탐사팀에 섞여볼까 궁리하던차에 뉴스타트산악회의 내변산산행을 따라 나섰습니다.

이른시간 서울을 출발하여 산행시작지인 남여치에서 11시40분에 산행을 시작, 1시간여 된

땀을 흘려 이른 곳 높다란 산 몰랭이에 께끗히 단장된 아담한 암자 하나 고즈녁하게 서

있었습니다.

이름도 고와 月明庵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스님들도 탁발이라도 나선 듯 텅 빈 암자 대

웅전 앞뜰에 서서 바라보니 엷은 안개를 뚫고 흐릿하게 조망되는 연이어 솟아오른 봉우리

들이 仙界의 모습같아 보입니다.

이런 곳에 기거하며 마음을 닦는다면 홍진에 찌든 마음이  절로 명경같아질겝니다.

 

직소폭포로 내려가는 길 넓다란 바위에 점심상을 펼쳤습니다.

이따금씩 불어주는 보드라움이 느껴지는 바람도 맞으며  바위가 내뿜는 氣를 받으며 마시는

곡차 한 두잔은 맑고 께끗한 피와 살을 만드는 촉진제가  아니겠어요?

아랫쪽 골짜기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 따라 조심조심 길을 내려가면

눈 녹은 물 풍성하게 흐르고  개울속 하얀 조약돌의 반짝임까지 들여다보입니다.

 

우렁차게 쏟아지는 폭포수를 바라보며  연상하는 것이 기껏 시원한 오줌빨이란 말입니까?

"거~ 참 시원하게도 갈겨대는구나!"

"와~ 하하하하!!"

큰 소리로 웃어보지만 나이 60을 훌쩍 넘긴 모두 세월의 덧없음을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450여m의 봉우리를 힘들게 넘어내려왔어도 아직 갈길이 창창, 재백이 고개에서 관음봉을 향

해 다시 오르기 시작합니다.

산불예방기간이나 겨울철 적설기에는 출입이 통제되는 구간인데 다행히 오늘은 개방되어

있군요.

커다란 바위봉우리 중턱으로 난 우회로를 따라 조심 조심 걷는 길에서 바라보는 골짜기가

깊어도 보입니다.

이토록 골짜기가 깊으니 戰後 빨치산들이 오랜기간 은신하여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빨치산과 공비토벌대의 전투에 얽힌 어린시절 기억이 떠오릅니다.

전투 때 마다 총깍지(彈皮)를 한 옹금씩 갖다주던 하 상사 아저씨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던 기억...

 

관음봉(433m)정상에서 줄포만의 갯벌이 바라다 보였습니다.

곰소 염전 그리고 내가 테어나고 자라난 고향마을도 보입니다.

관음봉에서 새봉으로 가는 길에서 바위맛을 쪼끔 볼 수 있으나 긴장감은 별로.......

예정시간을 훨씬 넘겼기에 등산로를 이탈 ,급경사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니 내소사.

몇 년전 청빈한 느낌의 사찰이었는데 오늘은 사찰형편이 많이 좋아졌다는 느낌을 주는군요.

사찰 한켠 茶屋  바깥쪽 벽에 붙여있는 글귀하나 적어왔습니다.

      옳거니 그르거니 상관말고

      山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西쪽에만 극락세계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說禪堂

 

우리나라 국립공원중 유일하게 산과 바다가 어울어진 곳 변산반도는 해안가는 외변산,내륙

산간지역은 내변산이라 합니다.

관광객들은 흔히 외변산을 주로 여행하며 쭈꾸미 백합 전어등 먹걸이를 즐기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내변산 산행으로 남여치-쌍선봉-월명암-직소폭포-재백이고개-관음봉-새봉-내

소사 의 8km의 코스를 약 5시간(후미기준)에 걸쳐 산행을 하였습니다.

비록 산 높이는 450여m로 낮지만 출발지의 해발이 낮고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 2개를 연이어

오르고 내렸기에 제법 뻐근한 산행이었습니다.

시간관계로 외변산에 들러 쭈꾸미등 특산물 맛을 보지 못함과 행여나 기대했던 변산바람꽃

등 들꽃을 만나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2007.2.9

 

배경음악 : Forever in lover / Kenny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