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의 2003년 겨울백두산 여행기-4

+++ 여행 +++

겨울백두산과 연길 그리고 훈춘여행

오전5시
침대에서 뒤척거린다.
커튼을 젖혀본다. 구름한점없는 맑은날씨가 쾌청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창문은 차거운날씨로 성애가 끼어있다.
오전식사는 약간 부실하게 나오는것같다.

오전8시40분
오늘은 훈춘으로 귀향을하면서 피나무에서 나는 꿀을 보기위해 (안도현에서 유명하다고함)잠시 정차를한다. 약1시간을 달린다.

오전11시
묘향산상점에 도착했다. 일행중에는 약간의 쇼핑시간이 있었고,,,

오전11시55분
화령시의 안현진으로 향한다. 이내 화령시를 통과한다.


== 일송정 ==

오후1시
일송정에 도착을했다.
예전에는 백두산일정을 마치고 귀가하는길에 도로변의 길가에서 저멀리 보이는곳이 일송정이다. 라고만 했었는데 지금은 자동차가 들어갈수 있어 직접 일송정기념비 앞에 도착한다.
일송정앞에 서서 바라보니 용정시내와 해란강벌판, 그리고 해란강이 내려다보인다.
저멀리 아이가 모자를 쓴모습이라는 모아산도 조망된다.


++ 해란강(海蘭江) ++

두만강 지류로 선구자에서 언급된 용정지역의 강이다. 이 강이 선구자에 언급된 이유는 우리 민족이 간도 지방에 처음 자리를 잡은곳은 해란강 주변의 들판이었고, 그 중심 젖줄이 해란강이었기 때문이었다.



++ 민족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일송정(一松亭) ++

'일송정 푸른 솔은...'으로 시작되는 노래와 항일독립운동을 그린 동일의 영화가 있다. 연길에서 용정으로 가는 길에 보면 길 오른쪽의 야산 위에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눈에 띄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일송정'이다. 전에는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작은 소나무 한그루와 정자가 있다. 또 이곳에서 혜란강의 물줄기를 볼 수 있지만 지금은 물줄기가 말라 모습이 미흡하다.


용정 시민들의 말을 빌리면, 오래 전 이 곳에는 정자 모양의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리고 이 소나무 밑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항일의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고 한다. 이를 미워한 일제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약품을 넣어 일송정을 고사시켰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 후반 중국정부 당국에서 이곳에 '일송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건립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오후2시
연길의 연변국제센터내의 3층식당에 도착했다. 한식으로 점심식사를 마친후,,,
(이곳도 식당내에는 중국상술이 보인다. 쇼핑센터와 같이한다.)

오후2시55분
훈춘으로 향한다.

오후4시15분
조선족민가가 있는 밀강현에 도착했다.
한 조선족민가에 들어서서 대화를 나누다보니 고향이 충북제천이라고 하는 조선족은 우리나라의 1950년대 후반이나 1960년 초의 생활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초라하고 빈곤한 모습이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보인다.)
혹은, 우리한국사람들이 이곳을 더 보기위해 아주 불편하지만 민박관광도 한다고도 했다.

오후5시
훈춘의 백하호텔에 도착했다. 건물이 지은지 얼마되지않아 깨끗하고 시설이 잘되어있다.
앞으로 2시간30분동안 자유시간이어서 우리의 룸메이트인 서동면,임규광,왕우현님과 함께 재래시장구경을 나선다.


== 훈춘인력거 ==

현지 돈으로 1-2원 하는 인력거를 (자전거를 개조해 사람이 페달을 밟아서가는 2인용인력거) 타고 훈춘재래시장에 도착한다음
걸어서 돌아보기도한다.
현지의 약국과 슈퍼마켓, 그리고 재래시장도 들려본다.
왕우현님은 웬 젓가락을 저리도 많이사나??? 역시 프로의식!!!

오후7시35분
금강산식당으로 안내되어갔다.
현지 종업원들과 함께 노래도부르고 한민족이라는 단어가 실감나게 다가온 훈춘의 마지막밤을 즐겁게 보낸후 숙소로 돌아온다.

오후8시55분
잠깐의 휴식과 샤워를 마친다.
우리 네사람은 의기투합했다. 어떻게 이대로 잘수가있나 하고???

호텔옆의 안마원으로 이동해서 약1시간동안 안마를 받는다.
(난 한국에서 단한차례도 안마를 해보지않았는데 외국만 나오면 가끔씩 하게된다.) 왕우현님이 계산을 하기위해 쏘고??
또 한잔을 하기위해 택시를탄다.
새벽02시45분까지 맥주도마시고 노래도부르고...신나고 재미있는,,,추억으로 돌아갈 훈춘???

새벽03시
숙소로돌아와 옷도벗지 못한채 잠에 떨어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