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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頭山 天祭

  
     天祭(천제)를 올리는데 정해진 時期(시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古史(고사)는  帝王(제왕)이 천하를 얻을때, 드높은 권위를 과시키 위한 통치 수단의 방법으로서 거행된 행사였다.  다만 天祭(천재)를 올린 기록을 일체 남기지 않았다. 타의 추종을 불허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사를 올리는 어떤 규범이 남아 있지 아니하다. 
     민족 건국 신화의 선조께 후손의 우러름을 올려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도 이에 해당 되는 天祭(천제)인 것이다. 檀紀(단기)4337年 (西曆2004年) 甲申年(갑신년) 七月(칠월)  初四日(초4일) [陰 庚午月(경오월-5월) 甲申日(17일)] 寅時(인시)에 祭主(제주)가 무릎을 꿇고 엄숙히 白頭山 天文峰(백두산 천문봉)에 앉았다. 會員諸位(회원제위)의 기원을 함께 올리는 후예의 근엄한 마음도 싣고 앉았다. 本性光明(본성광명) 天符經(천부경)의 이름으로 경건히 祭(제)를 올린다.
     하늘에 그 뜻이 닿았다. 자욱이 낀 구름안개가 겉히는 것이 아닌가? 하늘은 가납 하셨다. 天地神明(천지신명)께서 안아 일으켜신 것이다. 우리는 한핏줄로 이어온 겨레였다. 民族(민족)의 靈山(영산) 白頭(백두)는 따뜻한 품을 열었다. 祭主(제주)의 禮(예)가 끝나면서 會員諸賢(회원제현) 拜禮(배례)가 이어졌다. 滿福(만복)한 행복이 피어났다. 천제가 끝난다. 하늘이신 천지신명께서 歆饗(흠향)하신 술을 飮福(음복) 한다.
     현지시간 새벽 2시에 기상했다. 우리시간은 새벽 3시다. 위도상에으로는 바로 한반도 위다. 시간이 같아야 하지만 중국은 북경시간이 표준이다. 차가 호텔정문 앞에 나열 하였다. 장엄한 백두는 신선했다. 차는 가볍게 출발 하였다. 산정으로 오르는 길을 보수하고 있었다. 약간의 지체는 있었지만 무리되는 일은 아니었다. 더이상 차가 오르지 못하는 곳에서 하차를 하였다. 여명이 겉히고 있었다. 일백미 정도의 경사진 거리를 오른다. 천문봉 정상이다. 환희찬 마음이 흥분한다. 아! 여기가 민족의 영산 백두다. 여기 오기까지 우리는 따뜻한 마음을 추슬러 모았다. 이곳은 민족의 聖殿(성전)이다. 누각 하나가 없어도 개의치 않는다. 웅장한 건물이 없어도 대수가 아니다. 백두 자체가 聖殿(성전)인 것을, 우리는 포근하였다. 마음의 고향에 안주한 행복한 이웃이었다. 
     날은 완전히 밝았다. 기념촬영이 끝나고, 천제가 올려졌고, 모든행사가 끝나면서 화구벽을 타고 곡예사 줄타듯 천지를 향해 내려간다.40명이 훨씬 넘는 긴행열이 한개의 띄가 휘날리듯 꾸부러져 내린다. 자연과의 조화스럼이 너무 아름답다. 고산 바람에 살아 남은 야생화가 생기롭다. 고와서 그림으로 담는다. 눈이 덜녹았다. 7월의 백두는 틈틈이 눈을 숨겨두고 있다. 한그릇 푸욱 뜨서  설탕을 칠까? 쉬원한 빙과가 될테지!  평퍼짐한 고산 평원에서 도시락으로 준비한 朝餐(조찬)이 시작된다. 가지고 온 찬과 도시락찬이 어울린다. 한잔 반주가 흥취롭다. 대자연은 소슬바람을 주고 있다. 천지가 저아래다. 뉘가 밥맛을 탓할까? 긴이야기꽃이 활짝 핀다. 핀 야생화와 어울림이 좋다. 아마 오늘은 여기서 우리가 신선이 다 되었나 보다. 조찬을 마치고 급경사길이 내려져 있는 천지를 향한 내림으로 선다. 직벽길이  험하다. 천천히 천천히 내려간다. 하늘에서 천지로 내려 서는 것이다. 신선들의 발길이 찾아들고 있는 것이다. 善男善女(선남선녀)의 이어진 행열이 꽃띄같다. 꾸불거리며 이어진 직벽 내림길 옆으로 야생화의 무리는 곱다. 아직도 눈이 다녹지 못하고 머물고 있는 7월의 백두는 너무 곱다. 천지가 둘러처진 병풍같은 봉우리로 분지를 이룬 모습은 신비롭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고요가 숨쉬는 정적이 서늘하다. 지역 사람들이 천막을 처 놓고 간단한 음식물을 팔고 있는 행위는 가슴 아팠다. 삶이 무엇인고? 모진 생명 이어려고 돈벌이 나선 사람들의 상행위라고 봐줄려고 해도 마음 상함은 어쩔 수 없다. 물속에 병풍처럼 둘러처진 봉우리의 그림자가 신비롭다. 수수만년 이모습 이었던가? 그대로 지닌체 오늘도 얼굴을 보였구나!  천지는 따뜻한 가슴을 열고 있었다. 기념촬영이 한동안 이어졌다. 어울러진 모습은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형제였다. 미소는 소리를 가지고 있는 얼굴로 웃음꽃이 화사하다. 참 좋다. 천지물 위에 뜨 있는 산꽃가루를 휘졌고 손바가지로 물을 마셨다. 대체로 마시는 사람이 없다. 두번이나 마셨다. 물 맛이 부드럽고 향긋하다. 마시길 권해도 더럽다고 외면한다. 육이오 전쟁때 낙동강물에 뜨내려 오는 시체를 밀어내고 물을 마셨던 기억이 새로웠다. 흐르는물은 살아 있는 물이다. 천지물은 윤회하면서 흐르고 쉼없이 새로운 물로 차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물을 쳐서 산천어를 잡고 있는 모습은 증오스러웠다. 관계당국의 감독이 없다는 사실이 이상스럽다. 
     천지에 정을 묻고 달궁쪽 장백폭포를 향한다. 이렇게 가슴 가득히 감상을 했는데도 아직도 열시를 겨우 넘기고 있을 뿐이다. 계획은 도시락을 운반하여 천지물가에서 오찬을 즐기려고 했다. 시간이 너무 넉넉했다. 하산해서 온천욕을 하고 오찬을 식당에서 하기로 하였다. 새벽부터 시작한 산행이라서 시간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
     달궁골로 흘러 내리는 천지물은 맑고 신선했다. 장백폭포 옆 내림길은 터널로 되어 있다. 산빗탈의 화산재 언덕이 계속 무너져 내려서 도저히 다닐 수 없는 등산로를 한국의 마산에 있는 건설회사가 터널을 만들었다. 30년간 통행료를 징수 하며 공사비를 뽑고 중국 장백산 당국에 기부채납한다고 했다. 그터널길도 가파르다. 화구벽을 타고 내려온 일행은 몽오리가 뭉쳐진 발을 끌고 내려서노라 힘겨운 사람도 있다. 터널은 폭포쪽으로 아취형 문을 만들어 놓았다. 장엄한 장백폭포의 60 m 폭차의 떨어지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터널 중간지점에서 아취형 문으로  허리 굽혀 나가서 폭포의 낙수를 배경으로 한장의 사진을 기념으로 남긴다. 터널을 빠져나와 내려선 지점에서의 장백폭포는 장관이다. 한동안 바라본 자연의 엄숙한 모습이 한결 인간 가까이 있다. 천상호텔 지역 온천욕이 좋았다. 세계 3대 유황온천이라고 했던가? 김이 무럭무럭 일어 나고 있는 곳에서는 뜨거운 물이 쉼없이 흘러 나오고 있다. 여기에 계란을 담구었다. 익었구나! 판다고 했다. 일천원에 3알이다. 먹을만 하다. 시장한 탓만은 아닐 것이다. 흰자는 약간 무른데 속에 든 노란자는 잘 익었다. 
     온천욕이 끝나고 오찬장으로 같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달게 먹었다. 고추장이 나왔다. 서울서 가지고 온 것이다. 역시 우리장이다.  오찬이 끝나고  소천지를 둘러 본다.겨울에도 얼지 아니 하였다는 소천지에는 주변의 원시림이 물속에 비쳐 산세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하늘이 모두 담겨 있다. 선녀가 천지에서 목욕을 하고 소천지를 거울 삼아 머리를 빗었다던가? 고운 전설이 흘러 담긴 소천지였다. 해발 2000 m위치다. 소천지를 나온다. 
     국제호텔에서 대우호텔로 숙소를 옮긴다. 세시간 정도의 휴식후 국제호텔에서 만찬이 시작 되었다. 암소 한마리를 잡았다. 고기맛이 달다. 고기가 쉼없이 돌고, 마지막으로 갈비가 굽히고, 술이 몇순배식 돌고, 화기찬 얘기 꽃이 핀다. 노래방의 향연은 마무리 짓는 일품의 유회로 손색없었다. 아름다운 향연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대우호텔의 아침 기상은 황홀하다. 창밖으로 멀리 장백폭포의 모습이 가슴에 확 밀린다. 창문을 연다. 바람에 쌓인 공기가 달다. 마시고 또 마신다. 백두의 골짝은 조용하고  백두의 골짝은 억만년의 신비를 그대로 쏟고 있다. 가슴을 편다. 기지개를 크게 켠다. 하늘이 한쪽으로 열리고 있다. 조찬을 마치면서 백두산을 떠난다. 고운 햇살이 차창을 어루만진다. 차가 하늘 아래 첫동내 이도백하를 빠져 나오는데 하늘이 흐린다. 미인송의 고장 이도백하의 모습이 사라지고 끝없이 이어진 장백산고원의 밀림가에서 벌을 치고 있는 농부들의 벌꿀을 맛본다. 가도 가도 내리막길, 올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만 왔었구나, 느낀다. 연길가는 길도 멀다. 휴게소에서 북한 외화벌이 상점에서 이야기도 듣는다. 초라한 가게가 마음을 에인다. 그래도 팔아 볼려는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밝은 미래, 통일이 와서 동포들을 안았으면 좋겠다.
     연길에 도착하여 오찬을 마치고 해란강 일송정을 원경으로 관광에 임한다. 실상 일송정에 올라봐야만이 용정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들판에서 생산된 재화가 일제와 항쟁하는 민족의 힘이 된 것을 살펴 볼 수 있는데 아쉬웠다. 비슬산 입구에 공사로 인하여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여 일송정에 오르지 못한체 원경을 그림보듯 하였다. 
     도문으로 향하는 차창에 비가 하염없이 뿌리고 있었다. 도문에 도착하였다. 두만강물은 흐려서 흘렀다. 강물위에 뜨있는 뽀트장이 초라 했다. 뽀트한척이 요란한 엔징소리를 풀고 달린다. 서너척이 선착장에 매달려 있다. 강건너 우리땅에는 자유가 속박된 세계가 있다. 겨레의 숨소리가 없다. 을씨년스런 정경이다. 남양시의 전경은 아니지만 정적만 눌러 앉았다. 도문을 뜬다. 일행의 표정이 무겁다. 두만강을 따라 용문까지 이어진 도로를 따라 강건너 우리땅을 바라보면서 용문에 닿는다. 
     민족시인 윤동주선생의 모교 용문 중학교를 들렀다. 시비가 있어서 훈훈했다 기념촬영을 하고 애국지사 선배들의 모교를 이모저모 살펴 설명을 듣는다. 장학금을 내놓고 있는 일행의 훈훈한 정이 있다. 대성중학을 나온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시간이 넉넉하다. 비행기 탑승시간 까지는 만찬을 마치더라도 여유롭다. 어제 산행에 지친몸을 풀기로 한다. 발맛사지를  시간반동안 받았다. 일행의 표정이 밝고 몸은 가벼웠다. 만찬의 예정은 연길 유경호텔 북한 외화벌이 시당이었는데 일부 분들의 거부감으로 한라산 식당으로 옮겼다. 좋은 만찬이었다. 만찬이 끝나는대로 연길공항으로 이동했다. 2박3일간의 백두산 일정이 끝난다. 
     북경은 날씨가 맑다. 하늘엔 별들이 총총하다. 북경 현지 안내인의 친절한 중국 소개가 인상적이다. 조선족 3세란다. 숙소 화윤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푼다. 북경 관광 2박3일 일정이 시작된다. 아침 일찍 기상을 했다. 조찬은 호텔식이다. 식사는 괜찮았다. 8시부터 관광은 시작 되었다. 明朝(명조) 13 陵(능)을 찾는다. 안내인의 설명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덩치와 그규모에 대한 설명에 침이 말랐다. 역사의 뒷안길을 엿보게하는 엄청난 토목공사를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죽는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예산과 시간을 낭비한 무덤의 만듬은 인간의 속물근성을 웅변한 일단면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명조 13 능을 다돌 수는 없는것, 대표적인 능을 본셈이다. 능하나가 작은 산 하나다. 짜임새 있는 넓은 들에 인공으로 쌓아 올린 산이 능이다고 설명을 붙인다.  명조 13 능을 떠난다.  萬里長城(만리장성)으로 출발한다. 여기서는 케이불카를 이용한다. 일행은 지친상태에 있다. 걷는다는 것은 무리다. 미리 예상하고 만리장성에 오르는 일은 케이불카를 이용키로 했던 것이다. 한차에 6명식 승선한다. 만리장성이다. 기가찼다. 인간이 만든 것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만들었다는 것인가? 지구상의 7대불가사의한 물건 한개가 된 것이다. 그큰돌, 그많은 벽돌, 성을 쌓은 이후 성곽의 수비는,  바로 이곳은 인간 지옥이었을 것이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몇장의 그림을 기념촬영으로 남긴다. 만리장성에서 땀을 풀고 케이불카로 하산한다. 
     만찬은 베이징(北京)닥크, 즉 오리구이식으로 한다. 만찬후 중국 써커스를 관람한다. 관람후 호텔로 돌아 온다.
     북경의 마지막 날이다. 백두산등반길에 관광을 곁들인 탓에 마음은 여유로웠다.조찬을 호텔식으로 마쳤다. 天安門 廣場(천안문 광장)과  紫金城(자금성), 관광을 나셨다. 천안문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밀려 들어 가고 밀려 나오는 무리와 무리의 엉킴, 바로 그것이 장관이다. 자금성의 규모도 우리의 고궁과는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엄청났다. 그러나 예술적인 곡선미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천안문과 자금성 관광을  마치고 오찬을 즐겼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다. 한잔의 반주가 기분을 너그럽게 만든다. 마지막 관광으로 이화원 관광길에 들었다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서북으로 부터 구름이 짓눌런다. 소나기가 쏟아 진다. 이화원에 도착했다. 하차할 수 없다. 비가 약해지길 기다린다. 우산을 일괄 개당 1천원식주고 구입한다. 이화원으로 들어선다. 靑朝(청조) 말엽 徐太后(서태후)의 여름 별장이다. 인공 호수의 드넓은 모습과 여자가 살던 곳이라고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스럽다. 이화원을 구경하고 나올때는 비가 그쳤다. 북경공항에서 수속이 끝나고 비행기에 오른다. 
     2004, 7, 14, 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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