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학코스안내
 

 

 
 
 

 
 
 
 
  북에서 파내려 오다 발견된 남침용 땅굴은 4개이다.

서부전선 지역에 2개(제 1호, 제 3호 땅굴), 중부전선 지역에 1개(제 2호 땅굴), 동부전선 지역에 1개(제 4호 땅굴). 제 4호 땅굴이 발견되면서 북한이 전 전선지역에서 남침용 땅굴을 굴설 하였음이 입증되었다.

특히, 1975년에 발견된 제 3호 땅굴은 서울에서 불과 44km거리에 있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남침용 땅굴은 1971년 9월 25일 “하나의 갱도는 10개의 핵 폭탄 보다 효과적이다”이라는 김일성의 교시로 1972년 5월부터 공사가 이루어졌고 이로부터 2년 후 1974년 11월 15일 경기도 파주시 고랑포 비무장지대 내에서 최초로 남침용 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특히, 이곳은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기습을 위해 남파된 무장간첩이 침투한 인근지역이기도 하다.

 

[전쟁/군사관련 전시관 현황] [백마고지 전쟁 기념물 사진]
 

기념관
명칭

백마고지기념관

소재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 산 215

건립일자

1990.5.3

건립기관

국방부(육군본부)

건립예산

약 500,000천원

관리기관

육군 제 2136부대 (5사단)

부지 면적

191,736m(2)

전시관면적

기념관 50평,양외기념비 22.5M(높이)

건립취지 및 유래

고국을 위해 몸 바치신 선열들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백마고지 전투에서의 승이와 교훈을 영원히 전하고자 여기에 기념비와 기념관을 세운다. -건립 취지문-

전시물 현황(별

*서관 : 백마고지 전투당시 9사단장 이었던 김종오 장군의 유품 11종 및 김종오 장군 사진, 백마고지 저투당시 전쟁기념물 AK 소충 등 20여종, 백마고지 전투당시 김종오 장군훈시장면 부조물 등

*동관 : 백마고지 쟁탈을 위한 12차에 걸친 공방전 설명 전시 판넬, 백마고지 전투당시 전쟁기념물 MG50 기관충외 20여조으 백마고지 전투당시 육탄돌격 삼군신 부조물 등

*야외기념탑 : 두손을 모아 통일을 기원하는 모습.
-높이 : 22.5M -가로: 2.0M -세로 : 5.1M

 

- 주 의 사 항 -


※ 승인번호 :

...................(승리전망대에서는 휴대폰 사용금지)
.............귀 단체(개인) 교육시간 ......... ..............
.................................출발시간 .... .... ..............(안내공무원 인솔하에 전차량 출발)

...1. 지정된 장소 이외의 지역에서 주정차 및 하차금지
...2. 총기류, 위험물, 캠코드, 망원렌즈 카메라, 주류, 낚시도구 등 휴대금지
...3. 군사기밀의 수집 및 승인지역 외에서의 사진촬영 금지
...4. 불의의 사고 (총포, 폭발물, 교통)발생 으로 인한 인명 또는재산피해등에 대하여 민.형사상의
...... 책임을 지지 않음.
...5. 음주,가무 행위 금지.
...6. 인솔공무원 및 군 안내병사의 안내에 적극 협조하여야 함.
...※ 위 사항 위반시 관계법령에 의거 조치되오니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비상사태 또는 부득이한 경우 견학신청이 무효 또는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7. 출발시간
...<제2땅굴, 철의삼각전망대, 월정리역>
......- 동절기 9시30분, 10시30분, 13시, 14시
......- 하절기 9시30분, 10시30분, 13시, 14시 30분
      - 견학신청 : 견학당일 고석정 철의삼각전적관 2층 접수실에 오셔서 출발
                         시간 20분전까지 작성 접수 완료
...<승리전망대>
......- 고석정 출발 : 11시, 13시 30분
   ...- 승리전망대 현지 접수처 출발 :
                   9시 30분, 10시30분, 11시40분, 13시30분, 14시, 15시, 16시
      - 견학신청 : 견학당일 고석정 철의삼각전적관 2층 접수실 또는
                        승리전망대 접수처에 오셔서 출발시간 20분전까지 신청서
                        작성 접수완료
    ※휴관일 : 매주 화요일, 어린이날, 명절
※ 입장료


구분

입장료

어른

청소년

어린이

개인

1,500

1,200

800

단체

1,400

800

500

..* 단체 30인 이상

구분

주차료

소형

대형

당일

2,000

4,000

체류

4,000

8,000

     ※ 문의처
         철원군 철의삼각전적지관리사무소
         전화 : 033) 450-5060, 5558 팩스 : 450-5438
         승리전망대 현지 접수처
         전화 : 033) 450-5900

 

 

 

  

철의 삼각지 백마고지와 비무장 지대 견학을 다녀와서...

  

 일시:2004년 10월 31일 일요일

 다녀온길: 자유로 = 오두산 통일 전망대 = 임진간 = 연천 = 전곡 = 백마고지 = 철의 삼각지(김화 = 철원) 사창리 포천 광덕산 /백운산 = 포천 이동갈비촌 = 친구농장 = 귀가

 함께한 사람: 4명 (친구 부부와 우리 부부

  

이미 지난 10월 28일 4일전의 일이다  나는 청년시절(1960년대 후반) 친구와 함께  둘이 농촌에 꿈을 묻고 우리의 이상과 꿈을 농촌에 뿌리내려 살자고 굳게 언약을 하였었던 마음의 벗(지금은 파주 감악산 기슭에서 농장경영)에게서 전화가 온다 왜 올해는 무슨놈의 바쁜일이 있어 이 때나 저 때나 그렇게 목을 빼고 기다려도 코빼기 한 번 보여 주지를 않고 무심코 지나 가느냐고 ...

  

무심결에 친구의 전화를 받고보니 정말 올핸 내가 무엇에 홀렸는지 제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일년에 서너 너덧번은 꼭 친구의 농장을 방문하여 한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도 나누고 회포도 풀고 오는것이 거의 정기정인 행사처럼 진행이 되곤 하였는데...올핸 정말 친구의 말 처럼 그놈의 산바람이 났는지 아니면 친구보다 더 좋은 님이 생겼는지 아니면 왜 이렇게 안면 바꾸고 사는냐는 친구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놈의 사는게 뭔지...

  

솔직히 내가 나를 생각을 하여도 내가 너무 친구의 우정에 소홀한듯한 생각을 하며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마침 저녁에 아내가 밥상머리에서 이제 골치 아픈 시험도 끝나고 났는데 여보 이번 토요일 친구네 농장에나 한번 다녀 옵시다 하고 제안을 하며 당신 어디 산행계획이 있느냐고 질문을 한다  그런데 다행이도 이번 토요일 일요일은 특별한  산행 스케쥴을 잡지 못하고 일요일이 되면 그냥 발길 닿은대로 북한산 단풍구경이나 다녀오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아내의 제안에 즉시 오케이 싸인을 보내고 친구의 농장에 전화를 하니 어쩜 두 부부가 한 목소리로 쌍수를 들어 반기며 군 소리 하지말고 차를 몰고 달려오라는 것이다 이미 아는 사람은 알고 있지만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에 아내는 늦깍기 공부를 하는 학생의 입장이기 때문에 언제 부부가 나들이 길 한번 나서는일이 여의치가 않다 그런 나를 늘 외톨이 모습으로 산으로 향하는모습을 보며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산 친구 아우들이 혹시 홀아비가 아닌가 생각을 하는 친구도 본것같다

 

정말 웃기는 사람들이야 아무리 생각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하여도 벌쩡하게 살아있는 아내를 두고 홀아비로 보다니... 그동안 말은 안혔지만 그런 소릴 들을때면 난 늘 속으로 싱긋 웃어버리고 말았는데 ... 그래 마침 잘됬다 아내와 함께 친구의 농장에 가서 하룻 밤 묶으며 회포를 풀고 일요일은 모처럼 두집 부부와 나란히 산행이나 하고 오자 생각을 하고 토요일 오후 애마를 몰고 한국의 아웃토반이라 불러도 좋은 자유로를 경쾌하게 달려간다 모처럼 아내를 위하여 베푸는 나들이 길이되고 보면

  

내친김에 아내에게 안보관광이라도 시켜 주자는 생각에서 오두산 통일 전망대도 잠시 들리고 임직각에 북한땅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시간도 마련을 하면서 우리 부부가 친구의 농장에 도착을 하니 오후 5시 20분 이다 마침 친구 내외가 젓소 우유를 짜기위하여 작업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라 나는 자연스럽게 작업화를 신고 아주머니는 젓소 우유를 짜고 친구는 사료를 분배하여 주고 나는 의례히 친구농장을 방문하게되는 일을 돕는 최 말단 작업 분료 청소작업을 돕는다

  

몇년전 친구의 농장에 와서 이 일을 처음 시작 하였을때는 젓소의 분료처리 작업을 하면서 구역질이 나서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친구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참고 하다보니 이젠 아무렇치도 않게 작업을 도울 수 가 있다 근 두 시간에 걸쳐 우유짜는 작업을 마치고 우리 두집 부부는 음식솜씨 좋은 아주머니께서 차려내신 진수성찬을 받아놓고 두런두런 두 집 사람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내친김에 6킬로 정도를 달려가 노래방까지 휘둘러간다 다시 친구의 농장에  돌아오니 이미 자정이 지나고 있다

 

  

  

말이 농촌이고 농촌 사람이지 내 친구는  웬만한 도회지 사람들 보다도 더 몸가짐은 물론 그 넓은 농장 구석구석을 얼마나 깨끗하게 정리 정돈을 하며 경영을 하는지 이웃의 같은 낙농을 하는 친구의 농장을 가보면 내 친구가 얼마나 빈틈없이 꼼꼼하고 착실한 사람인지를 알 수 가 있다 축사를 가던 작업실을 가보던 또한 집안을 들여다 보던 그 넓은 곳에 파리 한마리가 제대로 빈대붙어 살지 못할 정도로 청결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은잔디 목장의 젓소들...

  

  

은잔디 목장이 젓소들...

  

  

은잔디 목장 축사에서...

  

  

은잔디 목장 축사에서 ...

  

  

이른 아침 젓소 분료처리 작업을 하고있는 친구의 모습...

  

  

10월 31일 새벽 4시 30분 친구는 내가 자고있는 줄 알고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살며시 또 아침 우유를 짜기 위하여 옷을 입고 조심조심 방을 나선다 그러나 난 이미 잠에서 깨워 친구가 언제 일어나는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친구가 밖으로 나가고 나도 뒤 딸아 작업화를 신고 나이 담당 임무를 하기위하여 준비를 하고 나서니 친구는 펄펄뛰며 말린다 걱정하지말고 더 자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친구의 말이고 나의 성질이 손님이라고 하여 손놓고 있는 성격이 못되어 친구를 돕고

 

아침을 먹으며 친구는 산정호수가 있는 명성산까지 우리 부부를 위하여 원정 산행 할것을 제안을 하지만 나는 이미 명성산을 얼마전에 다녀 오기도 했지만 그곳을 다녀와서 집으로 돌아오기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려 나의 제안으로 백마고지 산행길을 제안을 하니 친구는 그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우리 부부를 위하여 백마고지를 둘러보고 아예 철의 삼각지 김화 철원 사창리 까지 장거리 안보견학을 시켜주겠다고 하면서 친구의 차를 시동을 건다

  

나는 그렇치 않어도 농촌생활에 힘이든 친구가 장시간에 걸친 운전을 하게되면 힘이들것을 생각을 하여 한사코 안된다는 친구의 고집을 꺾고 나의 차로 내가 운전을 하고 아침 9시 친구의 집을 나서 강원도 철원군에 소재한 백마고지를 향하여 달려간다 그런데 이곳 지역은 일요임에도 불구하고 남방 한계선을 바라보면서 달려가는 도로에는 거의 나의 차 한대만 달리고 있을 정도로 도로가 한산하고 무엇보다도 청정지역이라는 것이 실감이 될 정도로 농촌의 모습도 아름답고 싱그럽기 짝이없다

  

  

백마고지 가는길...

  

  

백마고지는 한국전쟁 당시 가장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의 대공세로 10일동안 대 혈전이 계속되었고 포탄 30만발이 작렬하면서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 포격으로 산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 그 모양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해서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 이 백마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산화한 육군 제9사단 장병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철원군 동송읍에 백마고지 전투전적비를 건립하였다. 백마기념관에는 당시 전투에서 사용한 바주카포, 탄약, 탄창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백마고지 가는길...  

  

  

그러니까 6.25가 나던해 나의 나이가 7살인데도 피난을 다니면서 수도없이 많은 북한군과 중공군 그리고 우리나라 국군들이 전사하여 길 거리에 즐비하게 널려있는것을 보면서 지나곤 했는데 ... 내가 이날 아내와 친구 부부와 세계전투 사상 가장 격전지로 알려진 백마고지를 보기 위하여 몇해을 벼르던 끝에 드디어 찿아가고 있다

  

  

최전방 접적지역 마을임에도 불구 우리나라 군인들이 근무를 하고있는 GOP 인근까지 우리나라의 5대 평야인 철원 평야가 넓게 펼처저 있고 실질적으로 농민들이 자유롭게 농사를 짖고있는것을 보면서 감회가 새롭다

  

 

 

  

 

  

나는 백마고지에 도착을 하는 순간 까지도 백마고지가 어느 정도는 높이가 되는줄 알고 등산화에 배낭을 메고 달려 가고있는데 정작 현지에 도착을 하고보니 백마고지는 산이 아니라 기념비와 기념관이 있을뿐이다 그러니까 백마고지는 사실상 현재 우리군이 주둔하고 있는 DMZ내에 있고 이곳에 설치된 백마고지 전적비와 탑은 백마고지 전투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하여 백마고지가 보이는 현재의 장소에 안보 견학지로 세운 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나는 산행을 하겠다고 산행준비를 하고 나섰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러나 그런 부끄럼은 사실상 나에게 문제가 되지를 않는다 어찌 되었던 나는 백마고지 전투의 심각성에 대하여 늦게나마 제대로 깨우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이곳 백마고지를 오려면 사전에 군 부대 동의를 얻고 번거로운 절차를 격어야 하였다는데 이번 나의 방문길에 보니 전혀 그런 절차가 없이 누구나 백마고지에 차를 운전을 하고 올 수 가있게 되어있다 이럴줄 알았으면 이제 4살된 손자 아이도 데리고 올것을...

  

  

 

 

  

 

 

  

  

이곳 백마고지 전투에서 중공군 1개사단이나 죽고 우리나라 국군 9사단 병력 3428명이나 희생을  하면서 24번이나 서로 뺏고 빼앗기는 눈물겨운 전투끝에 이곳을 우리나라 국군의 수중에 넣게 되었다니 ...

  

  

매년 현충일과 10월 16일에 추도식 열려

  백마고지 전적지는 순국 선열을 위해 마련된 여러 기념 시설들이 조성되어있다. 당시 전투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은 이들을 위한 위령비와 돌무덤이 있는데, 위령비에는 전사자 아군 634명, 중공군 8,234명의 영혼을 진혼케 하였고, ‘백마의 얼’이란 시문이 새겨져 있다. 돌무덤에는 아군사상자 수와 동일한 운모가 섞인 평석 3,482개가 쌓여 있다.

  

동,서관으로 구분된 총 면적 50평, 전시면적 35평 규모의 기념관도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백마고지 전투상황과 전리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22.5m의 전적기념비는 각각의 숫자를 합한 9가 당시 전공을 세운 9사단을 의미하며, 전적비 상단의 비마 3마리는 3개 연대를 나타낸다. 기념비 뒷면의 동부조는 9사단의 영원한 승리와 환희 자유를 갈구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자유의 종과 종각에는 전 총무원장인 석주스님의 글씨가 쓰여져 있다. 종은 500관, 즉 1.8톤 무게로 경주 봉덕사 에밀레종을 기본 모형으로 했다. 자유의 종은 적북방향인 북한 고암산 방향으로 배치되어 꼬리로 종을 쳐 북녘 땅까지 울려 퍼지게 하여 통일을 성취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의 하나로 10일간(1952.10.6∼15)의 밤낮없는 전투로 그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던 백마고지, 이는 한국군의 용맹성을 상징하고 있다. 중서부 전선 395고지였던 이곳은 혈전사투의 초연이 걷힌 뒤 처절하게 변모한 산용이 흡사 백마의 위상과 비슷하다 하여 ‘백마고지’라 불려지게 되었다.


전상자 3,428명 전사자 634명에 이르렀던 처절한 전투에서 사단장 김종호 소장은 적 사살 8,234명, 부상 6,098명, 포로 3,422명이라는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백마고지의 3군신(강승우 소위, 오귀봉, 안영권 하사)의 무훈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국평화의 위대한 영혼으로 기억되고 있다.

  

  

장열하게 싸우다 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기리며 조각 설친된 동판 전투모습...

  

  

이곳 백마고지 전투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가 4면에 새겨져있다

  

  

조국을 위하여 산화한 영령들이시여 ... 고히 잠드시라..마음에 기도를 드린다

  

  

조국을 위하여 산화한 영령들이시여 ... 고히 잠드시라..마음에 기도를 드린다

  

  

조국을 위하여 산화한 영령들이시여 ... 고히 잠드시라..마음에 기도를 드린다

  

  

조국을 위하여 산화한 영령들이시여 ... 고히 잠드시라..마음에 기도를 드린다

  

  

영령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만들어진 "자유의 종"

  

  

추모의 시 / 이은상 지음

  

  

비록 전쟁이 끝나고 난후 였지만 35년전 김신조가 우리나라 청아대 습격을 감행하였을 당시에 현역 생활을 하였던 나의 입장에서는 비오듯 쏟아져 내린 총탄의 흔적으로 철모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하게 뚫어져 전시된 모습의 실물을 보니 너무도 눈물이 앞을 가려 잠시 눈을 감고 눈물을 삼킨다

  

  

  

  

전시관의 전시 자료를 나에게 설명을 하여주는 친구의 모습

  

  

영령들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세워진 충혼탑의 모습... 앞에 나는 머리를 조아린다

  

  

당시의 전투 상황에 직접 참여하였던 전차

  

  

  

  

무거운 마음을 가슴에 담고 기념촬영을...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친구와 나

  

  

단풍이 곱게 물들어 백마고지 위령탑을 물들이고 있다

  

  

  

  

백마고지 견학을 마치고 우리 두 가족은 내친김에 철의 삼각지 였던

김화와 철원 사창리까지 안보견학을 위하여 다시 차를 몰고 달려간다

  

  

어디쯤 달려가고 있을까 앞만 보고 운전을 하고 가노라니 김화지역(이번 방책선 철책이 뚫린지역)인근에 다가오니 도로를 군인들이 철저하게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통행인들의 출입을 증명을 확인을 하고서야 통행을 시키고 있다

  

  

  

  

김화의 동숭과 와수리를 지나 철원으로 향하다 보니 잠곡땜이라고 하는데 세상에 물이 얼마나 새파랗게 맑게 들여다 보이고 심지어 담수된 물에 고기들이 한가롭게 노느 모습이 그대로 들여다 보인다 내 평생 이렇게 맑고 깨끗한 댐을 처음 보는 일이다 바쁘게 달려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잠곡땜에 내려서 청정땜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시간가는줄 모르고 감탄에 젓는다

  

  

물속에 비추어진 산 그림자의 모습

  

  

물속에 비추어진 산 그림자의 모습

  

  

물속에 비추어진 산 그림자의 모습

  

  

잠진땜의 모습... 상하

  

  

  

  

  

물속에 비추어진 산 그림자의 모습

  

  

물속에 비추어진 산 그림자의 모습

  

  

물속에 비추어진 산 그림자의 모습

  

  

  

  

  

  

  

아직은 널리 알려져 있지않아 이곳 지역 사람들이 아니면 이렇게 아름다운 절경을 보기가 쉽지가 않을것이다 특히 인근에 조성되고있는 복주산 휴양림은 전쟁후 50년간 통제가 되던 곳을 개방하여 휴양림으로 개발을 서두르고 있어 이곳의 아름다움은 물론 일체 오염되지 않은 청정 휴양림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할것 이라는 생각을 하며 좀더 이곳에  머물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며

  

우리는 다시 철원을 향하여 차를 몰고 달려간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이어지는 청정지역의 가을산 모습에 눈이 홀린듯 하지만 나는 운전을 하고 있는 관계로 이 아름다움을 만끽 할 수 가 없으니 너무도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모처럼 이렇게 내가 직접 운전을 하며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 수고로 친구의 부인과 나의 아내가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의 입장에선 다소 피곤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신바람이 나기도 한다

  

강원도라 굽이굽이 곡선으로 돌아가는 묘기만점의 드라이브 코스에 비록 모두를 다 만족할 수 는 없지만 붉게 노오랗게 단풍으로 물들여진 아름다운 산세들 사이에 왕복 일차선으로 난 지방국도를 달려가며 나는 슬그머니 왕년에 내가 좋아하던 올드팦의 볼륨을 올리니 아내는 물론 친구 부부가 더 좋아하며 감상에 젖어드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고 아름답다 아내가 빨리 졸업을 하게되면 그땐 사랑하는 손자 아이와 함께 와서 오붓하게 즐기고 가야지...

  

 

  

  

  

  

  

  

  

얼마를 달렸을까 산정호수라 쓰여진 이정표를 지나고있는데 옆에탄  친구는 포천지역을 지나 광덕산 인근에 있는 이동갈비 촌으로 나의 차를 세우게 하며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자며 이동갈비 집으로 들어선다 그러면서 지난번 내가 회갑기념으로 지리산 종주를 떠나는 바람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 회갑주 한잔 따르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하면서 소주를 한 잔 따라 주지만 흉내만 내고  생갈비와 맛좋은 냉면으로 배를 채운다

  

그런데 친구가 나와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심각한 어조로 나더러 앞으로 한 3년만 더 도회지 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경영하는 농장 인근으로 내려와 자신이 모든 준비 절차는 마련하여 줄테니 우리들의 옛날의 꿈인 축산 비육우를 키우며 남어지 잔여 여생을 농촌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을 한다  친구의 당부의 말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친구에게 감사를 하면서도 나는 그 자리에서 쾌히 승낙을 하지 못하고 일단 친구의 제안에 대한 답변을 보류하고 음식점을 나선다  

  

  

  

  

  

  

그런데 갈비집  바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국망봉에 산불이 나서 불 타고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나의 짐작에는 저 높은 봉우리 정상쪽에서 불이 타고있는것으로 보아 아마 저 불은 어느 등산객이 버린 담배 꽁초나 또는 부주의한 등산객들이 취사행위를 하는 도중에 일어난 불이라 생각이든다 국망봉의 울창한 산림 정도로 조림이 만들어 지려면 아무리 빨리 복원이 된다 하여도 50여년은 걸려야 할텐데 일부 몰지각한 등산객들의 부주의가 전체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 까지 도매로 욕을먹고 매도 당하게 되는 현장을  보면서 마음이 좋치않고 서글픈 생각이든다

  

아직도 산행을 하는 사람들중 일부가 입으로는 자신의 건강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등산을 다니며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또는 무성한 산림 가운데에서 취사행위를 하고 볼때만다 속으로 얼마나 마음 아퍼했는데 바로 그 우려하였던 염려가 현실이되어 불타고 있는 현장을 바라보게 되면서 ...아름다운 우리나라 금수강산 보호차원에서 아직도 산행을 하면서 금연이나 산중에서 취사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자진하여 산행길 나서는 것을 자제하여야 할것이라 생각이든다  쯔쯔쯔 ...

 

  

 

  

국망봉 화재의 현장을 산행을 하는 사람으로서 목격을 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영 찝찝하고 기분이 그렇다 우리 일행은 이쯤에서 더 하려던 드라이브길을 포기하고 포천에서 다시 친구의 농장으로 달려와 친구 부부가 언제나 그랫듯이 바리바리 챙겨 주시는 김치랑 각종 반찬류와 배추 무 20여폭과 싫고 친구의 농장을 나서는 시간이 오후 4시이다 그런데 친구의 농장에서 얼마 달리지를 못하고 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행락객 차량으로 인하여 한시간 반이면 집에 도착을 할 거리를

  

무려 3시간에 걸쳐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집에 도착 하여 이날 하루 운행 킬로를 확인을 하니 410여킬로를 더 운행을 하였다 내가 운전한 유사이래  1일 운행 거리로는 가장 먼 거리를 운전을 한것이다 모처럼  9시간이나 운전을 하고보니  솔직히 열댓시간 종주산행을 한것 보다도 더 피곤하고 힘이든다 그러나 모처럼 아내을 위하여 하루를 봉사하였다는 사실에 만족을 하며 하루 일과를 접으며 집으로 들어서니 이제 4살된 손자 아이 도영이가 품에 안기며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었다고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보니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