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화엄벌 억새꽃 산행기

2004.10.6(수)에 부산 근교의 산 천성산 화엄벌을 찾았다. 가 보려는 사전
계획도 없었는데 전날 아는 분으로부터 화엄벌에 다녀온 메일을 받고 갑자
기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일어 나서 아무 준비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

출발하였다. 사실 이 산이야 사전 준비고 뭐고 챙기지 않아도 동네 뒷산 오
르듯 가볍게 다녀 오곤 하는 산이다. 대신동에서 지하철로 노포동으로 가
종점에서 내려 천성산 밑에까지 가는 영산대학행 직행 버스에 오르니 마침

지난날 산행을 자주 함께한 분을 만나게 되어 동행하기로 하였다. 영산대학
에서 뒤 고개로 오른 다음 천성산2봉(구 천성산)으로 가 주위를 조망한 다음
천성산1봉(구 원효산)으로 갔다. 걸으면서 내려다 보이는 황금 들판과 사이

사이에 터잡아 살고 있는 아름다운 동네들 그리고 주위에 이리저리 흘러내리
는 산줄기와 푸른 가을 하늘에 떠 있는 흰구름 등이 가을의 산뜻한 공기와
함께 가슴을 충만하게 하여 주었다. 천성2봉에서 죽 내려 가 천성1봉으로 오

르는 고개에서 우리 일행은 점심을 먹었다. 참으로 아늑하고 좋은 자리였다.
나는 산행을 하면서 점심 먹을 자리를 잡을 때 예사롭지 않게 생각한다. 될
수 있으면 좋은 자리를 잡아서 음식 맛도 즐기고 주위의 경치도 즐기는 그런

명당을 고르려고 노력한다. 제법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았을 때에는 무궁화
4개짜리의 귀한 자리라고 일러 주기도 한다. 점심을 먹고 그리 힘들지는 않
지만 본격적으로 화엄벌을 찾아 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천성2봉에서 화엄벌

을 바라 보았을 때 뭔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 보이는
넓은 평원이 허연 빛갈로 뒤덮여 있어서였다. 나는 이곳은 고산지대이니 시기
적으로 억새꽃이 늦었다고 생각하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정상으로 오르면서 차츰차츰 나타나는 억새꽃을 바라 보니 나의 예측
이 빗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간 늦기는 하였지만 햇빛을 받아 반짝이
고 있는 드넓은 억새꽃의 흰물결은 과히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분위기를 자아

내었다. 억새꽃은 순광에서 보다 역광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욱 아름답고 신비
스럽다는 것을 얼마전에야 알았다. 난 금년에 억새꽃 여행을 제법 다녔다.
우리집에서 가까이 있는 승학산에도 여러번 다녀 봤고 한번은 낙동강 하구언

에 가서 을숙도 주위를 한바퀴 걸으면서 갈대밭 사이에 무덕무덕 피어 있는
잘 잘아 윤기가 반지르한 아름다운 억새꽃을 많이도 보았었다. 그날 내가 산
책을 하고 있을 해거름에 국제신문 사진기자님이 차를 세워 놓고 피사체에 대

하여 살피고 있기에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해가 넘어 가기를 기다리며 그 때
강물의 물결에 걸린 햇빛의 반짝거림과 억새꽃이 어울어진 사진을 한판 찍
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억새는 역광으로 찍어야 좋다

는 말을 들려 주었다. 나는 한 수 배운셈이었다. 나는 천성산을 많이도 오르내
렸다. 화엄벌도 몇번은 지났었다. 그런데 화엄벌의 억새꽃이 이렇게 좋은 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다. 화엄벌의 가치와 애정이 새로와 진다.

억새밭으로 이름난 곳이 여러군데 있다. 그러나 화엄벌의 억새는 그 어느 곳보다
한 수 위이다. 내년에는 피어 오를 때, 한창 피었을 때, 지고 있을 때의 시기를
잘 맞추어 여러번 찾아 봐야겠다.



천성산2봉에서 바라 본 울산쪽.


정상으로 오르는 곳의 역광에 반짝이고 있는 억새.


천성산1봉 정상 아래 허허로이 피어 있는 억새꽃.


드넓은 화엄벌에 내려 앉은 억새 설화의 장엄한 광경.


억새에 넋이 빠진 여인. 산줄기와 푸른 하늘과 흰구름.


화엄벌에서 바라 본 천성공룡능선 쪽. 정면 깊은 계곡 아래 내원사가 있다.


화엄벌 억새밭을 헤치는 다정한 우정.


화엄벌에서 통도사쪽으로 바라보며.


억새밭에서 가을을 즐기는 등산객.


늦어져 가는 가을 하늘 아래 마지막 빛갈을 뿜어 내고 있는 억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