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04년 2월 29일


목적산 : 충북 충주시 제천시 부산(면위산) 780.4m


등산코스 : 하천리 하곡구환장 - 서쪽능선 - 옥녀봉 - 면위산 - 월령 - 장선리(5시간 소요)


일행 : 새한솔산악회 42명


찾아가는 길 : 부산교육대학앞(08:00) - 경부고속도로 (대구) - 중앙고속도로(제천) - 국도 38번(산척) - 지방도 531번(동량) - 지방도 532(하천리) (부산에서 거리 365lm)


배경음악: 나운하 ..울고넘는 박달재






12:20 부산(釜山)에 사는 우리가 부산(婦山)이라는 산을 찾아간다니 교대앞에 모인 다른산악회에서 부산이라는 산이 있느냐 어디에 있느냐 하며 많은 의문을 가졌다. 부산은 충주시 북동쪽 약 15Km지점에 있는 일명 며느리산이라 한다. 높이는 780m로 면위산 혹은 부산 혹은 옥녀봉이라고 하는 산이다. 산세는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충주호반과 어우러져 수석처럼 아름답게 솟아 있으며 충주호에 사방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남쪽능선에 2개의 옥녀봉과 옛날 선녀들이 내려와 물을 마시고 이곳에서 경치를 구경하다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박달재를 우측으로 두고 박달재 터널 통과 11시46분




옥녀봉으로 많이 부르며 부산으로 부르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때 지형 정리를 하며 관계자가 동네사람들로부터 면위산이라는 말을 며느리산으로 잘못 들어 며느리부(婦) 자를 써서 부산으로 잘못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는 이곳 충주까지 찾아가는 길이 쉬운길이 아니다. 대체로 시원하게 뚫린 중앙고속도로를 따라가다 제천에서 38번 국도를 따라 충주쪽으로 찾았다. 제천에서 충주를 가는 도중에 있는 고개가 박달재가 아닌가. 시랑산이 눈앞에 다가온다.



저 시랑산 고개가 박달재인데 박달재에는 옛날 한양에 과거보러가던 박달선비가 금봉이에게 반해 과거공부를 소홀히 하여 장원급제하여 찾아가겠다는 약조를 지키지 못해 3년을 공부한 후 장권급제하여 금봉이를 찾아갔다. 하지만 3년을 기다기던 금봉이는 3년전 자기가 도토리묵을 사서 허리춤에 달아주고 장원급제를 학수고대 했지만 박달선비가 지나간 길은 왕거미가 거리줄로 집을 지어 사람이 통행한 흔적이 보이지 않자,



과거에 합격한 박달선비가 한양에서 부자집으로 장가간 것으로 판단하고 박달선비가 지나간 한양이 서쪽인 천둥산쪽으로 바라보면서 바위위에서 떨어져 죽고 일주일 후 박달선비가 장원급제를 하여 금봉이를 찾아왔지만 이미 늦었기때문에 생긴 이 슬픈 사연을 담은 '울고넘는 박달재'라는 노래하나만 07:00 - 19:00 까지 매일 12시간 남녀 쌍쌍파티 가수가 계속해서 들려주고 있는 박달재이건만 우리는새로 시원하게 뚫린 박달터널을 지남으로써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박달터널을 지나자 다시 눈앞에 천등산이 나타났다.





충주시 동량면 하곡리 12시20분도착



오늘 우리가 찾아가는 면위산도 이 천등산의 자락에 있다. 목적산이 가까워 지는것 같은 느낌이 다가오고 있었다. 천등산을 바로 오를 수 잇는 다릿재를 지나다보니 천등산 정상에 오르고 싶은 충동이 와닿았다. 천등산을 좌측으로 두고 충주호쪽으로 찾아가 깊은 산속의 작은 고개인 독골고개를 넘으니 동량마을이 나오고 우리는 충주호쪽으로 찾아갔다. 가는 길에는 충주사과의 선전물이 많이 나와 있었지만 칠레의 값싼 농산물이 대량으로 들어올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안타까웠다. 드디어 충주호가 눈앞에 다가왔다.



충주호를 옆으로 하여 산속으로 들어가니 눈앞에 우뚝솟은 옥녀봉이 나타났다. 충주호의 옆자락을 건너가는 화천대교를 건넜다. 시골산골에 있는 다리인 화천대교는 약 50m나 되는 제법 긴 다리로 산행의 들머리를 찾기가 더욱 쉬웠다. 화천대교를 건너니 충주호리조트와 코티레즈타운의 아름다운 시설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 놓은 시설이 휴양객들을 부르고 있었다. 이곳 레즈타운은 하루 2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대단한 시설이었다. 12:20 산행의 들머리인 하곡마을에 도착했다.(해발 160m) 하곡마을 입구에는 정토사 법경대사 자등탑비(보물17)가 눈길을 끈다.





하곡리 마을 자랑비..




이 탑비는 943년(고려태조26년) 승려 '경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경유는 신라말과 고려초의 승려로 지금의 화천리에 정토사를 창건하였고 태조7년에 국사대우를 받았던 법경대사로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탑비의 크기는 높이3.15m, 폭1.42m로 충주댐건설로 인하여 수몰지에 잇던것을 84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하며 정토사는 지금은 남아있지 않고 하곡마을에 절골이라는 지명만 남아있다. 좌우간 지금의 법경대사 자등탑비는 웅장한 모습으로 아주 돋보이게 설치되어 있었다.






수몰지역에서 옯겨온 하곡리에 세워진 정토사법경대사 탑비




조용하고 깨끗하여 쉬어가고 싶은 마음의 충동이 더해지는 산행의 들머리인 이곳 화천리는 고려말 충신인 목은이색의 후손인 한산이씨인 토정 '이지함'이 살았던 곳으로 하천팔경또는 개천팔경이라는 명소가 있었는데 풍수학적으로 화를 피할 수 있는 피난지로 알려진 곳이다. 토정 이지함은 토정비결의 저자로서 자기의 묘소를 명당에 정해놓고 이를 사돈인 황참의에게 넘겨주었는데 이곳이 수몰되었다. 이것도 자기의 예감이 있었던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토정 이지함은 면위산을 선녀가 베를 짜는 형국의 산으로 여겨 위급함을 피할 수 잇는 좋은 곳으로 탄복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연많은 충주호에 하천리를 뒤로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12:25 눈앞에 보이는 옥녀봉을 향해 오르는 동안은 산골의 집들로서는 깨끗한 집들을 지나 처음 계획은 효부묘가 있는 곳으로 옥녀봉으로 바로 오를 수 잇었지만 좌측으로 감싸고 있는 능선의 산행을 놓칠 수 없어 좌능선을 택했다. 희미하게 열려있는 길이 였지만 너무 깔딱고개로 느림보경주를 하는 산행대회같았다. 70-80도 되는 경사길이라 낙엽과 나무덩굴로 넘어질 염려는 없었지만 불과 20분정도 오르는 길이었지만 누구나 한번씩은 쉬어가야만 했다.


능선에 오르니 낙엽진 오르는 길과는 반대로 능선너머로는 푸르른 소나무숲으로 푸르름을 더해 주었고 그 아래의 충주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오를때 흘린땀을 씻어 주었다. 능선길을 따라 옥녀봉의 마지막 봉우리인 무릎같은 396봉에 도착하였다.




산행시작 1시간 여 만에 13시40분 ..옥녀봉에도착..점심을..



위로는 옥녀봉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또 땀을 흘려야 하나하는 위압감도 있었지만 남쪽 서쪽 충주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아까 지나오지 못한 효부묘를 위에서 보니 정말 명당자리 같이 보였다. 풍수학적으로 잘 모르지만 뒤로는 옥녀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있으며 좌청룡 우백호처럼 면위산의 능선이 감싸고 있고 앞쪽인 남쪽은 확트인 전경에 충주호가 멀리까지 펼쳐지고 저멀리 월악산의 영봉이 우뚝 솟아 있었다. 능선을 따르는 것도 잠시 다시 옥녀봉을 향해 올랐다. 오르는 길은 또한번 깔딱고개였다. 마음좋은 새한솔산악회 회원들이 오는줄 알고 어제는 비가 가볍게 내려 먼지도 없었다. 옥녀봉에는 옛날 물맛이 좋은 약수가 있었다




옥녀봉에서 내려본 하천대교와 레즈타운..우리가 걸어온 능선..



고 했는데 혹시나 하고 찾아보았다. 그러나 약수는 없었고 그래도 높은 산인데도 물기가 여러곳에 있어 '옛날 이곳이...'하는 느낌이 가게했다. 13:50 옥녀봉에 도착했다. 옥녀봉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리가 올라온 길아래로 내려다 보니 한폭의 그림이었다. 하천대교와 충주호의 어울림과 코디레즈타운의 우뚝솟아 올라있는 건물과 충주호리조트의 건믈들이 서양의 호반의 도시와 같이 도무지 우리나라의 산골이라고는 생각이 없었다.




옥녀봉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주위를 바라보았다. 올라왔던 서쪽으로 충주호 건너 지등산이 있고 그 뒷쪽으로 계명산과 남산이 충주호의 물을 막아주고 잇었다. 남쪽으로는 우뚝솟은 월악산이 어느산보다 더 돋보였다. 북쪽으로 아까 지나온 시랑산과 박달산이 가까이 하고 있었다. 우리는 두개의 옥녀봉중 첫번째 봉우리에서 중식을 끝내고 옆에있는 조금 더 높은 옥녀봉에 올랐다. 14:10 옥녀봉(2번째)정상에 도착했다. 옥녀봉 정상에는 부산 780.4m라는 표지석이 있었다. 이렇게 옥녀봉은 두개의 봉우리로 되어있다.






부산... 실제 지도상 부산과 위치와 높이가 차이가.. 여기가 실제 높이는 680m로 나오는데..



정상에서 면위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좁고 가날픈 암릉과 노송길이었다. 칼날능선길은 깊은 골짜기로 빠지는 위험은 도사리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로프줄을 잡고 오르고 잡고 내리는 등 발하나하나 움직이기가 어려움이 따랐다. 칼날능선길을 오르는 동안 좌우뒷면 삼면이 충주호로 에워싸여 있어 시원한 바람은 산행하기에 더 없이 좋았다. 산능선을 거늘면서 내려다 본 충주호의 천등산 아래쪽은 하회마을과 같았고 동강을 하르르보고 걸어가던 고고산 산행과 같기도 했다. 충주호에 점점히 떠있는 배드의 모습은 물오리같이 보였고 충주호의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배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능선길에 꿋꿋히 살아가고 있는 노송들의 모습은 곧게 위로 자라지도 못하고 바위틈에서 모진 비바람과 더불어 살아남기 위해 관상용 노송처럼 제멋데로 생긴 소나무들이 어렵고 힘든 세월을 말해주고 잇었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 능선..





이상하게 생긴 바위 결이 많이 있고






여기가 지도상 부산 높이 780m





부산에서 내려본 북쪽 방향 충주호.. 작은 골자기의 충주호 일부



14:50 면위산 정상에 도착했다. 면위산 정상에서는 옥녀봉정상에서 보이지 않았던 동쪽면이 보이고 사방이 다열렸다. 동쪽으로 금수산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 뒤로 희미하게 소백산의 웅장한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금수산 아래로 발가까이 충주호의 푸른물결이 보였고 넓은 시야에 나타나는 충주호 물결은 찬란한 은빛을 뿌리고 있었다. 면위산에서 바라보는 남능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남능아래로 펼쳐지는 바랑골 시원한 계곡이 그리웠다.




정상 부근인 푸른 전나무숲이 곳곳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눈건너편에 있는 대덕산과 마이산과 국사봉을 바라보면서 하산을 시작했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하산길이라 바닥에 낙엽이 양탄자를 밟는 기분처럼 발목까지 빠졌다. 맑은 날씨에 시야는 열어 잇었지만 70도 가까이되는 급경사길을 걸으면서 미끄러지면서 양탄자를 밟으면서 하산을 시작하여 16:50 장선교에서 산행을 마쳤다.





하산 지점 장선리 도착 ..오후 4시 50분





▣ 김현호 - 처음들어보는 산(저만 처음이겠죠?)이지만 무척! 멋있네요~ 내려오기 싫으셨겠습니다.. 이두영님! 느을 건강하시길..
▣ 永漢 - 휘감아 도는 충주호가 역동적입니다.식사하고 계신 분이 옥녀 아닌가요?^^*
▣ 김정길 - 역시 새한솔산악회! 이두영 회장님!! 부산을 그렇게 종주하는 산악회는 극히 드물겁니다. 벌써 몇년 전 하루걸러 오던 이슬비에 판초우의를 덮어쓰고 옥녀봉을 거처 우측 갈림 하산로를 버리고 바위등 날등을 오르내리다가 비좁은 바위위의 진짜 정상을 찾아 올라서서(표지판은 물론 사람이 다녀간 흔적도 없는 정상이 맞는지 의신스러웠을 정도의) 정상을 확인하고 바로 그 길로 내려오며 여름에도 휴대하고 다니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내려왔던 추억이 기분 좋게 떠 오릅니다. 주차장까지 걸어와서는 대구에서 온 산악회가 주차장 옆 공원같은 산에서 점심을 배식하는데 염치 무릅쓰고 잘 얻어 먹었던 기억까지, 회장님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계속 무탈한 운영을 기원합니다.
▣ 이두영 - 몇년전 충주에 연수를 받으려 갔다 옥녀봉 까지만 산행 해본적이 있어 늘 마음에 두고있든 산이라 회장의 힘으로 면위산을 계획하여 시행하다보니 시행의 착오도 있었답니다 선발대는 월령고개에서 마미산을 거쳐 국사봉까지 산행을 했답니다 마니산에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의 묘미도 진짜좋은데 후발 대장을 하다보니 계획된 풀코스를 저는 못했답니다 충주와3시간 이내에 계시는 산악회 회원님들은 면위산,마미산,국사봉,까지의 코스를 추천합니다
▣ 충주사람 - 님의 산행기 정말 산듯합니다. 면위산(일명 부산. 또는 옥녀봉은 그 위치가 충주시 동량면 소재임을 정정 알려드립니다.
▣ 이달재 - 먼저 가요 울고넘는 박달재가 감동적입니다 말도많고 사연도 많은가요속에 충주호와 더불어 하신 부산(옥녀봉)산행기 잘보고 갑니다 항시즐산되시고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