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지 : 필봉,사자봉(밀양 단장)

2. 높 이 : 1,189m

3. 산행일 : 2004. 3. 10

4. 코 스 : 매표소앞소공원(10:55) – 석축허물어진곳(11:36) – 필봉(11:55) – 바위전망대(12:06, 10분휴식) – 갈림길(12:38) – 헬기장1(12:50) – 갈림길(13:02) – 사자봉(12:40) – 안부갈림길(13:58) – 표충사(14:45) – 소공원(14:55) ----- 총소요시간 4시간(휴식시간 포함)

5. 동 행 : 홀로

6. 후 기 :

재약산에 매료되어 몇 개월새 벌써 6번째 올라본다.
오늘은 서쪽에서 접근해 보기로 하고
표충사 매표소 입구에서 왼쪽방향 산을 보면
요염하게 봉긋 솟은 필봉으로 올라 사자봉을 타고 한계암으로 하산하기로 작정한다.
오늘로서 재약산 산행은 동서남북을 기점으로 해서 모두 올라 보는 것이 된다.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산세를 지니고 있는 재약산.
그에 못지 않게 주위에도 출중한 산들을 거느리고 있어 올 때마다 여전히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10시 55분. 표충사 매표소 입구 소공원
소공원옆 다리를 건너 마을을 가로 질러 오르면
등로 초입이 보일 것이리라는 생각으로 무심코 지나는 길은 어째 좀 어색하다.
과수원을 통과하여 산쪽으로 오래전 인적이 있었던 듯 한 소로를 따라
급한 비탈을 오른다.
흐릿하던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으로 뒤덮힌다.
어제 잠이 모자랐던지 머리도 휑하고 속도 거북하여 발걸음이 무겁다.
겨우 확인되는 산길을 먹이찾는 한마리 늑대처럼 이리저리 헤매며 오르지만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보인다.

11시 36분. 석축허물어 진 곳.
들머리에서 올려다 본 필봉과 매바위는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더니만
40여분이 지났건만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면의 시야가 막혀 있기는 하지만 언뜻 언뜻 보이는 걸로 봐서
아직은 좀더 땀을 빼야 하는 모양이다.
얼굴을 가리는 잡목을 헤치며 오르자 어느 순간 선명한 등로가 열리며
보이지 않던 시그널까지 바람에 일렁거리고 있다.
이제사 정상적인 산행로를 얻는다.
오래전 건물이 있었던 자리인지 석축이 둘러 쌓여 있고
너덜이 있는 곳에는 연못처럼 움푹한 자리도 있는 걸로 봐서
제법 역사의 한귀퉁이를 간직한 곳인 듯하다.

11시 55분. 필봉.
오름세는 여전하고 걸음 또한 더디다.
구름으로 두껍게 가려진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자세다.
이내 육중한 암벽이 앞을 가리더니 길을 오른쪽으로 틀어 버린다.
필봉에 오르자 날씨는 다시 돌변한다.
태풍에 비견되는 바람이 암벽위에 서있기를 위태롭게 한다.
하지만 힘겹게 올라 선 길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조심스레 바위난간에 서자
지난 몇 주전 올랐던 향로산 정상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높아 보이는 향로산이다.
서쪽으로는 매바위의 위용이 대단하다.
중세의 거대한 성벽처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버티어 온 억겁의 세월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산을 오르는 재미 중 하나는 높은 위치에서 사위를 둘러 보며
경관에 취해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인데
오늘은 날씨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바람이 눈뜨고 서있는 것 조차도 시샘하는 듯하여
도저히 머물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12시 06분. 바위전망대.
걷기는 조금 편해 지지만 오름세는 크게 꺾이지는 않는다.
바람을 피해 잠시 너른바위에 엉덩이를 내려 놓는다.(10분 휴식)
따뜻한 커피 한잔은마사지 하듯 몸을 풀어 주는 듯한다.
재약산 수미봉과 사자봉은 운해에 가려 정상이 조망되지 않으나
여전히 능선의 자태는 곱다.

12시 38분. 갈림길.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의 위세는 더해만 가고
점점 구름은 내려 앉아 주위를 가리기 시작한다.
봉우리에 올라서자 갈림길이 왼쪽으로 열린다.
이젠 다소 떨어진 곳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가는 길도 가늠하기 힘들어 진다.

12시 50분. 헬기장.
당초 계획은 필봉과 910봉을 지나 935봉까지 가서 되돌아 나올 작정이었으나
방향잡기가 불가능하여 무작정 시그널만 쫒아 갈 수 밖에 없다.
어디쯤인지 분간이 불가능한 건 둘째치고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이 들 지경이다 보니 완전 방향감각을 상실한 상태.
헬기장에 이르자 겨우 2-3미터 정도 시계가 확보될 뿐이다.
산꾼으로 치면 초보에 불과하지만
그간의 산행중 가장 최악의 상황을 맞는 것 같다.
휘몰아치는 태풍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듯한 기분.
관목으로 열려진 등로는 겨우 한 사람이 지나치기에도 좁은 길.
나뭇가지를 헤치며 나가야 한다.

13시 02분. 갈림길.
언뜻 지나치는 길에 좌측으로 길이 열린다.
단지 리본으로 확인될 뿐이다.
물먹은 갈대와 산죽이 힐끔 힐끔 보이는 길은 순탄하나
온몸으로 바람과 구름을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지라 힘에 부칠 지경이다.
어느 쪽으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불안한 걸음은 리본을 따라 계속될 뿐.
얼마를 지났을까 제법 넓다란 산행로가 드러난다.
길은 얼마전 내린 눈으로 인해 질퍽거리고
허리를 곳곳하게 펴기에는 바람이 용서하지 않는다.
가늠하여 보면 제법 넓은 분지 인듯.
자세히 보면 제법 눈에 익은 길처럼 보인다.
어쩌면 얼음골 방향에서 사자봉으로 오르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뒤를 돌아 보자 바람과 구름을 헤치고
산꾼 한명이 허리를 굽힌 채 오르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오랜 친구 만나듯 한다.
석남사에서 사자평으로 오르는 길이라는데
4시간만에 주파하고 있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자연스럽게 동행이 된다.

13시 40분. 사자봉.
예상대로 사자봉이 눈앞에 떡하니 드러난다.
부부산꾼이 먼저 운해속의 표지석을 지키고 있다.
지옥 같은 오늘 산행을 서로 험담해하며 잠시 얘기를 나누며 헤어진다.
채 몇 분도 버티고 있기 힘들다.
계획대로 한계암으로 하산하고자 하였으나
방금전 동행이 되어버린 울산 산꾼이 사자평을 찾아가는 길이라 하여
초행길을 안내도 할 겸 안부에 있는 쉼터에서 젋은 부부도 만나볼 겸해서
계획을 바꾼다.
내려가는 길 역시 구름이 앞을 가려 길 찾기가 어렵다.
안부에 내려서자 쉼터의 문은 굳게 잠겨 있고 사람의 그림자도 느낄 수 없다.
하기사 오늘 같은 날 무슨 장사를 하랴 싶다.
섭섭하지만 울산 산꾼에게 길을 알려주고 안부에서 하산길을 잡는다.
길은 최악이다.
질퍽거리는 흙길.
신발은 무거워져만 간다.
내리막길은 급하게 고도를 낮춘다.
어느 순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날씨는 돌변한다.
구름도 걷히고 바람도 소리없이 잔다.
조금의 고도차에도 이토록 날씨변화가 심하다니….
불과 몇 분 전에 사투를 벌이 듯 헤치고 나온 길인데
어이없는 날씨변화에 실소를 머금는다.
뒤돌아 바라본 정상부근에는 아직도 운해에 잠겨 있다.

14시 45분. 표충사.
계곡수에 몸을 식히며 구름과 바람에 갇혀
헤매던 필봉과 사자봉 능선을 되돌아 본다.
무슨 일이 있냐는 듯 평화롭기만 하다.
역시 산은 산이다.

14시 55분. 소공원.
고생스럽고 힘들기는 하였으나
한동안 유쾌한 기억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을 추억 하나가
오늘 짧은 산행에서 만들어졌다.


▣ 최병국 - 푸르뫼님의 산행기를 보고 재약산을 지도에서 찾아보니 가지산이 옆에 있고 그 유명한 얼음골도 갈수가 있네요. 모든 산이 그렇지만 푸르뫼님은 재약산하고 궁합이 맞는 모양입니다. 저는 수락산하고 궁합이 맞는데...수고하셨습니다. 즐산하시길
▣ 최병국 - 푸르뫼님의 산행기를 보고 재약산을 지도에서 찾아보니 가지산이 옆에 있고 그 유명한 얼음골도 갈수가 있네요. 모든 산이 그렇지만 푸르뫼님은 재약산하고 궁합이 맞는 모양입니다. 저는 수락산하고 궁합이 맞는데...수고하셨습니다. 즐산하시길
▣ 푸르뫼 - 관심주시어 감사합니다. 영남알프스의 산군중 가장 으뜸산으로 감히 말할 수 있는 산이 재약산입니다. 가지산에서 능동산, 얼음골북릉을 통해 재약산 사자봉과 수미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가히 환상적입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 번 올라보시지요. 항상 즐산히시고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