黎明의 대청봉에 올라서서 맞이하는 아침의 감격

 

2004년 10월, 설악산 등반기

 

한글날(토) 새벽2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전세버스로 출발한지 4시간만에 금번 산행의 출발지인 남설악의 오색 매표소에 도착하여 곧바로 대청봉을 향하여 北進을 시작하였다.

 

한밤중의 산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人山人海의  행렬에 끼어서, 앞서가는 사람의 엉덩이 만을 묵묵히 바라보며  30-40도 경사진 5.5 킬로미터 산길 돌계단을 배낭을 짊어지고, 가을밤의 산중 차가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땀을 비오듯 쏟으며 4시간 남짓을 걸어 올랐다. 한손에는 랜턴을 움켜쥐고서.

 

캄캄한 어둠속에서 올라오던 길을 간간이 뒤돌아 내려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랜턴/헤드램프 불빛의 끝도 없는 줄이 마치 엄청나게 큰 뱀 꼬리를 연상시킨다. 헐떡거리는 숨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들고서 올려다 본 하늘은, 비가 약간 내릴것이라는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금빛모래알을 뿌려놓은 듯한 별빛 무리가 중년아저씨의 가슴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감싸 휘어 감으며 동심으로 젖어 들게한다. 잔잔한 시냇물 소리가 어느 덧 거대한 폭포소리로 변하였을 즈음에 이곳이 설악폭포구나 라는 것을 짐작만을 하면서, 어둠속의 물살 소리를 발걸음 뒤로 보낸다.

 

IBM 산악회의 月例 10월 설악산 산행에 참가하여, 어둠이 막 가시고 여명이 감싸는 6시 못미쳐에 도착한 설악산의  최정상 대청봉 ( 1705 미터 ).

등산애호가인 친구가 전화로 미리 귀뜸 해주던 말 - 그 코스는 올라가지 않는게 좋을걸.. 을 충분히 온몸으로 이해하면서, 오색매표소-대청봉 구간을 배낭의 무게에 짓눌리며 거뜬히 올라섰다. 

 

구름에 파묻힌 대청봉에서 습기 가득 머금은 차가운 바람과 함께 맞이하는 새로운 아침의 상쾌함과 성취감.  그대는 아는가?  아침 6시 무렵의 여명에 구름속의 대청봉에 올라 서있는 신비로움의 기운을.

 

최고봉에 올라섰다는 성취감과 흥분을 충분히 만끽하고 발걸음을 새롭게하여 500여미터를 완만하게 내려와 들어선 중청산장에서는, 하루전에 먼저 출발하여 산장에서 1박을 한 선발조 일행이  마치 수십년지기들처럼 반가움으로 맞이한다. 밤새워 올라오면서 쌓인 온몸의 고단함이 눈녹듯이 사라진다.

 

 이후부터 대청-중청-소청-회운각-천불동계곡-비선대-설악동으로 이어지는 12킬로미터 내리막 산길은 한밤중의 오르막 산행 노고에 대한 자연으로부터의 보상이라고나 할까?

 

산행을 시작하기전 기대하였었던, 대청-중청-소청의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리라던 단풍에 물들은 산세의 모습은 구름에 둘려싸여 찾아 볼수가 없다. 어렵게 올라온 가을 한복판의 설악산 등산에서 단풍구경은 못하고 사람구경만 하다가 내려가는구나 라는 설악산 등산 초보자의 기우는, 얼마지나지 않아 千佛(1000가지 형상의 부처님 모습)동 계곡의 절경에 도취되어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으로 변하고 말았다. 산악회 초심자의 밤을 새운 등반의 고단함이 흐느적거림에 일조하였으리라

 

내장산에 버금가는 단풍이, 일종의 액세서리라고나 하여야 할까 ?  어깨를 맞대고 연이어지는 거대한 암석 봉우리 무리와 단풍이 어우러져 빚어진 8-9 킬로미터 길이의 천불동계곡-비선대 구간은 환상의 제곱이다. 아내와 함께 왔었더라면 점수 많이 얻었을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참가한 회원님들의 다정하신 모습이 부러워 보이는 것을 감출수가 없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시는 회원님들 덕분으로 중간 중간 쉬어가며 감상하는 산세의 아름다움은 굳이 단풍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리라. 처음으로 참가하는 산악회 등반에서 일행에 뒤처지는 동기가 될까보아 일부러 지참하지 않았었던 디지털 카메라의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온다. 

 

비선대의 널찍한 바위바닥에서 약간 늦은 점심으로 배를 채우고, 일행으로부터 건네받은 커피 한잔의 향기로움 끝에는, 밤을 새운 산행이 가져다 주는 졸리움이 다가서서 천근만근으로 두 눈꺼풀을 짓누른다. 졸리운 눈을 부비며 도착한 - 부모님 세대가 설악산에 가서 구경 잘하였다 라고 표현하시던 - 설악동 소공원은 비선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구간의 절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초라함일 뿐이다.

 

새벽부터 이어진 40여리 산행의 피곤함은, 하산길에 속초시내에서 온천물로 온몸을 씻어내고 미리 준비해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온데간데 없어지고, 깃털 같은 가벼움과 가을날 오후의 맑은 공기의 상쾌함이 넘쳐난다.  귀경길에 들린 텅빈 가을 동해안의 해수욕장에서 해질녘에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온몸을 휘어감는 바닷바람속에서 만끽하는 여유로움은 산악회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임을 새삼 되새긴다.

 

< 후기 >

l        새벽에 밟은 高山 봉우리에서는 방수복이 매우 긴요함. 비록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10월의 차가운 구름속에서는 雨衣가 보온/방풍/방수의 역할을 겸하며 크게 도움이 되었음.

l        무박 산행의 경우, 점심이후 가파른 하산길은 졸음으로 인하여 안전사고가 우려됨. 필자가 내려오던 도중에도 10여미터 앞서서 가던 50대의 여성 등반객이 그리 험하지 않은 구간에서 길옆의 3미터 아래 바위바닥으로 떨어 졌음. 필자의 경우, 하산 도중 5분(?)정도 눈을 잠깐 붙인 것이 효과적이었음. (인산인해의 틈바구니에서 비록 일행을 놓치게 되었지만)

l        야간 산행에서 랜턴/헤드램프는 당연히 필수. 집을 나서면서 새롭게 구입한 6볼트 육면체 건전지(제조사:BEXEL , 규격:4R25 , 시중에서 흔히 보는 것)를 사용하는 손전등(랜턴)을 새벽2시에 점등하여 6시무렵 대청봉에 올라선후까지 줄곧 켜두었음. 대청봉에서 비추어 본 결과, 출발당시보다는 빛의 세기가 현저히 약화되어 건전지는 다음번 등반에서는 사용 할 수 없겠지만 집에서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정도임.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건전지 유효수명은 5시간 정도로 추정함. 그렇지만 등반 도중의 손전등은 헤드램프에 비교하면 불편한 장비임을 절감함.

l        새벽2시에 등반을 시작하게 되면 인적이 드문 호젓한 코스를 지날수 있겠다라는 당초의 혼자만의 예측은 완전히 틀렸음. 단풍 피크철의 인파 인파 인파.  본 등반기를 작성하면서  우연히 읽어본 인터넷 뉴스에서는, 10월 2일-3일 주말의 설악산 각 매표소를 통과한 등반객 중 60% 정도가 새벽 3시 6시 사이에 매표소를 통과하여 등산을 시작하였다고 전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