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돼지령에서 내려다본 지나온 능선(제일 높은 봉이 왕시리봉) <15:36>













1년 전..아니 정확히 2003년 8월 31일 아내와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산행을 하게 됩니다. 금지구역인줄 모르고 피아골대피소에서 질매재를 경유, 왕시리봉 능선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피아골산장에 도착하고서야 금지구역이란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방향을 급선회하여 급조된 산행을 하게 됩니다. 피아골 삼거리에 걸린 이정표만 철석같이 믿고 토끼봉에서 칠불사로 하산하려고 했던 우리는 지리산신의 노여움으로 서로 헤어져 ‘이현상’ 유격지를 거쳐 내려간 의신마을에서 눈물의 상봉을 하게 되지요. ㅠㅠ 지리산을 가벼이 여긴 우리에게 지리산신이 내린 경고 덕분에 부부의 정은 더욱 깊어졌으나 항상 마음 한구석에는 동경과 연모의 정 까지 느꼈던 왕시리봉 입니다. 그래서..드디어 오늘, 그동안 마음만 있었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왕시리봉 능선에 오르고자 합니다..





◁구만마을-왕시리봉-돼지령-노고단-화엄사▷


 


일시: 2004.10.10 (일요일)

날씨: 맑음

산행자: 영원한 산친구 그리고 나

車의 길: 경남 통영시-사천IC-옥곡IC(알바)-하동IC-하동-화개장터-구만마을

산행코스: 구만마을-'나주임씨'묘-'박씨'묘 표시 돌-'무명'묘(1)-국립공원구역 표지석-'무명'묘(2)-'무명'묘(3)-억새군락지-헬기장-1,212봉-선교사수양원-1,212봉-왕시리봉(1,243m)-삼거리-‘성덕호’묘지(알바 Back)-삼거리-느진목재(해발고도 980m)-싸리샘-문바우등(1,198m)-질등(1,145m)-질매재(1,090m)-1,283봉-돼지령-(약간알바)-노고단(1,507m)-코재-중재-화엄사

산행시각

04:30 통영출발
05:24-05:41 사천휴게소 (아침식사)
06:14 옥곡IC로 갔다가 되돌아온 하동IC
06:55 구만마을 입구 (표지석)

07:18 산행초입 <산행시작>
07:52 나주 임씨묘
08:01 박씨 묘로 가는 표시를 한 바위
08:07 첫 번째 ‘무명’묘
08:18 국립공원 구역을 알리는 표지석
08:28 두 번째 ‘무명’묘
08:48 세 번째 ‘무명’묘
09:08 억새군락지
09:14 헬기장
09:51 1,212봉 (선교사 수양원으로 가려면, 이곳에 오기 전에 좌측으로 난 길로 가야하는데 무심결에 놓침.)
10:11 선교사 수양원
10:45 다시 돌아온 1,212봉
10:50 왕시리봉 정상 (1,243M)
11:06 ‘성덕호’ 묘지 (잘못 온 길로서 back함)
11:13 다시 되돌아온 삼거리 (우측으로 가야함.)
11:50 느진목재 (고도 980M정도로 200M이상 하강)
12:21 싸리샘
12:44-13:10 문바우등 (1,198M)--점심식사
14:15 질매재 (1,090M)
14:50 1,283봉
15:32 돼지령
16:07 알바 끝에 찾아낸 철조망
16:11 진짜 노고단 정상 (1,507M)
16:34 노고단 대피소
16:49 코재
17:26 중재
17:53 참샘터
18:00 연기암 갈림길
18:35 화엄사 입구 <산행끝>

18:53-20:19 현대식당 (산채정식-저녁식사)
20:19-22:41 통영 도착

■ 산행 거리 약 23km
■ 산행 시간 약 11시간
■ 나의 만보계 45,668步
■ 車의 거리 왕복 282km

산의내력

▲왕시리봉(왕시루봉) →위치 : 全南 求禮郡 土旨面 九山里

노고단에서 구례군 토지면을 향해 뻗어 내린 능선의 정점이다. 정상부가 펑퍼짐하고 두루뭉술하게 생겨 마치 큰 시루를 엎어놓은 것과 같다 하여 왕시리봉(왕시루봉, 1,243m)이라 이름 지어졌다. 발아래 섬진강이 흐르고 백운산과 마주보고 있어 수려한 경관은 비길 데 없이 좋다.

왕시루봉(1,243m) 능선은 화엄사계곡 동쪽 계곡인 덕운내와 이름만 들어도 서늘한 느낌을 주는 피아골 사이에 뻗어 있는 능선으로, 지리산 주릉의 서쪽 기점인 노고단에서 구례군 토지면소재 섬진강에 이르기까지 약 15km 길이로 뻗으며 질등(1,145m), 문바위등(1,198m) 등 몇 개의 순한 봉우리들을 능선 위에 흘려놓은 능선이다.

왕시루봉은 한국 주재 선교사 수양관촌이 있는 곳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일제때인 1925년 미국인 선교사들은 노고단 일대를 99년간 조차키로 계약한 뒤 50여 동의 돌집을 짓고 여름 휴양지로 사용했다. 선교사들은 6·25때 돌집들이 거의 다 파괴되자 텐트 생활을 하며 지냈으나, 등산객들로 찾아들면서 어수선해지고, 더욱이 강도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에 선교사들은 제2의 휴양지를 물색하던 중 왕시루봉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61년부터 왕시루봉에는 현재 휴양관과 퀸세트형 교회 건물을 비롯, 테니스장과 수영장 등이 마련돼 있다.


지리산 (click here)

참고 산행기 : 썩어도 준치님, 인자요산님, 1500산 김정길님께서 쓰신 산행기

▲ 산행기 ▲

오늘은 그동안 동경과 연모의 대상이었던 지리산 ‘왕시리봉’ 산행을 하려고 한다. 서두에 밝혔듯이 왕시리봉은 우리 부부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산이다. 작년만 해도 애송이 티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라, 왕시리봉이 금지구역에 속하는 산 인줄 까맣게 모르고 피아골산장에서 지도에 그려진 대로 질매재를 거쳐 왕시리봉에 오른 후, 구만마을로 하산하면 되겠지 싶어 꺼떡꺼떡 피아골산장까지 올라갔다가 피아골산장 직원에게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말씀 좀 물어보겠습니다. 여기서 왕시리봉을 갈라고 하는데요?"
"그곳은 휴식년제 기간이라 갈 수가 없습니다. 1990년부터 출입금지 구간입니다."---직원

아니, 이럴 수가..

얼마전에 한넷티즌이 나녀온 글도 읽었는데, 금지구간이라니..
그럼, 그분이 금지구역을 산행하시고 그렇게 인터넷에 올렸단 말인가!

아..

오늘계획은 왕시리봉으로 가서 단산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로 작심을 하고 왔는데..


-이상은 작년 나의 산행기 ‘거대한 함정’ 속에 있는 내용임.-


몇 번을 산장 직원에게 통사정을 했지만 들어줄리 만무한일, 결국 쓴 커피 한 잔 마시고 돼지령 된비알을 치고 올라가니 피아골 삼거리가 나왔다. 그곳에서 이정표를 보니 토끼봉에서 범왕리로 내려가는 안내판이 잘 그려져 있어 그대로 믿고 토끼봉까지 갔었는데.. 맙소사!
토끼봉에 도착해서야 범왕리로 내려가는 길, 또한 금지구역임을 알았지만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어 그대로 내려갔는데.. (그 후 내용은 저의 산행기 ‘거대한 함정’을 보시면 아시게 됩니다.)

그동안 나의 산행에 조언과 관심이 많으신 이두영 형님께서 이번에도 어느 산을 산행할 계획인지 물어온다. 내심 이번에는 꼭 왕시리봉을 오르고 싶어 왕시리봉 이야기를 하니 왕시리봉은 금지구역인데 하시며 약간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나의 의지가 확고부동한 것을 인지 하셨음인지 두 개의 산행지를 팩스로 전송해 주셨다. (하나는 왕시리봉, 또 하나는 충북 말목산)--형님께서는 은근히 우리가 말목산으로 가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우리도 이 두 가지 중에 어디를 먼저 가야하나 하고 고심을 하였다. 곰곰 생각해보니 충북 단양에 있는 말목산은 차의 거리는 머나 산행코스는 그다지 멀지 않고 왕시리봉은 족히 10시간 이상 걸릴 장거리 산행이라 해가 짧아지기 전에 왕시리봉을 먼저 답사하는 것이 좋겠다. 라는 의견일치를 보게 된다. (물론 나의 주관이 더 많이 작용했지만..또한 금지구역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함.)

왕시리봉은 잘 아시다시피 반달곰을 풀어 야생화 교육을 시키는 장소이다. 엊그제 TV에서 일본에 있는 반달곰이 민가를 습격하여 1명이 죽고 몇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지라 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산돼지는 두려워하지 않는데 비해 곰은 무척 두렵다. 날카로운 발톱과 강한 이빨로 사람을 공격하면 도저히 이겨낼 방책이 없다. 아 산돼지야 정 급하면 나무라도 올라가면 되지만 곰이란 놈은 잘 아시다시피 나무타기 선수가 아닌가..

 

▷ 아직은 어두운 사천휴게소 <05:41>

▷ 짙은 농무속의 구만마을 표지석 <06:55>

산행코스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었다. 어느 분의 산행기를 읽어보니 두만마을에서 반선까지 가신 초고수님도 계셨고 어느 분은 피아골로 하산하셨는데 나의 경우는 반선은 엄두를 내지 못하겠고 피아골은 갔던 곳이라 마음에 내키지 않고 결국 돼지령까지 올라가 형제봉 능선으로 하산하는 것으로 계획을 일단 세운다. 그런데 아무도 형제봉으로 내려온 선답자가 없어 좀 마음에 걸린다.

만약 하산길에서 길이라도 잃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라, 이두영형님에게 여러번 전화를 걸어 형제봉 능선에 대한 조언을 구했지만 확실성이 없어 불안해진다. 그래서 생각 끝에 코재를 거쳐 화엄사로 하산하는 안전위주 산행으로 작전을 변경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대단히 잘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화엄사 길도 초행길이라 궁금하기도 하였고..

오늘은 비교적 장거리 산행이라 부모님 아침을 해 드리지 못한 불효를 저지르고 새벽 4시 30분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를 빠져나온다. 한 시간 조금 더 지난 5시 41분 사천휴게소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하동IC로 향하는데 그만 2구간을 오버해 옥곡IC까지 가게 되고 다시 U턴하여 하동IC에 도착하니 6시 14분이다. 오늘, 산행 중 몇 번의 알바를 하게 되는데 차의 길도 알바에 속하면 정확히 4번이다. 아침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여 구만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6시 55분이다.

 

▷ 구만교를 지나 <07:00>

▷ 산행초입 <07:18>

구만마을의 구만교를 지나 콘트리트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오면 길이 세 갈래로 나뉘는데 무조건 가운데 길로 올라오면 안내판이 있는 산행초입에 도달하게 된다. (구만마을에서 걸어서 올라와도 되지만 이곳까지 차를 올리는 바람에 차를 돌리느라 약간 용을 쓴다. 2륜구동차는 가급적 올라오시지 마세요.) 이 구간은 영구출입금지 구역이라는 안내판의 내용이다. 영구출입금지 구역이라.. 좀 심한 것 같다.

 

▷ 박씨묘 가는길 표시 <08:01>

▷ 국립공원구역 표시석 <08:18>

두려움과 경건한 마음으로 왕시리봉 능선을 오른다. 비록 금지구역을 산행하고 있지만 자연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있은 행동은 티끌만치도 하지말자. 그래야 지리산신께서 우리의 입산을 허용을 하실 테니..실제로 우리가 오늘 왕시리봉 능선에서 남긴 것은 우리의 발자국 밖에 없었고 가져온 것은 아름다운 사진 밖에 없었다. 두려움으로 오르는 왕시리봉 등로는 놀랄 만큼 등로가 확실하고 완만하다. 아! 어느 분의 산행기에서 읽어보니 실버코스라더니..

산행초입에서 한 37분 올라오니 ‘유인나주임씨’ (孺人羅州林氏)묘가 나오고 다시 이곳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니 ‘박↑’라고 적혀있는 바위가 나온다. 아마도 조상묘 가는 길을 표시한 것인가 보다. 잠시 후 첫 번째 무명묘가 나타난다. 저번 계룡산은 야생화가 별로 없어 섭섭하였는데 이곳은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혹시나 곰이 나타나지나 않을까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올라가는데 한 10분 더 올라가니 비석 같은 것이 보여 자세히 보니 ‘국립공원구역’ 이라고 적힌 시멘트로 만든 비석이다. 다시 10분정도 올라가니 두 번째 무명묘가 나타난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나무들이 결혼기념일에 뜻있는 산행을 하고 있는 우리를 축하라도 하듯 방긋 웃고 있었다. 이렇게 부드러운 등로와 아름다운 곳을 왜 못 가게 하는 건지??



▷ 등로에 피어있는 흰까실쑥부쟁이 <08:09>





▷ 꿀벌 두 마리가 꿀을 빨고 있는 수리취 <08:13>





▷ 저번 내장산 산행 때도 찍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올리지 않았던 산부추 (오늘 찍은 것은 마음에 듬.) <08:17>





▷ 마치 제비새끼들이 다투어 입을 열고 있는 듯한 모습의 용담 <08:51>





▷ 헬기장 올라가는 등로에서 바라본 억새풍경과 운해로 덮인 구례군 간전면 풍경 <09:08>


두 번째 무명묘에서 한20분 올라오니 세 번째 무명묘가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올라왔던 구례군 토지면과 간전면 일대가 조망이 되는데, 산 아래가 온통 운해로 덮여있다. 일찍 산에 오르니 이런 장관도 보게 되는구나! 세 번째 무명묘에서 한20분 올라오니 억새군락지가 펼쳐진다. 애초 중대마을에서 오르려고 했으나 구만마을로 변경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억새군락지 때문이다. (처음에는 형제봉능선으로 내려오려고 했기에 원점회귀가 가능한 중대마을에서부터 오르기로 했는데 날머리가 화엄사로 결정되자 중대마을에서 구만마을로 바꾸었다. 참고로 구만마을로부터 오르면 경사가 완만한 반면 거리가 멀고 중대마을로부터 오르면 경사가 급하다한다.)



▷ 헬기장에서 바라본 서쪽 월령봉쪽 풍경과 아름다운 억새 <09:15>





▷ 헬기장에서 왕시리봉으로 올라가는 등로에서 본 개쑥부쟁이 <09:25>





▷ 헬기장에서 왕시리봉으로 올라가는 등로에서 내려다본 동남쪽 풍경 (섬진강) <09:28>


요즘은 억새산행철이라 많은 분들의 억새산행기가 올라온다. 번잡한 곳을 싫어하는 우리는 테마산행을 하고 싶어도 인산인해 같은 유산객 바람에 테마산행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우연히 이런 억새 산행을 하게된 것이 너무도 행운이다. 더구나 이곳은 아무도 없고 우리 둘만이 억새를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10월 10일 이른바 쌍십절이다. 22년 전 우리가 결혼했던 날이기도 하다. 결혼한지 22년 후 이런 아름다운 곳을 거닐게 되다니 어찌 생각하면 우리는 행운아들이다. 앞으로 22년 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억새군락지를 지나자 잠시 후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은 H자 글씨로 잘 조성되어 있었으며 2개가 연달아 붙어있구나. (약간 신기함) 이곳에서 왕시리봉쪽을 바라보니 둥근 봉우리가 보이는구나. 왕시리봉 인줄 알았지만 나중에 보니 전위봉우리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무척 아름답다. 남쪽은 운해로 덮인 구례군 간전면 일대가 보이고 저 멀리 뾰족한 봉우리가 광양 백운산인가?? 눈부신 태양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섬진강 또한 너무도 아름답구나!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설악산이나 유명한 산에 오르지 않고 이곳에 온 것이 너무 좋구나! ^^



▷ 왕시리봉 바로 아래 1212봉에서 바라본 동북쪽 풍경 (가장 높은 봉이 천왕봉) <09:51>


억새에 취했음인지 헬기장을 지나 무심결에 한 20여분 올라오니 어느 봉우리인데 고도계를 보니 1212봉인가 보다. 이곳에서는 불무장등 능선과 피아골계곡 직전마을, 벽소령에서 내려오는 의신마을까지 보이며 저 멀리 천왕봉이 하늘금을 긋고 있다. 1212봉을 지나자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길이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 조금 올라가다가 문득 생각하니 아차! 선교사 수양관을 빼먹은 것이 아닌가.. 조금 있으면 곧 왕시리봉 정상인데 아내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수양관 구경을 하자고 한다. 그동안 인터넷에서 보았던 선교사 수양관이 인상에 남았던 모양이다. 물론 나도 가고 싶은 곳이라 다시 왔던 길로 도로 내려가는데 손해보는 느낌이 들어 기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고도 120M 정도 하강해야 함. (첫 번째 알바)



▷ 1215봉에서 조금 올라온 지점에 있는 아름다운 단풍 <09:54>





▷ 맨 처음 만난 선교사 수양관 (집에 각자의 이름을 새긴 문패가 있음.) <10:11>


알고 봤더니 아까 올라오다가 좌측으로 길이 나 있었는데 무심결에 그냥 올라왔는가 보다. 빠른 걸음으로 한 10여분 내려오니 맨 먼저 웅덩이가 보이고 반원통 모양의 수양관이 나타난다. (웅덩이는 선교사의 풀장이었다고 함,) 사진에서 본 멋진 삼각형 수양관을 찾으려고 아내에게 이곳에서 기다려라 말하고 나 홀로 아래로 내려가서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길이 없다. 자칫 잘못하면 아내랑 헤어질 수도 있기에 도로 올라온다. (아내가 본인의 휴대폰을 가져오지 않음.) 포기하고 도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아까는 보지 못했던 옆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속는 셈치고 그 길로 가보니 다른 수양관이 보인다. ...... 아! 찾았다! ^^



▷ 다른 수양관(삼각형 모양의 별장)으로 가는 길 <10:18>



 

▷ 다른 분들의 산행기 속에서 보았던 멋진 삼각형 모양의 별장 <10:20>

▷ 문패만 클로즈업! <10:20>

멋진 삼각형 수양관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했는데 실제로 와보니 유령의 집처럼 아무도 없다. 수양관 앞뜰에는 아직 개화되지 않은 용담이 피어있어 더 쓸쓸해 보인다.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살짝 들여다보니 흔들의자 같은 의자 두 개와 책상, 침대 대용으로 썼음직한 선반 등이 보인다. "여보시오! 아무도 없소??.." 몇 컷의 아름다운 사진을 담아오는 것으로 만족을 하며 다시 왔던 길로 되올라간다.

♣ 왕시루봉 선교사 수양관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 산 231번지 건물 12동 건평541.82㎡
유 적 물 - 교회 및 수양관 12동, 기타시설

설립배경

해방 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일제시대 소래와 원산에 있던 선교사 수양관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지리산수양관은 국내 유일의 선교사 수양관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 후 지리산 수양관은 벽채만 남고 다 파괴되어 훼손된 상태였다. 전쟁 직후 귀환한 린튼과 하퍼 등이 1950년대 말까지 노고단 수양관터에 천막을 치고 여름휴가를 지냈다. 전쟁 후 지리산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노고단 쪽으로 등반로가 나면서 수양관의 '격리'환경을 지킬 수 없게 되자 노고단에서 멀지 않고 등산객 시야로부터 숨겨진 왕시루봉 일대에 1961년 여름부터 목조와 토담집 다섯 채와 테니스장, 수영장, 천막부지를 조성.1962년7월11일 서울대와 남 장로회 선교부 대표 린튼과 하퍼가 계약 체결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 선교사 수양관 갔다 오느라 근 1시간 후에 도착한 왕시리봉 정상 <10:50>

▷ 왕시리봉 지나 잠시 후에 만나는 삼거리 (길조심!! 오른쪽으로 가야함.) <11:13>

왕시리봉 정상은 아까 왔었던 1212봉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었다. 산 가운데 큰 시루와 같은 모양의 바위가 있다 하여, 왕시리봉 또는 왕증봉이라 한다고 하는데 바위는 보이지 않고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여있어 조망은 없었다. 그런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예쁜 정상석이 우리를 맞이한다. 어느 고마운 분이 건립해 놓았을까? 정상석 뒷면을 보니 이천사년칠월 전주 ‘이영진’ 이라 적혀있다. 전주에 사시는 산님이신 모양인데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일개 개인이 사비를 털어 정상석을 건립하신 모양이다. 산꾼의 한사람으로서 정말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작년에 올랐다면 이 정상석이 없어 어디가 정상인지 헷갈렸겠지..(5분이면 왔을 왕시리봉을 선교사 수양관 갔다 오느라 근 1시간가량 소요함.)

왕시리봉을 지나 약 100m정도 걸어오면 삼거리 길이 나온다. 이곳이 헷갈리게 쉬운 장소이다. 오른쪽 길은 급경사로 내려가는 길이라 마치 내서리쪽으로 빠지는 길처럼 느껴져 좌측 약간 오름길이 정상 등로 같이 보인다. 하지만 오른쪽 급경사 길이 정상등로다. 1500산 김정길 형님의 산행기속에 이에 대해 설명은 하셨는데 표현이 좀 이상했다. 차라리 무조건 오른쪽 길을 가라고 했으면 알기 쉬웠을 것을..

김정길 형님의 산행기를 읽었지만 왼쪽 길로 접어드니 곧 산죽으로 덮인 내리막이 나타나고 잠시 후 묘 한 기가 나타난다. (‘성덕호’라고 적혀있음.) 이곳에서 내려가는 길이 보여 내려가니 등로가 이상하고 아무래도 아닌 듯 하여 다시 Back을 하게 된다. (두번째 알바-김정길 형님의 산행기를 곰곰 회상을 하니 왼쪽 길로 가지 말라는 말인 듯 같았다. 아마 형님께서도 이 길을 내려가시다가 시껍을 싼 모양이다. ㅋㅋ)

 

▷ 삼거리에서 느진목재로 내려가는 험한 너덜길 <11:19>

▷ 이상한 냄새가 났던 원시림 등로 <11:29>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오른쪽 급경사의 길로 내려간다. 길은 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아주 심한 너덜길이다. 한 10분 내려오니 좌측으로 약간 조망이 열리면서 아름다운 단풍사이로 종석대와 노고단이 보인다. 사진 한 컷을 찍고 다시 내려가려는데 전방에 사람이 있어 서로 깜짝 놀란다. (남자 산님 세 분이 70L정도 큰 배낭을 메고 쉬고 계셨음.) 만나지 말아야 할 곳에서 만났으니 서로 겸연쩍긴 마찬가지라 “어디서부터 올랐습니까?” 하고 물으니 “말하기 좀 복잡합니다.” 하신다. 아마도 멀리서 왔나보다.



▷ 느진목재로 내려가는 등로에서 바라본 노고단쪽 풍경 <11:22>





▷ 느진목재로 내려가는 등로에서 바라본 피아골쪽 풍경 <11:25>



 

▷ 느진목재 지나 문바우등으로 가는 등로에서 바라본 문바우등 <12:20>

▷ 느진목재 지나 문바우등으로 가는 등로에 있는 싸리샘 <12:21>

삼거리에서 더덜길을 한 30여분 내려오니 느진목재에 도착한다. 능선이 길게 늘어져 있는 곳에 고개가 있다 하여, 느진목재라 불림." 토지면 내서리로 내려갈 수 있고 문수리로 내려갈 수 있는 안부 사거리인 셈이다. (김정길 형님은 이곳에서 문수리로 하산하셨음.) 고도가 능선 중 가장 낮은 980m정도이므로 문바우등으로 오르려면 다시 고도 200m를 치고 올라가야 한다.

한 30분 소금땀을 흘리며 올라가니 전방에 山자 모양의 산이 보인다. (문바우등) 그리고 잠시 후 우측 등로에 스텐그릇 한 개가 놓여있는 싸리샘이 보인다. 싸리샘은 선답자들로부터 음용하기에 부적합하다는 말을 들은바 있으므로 사진만 한 컷 찍고 지나친다. 그런데 또 부부산님 두 분이 나타난다. 나이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부부산님은 노고단에서 내려오셨다 한다. (우리랑 반대코스이므로 서로 시간을 물어봄.) 잠시 후 가시덤불로 덮힌 문바우등으로 올라가는 등로로 인해 팔뚝을 긁히고.. 이그.. 결혼기념일에 이 무슨 사서하는 고생이람..



▷ 싸리샘지나 문바우등으로 올라가는 등로에 누워있는 독성이 강한 천남성열매 <12:23>





▷ 문바우등으로 올라가는 등로에서 뒤돌아본 떡시루 모양의 왕시리봉(왕시루봉) <12:29>





▷ 문바우등으로 가는 등로에서 본 적단풍 <12:35>





▷ 아름다운 새들이 놀았던 문바우등의 바로아래 (나뭇가지 사이로 두개의 바위가 보인다.) <12:44>


20분 후..
전방에 두개의 암봉으로 된 봉우리가 나타난다. 바위가 마치 문처럼 양쪽에 서 있다 하여 문바우등이라 한단다. 특히 이곳에는 아름다운 새들이 놀고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오자 아쉽게도 날아가 버린다. 마침 편편한 바위도 있고 점심때도 되어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은 충무김밥을 사지 않고 집에서 만든 도시락을 먹었는데 충무김밥보다 훨씬 맛이 좋다. 늘 혼자 다니시는 산님들은 어부인 눈치 보시느라 마트에서 김밥 두 줄 달랑 사가지고 산행에 나서시는데 아내랑 같이 다니면 먹는 것 하나만큼은 정성이 가득담긴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답니다. 참고하시길..^^



▷ 질등으로 가는 길에 피어있는 감국 <13:23>





▷ 질매재로 내려가는 등로에서 바라본 오른쪽 바위 풍경 <13:51>


문바우등에서 내려가는 길도 너덜길이고 길이 약간 헷갈린다. 하지만 곧 길을 찾아 순탄한 항로를 한다. 문바우등에서 질매재까지는 고도차가 별로 없어 느긋하게 경치구경을 하며 산행을 할 수 있다. 특히 우측에 펼쳐진 피아골의 단풍이 퍽 인상적이다. 길게 늘어져 있는 산봉우리라 하여, 이곳을 질등이라 부르는 질등이 지도상에는 있으나 솔직히 어디쯤인지 감도 잡을 수 없을 만치 고도차가 없는 것 같다.

문바우등을 떠나 30분후, 또 다른 젊은 남녀 산님을 만났다.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피아골대피소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으잉? 그곳에서 이곳은 문을 막아 올라올 수 없는 곳인데..(작년에 내가 확인해 봤음.) 어떻게 올라왔느냐고 물으니 빙 돌아서 등로가 아닌 곳을 치고 올라왔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젊은이들이다. 그리곤 “우린 막 자라서 괜찮습니다.” 한다. 허.. 대단한 젊은이들과 이별을 하고 한30분 걸어오니 고개의 모양이 소 질매(길마,소의 등에 얹는 안장같은 제구)와 같다 하여, 질매재라 부르는 질매재에 도착한다. (이정표- 노고단4.5km 왕시리봉6km 피아골대피소0.7km)

 

▷ 질매재 (고도 1,090m) <14:15>

▷ 1283봉 지나 올라가는 등로에서 발견한 산삼보다 귀한 노루궁뎅이버섯 <14:59>

질매재에서 고도계를 보니 고도가 약 1090m 정도다. 노고단이 1,507m이므로 다시 고도 400m를 올라야한다. 서서히 체력이 떨어져 가고 있지만 그동안 숙원사업(?)이었던 왕시리봉능선을 올랐으니 피곤함도 날라 가버리는 것 같다. 질매재에서 한 35분 올라오니 1283봉에 이르고 다시 한 10분 등로를 올라가는데 오른쪽 나무에 이상한 물체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노루궁뎅이’버섯이 아닌가! (빈자리님의 산행기에서 실물을 보았고 권경선님의 산행기에도 등장한 산삼보다 귀하다는 그 버섯이다.) 하지만 처음 내가 기술한 대로 우리는 지리산에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단지 아름다운 사진만 담아 왔을 뿐이다. ^^ --한번 쓰다듬어 보기는 했음.

♣ 노루궁뎅이 (Hericium erinaceum)

민주름버섯목 산호침버섯과에 속하는 버섯. 중국에서는 후두균(원숭이 머리를 한 버섯)이라고도 한다. 모양은 구형(球形) 또는 난구형(卵球形)으로 갓의 지름은 5∼20㎝이고, 털이 난 위쪽 등면을 제외한 모든 면에는 무수한 바늘이 늘어져 있다. 바늘의 길이는 1∼5㎝이며, 지름은 1㎜이다. 학명은 고슴도치를 의미하며, 나무 줄기에 달라붙은 백색의 고슴도치라고 할 만큼 그 모양이 비슷하다. 백색의 뒤에는 노란색 또는 엷은 갈색으로 된다. 세로로 자르면 상반부는 다공질의 갯솜모양의 살덩어리이고, 하반부는 바늘의 집단으로 되어 있다.

바늘의 표면에는 자실층이 발달해 있다. 포자는 무색의 아구형이며, 7㎛×5.5㎛이고 아밀로이드 모양이다. 산 속의 활엽수림에 졸참나무·떡갈나무·너도밤나무·단풍나무 등의 죽은 나무 또는 살아 있는 나무의 원줄기에 나며, 흰색으로 두껍게 부풀어 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육질이며 식용한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나며, 한국과 북반구 온대 이북 등지에 분포한다.




▷ 돼지령에서 노고단으로 향하는 잘못된 등로에서 바라본 반야봉 <15:46>


원래 계획은 돼지령 못 미처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문수대를 거쳐 코재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문수대가는 이정표가 있을 리 만무했고 결국 올라오고 보니 돼지령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니 우리가 걸어왔던 아름다운 왕시리봉 능선은 물론 좌측으로는 반야봉을 위시해 임걸령샘터가 내려다보이고 천왕봉은 물론 불무장등능선, 울긋불긋한 피아골계곡, 바로옆 형제봉능선 그리고 노고단의 돌탑이 보인다. 아~~ 왕시리봉능선을 타 보지 않은 사람은 지리산 산행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 하더니 과연 헛말이 아니로구나!

이곳에서 제법 오랜 시간 조망을 즐긴 후 노고단으로 향하는데 아직도 문수대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좌측으로 난 길을 향해 걸어가니 잠시 후, 암릉이 나타나고 암릉의 우측길로 내려가니 어느 지점 부터는 등로가 희미해진다. (세 번째 알바) 다시 Back하여 돌아오는데 아까 내려온 길로 도로 가기도 어렵다. 무조건 위로 치고 오르니 아까 보였던 암릉지점에 도착한다. 자세히 보니 다른 길이 보였다. (암릉의 좌측길)

 

▷ 누군가에 의해 잘려나간 철조망 <16:07>

▷ 진짜 노고단 돌탑 <16:11>

암릉길을 따라 제법 올라왔는데 아내는 등로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인지 도로 내려가 돼지령에서 안전한 정상등로로 진입하자고 한다. 순간 갈등이 생겼으나 조금만 더 올라가보고 정 안되면 Back해도 늦지 않으니 가자고하니 마지못해 따라온다. 잠시 후 누군가에 의해 잘려나간 철조망을 통과하고 올라오니 세상에! 진짜 노고단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 진짜노고단은 예약을 한 사람들 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작년에 뱀사골에서 반야봉을 거쳐 노고단에 온 적이 있었는데 모조품 노고단만 구경하고 왔었다.)--“서방 말을 들었더니 떡이 생겼네!” 하니 이번만큼은 기분이 좋은지 방긋 웃는다. ^^

 

▷ 노고단에서 내려다본 방송국 시설물 <16:12>

▷ 형제봉 능선과 섬진강을 바라보시는 유산객들 <16:15>

♣ 노고단 (老姑壇)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산동면(山洞面)과 토지면(土旨面) 사이에 있는 지리산 중의 한 봉우리. 높이 1507m. 반야봉·도솔봉·왕증봉·만복대 등과 함께 소백산맥 중에 솟아 있는 고봉(高峰)이다. 남동쪽으로 광활한 초원에 원추리꽃이 덮여 있으며, 훌륭한 피서지로 유명하다. 노고단이라는 말은 <늙은 시어머니 제사터>의 한자말에서 온 것으로, 고려 때에는 옛날부터 산신에게 지내온 제사를 노고단에서 지내기도 했다. 남동쪽에 유명한 화엄사(華嚴寺)가 있으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반야봉과 천왕봉이 바라보이고 서쪽으로 노령산맥과 무등산, 남쪽으로는 한려수도의 바다와 섬들이 아득히 보인다. 특히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구름바다(雲海)는 지리산의 장관으로 꼽힌다.




▷ 노고단으로 올라오시는 유산객들 (저멀리 보이는 것은 모조돌탑) <16:19>


뜻밖의 횡재라도 한 듯 우리 두 사람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지고 생전 처음 보는 노고단의 이곳저곳을 구경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오르내리며 가이드에게 설명을 듣는데 우리는 한가하게 설명을 들을 시간은 없기에 노고단 대피소를 향해 내려온다. 그런데 위 사진에서 보듯 모두들 목에 목걸이를 하고 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 고 무임승차한 우리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진다. 만약 목걸이가 없다고 어디서 들어왔냐고 묻기라도 한다면.. ^^;; .....
하지만 기우였다. “수고 하십니다.” 하니 깍듯이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말이다. ^^

 

▷ 노고단 대피소 (뜨거운 커피 마심) <16:34>

▷ 눈썹바위 <16:54>

노고단 대피소는 이번까지 합하면 세 번째 방문이다. 지리산 대피소 중에서 유일하게 차량이 올라오는 대피소이며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몇, 안되는 대피소이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대피소 직원에게 화엄사까지 걸리는 시각을 물어보니 2시간은 족히 걸린다 하며 지금 시각이 오후 4시 34분이므로 랜턴이 있느냐며 묻는다. (기본이지 감히 산꾼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다니..하지만 렌턴을 준비하지 않고 오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한다.)



▷ 아직도 화엄사는 멀었는데 날은 어두워 지고.. <18:16>


코재를 거쳐 화엄사로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너덜길이었다. 하지만 같은 너덜길이라도 그리 힘들지 않은 너덜길이다. 만약 반대로 화엄사로부터 올라온다면 무척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장장 6km를 올라오기만 해야 하니까..) 눈썹바위를 지나, 집선대, 중재, 국수등, 참샘터,를 지나니 연기암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미 오후 6시)

연기암 삼거리에서 다시 한 30여분을 내려오니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어둠에 묻힌 화엄사 구경은 이미 글른 일.. 茶香그윽한 반야다원에서 茶한잔 마실 여유도 없이 옆에 있는 유산객에게 말을 건넨다. (젊은 부부와 애기 그리고 활달한 젊은 남자 한분)

“혹시 이 고장 사람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택시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지요?”

뜻밖에도 구례읍내까지 태워 주겠다는 고마운 제의..그리곤..
“車가 어디에 있는데요?”
“구만마을에 있습니다.” “태워 주시면 택시비조로 사례하겠습니다.”

사례하겠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는지라
“그럼 저녁 안 먹었으면 저녁을 사겠습니다. 마침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라 안 그래도 멋진데서 식사를 하려고 했거든요.”

참으로 희한한 경험을 한다. 아마 이 분들도 마찬가지리라..

즐거운 식사를 마친 후..

광주에서 오신 젊은 부부의 차를 타고 구만마을로 향한다.
구례읍에 들러 활달한 젊은 남자(구례사람)가 본인이 보관하고 있는 밤을 창고에 가서 일부러 꺼내어 선물까지 주고..^^
저녁밥 한 그릇 사고 선물에 우리화이트가 기다리는 곳까지 태워주고..^^

처음 왕시리봉 능선을 오를 때만 하더라도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올랐는데..
오늘은 지리산신의 도움으로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되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지리산신의 노여움을 사지 말아야지..

왕시리봉..
왕시루봉..
왕증봉..
.
.
오늘..그대를 만나 그대 품에 안겼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리오..
.
.
.
.
.
.
2004.10.10 꿈에도 그리던 지리산 왕시리봉에 다녀와서..



 

[2004.10.10.09:21]
[헬기장 지나 능선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


Sarah Brightman-Scarborough fair



이수영의 산행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