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산 - 철마산

 

2007. 12. 02

 

홀로

 

지독하게 흐린 날, 박무(薄霧) 에 마침내 비

 

 

 

 

어떻게 이다지도 불유쾌하게 흐린 날씨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메마른 산야에 비라도

뿌려줄 준비를 하고 있는 습기 찬 대기에 감사하지 못할 망정 "산 조망"을 그르친다고

불유쾌함을 숨기지 않는다. 좋지 못한 산병(山病)이다. 산행을 그런 식으로 가려서야

'산을 좋아한다는 것'이 기껏 눈의 호사를 누리거나 남에게 자랑이나 할 심사지, 그게

뭔가...... 산을 배워도 한참 우습게 배운 것이다. 혼자 싱긋 웃는다.

 

 

 

 

 

그래도 초행길의 긴장이 없지않다. 일찌기 달음산에서 철마산 종주를 시도하다 곰내재

에서 문래봉 오르는 곳의 산길을 잘 잡지 못해 패퇴를 한 경험이 있는 지점이라 내심 신

경이 쓰이는 구간이 있다.

 

 

게다가 회동 아홉산 가자고 단체산행이 유혹된 날짜라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당일

아침에 결정한 산행지라 지도만 한장 달랑 프린트해 가지고 간다. GPS도 손목시계(고도

계)도 챙기지 못한 것을 출발하면서 알아챘으나 오랫만에 감(感)으로만 산행을 해보고자

아쉬움을 쉽게 버렸다.

 

 

 

산행은 철마면 사무소 뒤쪽 와여마을에서 시작하였다. 산행객이 제법 있는 지 등산로를

가르키는 조그만 표시판이 하나 있다. 키 큰 소나무 서너그루가 있는 둔덕을 돌아 차단

기가 드리워진 임도로 진입하였다. 화려한 경치는 없으나 홀로 산행의 묘미가 솟는다.

 

 

저수지를 따라 계곡을 거슬러가는 임도는 훌륭한 산책로다. 굽이굽이 모퉁이를 돌아가

는 운치있는 길이 제법 길게 저수지 근처까지 이어진다. 진즉에 산 능선으로 붙어 진행

해도 되는 듯하다.

 

 

저수지 근처에서 우측으로 리본 즐비한 낙엽 등산로가 비스듬히 올라간다. (위 좌측사진)

아하! 이제 저 길로 올라 저수지를 중심으로 역반원을 그리면서 거문산 능선을 타겠구나.

산길로 들자마자  좌측에 두 기의 나즈막한 무덤에 단풍 물든 이파리의 채색이 이쁘다. 온

통 메마른 갈색 천지인데...... 잠시 눈길이 간다. (위 우측 사진)

 

 

 

백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는 양지바른 넓은 묘지부터는 잡목이 드리워지고  인적 드문 등산

로가 시작된다. 녹음 진 여름에는 꽤나 성가시겠다.  숲길은 처음에는 약간 편안한 길이었고 끝없

이 아삭이는 낙엽을 밝고 가는 기분이 너무 좋다.

 

 

문득, 메마른 녹갈빛 이파리들이 많이 섞인 것을 깨달았다. ..... 몹시도 가물어 이렇게 일찍 떨구

어진 것이구나. 사람의 목숨도 때로 그렇게 애닯토록 일찌기 스러지기도 한다만은  슬픔도 미련

도 없이 그저 그렇게 떨어져 누웠구나......

 

 

다시 저수지가 언듯 비치는 계곡 가까이 왔는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

되는데 경사가 보통이 아니다. 컨디션은 좋으나 등짐에 어깨가 뻑적지근하다. 땀과 거친 호흡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겨우 첫 조망터인 514 봉에 도착을 하였다. (아래 사진)

 

 

 

 

 

514 봉에서 달음산에서 함박산 그리고 문래봉 이어지는 산의 중첩을 감상하고......

 

 

 

일광면의 또다른 아홉산과 일광산 이어지는 재미없는 능선도 흐릿하나마 이쁘게 봐주고......

 

 

 

다시금 하염없이 낙엽 밟는 작업을 수행하여......

 

 

 

철없는 진달래가 붉은 열매 속에서 빛나는 장면을 발길을 멈춘다.

철없다...... 시도 때도 없는 것 보다야 비교할 수 없이 나은 것 같다.

 

 

 

오호라! 이곳이 바로 거문산.

하지만 조망은 별로다.

 

 

 

다만 달음산 다시보고 소산벌 다시 눈여겨보고

전방의 574 봉, 망월산 쪽, 철마산 방향으로 지형과 산세를 세심하게 살펴본다. 

 

 

574봉은 억울하다. 인근의 망월산은 518m,  얼마 전에 정상석을 얻어 졸지에 매암산이 된

매바위는 515.8m, 백운산은 522m, 내가 좀전에 지나온 거문산은 543m ......  이와같이 모

두 저보다 낮은 봉우리인데도 번듯한 이름자가 있는데,  유독 574 봉은 펑퍼짐한 둔덕 같은

특징 때문인지 숫자로만 표기된다. 굳이 이름을 붙혀준다면, "소두방산"이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음을 여러 정황으로 미리 가늠해둔다.

 

 

 

왼쪽 주황색 사각틀  저 어디쯤 산길으로 들어가는 어설픈 나무계단이 있었다.

오른쪽 노란 사각틀은 574 봉을 내려서 소산벌에서 문래봉 가는 표지점으로 삼을 수 있

는 건축물이다. 아래 사진의 왼쪽에 확대한 부분이다. 아래 사진의 우측은 그루터기님

철마산-달음산 종주기에서 채취한 것이다.

 

 

 

<소두방재와 소산벌 그리고 매암산의 유래>

 

정관면 홈페이지 정리

 

 

정관면의 이름 자체가 소두방재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소두방재는 정관면 사람들이 동래로

내왕하는 유일한 관문이었고, 1914년 면의 면이름이 되었다. 소두방은 솥뚜껑의 이곳 방언인데,

솥 鼎, 갓 冠자로서 멋있는 작명을 하였다. 소두방재는 그 재(嶺)근처에 있는 매바우가 꼭 소두방

처럼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유래의 일차적인 배경 이다.

 


그런데 정작 매바우는 아무리 살펴봐도 소두방처럼 생기지 않고, 큰 바위가 산처럼 솟아 있을 뿐

이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추정을 해보기도 한다. 솟은 바위( 한역하여 聳岩 솟을 용, 바위 암)

가 사투리로 솟은방우→솟은바우→소든방우, 소두방이 됐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참뜻

에 따르자면 솟은 바위(聳岩)이지 솥뚜껑(鼎冠)은 아닌 것이다. (잘했으면 용암면이 될 뻔했다.)

 

 

 

 

소두방재가 있는 곳을 소산평(蘇山坪)이라 하였는데, 홈피의 내용을 나름대로 해석해보면, 이는

솟은(聳-이것은 한자의 뜻을 차용한 것) 의미가 음과 뜻을 같이 살리는 소(蘇)자로  변해 소산평

(蘇山坪)이 된 듯하다. 또한, 소두방(聳岩)의 모양이 뫼처럼 생겼다 하며 뫼바위(山岩)라 했을 것

이고 구전으로 매암(山岩), 또는 좀 더 고상하게 보일려고 매암(梅岩)이라 의도적인 왜곡을 하였

을 것이다. 매바우를 소학대(巢鶴臺)라는 멋진 이름을 붙힌 것도 학소대 하나쯤 없는 명산이 없

으니 이는 애교로 봐 줄만하다..

 

 

 

 

바로 앞의 반벗거지 언덕은 숲 속 산릉을 따르다가 끄트머리에서 황토길 임도로 내려선다.

그 다음은 임도를 따라 574봉을 트래버스하고(말했듯이 산릉으로 진행할 수 있다) 좌측의

철마산 쪽으로 이어가면 된다.

 

 

 

 

적과 흑......

중학교 때 읽어낸 두텁고 깨알같은 그 소설을 생각한다. 강렬한 색갈이 대비되는 이 매혹적인 제목

 나폴레옹 시대의 출세의 상징인 붉은 군복과 시대의 종말인 왕정복고의 암울한 검은색을 상징

다. 자신의 출세를 위한 광란의 질주를 감행하는 쥘리앵의 타락한 죽음으로, 스땅딸은 주인공

대한 미화를 최대한 절제하고 실존적 모습으로 당대의 절망의 서사시를 그려냈다.

 

 

쥘리앵이 레날부인에겐 옴므파탈인 셈이라, 상상은 이 시대의 팜므파탈인 신모모양에게로 이어진

다. 치명적인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언제나 너무나 슬프고 아프고 인생을 쓸쓸하게 한다.

 

 

사랑아...... 네가 도대체 무엇이길레.

 

 

 

574봉, 그리고 반벗거지봉 다시보기

 

 

 

반벗거지 봉을 내려서 임도를 따르는 길.

 

 

 

 

임도가 돌아가는 곳에서 다시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고, 574봉 정상에서 흘러내린 능선길은

임도를 가로질러 숲길로 철마산 방향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잠시 주먹밥 한개와 따끈한 커피

를 마시고 출발한다.

 

 

이곳까지 단 두 팀의 단촐한 산객들과 스쳐 지났을 뿐이다.

 

 

 

다시 이어지는 끝모를 낙엽길.

 

 

 

친절하게도 철마산 정상임을 너무나 선명하게 증명해준다.

철마산 정상은 몇 평되지 않은 좁은 곳이다.

 

여러개의 정상석을 세우는 것도 자유겠지만 정상부의 면적과 형세를 생각하여

크기와 미관에 좀더 신경을 쓰면좋겠다. 아래 댓글에 나의 지적에 대해 유감을 표

현한 글이 있어 대해 글을 삭제수정하긴 했으나 유감스럽긴 나도 마찬가지다.

 

 

흐린 안개 같은 대기 속의 뿌연 그림으로 분별심을 달랜다.

 

 

 

철마산 정상에서 철마산 서봉으로 가는 짧은 길은 바위와 소나무가 엉킨 길이라서 비로소

산릉을 걷는 느낌이 난다. 암릉의 긴장감을 즐기지 않는 산거북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다.

 

 

서봉은 철마산 정상보다 조망이 좋고 쉼터도 넓다. 얼마 안되는 높이로 정상의 명예를 얻지

못했으나 품위있는 봉우리다. 그렇니 누군가의 공덕으로 돌탑이 쌓이지......

 

 

 

 

멀리 회동 저수지가 빛나고 구월산이 봉긋하다.

 

 

 

서릉에서 길따라 하산하면 송정리 입석 마을로 가겠구나 짐작하면서 내려선다. 경사가

급해 마을에서 오름길로 잡으면 꽤나 힘들 것 같다. 빨랫줄 같은 로프를 설치해두었지

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중간중간 매듭지어 이어가는 방식으로 설치해야

오르내림길에 손에 미끌림없이 보조 역할을 제대로 하건만...... 

 

 

 

 

하염없는 낙엽길.

고요한 상념의 길.

 

 

 

마을로 들어섰다.

전원생활의 꿈을 실현하고자 의도한 별장이 유난히 많다.

 

 

한동안 아내는 본격적인 간장 된장 고추장 담그기부터 실습을 했다. 푸성귀와 야채 가꾸기

훈련도 병행했으나 모든 것을 책으로 해결하려는 나의 시도에 아내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결국 마트에서 7천원에 구입할 수 있는 푸성귀를 3만 5천원 이상 들여 온갖 고생 끝에 품

질도 형편없는 작황으로 전원생활을 하는 내 모습이 쉽게 상상되었다. 게다가 이산 저산을

가기위해 주말마다 집을 비우고 떠돌아 다니고 낮에는 뒷산에만 돌아다니는 어처구니없이

서글픈 상황도 쉽게 가늠되었다.

 

 

우리의 전원생활의 꿈은 이렇게 너무나 쉽게 깨져버렸다. 저 분들은 어떤 생활로 별장의

소유를 만끽하고 있을까.

 

 

 

 

붉은 꽃이 흐드러지면 그 욕망의 치렁치렁함에 두려움이 앞선다.

 

 

 

농가의 담벼락에도 욕망의 포스트가 길게 붙어 있다.

 

 

 

폐가에 대비된 번듯한 별장보다도......

파릇한 마늘 풀포기의 생명력이 아름답지 아니한가. 

 

 

 

입곡마을회관을 지나 마을 어귀로 빠져 나왔다. 철마산이 이렇게 보이누나.

빗방울이 떨어지는 들녁에서 일하는 할머니에게 크게 여쭈어본다.

물론 알고 물은 것이 아니었다. 입석마을이면 선돌이 있음직했고, 지인들의

산행기에서 긴가민가 기억나는 바가 있어서였다.

 

 

"입석마을에 입석이 있어요???"

"....... 입석?????........"

 

"아.....!! 선돌말입니다. 선돌!!"

"아앙...... 선돌...... 저기 유치원 지나 가게 앞으로 가믄 멀지 않아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