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껏 신분조회를 받아본 적이 세 번 있다.

 

한번은 무인도인 줄 알고 수영해서 갔던 섬이 알고보니 국방과학연구소의 미사일 개발 기지였다.

 

폐쇄회로 TV에 딱 걸려 수영복만 입고 꼼짝없이 붙잡혀 있다가 해경에 인도되었다.

 

한번은 한남정맥 종주의 마지막 구간에서 분수령의 끝을 보고 싶은 마음에 민통선을 넘었는데 군인 아저씨들이 반겨주신다.

 

그리고 한번은 가장 오래된 일인데 16년 전 고 2때로 기억된다.

 

야간 산행을 한답시고 관악산엘 올랐는데 결국 길을 잃고 헤매다가 바지 다 찢어지고, 막상 능선에 올라서보니 이 능선이 아닌게벼!

 

비록 잘못 들어선 능선이지만 찬란한 서울의 야경과 시원한 바람이 머리속에 남았다.

 

계곡까지 다시 내려갔지만 오기로 다시 정상을 찾아 올랐는데 갈증이 심해 꼭대기의 기상대에 물 좀 얻어먹으러 들어갔다가 신분확인받고, 직원의 자고 가라는 권유를 만류하고 물 한컵 얻어먹고 내려왔다.

 

요즘이야 야간 산행이 보편화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야심한 시각에 산을 배회하면 수상한 사람 취급 받았다.

 

오늘 호젓하게 관악산을 오르면서 문득 그 때 생각에 그 능선을 16년만에 다시 찾아보기로 한다.

 

능선 북쪽 비알의 응달진 길섶에는 아직 잔설이 많다.

 

찾아가는 초반부터 오늘의 고난을 예고하듯 등로는 보이지 않고 온통 잡목과 위험한 암릉의 연속이다.

 

세탁하고 몇 번 입지 않은 자켓이 누더기 같다.

 

산님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은 눈 밑에 낙옆까지 두껍게 쌓여 아주 미끄럽다.

 

벌러덩 넘어지기를 세 번, 정강이 타박상을 두 번(그것도 같은 자리에 두 번!).

 

우여곡절 끝에 다시 그 능선에 오르니 그 때의 상쾌한 바람과 혈기왕성했던 나를 만난다.

 

그 때와 지금의 관악산은 그대로인데 그 때는 어머님이 기다리시는 귀가이고, 오늘은 처·자식이 기다리는 귀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