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늦은 오전.

구파발 704번 버스 정류장에는

오늘도 예외 없이 한 무리의 산님들이 줄지어 북한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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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도착한 버스는 기다리던 산님들을 죄다 태우고 출발을 합니다.

복잡한 버스 안에서 부대끼던 산님들이

북한산성 입구에서 거의 대부분 하차를 한 뒤

효자 2리 정류장에서도 몇 분의 산님들이 차에서 내립니다.

산객으로선 마지막인 나도 몇 정거장을 더 가 “솔고개”에서 길에 내려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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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     솔고개 입구.

전번 주 “숨은벽 능선”을 걸으면서

왼쪽으로 계속 조망되던 “상장능선”이 궁금해

내 언제 한번 시간을 내어 오르리라 생각을 했었는데

주말에 잡혀졌던 약속이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기회가 금방 왔습니다.

“상장능선”은 나에겐 미답의 산행인지라

약간의 긴장감과 또 호기심이 교차하여 발걸음을 서두르게 합니다.

산을 향해 난 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고 있는데 내 걸음 소리에 놀랐는지

왼쪽 논두렁에서 기십 마리의 참새 떼가 푸드득 공중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길 오른쪽에는 다 쓰러져가는 돌담을 가진 집이 한 채 있는데

마당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이 옛날 정다운 시골길을 걷는 듯합니다.

흥겨운 걸음으로 마을을 다 빠져 나올 때쯤 오른쪽으로 길이 높여지는데

“우측 등산로”라는 나무 팻말이 서있고 여기서 부터 “상장능선“이 시작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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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     폐타이어 봉.

등산로에 올라서서 채 오 분도 가지 않아 마른나무 숲이 나를 에워쌉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차 달리는 소리만 아니라면

깊은 산 속에 홀로 놓여 진 그런 기분이 들 것 도 같습니다.

나는 이런 느낌이 좋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알지 못하는 세상에 온 것과 같은 느낌.

내가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세월 속으로 갑자기 뚝 떨어진 느낌.

어쩌면 생소해서 이제껏 내가 알지 못하던 것들이 산재해 있을 것 같은 느낌.

내가 산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

한적한 오솔길이던 등산로가 갑자기 된비알이 됩니다.

몸이 풀릴 겨를도 없이 고개를 치켜든 비탈길이 나를 숨차게 합니다.

하지만 

거친 호흡이 희열로 변하고

그 야릇한 희열이 열정을 만들고

그 열정이 땀방울로 바뀌며 나를 산으로 밀어 올립니다.

한발 한발 고도를 올릴 때마다

작디작은 나는 점점 커지고 발밑의 큰 세상은 자꾸만 작아져만 갑니다.

역시

내가 산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

십 여분을 쉬지 않고

거친 숨소리와 또 떨어지는 땀방울을 친구하여 길을 오르니

첫 번째 안부에 다다르는데

거기에는 폐타이어를 소재로 한 멋진(?) 설치미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잠시 물 한 모금의 여유를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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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전망바위.

“폐타이어 봉”을 지나 잠시 순해지던 등산로가 또 다시 고개를 치켜듭니다.

어제 먹은 약주 탓인지 아니면 아직도 몸이 덜 풀렸는지 다리는 무겁기만 한데

“상장능선”이 원래가 험한 곳인지 오늘의 코스가 유난히도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십 여분을 그렇게 힘들어 하며 산길을 오르니 오른쪽에 마당바위가 하나 나타납니다.

잠시 쉬어 갈 요량으로 그 곳에 올라서니 범상치 않은 경치가 아, 감탄을 자아냅니다.

‘상장능선“에서만 조망될 수 있을법한

“숨은벽”과 “백운대”에서 내려뻗은 “염초능선”과 그리고 그 뒤로 보여 지는 “의상봉” 등

“북한산” 정상부의 산군들이 한 눈에 들러오는데 그 위용에 정말 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언제까지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오히려 그 풍광과 하나 될 것 같은 감동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지나가는 바람이 깨워놓습니다. 갑자기 한기가 온몸을 부딪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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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    2봉.

잠시 순해졌다 다시 고개를 치켜세우기를 반복하는 길을 마냥 걸어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길 중앙에 우뚝 솟은 암봉(2봉 인 것 같습니다.)을 만나고

좌로는 “오봉”과 “도봉산”의 정상부들이

우로는 “숨은벽”과 “북한산”의 정상부들이 조망되는 등산로를 걷게 되는 데

아마도 “제 9봉”의 사면을 내려 설 때까지 그 멋진 경치가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2봉”을 우회하고 “3봉”에 올라 가야할 능선을 바라보는데

길 양쪽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같은 경치가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냅니다.

아, 산은 “감탄사”입니까?

우리가 감탄하여야 할 많은 것들이 여기 이 산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3봉”을 간신히 내려와 “4봉”을 우회 합니다.

“4봉”을 지나 또 하나의 봉우리를 넘고서야 길은 오솔길로 변하며 숲 속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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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0     점심.

언제 부턴가 허기가 느껴져 길을 조금 비켜난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이 추위를 느끼게 합니다.

땀을 많이 흘렸는지 한기가 찾아오고 손끝이 시려옵니다.

하지만 혼자 먹는 밥에 귀찮기도 하여

바람막이 재킷도 꺼내 입지 않고 서둘러 식사를 마칩니다.

까마귀 놈들이 자기들의 영역인지 주위를 맴돌며 까악 까악 울음을 웁니다.

빨리 자리를 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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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     육모정 고개.

온몸이 추위에 떨려 급한 걸음을 합니다.

하지만 한번 찾아든 한기는 좀처럼 가실 줄을 모릅니다.

산행 초입의 그 끈끈하게 흐르던 땀과 데워져 답답하던 체온이 그립습니다.

ㅎ ㅎ 이래서 인간이 간사하다 말합니까?

한 번의 오르막이 있었고 그리고 긴 내리막이 있었는데 “9봉”을 우회한 것 같습니다.

사십 여분을 그렇게 추위에 떨던 긴 내리막이 끝 날 때쯤 철탑이 하나 나타납니다.

육모정고개 지킴터 : 1.3km

영봉 : 1.3km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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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     도선사 주차장.

시계를 보니 두시 이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열한시 오십분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솔고개”에서 “육모정고개”까지 두 시간 삼십오 분을 걸었습니다.

잠시 “육모정고개 지킴터”로 내려갈지 “영봉”으로 오를지를 망설이다가

산행을 끝내기엔 조금은 아쉬운 시간인 것도 같아 “영봉”쪽으로 길을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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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별을 보고 집을 나섰다가

별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산행을 가끔 했었습니다.

먼 산을 갔다 와야만 큰 산에 갔다 온 것 같았고

가까운 산은 그냥 소풍정도로만 여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설악의 공룡”을 타고 “지리를 종주”하고

“소백의 칼바람”과 “덕유의 설산”을 갔다 와야만 산행을 했는가 여길 때가 있었습니다.

“아, 북한산”

이렇게 멋지고 장쾌한 산이 서울의 중심지에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의 일일 것입니다.

요즘 부쩍 “북한산”에 빠져들어 행복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늦은 아침을 먹고 배낭을 챙깁니다.

그리고 오늘을 기대하며 집을 나섭니다.


 

                                              2007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