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2005. 11. 15.
누구랑 : 나 홀로
산행코스 : 규림병원 - 남문 - 상계봉 - 만덕

APEC 여파로 온 도로엔 경찰이 포진하고
차량 2부제실시로 인한 활동반경마저 자유롭지 못해
자투리 시간을 이용, 다시금 금정산에 들다.
얼마 전과 동일하게 들머릴 식물원옆
규림병원 맞은 편, 계단길로 잡았다. (13:00)
일전엔 초행에다 느낌만으로 진행한 좌충우돌 산행이었는데
건너 편 능선의 엄청난 암릉의 활홀경을 접하고선
오늘 다시 제대로 그 암릉속으로 푹 빠져볼 심산이었다.

초입부터 올망졸망 바위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왼쪽으로 비스듬히 오르면 이내 뚜렷한 산길이 열린다.
시야를 즐겁게 해주던 가을 색시 뭇단풍들은
어느 새 거의 자취를 감춰버려 사뭇 섭섭치만
알싸한 冷氣는 온 몸에 탄력을 부여함과 동시에
흐린 정신을 또롱또롱히 맑혀주니
긴 시간 溫氣에 익숙해진 몸과 맘이
다시금 화들짝 깨어나는 듯 하고......

주변에서 그랬다.
제발 혼자 산에 가지 말라고!
수 개월을 상습적으로 악행을 일삼던 자가
얼마 전 상계봉 부근에서 검거되고
대대적으로 매스컴을 탔으니 오죽하랴만은
진정 떠나고 싶을때 知人들이 사정이 여의치 못하노라면
혼자라도 훨~훨~ 떠나야만 하는것을!
여럿이면 여럿인데로 재미가 나지만
혼자이면 혼자라서 사색의 깊이도 깊고
산행의 묘미도 더 오래 가는 것을!

몇 발짝 바로 앞에서 갑자기
푸드득 꿩이 날아 오르는 바람에
멈칫 놀란 가슴도 잠시
묵묵히, 즐거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늘은 제대로 산길을 탄 모양
거대한 기암괴석들이 시시각각 그 위용을 드러내는데
금정산의 숨은 보물이라도 찾은 양, 신이 난다.
바위를 짚고 오르기도 하고
드물게는 로프를 잡고 오르지만
특별히 위험한 구간은 없다.
그리도 화려한 자태로 골골이 흘러내리던
뭇단풍들은 쇠락의 빛이 역력하고
계절은 이미 겨울의 문턱에 와 있다.

몇 발치 떨어져서 절경을 조망하는것이
그곳을 밟고 섰을 때보다 운치가 더 낫다란 생각을 하며
일상사도 몇 발치 떨어져 헤아리고 배려하면
우리네 삶이 더 윤기가 흐를거란 상념에 잠시 젖다
갑자기 눈앞에 떡 버티고 선
하늘을 이고 있는 거대한 암봉앞에
나도 모르게 와아~ 감탄이 솟다!

층층이, 겹겹이, 총총이
무리지어 침묵하는 암봉, 암봉들!
누구의 솜씨런가, 저 조각 작품들은!
전망좋은 너럭바위에서 시내를 조망하고
멀리 의상봉까지 눈에 넣고 다시 오르는데
모래 주머닐 쌓아만든 참호위로
흰 종이에 안내문이 쓰여있다.
--APEC기간동안 군 작전상......--
머나먼 땅 강원도에서 군복무중인 장남생각에
애틋한 母情 잠시 달래는데
인기척이 나더니 정말 장남또래의 군인 한 명!
오늘부터 입산 통제라 했다. 흐미~~
여차여차히 양해를 구하고 남문엘 당도하니(14:20)
주능선길이라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고
산행통제에 설왕설래하는 모습들이다.

손쉬운 코스인 수박샘쪽 마다하고
왼쪽 급경사길로 상계봉을 향하다.
매번, 더 힘든 길을 더 많이 걷고
맘껏 자연속에 도취되어 양동이 땀
원없이 흘리고픈 요상스런 욕망!
그것은 번번이 깨어지는 꿈이 된다.

상계봉(640.2m)!
가족과, 친구와, 동지와
수도 없이 찾았던 낯익은 곳.
온 산이 단풍의 향연은 이미 끝나
잔치뒤의 적막함속에 까마귀무리들이
포물선 그으며 나래짓하고 있다.

상계봉을 벗어나 다시 남문 쪽 진행타가
오른쪽으로 뚜렷이 난 오솔길을 따라
골짜기를 타고 만덕으로 향하다.
처음 걸어 보는 이 산길은
결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은 온 골에 넘쳐나고
울창한 수목사이로 소롯이 난 길을 따라
푹신한 양탄자 낙엽 밟고 또 밟으며
끝나가는 가을 잔치를 풍성히 음미하다.

푸드득!~
살오른 숫꿩이 또 날아 오르고
내려갈수록 뭇산새들의 청아한 화음!
산자락끝 텃밭에는 갖가지 채소들이
진초록 기운 내뿜으며 쑥쑥 발돋움인데
지척에서 매에에~~에 흑염소울음소리
흡사 여기가 시골인양 혼동된다.
마을로 바로 내려서기 싫어
남아있는 한 웅큼 햇살을 담보로
다시 좌로 돌아 산등성일 훑으며
사람발길 전혀 닿지않은
낙엽푹푹 쌓인 길 뱅~뱅 돌고돌다.

하늘거리는 만발한 억새사이로
마지막 빛 한 줄기 안간힘이었다!(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