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칠선계곡) 산행기

 

일시 : 2010. 7. 10

일행 :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진주 이춘식 건축사 부부

산행구간 : 지리산 철선계곡

              10시 20분 칠선계곡 주차장 출발

              11시 23분 선녀탕

              12시 16분 비선담

              원점회귀산행

 

오랜만에 지리산 산행에 나섰다. 2007년 백두대간 종주 때 성삼재를 들머리로 여원재까지 걷기 위해 갔던 때가 마지막이었다. 비록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평소 마음 속에 지리산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산행은 비교적 일찍 신청했다.

 

출발 시간인 6시 30분보다 조금 일찍 출발지인 교대역으로 나갔다. 차 입구에 있던 이종호 회장 등 임원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올라타니 몇 분이 타고 계셨다. 비경으로 알려진 곳일수록 맑은 날씨에 보아야 영롱한 햇살과 녹음이 물에 반사된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 장마전선이 북상하여 비가 올거라고 한 예보 때문에 날씨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임했다.

 

경부고속도로로 가는 도중 창밖을 보니 논에 심어 놓은 벼가 포기를 벌어 논바닥을 푸르게 덮고 있었다. 이제 파란 하늘과 힌구름이 거울처럼 비춰 보이던 말간 논물 바닥은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시시각각 생명의 성장으로 변화되는 풍경을 대하게 되는 것도 축복된 일로 여겨진다. 그러한 대자연의 표상됨은 근원적으로 생명력의 발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지 뒤로는 가까운 산이 그윽이 보였다. 푸르러진 산이 안개 낀 날씨에 원근감으로 더욱 회청색 빛깔을 띠고 있었다. 식물이 무성해진 이맘때는 맑은 날에도 산세는 촉촉한 빛깔을 띤다. 대기중에 습도가 높아져서 생기는 현상이다.

 

대진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8시 20분 금산랜드 휴게소에서 쉬고 갔다. 그리고 9시 36분 88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그 도로는 2차선으로 고속도로 치곤 좁은 편이지만 그 길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름길이 생기자 동서화합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졌었다. 그리고 지금은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진입부에서 조금 가다보니 좌측으로 함양 톨게이트가 보였다. 그 부근 표지에 광주 101km, 지리산이 18km로 나타나 있었다.

 

그 길을 가다보니 강남 건축사 등산동호회와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 밤에 길을 횡단했던 일이 떠올랐다. 차는 드물지만 고속도로를 건너는 것이 퍽 위험스럽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도로가 대간을 자르며 지나는 것에서 대간의 신성함이 깨진 것 같은 안타까움도 느껴졌다. 그 때 산행을 함께 했던 통로 옆 좌석의 최진 회장과 그 예기를 했다.

 

9시 52분 지리산 톨게이트로 들어섰다. 그 곳은 전라북도 남원군 인월면 소재였다. 입구에 “남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프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길가의 가게에 ‘흥부’라고 쓰인 글씨도 보였다. 하지만 흥부 이야기에 나오는 순박한 인상과 달리 어설픈 도시 가로 모습이었다. 잠시 후 그 가로를 벗어나자 논과 방았간 건물 등이 보였다. 그 길은 여러번 들렀던 실상사로 가는 길이라 지리에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9시 56분 지나는 차 안에서 최진 회장이 차창 밖 풍경을 가리키며, 올해 걸었던 지리산 둘레길 3코스의 시작점이라고 알려주었다. 10시 5분 주천면에 들어섰다. 지리산의 큰 산세의 체취가 다가오고 그 품안에 안기는 느낌이 들었다.

 

지리산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선 이 산은 거대하고 넉넉함 자체로서 의미가 전해온다. 그것이 때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도 든다. 천왕봉, 반야봉 등의 높다란 봉우리와 뱀사골, 피아골 같은 깊은 계곡들이 어우러져 있어서 한 가지 특징적인 인상만으로 눈길을 끄는 대상이 아닌 깊은 품에서 나오는 장엄함과 다양함으로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지리산의 드넓은 산세에는 그만의 비경과 이야기를 지닌 곳이 많다. 몇 년 전에 지리산 천년송을 보러 가던 길에는 와운재가 있었는데 휜 구름이 누워 넘는다는 뜻이다. 칠선 계곡에서 가까운 전에 갔던 백무동 계곡도 이름에서 선계의 느낌이 떠오른다.

 

지리산은 자연의 심원함과 다른 한국 근대기 역사적 상처의 사연들도 베어 있다. 여느 곳처럼 이 땅에 삶의 뿌리를 박고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사람들이 낯에는 국군, 밤에는 빨찌산 부대에 이념적 의심의 눈초리 속에 때로 무고한 희생을 당하기도 했던 그 대목이다. 그 때문에 장엄한 지리산을 대하면서 늘 슬픔에 대한 숙연한 감정이 일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런 의미를 모두 잊고 선경의 느낌만을 상상하며 들어서게 되었다. 이번에 가는 칠선 계곡은 휴식년재를 거쳐 오랜만에 개방된 곳인데다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로 꼽히는 비경을 지닌 곳이라 더욱 기대를 갖게 되었다.

 

10시 8분 우측에 보이는 백무동 입구를 지났다. 그리고 10시 17분 칠선계곡 주차장에 도착했다. 먼거리인데 비교적 빨리 도착해 시간적 여유가 느껴졌다. 이종호 회장이 주차장 한쪽으로 가서 진주에서 온 이춘식 건축사 부부와 인사를 하고 함께 걸어와 일행에게 소개했다. 산행을 시작하는 철선계곡이 그분이 사는 경남 지역안에 있어서 지역건축사로서 반겨주는 마음도 담겨 있는 듯 했다. 인사를 하며 물어보니 진주서 이 곳까지 1시간 30분 걸렸다고 했다.

 

 

 

 

각자 가볍게 몸을 풀고 산행을 시작했다. 주차장 바로 위쪽으로 오르니 동네 가옥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었다. 그 마을 어귀에는 지은지 얼마 된 것 같지 않은 팔각정이 있는데 그 난간에 팔을 기대고 바라보는 노인 몇 분에게 인사를 하니 일행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동네를 가로지르는 마을 길 왼편에서는 그분들보다 나이가 조금 적어 보이는 남자분이 밭에서 무엇인가 수확을 하고 계셨고 그 밭 너머로 인근의 수려한 산세가 그윽하게 어우러져 보여 이 곳 마을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이 느껴졌다.

 

마을을 지난 오름길에는 돌을 가지런히 깔아 놓았다. 숲이 아닌 상황에서 경사가 심한 그 오름길을 한참동안 걷느라 땀이 많이 흘렀다. 그 오름길을 지나 고개에 이르니 그 너머로 깊고 그윽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것이 마치 선계의 경계를 넘어서는 기분이었다. 계곡 깊숙이 첩첩한 산세가 보였다. 이제부터 그 멀리까지 신비를 한꺼풀씩 벗겨가듯 걷게 될 것 같았다. 오늘은 비경을 찾아 왔다는 생각에 저절로 마음 안에 그런 의식이 생겨난 듯 했다. 그리고 경치를 좀 더 잘 음미하려고 더 차분하게 숨을 죽이며 걷는 상태였다.

 

공간은 그런 신비로운 구조가 느껴지지만 그 곳을 지나는 산길은 보통 산길 폭의 두배 쯤 되고 나무를 잘게 부순 칩이 깔려 있었다. 그것은 선경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의 손길 같았다. 가다가 연세 많은 남자분이 맞은편에서 작은 경운기를 끌고 오고 있어 옆으로 바짝 피해 비켜주었다. 그 길을 조금 더 가다보니 민박집과 가게가 나타났다. 아까 본 경운기는 그 곳까지 물건을 운반하기 위해 쓰이는것 같았다.

 

생각지 않았던 약간의 상업적인 생각과 인공적인 손길이 순수한 공간의 상상을 조금 깨뜨렸지만 주변에 펼쳐진 산세는 그런 염려를 놓을 만큼 그윽하게 느껴졌다.

 

가게를 지나 터널 같은 대나무 숲을 지났다. 그처럼 안이 가려진 통로를 지나게 되는 것이 마치 무릉도원의 여러 세계를 점차적으로 들어갈 때 각각의 장소에 대한 신비로움을 늪이는 것과 같은 구조로 느껴졌다 .

 

11시경 우측으로 꺽여지나가는 길을 지날 때 길가에 쉬고 잇던 다른 일행이 하는 예기가 들렸다. 한 여자분이 연애 잘하는 사람이 사과를 잘 쪼갠다고 했다. 그 예기를 들으며 모든 사람들이 같은 예기를 알고 있고 그런 말을 하며 대화한다는 것이 신기게 느껴졌다.

 

칠월 숲은 무성함이 정점으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세상살이에서 대수롭지 않게 허겁지겁 살아가는 일상의 날들이 그만큼 많이 지나간 듯하여 그런 계절 풍경을 대하면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될 때가 많은 편이다. 걷고 있는 길이 계곡면으로부터 높은 곳을 지나고 있어 계곡물 소리가 저만치서 조용하게 들려왔다. 오르막길을 걷는 동안은 이마에 구슬땀이 흘러 내렸지만 물소리 바람소리 벌레소리가 여름산의 시원스런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앞쪽에 혼자서 걷고 있던 여자분을 추월해 지나가면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니 밝게 인사를 받았다. 그분에게 만날 줄 알았던 선녀가 보이지 않아서 걸음이 무겁다고 하며 선녀는 어디 있나요? 하고 농담으로 묻자 “선녀가 비상하고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종착지인 비선담이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는 곳이라는 지명 같았다. 가다보니 길가에 엉성한 웉타리를 쳐 놓고 사유지니 들어오지 말라고 글을 써 놓은 것이 보였다. 그 글을 보니 분노보다 실소(失笑)가 나왔다. 다시 앞쪽에 남녀가 끈 한쪽씩을 잡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남편이 칡넝쿨로 뒤의 부인을 끌어주며 걷고 있었다. 내가 칡넝쿨로 끌고 가시는거예요? 하며 부부사랑이 아름답다고 했더니 떡 두꺼비 같은 인상의 남편이 생기 넘친 얼굴로 고마워 했다.

굽이굽이 오르내리는 길을 가면서 여전히 앞으로 마주칠 비경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있었다. 길은 낮은 봉우리를 지나기도 하고 안부를 좌우로 돌아가기도 했다.

 

다시 앞에 놓인 작은 봉우리를 올라서 지나가다 젊은 아가씨 두 명이 그곳에서 쉬면서 하는 예기가 들렸다. 한 여성이 “바쁠 때 연락해 보았자 좋을 게 없다며 바쁘다고 하는데 만나자고 하면 너무 굽히고 들어가는 것이다” 고 했다. 만나는 남자를 두고 남녀 간의 줄다리기에 대한 수를 친구와 예기하며 점검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 계곡에 내려오는 선녀들도 그런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녀도 여자인데 여자는 다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았다.

 

산행에 나서면서 국어사전에서 선녀에 대해 찾아보니 그냥 선경(仙境)에 사는 여자라고 되어 있었는데 충분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녀의 의미는 그냥 선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우연히 들은 대화의 내용 같은 계산을 하지 않는 티 없이 착한 존재일 것이다. 선한 마음은 여자로서 ‘섹시함’이 아니다. 어릴 적엔 ‘섹시함’ 같은 말은 상스러운 사람들이나 하는 못된 말로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자들 스스로가 그 매력을 소중한 자질로 여기며 누구하고나 스스럼없이 통용되는 말이 되었다. 그러면서 여자건 남자건 성 이전의 보다 더 중요한 인간으로서의 존재적 가치를 사회 전체가 망각하가는 일이 많게 되었을 것 같다.

 

여자 학교들의 교훈에는 진,선,미를 가장 훌륭한 덕으로 여기고 그 말을 채택하는 사레가 비교적 많다. 거기서 아름다움은 섹시함의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선함 자체로서 아름다운 것이다. 모성애의 위대함과도 연관될 것 같은 여성의 선함은 세상을 선하고 아름답게 하는 힘이 있다. 그 경우 선녀의 이미지에 담긴 선함은 천사의 존재 의미와 맥락이 같아진다. 베풀음, 이해심 등의 선함의 의미는 사람을 구원하는 보살이나 천사의 의미와 통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선함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걸었다. 오르막길을 올라 고개에 올라서자 여러 사람이 쉬며 모두 오이를 먹고 있었다. 다시 내려서는 길에 매미소리가 들렸다. “벌써 매미 울음소리를 듣게 되는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벌써 그런 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림길을 걸었다. 물소리가 가까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다보니 다리가  우측에 보였다.

 

11시 23분 선녀탕에 도착했다. 위에서 흘러내린 계곡의 맑은 물이 비취빛 물빛을 띠고 아담한 호수 주변의 공간이 형성 되어 있었다. 그 주변의 바위와 나무가 우거져 더 그윽한 느낌을 자아냈다. 뒤로는 높은 산이 둘러치고 있고 그 위로 하늘의 맑은 하늘이 보였다. 선녀가 그 하늘로부터 이 곳으로 와서 목욕을 하고 돌아가는 길로 보였다. 그 경치를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 전해진 칠선계곡의 아름다움이 사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광경을 보게 된 기쁨을 느끼며 멈춰서 바라보이는 풍광을 스케치 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아름다움에 매료된 듯 탄성을 지르며 지나갔다.

 

칠선 계곡은 그 지명대로 일곱 선녀가 내려온 계곡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그 이름에 나타나듯 선녀의 전설이 깃들 만큼 선경의 모습을 갖추고 있을 것 같았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이어야 선녀가 있을 것 같이 상상되었다. 선녀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에 자주 등장했다. 그런 에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교과서에 실렸던 선녀와 나무꾼이다.

 

나무꾼이 포수에게 쫓기는 사슴을 숨겨 도와준다. 사슴은 보답으로 밤이 되면 숲속에 있는 폭포에 가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곳에 가면 선녀가 목욕을 하고 있을거라고 한다. 나무꾼이 거기로 찾아갔더니 선녀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나무꾼은 속으로 “히야! 이쁘다” 하며 저런 여자와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 선녀가 올라가지 못하게 옷 한 벌을 감추었다.

 

선녀들이 목욕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선녀가 올라가려다 날개옷이 없어 당황하며 허둥대자 나무꾼이 나타나 날개옷이 아닌 사람들이 입는 보통 옷을 주었다. 그리고 선녀에게 함께 살아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선녀는 하늘로 올라갈 것을 체념하고 나무꾼과 함께 살았다.

 

사슴이 나무꾼에게 날개옷을 감추어 함께 살 수 있게 되는 것을 알려 줄 때 아이 셋을 나을 때까지 절대로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일렀었다. 그런데 아이 두 명을 낳았을 때 선녀가 부탁하자 나무꾼은 아무 일도 없겠지 하고 생각하며 돌려주었다. 그러나 선녀는 날개옷을 받자마자 양팔로 아이 한명씩을 안고 하늘로 날아가고 말았다. 나무꾼은 하늘 멀리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나무꾼은 실의와 슬픔에 잠겨 병을 앓고 말았다. 그러다 겨우 기운을 차리고 다시 사슴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했다. 그러자 사슴은 산속에 천계에 물을 공급하는 우물이 있는데 밤에 하늘에서 물을 긷는 두레박이 내려오거든 기다렸다가 그것을 타고 올라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나무꾼이 그 말대로 하여 하늘로 올라가 부인과 아이들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선녀에게는 최상의 존재 인식을 갖게 된다. 그런데 우연히 그 배필로 만나는 사람들은 나무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많다. 나무꾼의 캐릭터는 권력이나 부자들이 아니다.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그것은 현세에서 공주나 유명 연애인들이 의래 재벌가나 권세와 힘이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과 다른 의미를 암시하고 있어 보인다.

 

선녀의 존재성은 이 세상의 살벌하고 진흙탕처럼 갈등과 온갖 문제거리로 뒤엉켜 있는 데에 대한 일종의 이상향 같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속세의 삶에 괴로워하면서도 함께 엉켜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상향들이 하나씩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순수한 꿈을 잃지 않음으로서 이상 세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도 있다. 호오도온의 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 어린 주인공은 바위 조각이 모여 이루어진 큰바위 얼굴의 인상에 감회되어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 노년에 그와 닮은 이상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한 젊은 여자분이 다리를 지나다 선녀탕을 보고 감탄하며 열심히 구도를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이 전문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스케치 하는 모습이 반가운 듯 바라보다 인사도 나누게 되었다. 문득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은 생각에 프로 같은 그에게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하자 선 듯 찍어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사진을 찍으며 마주보는 표정이 맑고 아름다웠다. 나도 그가 갖은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사진기 앵글로 보이는 밝은 미소가 마음을 싱그럽게 했다. 정성을 다해 찍으려고 신경을 쓰다보니 옆구리에 끼고 있던 스케치북이 땀에 젖어 그려놓은 선이 번진 곳이 있었다. 사진을 찍어주고 나자 비선담을 행해 떠났다.

 

다시 스케치를 하는 사이 일행이 다가와 인사를 나누고 지나갔다. 나도 서둘러 스케치를 마치고 다리를 건너 비선담을 향했다. 길가의 계곡물이 선녀탕으로 고여 들고 있었다. 그 계곡의 너럭바위에 있던 최 회장 사모님이 좋은 풍경을 발견한 듯 와보라고 해서 가 보니 웅덩이의 모습이 더 뚜렷하게 느껴졌다. 다시 오름길을 걸었다. 좌측으로 놓인 계곡에 이따금 웅덩이가 보였다.

 

 

 

 

 

 

 

한참 올라가다보니 다시 다리가 나타났다. 철판을 씌워 놓은 폭이 좁은 다리가 연이어 놓여 있었다. 그런 다리들은 지날 때 적당히 출렁거림이 생기는데 앞에서 여성과 함께 지나던 남자분이 중간쯤에서 일부러 더 흔들리게 하려고 발을 구르자 여성분이 애교와 비명섞인 목소리로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 다리를 지나다 중간에 서서 바라보니 아래의 물웅덩이와 위쪽의 계곡이 각각 멋지게 보였다.

 

개울을 건너 오름길을 걸었다. 계곡이 좌측에 놓였다. 다시 다리를 건너자 이번에는 계곡이 좌측으로 보였다. 다시 다리가 나왔다. 그 부근 이정표에 비선담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곳에 머물지 않고 다 게속 올라갔다.

 

다리를 건너 계곡을 우측에 두고 걸어갔다. 마주 오던 남자분이 150m 정도 가면 끝이라고 했다. 평상시 개방이 허용되는 종착지가 어딘지 궁금했다. 한참 가다보니 사람들이 물가에 몰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이 마지막 구간인 것 같았다. 끝 부분에 발코니 같은 곳에서 허공을 올려 보듯 하다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내려 왔다. 그 곳은 좀더 깊고 너른 소(沼)가 있었다. 그 옆 큰 바위에서 한 사람이 다이빙을 하며 물속에 뛰어 들었다. 풍덩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놀라며 일제히 웅덩이 안쪽을 바라보았다.

 

일행 가까이 다가가자 남상길 건축사가 이춘식 건축사가 배낭에 지고 온 수박을 권했다. 수박 한쪽을 받아 한입 물으니 시원하고 맛이 좋았다. 아직도 시원하다고 하자 이건축사 부인이 얼려온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산길에 힘들여 지고 와서 많은 일행에게 별미를 안겨준 마음이 고맙고 대단한 정성이 느껴졌다. 일행이 펼쳐 놓은 막걸리와 음식을 나누어 먹다 저 쪽에 두었던 배낭을 갖고 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 많지 않은 음식이지만 일행은 연신 각자 가지고 온 음식을 서로에게 권하며 정을 나눴다.

 

식사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계곡의 특별함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하는 곳들 가보면 그만한 이유가 느껴진다. 계곡은 많지만 너럭바위와 맑은 물이 고인 웅덩이 그리고 주변의 청아한 산세가 어우러진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이런 장소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모두 비경의 감상에 젖은 탓인지 일행이 다른 때보다 더 느긋하게 머물며 일어설 줄을 몰랐다. 나는 그 곳 주변을 오가며 요모조모 아름다운 구도를 찾아보기도 하고 스케치를 하기도 했다. 비선담을 지났다. 그리고 몇 몇 일행이 나서는 것을 보고 하산을 시작했다.

 

아래로 가면서 다시 비선담 옆 다리를 건넜다. 아래쪽에 보이는 비선담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 쉬고 있었다. 아까는 지나쳐 왔지만 그 곳 느낌을 제대로 확인하려고 내려가 보니 풍광이 좋아 게곡 중간쯤에 서서 스케치 하다 다시 내림길을 걸었다.

곳곳에서 스케치를 하다보면 일행에 뒤쳐질 염려가 있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내려가는 길에서 앞에 걷던 여자분들에게 미안하지만 먼저 가겠다고 하자 한 분이 아까 스케치 하는 모습을 본 듯 화가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기만 하자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바쁘겠다고 했다. 산행에 동행하는 사람들로부터 가끔 듣는 말을 처음 보는 사람이 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다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오를 때 주변 풍경을 다 보았기 때문에 새로운 흥미는 없었다. 단지 좋은 장소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좋았다. 지났던 경치가 다시 역순으로 보였다. 아까 지났던 대나무 숲이 나타났다. 앞서 걷던 일행의 여자분이 “아휴 다리 아파” 했다. 나는 앞서가며 선녀를 못 만나서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러자 뒤에서 하나도 안 아픈 것 같다고 했다.

 

2시 42분 민박과 가게가 있는 집에 당도했다. 마당 한쪽에 팔려고 내 놓은 차 등의 물건들이 별로 팔리지 않은 듯 비워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까 지날 때와 달리 주인이 문간에 서서 지나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물건이 팔리지 않자 걱정이 되어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변에서 잠시 멈춰 지나온 산세를 뒤돌아보았다. 이곳에 처음 들어설 때와 달리 이제 그 안이 어떤 모습인지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넘어 들었던 고개를 지나 내림길을 내려왔다. 마을과 그 앞 산세가 풍경으로 내려다 보였다. 돌로 가지런히 포장된 내림길을 내려가다보니 가타를 든 여학생이 혼자 올라오고 있었다. 앳된 표정에 낭만적인 발걸음이 느껴졌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혼자 어디가서 기타를 치려는 건가” 하고 물어보니 아까 지나온 민박집에서 친구들과 만나 놀기로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청춘의 시절이 영롱한 아름다움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정작 내가 살아오면서 지난 그 시절에 대해 나는 아무런 영롱함도 떠오르지 않았다. 앳된 모습과 달리 대학생이라고 했다. 밝고 착한 인상이 느껴져 내가 얼굴이 선녀같다고 했더니 더 씩씩한 표정이 되어 올라갔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토종꿀을 파는 가게가 보였다. 이지역에서 난 토종꿀이라면 참 좋은 꿀일 것 같아 구경을 하다 작은 병에 담긴 것을 만원에 하나 샀다. 마을 입구로 내려오자 가게 앞에서 할머니와 젊은 여자가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할머니에게 이 마을에 대해 물어보니 전쟁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을 옆에 둘러친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매일 4-5시 되면 저 위에서 사람들이 내려온다고 했다. 오늘 감탄 속에 오간 계곡에도 산 사람들이 머물러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낯에는 국군이 와서 뭐 주었느냐고 다그치듯 물어 보았다고 했다.

 

한동안 그렇게 살다 지금의 읍 위치로 소개 당했는데 하루는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총소리가 들릴때마다 한사람씩 쓰러진 일이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 할머니가 살아온 인생 역경이 아프게 느껴졌다. 도시서 찾아든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며 좋아하는 곳이 난리를 만나면 그렇게 험한 일도 생기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주변 산세를 바라보면서 이번에 지리산을 오면서 아릿함은 모두 잊고 비경의 감동만을 느끼는 날로 여기며 찾아온 것과 달리 오히려 생생한 아픔의 현장을 찾은 게 되고 말았다.

 

식당에 닿았다. 먼저 온 분들이 개울가 평상에 앉아 파전에 막걸리를 나누고 있었다. 일행이 다 모이자 이종호 회장이 건배 제의를 했다. 연이어 안주로 묵을 내 놓았다. 내가 낮은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경치가 좋았다. 큰 소나무와 계곡의 큰 바위 그리고 그 뒤로 놓인 산이 좋은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다른 때는 식사를 했는데 별도 식사 주문은 하지 않은 것 같아 조금씩 나눠 먹으려고 비빔밥을 한 그릇 주문했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는 분들이라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아서 나 혼자 거의 다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진주로 돌아가는 이춘식 건축사 부부와 함께 사진을 찍고 모두 석별의 정을 나누는 인사를 했다. 그 분은 그사이 대청봉을 39번이나 올랐고 백두대간도 종주했다고 했다. 사모님과 두 분이 함께 다닌다고 하는데 둘 다 건강한 인상에 성품도 좋아보였다. 차에 올라타 출발하려다 이종호 회장이 다시 이 건축사를 차에 데리고 올라와 모두 박수로 인사를 나누고 각각의 고장으로 출발했다.

 

오전에 칠선 계곡을 향해가던 길을 되돌아 서울로 올라와 9시 30분 서울 교대역에 닿았다. 우려했던 비는 한 방울도 맞지 않고 맑은 날씨에 비경을 느끼고 온 날이었다. 선경이 세상을 맑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경치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2020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