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데도 새벽 일찍 기상을 하여야만 했다.
눈을 뜨고 보니 05시05분이다. 출발 시간까지는 55분의 여유가 있다.

오늘 나는 민족의 영산이라고 일컫는 태백산(1,567m/ 경북 봉화군 소재) 산행에 동참키로 하였다.(내가 살고있는 아파트의 늘푸른산악회)

강원도 영월을 지나 태백시 태백산 도립공원 입구인 유일사 매표소에 도착하니 09시 40분이다.

그런데 매표소 출발지점부터 바닥에 흙이 보이지 않는다. 차가 다니는 도로엔 눈을 치워서 눈이 없으나 등산로와 산에는 온통 은빛 가루뿐...

처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이젠으로 무장해야만 했다.

근데 실제로 겨울산행이 몇 해 만인가. 옛날 직장 산악회에서 설악산 산행때 아이젠을 착용해보고 10여년이 지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산은 좋아하면서도 하얀 눈이 가득한 겨울산행은 거의 하지 못한 것 같다.

이번에도 태백산 영산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없었겠지...

오늘 산행 코스는 유일사 매표소에서 갈림길 오른쪽 → 유일사 → 장군봉 → 천제단 → 주목 군락지 → 문수봉 → 당골 까지(총 11km ) 약 4시간 30분코스의 비교적 완만한(?) 코스의 산행이다.

그런데 산을 오르다 보니 아이젠에 익숙치 못한 것과 아이젠의 구물(끈으로 되어 있는)로 인하여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다행히 산악회 도움으로 고무줄로 된 여분의 신형 아이젠을 얻을 수 있었다.



산악회를 따라오긴 했어도 결국은 나 자신과의 대화이며 자연과의 대화일 뿐이다. 묵묵히 걸어오르는데 왜 이리 바람은 불어대는지...

보이는 것은 1m 가까이 쌓인 눈 그리고 하얀 눈을 뒤짚어 쓴 늘푸른 소나무와 겨울 裸木 그리고 바다만큼이나 짙푸른 하늘이다. 그리고 쌓인 눈을 흩뿌리며 날카롭게 휘몰아치는 바람소리뿐. 살을 에는 듯, 뼈속을 파고드는 바람...

다행스러운 것은 산행하기 좋겠끔 날씨가 아주 쾌청했다는 점이다.

다른 산의 등산로와는 달리 태백산 천제단을 향해 오르는 길은 비교적 폭이 넓고 잘 다듬어진 것 같다.

오늘 우리 산악회에서는 태백산 천제단에서 시산제를 올린다고 한다.(돼지머리고기 놓고 시루떡 올려놓고 산악회의 발전과 무사 산행을 비는 제사)

오르는 동안 아름드리 주목을 마주했다.

주목은 수명이 32년에서 920년까지라고 한다. 그래서 살아서 1000년 죽어서 천년이라고 하지 않은가(生千年, 死千年)

나만큼이나 두터운 주목을 두그루나 마치 애인을 포옹하듯 감싸 안았다.^^

이윽고 장군봉에 도착했을 땐 어린 주목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나무 울타리로 바람막이나 방패역할을 하게끔 보호막을 쳐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주목이 명물이기는 한 모양이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반대편의 능선들...
와 ! 하고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강원도에는 고봉이 얼마나 많은가. 온통 흰 도포를 걸치고 있는 대자연을 보고 있노라니 나 역시 그 일부분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중간기점인 천제단에 다다랐다.

그런데 산악회장 등 임원들은 어느새 도착했는지 벌써 젯상을 차려놓고 제를 지내고 있었다.

돼지 입에는 어느새 파란 배춧잎이 여러장 물려 있었다. ^^

제가 끝나고 우리는 아직도 뜻뜻한 시루떡과 막걸리, 파김치, 배추김치로 가뜩이나 차가운 눈바람에 지친 육신을 녹일 수 있었다.

어디 이런 행사를 혼자서 또는 몇명이서 이루어낼 수 있을까.
오늘 산악회에는 총 35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지난 가을 설악산 산행 때 얼굴을 익힌 산악회 임원이 나를 알아본다.
조금은 미안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내킬 때만 참여해서.

이제 하산하는 길만 남아 있다. 그러나 문수봉을 넘어야 한다.(유일사매표소에서 천제단까지 4km를 왔다. 약 2시간 20여분 걸려서... 이제 천제단에서 문수봉을 넘어 최종 종착지 당골까지 7km를 가야만 한다. 비록 내리막길이라고는 하지만 눈덮인 등산로는...)

그런데...시간은 어느새 점심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특별히 준비해 간 것은 없고 산악회에서 준비해 준 먹다남은 김밥 한줄과 두유 1개. 그리고 목 마를 때 먹으려던 귤 다섯개가 전부다.

일행 중 한명이 문수봉은 바람이 세차서 식사할 곳이 마땋치 않으니 문수봉을 넘기전에 점심을 해결하잔다.

난 별로 배고프진 않았으나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약 5내지 10여분만에 점심을 해치우고(일행들은 즉석에서 가스버너로 비빔밥을 해먹더라만은 나는 스푼도 없고 염치없기도 해서 손사래를 치며 내 김밥으로 해결하였다) 다시 문수봉을 향해 눈에 젖은 무거운 발을 한발 한발 내디뎠다.

그런데 참 이렇게 힘들 줄이야.
몇발짝을 오르지 못하고 나는 주저앉았다. 이유인즉슨 바로 포만감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막걸리와 돼지머리고기 등으로 가득한 배에 김밥 몇조각을 더하고 나니 배는 더 불쑥 튀어나오고...좀 쉬었다 오를 수도 있으련만 앉아있을 곳이라고는 배낭을 깔고 앉아있어야 할 수 밖에 없으니...

어렵게 어렵게 문수봉에 다다랐을 때 그곳 한 모퉁이에선 우리 산악회 일행들이 모여 진수성찬을 펼쳐놓고 맛있게 식사하고 있었다.

그렇다. 단체 산행에서 이탈하면 손해(?)보는 것은 누구일까. 자명한 답이 나올밖에... 그리고 심려를 끼쳐 미안하고.

난 카메라를 준비하진 못한 탓에 신세를 져야만 했다.
등산 이정표가 있는 푯말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냥 흔적을 남기기 위한 징표로 사용키 위해서...

그리고 이젠 계속하여 하산이다.
미끄러운 계곡에선 비료포대를 활용한 엉덩이썰매가 얼마나 즐거운지... 보는 즐거움 또한 타는 즐거움과 버금간다. *^^*

이 곳 태백산 산행에서 느낀 이정표에 대한 소감이 있다.
그것은 매 이정표마다 희망을 안겨준다는 점, 즉 여기서부터 목적지까지 0.9km 또는 2.9km 이렇게 ...

그리고 지나온 곳을 돌아보면 1.1km 또는 2.1 km 이렇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 작은 배려이지만 등산객에겐 여유와 안도감을 준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절반쯤 내려왔을까. 아이젠이 없었다면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내리막길 길목에서 내려가지 못하고 있는 젊은이를 보았다. 문제는 아이젠이 없다는 것. 도저히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아 ! 나도 오랜만에 善行을 해보는 구나. 내가 처음 차고 올랐던 우리 한라 걸스카웃 때 아이젠을 그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최신 것은 아니지만 잘 동여매면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작년 지리산 산행때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젊은이 다치지 않고 잘 내려갔는지...

소리중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금속과의 마찰음, 이건 정말 참기 힘든 고문이다. 그런데 이번 산행에서 이와 유사한 마찰음은 거의 듣지도 내가 해보이지도 않았다. 그만큼 등산로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와 ! 그렇게 오랜동안 눈과 함께한 적은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처음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총 5시간여 동안 나는 눈 속의 사람이었다. 눈사람.

당골 주차장으로 내려오다가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수백그루의 전나무숲을 발견하였다. 마치 젓가락 아니 마른국수처럼 반듯한 전나무가 바람결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정말 길고 반듯한 나무들이다. 다시한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우린 종착지 당골주차장에 도착하니 각종 눈조각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스핑크스 조각품. 대단하다.

이 동네 태백엔 처음 와보는 곳이었는데 과거의 탄광촌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신 문물의 도입으로 옛것이 많이 사라져가는 씁쓸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곳 주민들에겐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오후 3시 우리는 모든 산행을 마치고 귀로에 올랐다.

강원도 영월, 정선하면 명소가 많아 한번은 와보고 싶었던 지역이 아니던가.

그러나 내 차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단체산행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다음을 기약해야지. -.-;;

그런데 돌아오면서 차창밖으로 펼쳐진 동강 줄기를 바라보면서 숱한 상념에 빠졌다. 마치 조국을 떠나온 이방인 마냥...

나는 전라도 섬진강유역에서 자랐지만 동강이나 섬진강이나 매 한가지가 아닐까. 한국의 강은 그래서 무섭지가 않다. 물살도 세지 않고 위압감을 주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특장점이 있다면 깨끗하고 투명하여 아랫속까지 다 훔쳐볼 수 있다는 것.

그동안 매스컴에 수없이 오르내렸던 동강 ! 아 그게 바로 저 강이었구나. 한 겨울도 아니고 입춘이 지나서 바라본 동강의 모습은 하얀 잔설이 남아있고 간간히 살엄음이 얼어 있었다. 내 눈은 끝까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강을 따라 흘렀다.

저 강은 어디로 흐르는 것일까. 결국은 한강으로 흘러들겠지.

오늘 산행에서 난 또 훈장을 달았다. 겉으로 표시가 나지는 않았지만 아이젠을 넘 꽉 조인 탓인지 왼쪽 발, 인스텝 킥 할 때 쓰는 발등의 물렁뼈가 손상된 듯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또 이렇게 흔적을 남긴다. 이게 즐거움인지...특별히 글재주도 없으면서...


▣ 신경수 - 안녕하세요 신경수입니다 하루 종일 눈밭에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잔잔하게 산행을 음미하시는 산행 표시는 안해도 즐거움이 배어 있습니다 초면에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죄송스러우나 동강이 따로 있는 한강으로 흘러드는 것이 아니라 동강이 바로 남한강입니다 한강물이 태백에서 발원해 내려오면서 얻은 이름이 동강이고요 동강이 흘러내리다 서강을 만나서 합쳐지는 순간 남한강이 되는 것이지요 즐거운 산행 많이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_*~~~
▣ lululee - 고맙습니다. 신경수님 ! 東江 길이는 약 65㎞로 평창군의 오대산(五臺山:1,563m)에서 발원하는 오대천과 정선군 북부를 흐르는 조양강(朝陽江)을 모아 흐르는 동강은 완택산(完澤山:916 m)과 곰봉(1,015 m) 사이의 산간지대를 감입곡류하며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下松里)에서 서강(西江)을 만나 남한강 상류로 흘러든다고 적혀있네요(네이버닷컴). 東江은 漢江이 되고 결국 同江이 되나 봅니다. *^^*